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6)
천적
그랜드 라인의 촬영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좁은 건물 복도에서 치안대와 반란을 일으킨 하층부 사람들이 대치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라!”
곤충을 갈아 만든 분말로 생활하는 하층부 사람들과 달리 치안대는 덩치부터 달랐다.
방패로 벽을 세우고 무기를 치켜든 치안대는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과 대비됐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공간에서 치안대장은 이상한 걸 깨달았다.
“크로퍼드, 왜 그놈이 안 보이지?”
주모자가 안 보인다.
도망쳤다기엔 하층부 사람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고.
이상한 걸 깨달았을 때 덜컹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묵직한 문을 여는 소리였다.
“망할! 굴뚝으로 왔다고?!”
하층에서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굴뚝의 사다리는 띄엄띄엄 연결되어 있었다.
굴뚝을 통하려면 미로처럼 막히고 부서진 건물을 헤집으면서 올라와야 했다. 이리저리 깔린 덫을 피하는 건 기본이고.
‘어떻게?’
이유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까.
“막아!”
요란한 발소리가 위층 계단에서 들렸다.
우르르 쏟아져 내려온 하층부 사람들은 경비대의 허리를 끊었다.
“죽어!”
콰득-
앞장선 크로퍼드가 휘두른 도끼에 피가 튀었다.
계획이 성공해서 치안대가 당황하자 대치하던 이들도 참전했다.
타격음과 고함, 비명이 뒤엉키는 공간에서 유진은 양손을 들었다.
“항복! 으아앗, 항복이라니까!”
휘두른 무기를 몸을 숙여 피한 소년은 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발로 툭 찼다.
“어억?!”
그걸 밟고 상대가 쓰러지자 소년은 잽싸게 뒤로 도망쳤다.
치열했던 싸움은 어느덧 끝을 향했다.
“허억…허억…”
거친 숨을 몰아쉰 크로퍼드는 주변을 둘러봤다.
쓰러진 치안대 사이에서 자신의 친구가 보였다. 부릅뜬 눈으로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다쳤다. 죽은 지인들과 상처를 부여잡은 사람들 눈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그래도 됐어. 이제 중층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희망을 찾으려는 그의 귀에 바닥에 널브러진 치안대장의 비웃음이 들렸다.
“중층에 있는 통제실만 점령하면 끝일 줄 알아? 허탕이다, 멍청한 놈들아.”
“…뭐?”
“전력은 상층에서 관리하거든. 반년은 버틸 수 있는 상층과 달리 전기가 없는 너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한 달?”
통제실을 빌미로 상층과 교섭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이 사실은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크로퍼드는 도끼로 바닥을 쿵 찍었다.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유진!”
“가요, 가! 할아버지, 조심히 따라오세요.”
“으응? 밥 먹으러 가는 거야?”
“네네, 밥도 먹어요.”
치매 걸린 노인과 한국어로 대화하며 유진은 걸음을 옮겼고 중층에 발을 디뎠다.
“컷!”
촬영 종료가 선언되자 배우들과 스턴트맨들은 한숨과 함께 널브러졌다.
“으아, 죽겠다.”
“그래도 끝났으니 다행이지.”
끊김 없는 원테이크로 찍은 건 아니지만 수십 명이 뒤엉키는 액션 장면을 찍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리허설과 컷을 따기 위한 반복된 촬영은 사람들을 녹초로 만들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 주연 배우는 지친 기색이 없는 이안을 신기한 눈으로 봤다.
“넌 왜 이렇게 멀쩡하냐.”
“에이, 전 기껏해야 도망치고 피하는 역할만 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활동량이 엄청 차이 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성장 중인 청소년이다. 촬영 전에 사람들이 이안을 괜히 걱정한 게 아니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처럼 보였다.
다른 배우들도 이안을 보고 한마디씩 했다.
“걱정해야 할 건 나였어. 아이고, 이러다 내일 촬영에 못 나오겠네.”
“내가 어렸을 때도 저렇게 체력이 좋았을까?”
“쟤가 이상한 거야. 확실하다고.”
가볍게 웃은 이안은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방금 있던 액션 장면을 떠올려봤다. 연습과 리허설을 포함하면 수십 번도 더 본 장면이 펼쳐졌다.
크로퍼드가 도끼를 휘두르고 나이프를 든 두 사람은 빠르게 공방을 주고받았다.
묵직한 방패 안쪽으로 파고들어 목을 조르는 사람과 쓰러진 하층부 사람을 후려치는 치안대의 모습까지.
마치 그 배역이 된 것처럼 행동을 하나하나 되짚어 봤다.
‘아쉽다.’
직접 해보고 싶다. 그런 갈증을 느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참자. 깊게 숨을 내뱉어 아쉬움을 털어낸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촬영은 끝났지만 오늘 할 일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안은 뒷정리를 하는 스태프에게 물었다.
한국인 스태프였다.
“혹시 라인 프로듀서가 어디 갔는지 봤어요?”
“아, 제작부장?”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쁘다는 듯이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소품 창고로 갔을걸.”
창고로 가니 스태프들을 시켜 물품을 확인하고 있는 패트릭이 보였다.
필요한 일이긴 한데 저렇게 감시하듯 하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아니, 불편해하라고 저러는 건가.’
심통 맞은 얼굴로 서 있는 꼴을 보니 확실했다.
“라인 프로듀서!”
“…어, 촬영은 잘 끝났니.”
“물론이죠!”
떨떠름한 패트릭에게 환한 미소를 지은 이안은 친근하게 다가갔다.
“필릭스가 다음 식사는 언제가 좋냐고 물어봤어요. 프로듀서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아하하, 그렇니. 근데 일이 바빠서 말이야.”
“에이, 감독님에게 들어보니까 한국에서 온 제작팀은 전부 베테랑이래요. 걱정할 거 없어요.”
“…그렇니?”
이렇게까지 말하니 거절하기도 힘들다.
패트릭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음식일까?”
곤충의 추억이 꽤 강렬했나 보다.
‘귀뚜라미 타코는 꽤 맛있었는데. 왜 이러나 몰라.’
노숙자 시절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는 음식보단 훨씬 나았다.
어지간한 음식은 웃으며 먹을 수 있는 이안은 긴장한 패트릭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엔 두부거든요. 두부 알죠?”
“알지. 꽤 좋아한다고.”
“그래요? 잘됐네요!”
이안은 활짝 웃었다.
두부는 두부인데 취두부라는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하려나.
***
한국 스태프 사이에선 라인 프로듀서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른 상태였다.
촬영 장소가 미국인 만큼 현지 업체에 빠삭한 사람이 필요한 건 이해를 한다.
‘근데 왜 하필 이런 인간인지.’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촬영한 적도 많다. 근데도 불만인 건 차별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가 우선이니 참자는 마음으로 버텨오던 스태프들은 눈을 끔뻑였다.
이상한 장면이 보였다.
“라인 프로듀서!”
“바쁘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오래 안 걸린다니까요?”
패트릭이 이안을 살살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눈을 비벼 봐도 장면이 바뀌지 않았다.
“저게 무슨 일이래.”
“나도 몰라. 원래 반대 아니었어? 갑자기 왜 저러지.”
이안을 노골적으로 챙기던 사람이 저렇게 변했다. 이 궁금증은 모두가 품을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이 먼저 이안에게 물어봤다.
“이상한 짓이라도 했어? 라인 프로듀서가 왜 저래.”
“이상한 짓이라뇨. 공동 제작사의 대표인 필릭스를 소개해준 것밖에 없다고요.”
제작사 대표와 그 정도로 친분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런 사람을 소개받고 도망치는 게 더 놀라웠다.
대답을 들었는데 의문만 깊어졌고 스태프들의 요청을 받은 준혁이 나서서 제대로 물었다.
“왜 저렇게 피하는지 전혀 모르겠니?”
“글쎄요. 두 번 같이 밥을 먹은 게 끝이거든요. 아, 음식이 마음에 안 들었나?”
“음식?”
순간 준혁의 머리에 하와이안 피자를 잔뜩 시킨 필릭스가 떠올랐다.
또 호불호가 강한 음식을 먹었나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상상을 넘었다.
“귀뚜라미 타코랑 취두부요.”
“…뭐?”
“근데 둘 다 끝까지 먹었는데 이상하네요.”
…식고문인가.
일단 왜 피한지는 이해가 바로 갔다. 준혁에게 정확한 사실을 듣게 된 스태프들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푸흡, 어떻게 그런 걸 먹일 생각을 했나 몰라.”
“귀뚜라미는 그래도 먹을 만할걸.”
“맛은 둘째치고 모습이 별로잖아. 거기다가 취두부라니. 나 같아도 피해 다니겠다.”
쌓인 감정이 해소되는 재밌는 일.
스태프들은 그 정도로 생각했으나 이안이 패트릭의 천적이 되고 나서 변화는 꽤 컸다.
“촬영은 어쩌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
“제 촬영 장면은 벌써 끝냈죠. 대기 시간이에요. 와, 또 물품 확인해요? 되게 꼼꼼하네요.”
“아니야, 끝났어.”
틈만 나면 기웃거리니 패트릭이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도 휘둘리는 건 알아서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게 보였지만 이안은 신경도 안 썼다.
‘그래서 어쩔 건데.’
좋다고 따라붙는 아역에게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필릭스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본 다음이라면 더욱.
패트릭의 관심에서 멀어진 스태프들은 스트레스받는 일이 줄었고 촬영장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준혁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일부러 저러는 거죠?”
“내가 말하지 않았나. 리딩에서 퍼포먼스라면서 평면도를 외워왔다고. 괜히 저럴 아이는 아니야.”
“빚을 졌네요.”
많은 권한을 받은 감독이라도 해결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걸 아역이 해결할 줄은 몰랐다.
‘저런 아이니까 다들 그렇게 좋아했던 건가.’
이안을 보기 위해 에일리언 헌터2 촬영장을 갔던 일이 떠올랐다.
주연 배우, 비싼 출연료, 긴 경력, 강한 카리스마 같은 요소가 없는 소년이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게 의아했는데 이렇게 행동하는 아역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남수는 뒷짐을 지고 대본에 푹 빠져 있는 이안을 바라봤다.
“빚? 영화나 잘 찍어주게나. 저 애는 딱 그 정도만 바랄 테니까.”
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
입양된 후로 이안은 한 번도 한국을 가본 적이 없다.
친부모가 궁금하지도 않고 한국 작품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 영화 개봉할 때쯤이면 한국에 오겠네?”
“아! 홍보.”
한국 스태프의 말에 이안은 한국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리우드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장이 한국인데 이 영화는 한국인이 감독이다. 홍보가 집중될 테니 자신이 한국에 들어갈 가능성이 컸다.
“한국에 대해 궁금한 거 있어?”
“맞아. 우리가 최대한 대답해줄 게.”
“궁금한 거요?”
궁금한 거야 많다.
“한 해에 촬영되는 드라마는 몇 개나 되죠? 영화 제작 과정은요.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지고…”
쭉 이어지는 이안의 질문을 들은 스태프들은 멍한 얼굴을 했다.
“다른 궁금한 건 없어?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관광지 이런 거.”
“관광지는 관심 없고 촬영장은 가보고 싶네요. 어떤 환경에서 촬영하는지 궁금하거든요.”
스태프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일단 제대로 들은 건 맞는 듯했다.
‘진심인가?’
‘진심인 거 같은데.’
지금 있는 곳이 촬영장이다. 이안은 연달아 2편의 영화를 찍는 중이고.
‘아, 드라마와 다큐도 있었지.’
촬영, 촬영, 또 촬영.
다작 배우라고 해도 될 간격인데 지치기는커녕 촬영 생각만 하고 있다.
이쯤 돼야 할리우드에서 아역으로 성공하나 싶은 마음이 물씬 들었다.
질린 얼굴을 한 스태프들을 대신해 남수가 끼어들었다.
“허허, 촬영장? 원하면 구경하는 건 어렵지 않지.”
“정말요?”
“그럼!”
존경받는 원로 배우인 남수면 어지간한 촬영장은 프리패스였다.
이안은 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받아내고 만족한 얼굴을 했다.
이 일 이후 식사 시간처럼 여유가 있을 때 스태프들은 한국 현장에 대해 말해줬다.
‘재밌네.’
촬영 전 고사처럼 할리우드와 다른 부분을 비교하면서 들으니 꽤 재밌었다.
“드라마 제작부는 완전 엄마라니까.”
“아니, 콜센터지. 24시간 별의별 내용으로 전화가 오는데 지겨워 죽겠다고.”
그 외에도 한 번에 20잔의 커피를 들고 왔다, 화장실 변기를 뚫으러 다녔다, 촬영장 근처 개가 많이 짖어 개껌을 사 왔다 등
촬영하면서 겪은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다.
“내가 처음 연기를 한 70년대에는 말이야.”
남수가 까마득한 과거 이야기까지 꺼내며 이야기에 참여할 정도였다.
사람들과 웃고 떠들던 이안은 진동이 울리자 핸드폰을 봤다.
“아이작 감독님?”
영화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감독이다.
궁금해하는 스태프를 피해 자리를 옮긴 이안은 전화를 받았다.
“감독님, 무슨 일이에요?”
-함께 찍은 다큐 편집이 끝났단다.
“벌써요?”
촬영이 끝난 지 한 달 조금 넘었을 뿐이고 촬영된 영상 수를 생각하면 굉장히 빨랐다.
-질질 끌어서 뭐하겠니.
“고생 많으셨어요.”
-평생 하던 일인데 고생은 무슨. 아무튼, 넷플러스에 영상을 보내줬는데 최대한 빨리 공개하자고 하더구나.
어차피 샬럿과 함께 뉴욕 학교에서 다큐를 찍었다는 건 많이 알려졌다.
길게 두고 더 홍보할 것도 없다.
“언제인데요.”
-방학을 거의 앞둔 5월 중순이란다.
“그럴 거면 그냥 방학인 6월에 공개하는 게 낫지 않아요?”
-쿠퍼가 다른 학생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싶다고 하더구나.
당사자가 그렇게 판단했다니 할 말이 없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 촬영 힘내거라.
다큐 공개라.
‘꽤 시끌벅적해지겠네.’
이건 확실했으니 이안은 바로 샬럿에게 전화를 걸었다.
“샬럿! 이야기 들었죠?”
-5월 중순?
“네! 근데 저 그때 촬영 중이잖아요. 제 몫까지 인터뷰를 부탁할게요!”
-야! 너 이렇게 나오기야?
“고마워요, 달링!”
-…어휴, 진짜. 한다 해. 하면 되잖아.
샬럿이 툴툴거리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얼마 후 넷플러스에 다큐 공개 시기가 공지됐다.
파란을 일으킬 다큐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