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8)
가족 여행
박살 난 쇳덩이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조금만 늦었다면 바닥을 나뒹구는 파편이 붉게 물들었을 서늘한 상황.
“무슨 일이야!”
“안 다쳤어? 어떤 새끼가 장비 관리를 이딴 식으로 했어!”
사람들은 다급하게 뛰어왔고 창백해진 스태프는 이안을 돌아봤다.
“고, 고마워.”
“안 다치셔서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다.
이안은 아까 섬광으로 봤던 장면을 떠올려봤다. 지금 쓰러진 장비에 그대로 깔린 남성의 상태는 처참했다.
그나마 노숙자로 살면서 온갖 걸 봐온 이안이니 바로 움직였지 일반인이면 패닉을 일으켜서 사고가 현실에서 재현되는 걸 봤을 정도로.
감독인 준혁은 뛰어와 둘의 몸 상태를 꼼꼼히 살핀 후 안도했다.
“아무 이상 없는 거지?”
“…네, 이안이 잡아당기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안이?”
주변에 바글바글하던 시선이 이안에게 쏠렸다.
촬영장 세팅한다고 바쁜 터라 직접 본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야 다들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
“정말 고맙다. 네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네.”
“운이 좋았죠.”
“겸손은.”
겸양을 떠는 것도 침착한 것도 전부 나이답지 않았다.
“많이 놀랐을 텐데 둘 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서 쉬는 게 어때?”
자칫하면 큰 사고의 피해자가 될 뻔한 스태프나 아직 어린 이안은 촬영이 힘들다고 판단했으나.
“스태프분은 푹 쉬라고 해주세요. 전 괜찮아요.”
“촬영 스케줄을 생각해줄 건 없단다. 오늘 못 찍은 분량은 다음으로 미뤄도 되거든.”
“스케줄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전 진짜 괜찮아요.”
빈말이 아니다.
상태가 안 좋았던 몸에 평소처럼 생기가 도는 느낌이다. 한참을 살피던 준혁은 이안이 계속 고집을 부리자 한숨을 내뱉었다.
“좋아. 대신 일단 푹 쉬고 상태를 보자. 알겠지?”
“알겠어요.”
어차피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했다.
개인 컨테이너로 들어온 이안은 침대에 걸터앉아 손을 쥐락펴락해봤다. 주먹에 들어가는 힘부터 달라진 느낌이다.
‘촬영 내내 안 좋았던 몸 상태가 사고 후에 갑자기 좋아졌다고? 우연일 리가 없어. 거기다가 환상도 이상했고.’
과거로 돌아오기 전을 보여줬던 환상과 달리 이번에는 곧 일어날 일을 보여줬다.
이유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이안은 금방 의심되는 원인을 찾았다.
“고사?”
무사 촬영을 위해서 했던 고사에서 섬광을 봤다.
환상이 보였던 것도 아니고 그저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그때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떠오르는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무사 촬영을 비는 고사가 이유라면 왜 나한테 영향을 줬지? 내가 혈통은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이번 촬영이 아니라 다른 촬영에서도 적용되는 일일까? 한국인이 없는 촬영장이라면 어떻지.’
‘나 혼자 간단하게 해도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무성하게 쌓이는 의문을 고민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르던 이안은 노크에 고개를 들었다.
-이안, 촬영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네! 바로 나갈게요.”
촬영이라는 말에 이안은 생기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감독에게 이안의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스태프는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왔다.
“이안은 어때. 역시 촬영을 미루는 게 낫겠지?”
가뜩이나 평소와 달리 컨디션도 안 좋았는데 성인도 놀랄 상황을 경험했다.
머릿속으로 스케줄을 어떻게 변경할까 고민하던 준혁에게 스태프는 답을 돌려줬다.
“평소랑 똑같았습니다. 촬영이라는 말에 엄청 신나 보이던데요.”
“그래? 일단 알았어.”
애써 멀쩡한 척 연기하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정말 괜찮은 거 맞나 걱정과 의심을 하며 이안의 연기를 지켜봤다.
이안은 주인공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당신은 진짜 미쳤어. 이렇게 바뀔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돕지도 않았을 텐데. 알아들었어? 이 개자식아!”
“…어, 음.”
치매 걸려 도움도 안 되는 용진을 버리고 상층에 올라가자는 주인공에게 일갈하는 장면이었다.
변질된 주인공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주연 배우는 입을 몇 번 뻐끔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니? 마지막 개자식은 없던 대사잖아.”
이안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애드리브요. 영 집중을 못 하는 거 같아서요. 정신이 바짝 들죠?”
“어휴… 진짜 괜히 걱정했네.”
강렬한 연기와 능청스러운 태도.
누가 봐도 평소의 이안이다.
***
-이안은 신이야!
-1영화 1이안을 보장해라!
-앞으로 고사 지낼 때 상석에 이안 사진을 올려놓고 해야 한다니까.
-믿습니다! 이안 프라이스!
촬영보다 헛소리를 늘어놓는 스태프를 상대하는 게 더 힘들었다.
안전 문제로 준혁이 제지하지 않았으면 붙잡혀서 그대로 헹가래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브레이커, 마커스 좀 어떻게 해봐요. 제가 스태프들에게 붙잡혀 있는데 그냥 보면서 웃기만 했다고요.”
-그럼 내가 대신 들어갈까?
“…그건 좀 별로네요.”
-야, 내가 어때서?
“일단 양심은 없다는 건 알겠어요.”
비싼 몸값은 그렇다 치고 성깔이 더러워서 계속 데리고 다니긴 피곤한 성격이다.
진심은 아니었는지 브레이커는 낄낄 웃었다.
-건방진 모습은 그대로네. 아주 멀쩡해 보여.
“괜한 걱정이라니까요.”
-이렇게 가끔 신경 써주는 척이라도 하는 게 내 일이야. 고객 감동을 위한 노력을 알아보겠냐.
“고객에게 이런 말을 직접 안 했으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요.”
-너 빼곤 그러고 있지.
이 인간이?
“끊어요!”
-그래, 한동안 촬영도 없다면서 심심하면 한번 놀러 와라. 사격이나 같이하자.
툭 하고 통화를 끊은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 걱정도 투박하게 하는 사람이다.
침대에 몸을 던진 이안은 중얼거렸다.
“진짜 고사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거면 엄청난 일이긴 한데.”
화려한 액션 영화가 많이 촬영되는 만큼 할리우드에서도 촬영 중 사고가 빈번했다.
위험한 액션을 대신하는 스턴트맨뿐만 아니라 촬영을 하던 스태프가 차에 깔리기도 하고 심지어 소품용 총에 실탄이 들어가 있어 사망한 일도 있다.
‘어떻게 확인해볼 방법이 없을까.’
이번에만 있는 단발성 일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이안의 방문을 누군가 두들겼다.
-이안, 시간 괜찮니?
“네, 들어와도 돼요.”
클로이는 방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 있어요?”
“가족 여행 가는 것 때문에 왔지.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없어?”
“아, 가족 여행. 깜빡하고 있었네요.”
“에휴, 그럴 거 같아서 와봤다.”
곧 있으면 3개월간 방학이다.
전에는 이안의 촬영 일정이 있거나 아버지인 딜런이 가게를 늘린다고 바빴기에 제대로 된 여행도 못 갔었다.
‘내년에도 가기 힘들 테고.’
그랜드 라인이 계획대로 준비된다면 5월 칸 영화제에 맞춰 개봉할 거다.
이리저리 홍보하러 다니는 걸 생각하면 6월까지 정신이 없을 테고 7월에는 에일리언 헌터2가 개봉될 예정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름 방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의 일정이다.
“마땅한 계획이 없으면 아일라가 같이 별장으로 놀러 가자고 했거든. 네 생각은 어때?”
“별장이라.”
나쁘지 않은 계획이긴 하다.
가족끼리 워낙 친하고 아일라의 별장이면 진짜 어지간한 호텔보다 훨씬 나을 테니까.
별다른 고민 없이 수락했을 텐데 이안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가보는 건 어때요?”
“한국?”
클로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번도 한국에 크게 관심 둔 적이 없는 아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놀라실 거 없어요. 이번 영화 찍으면서 한국 촬영장이 궁금해졌을 뿐이니까요.”
“아, 그런 거였니.”
연기에 푹 빠져 지내는 이안이라면 충분히 가능했고 클로이는 활짝 웃었다.
다른 피부색 때문인지 또래보다 빨리 성숙해진 아이였고 뭘 먼저 바란 적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마음에 걸렸는데 원하는 게 생겼다니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좋아! 그럼 한국으로 가는 거로 알고 준비할게. 괜찮지?”
“네, 고마워요. 일단 저도 친해진 한국 배우분께 구경 가능한 날을 물어볼게요.”
일반 촬영장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고사 현장을 찾아가려는 거다.
남수에게 가능한지 확인부터 해봐야 했다.
“알겠어. 정해지면 빨리 알려줘야 한다. 아, 그리고 같이 못 가게 됐다고 네가 대신 전해줄래?”
“알겠어요.”
같이 놀러 가는 것 정도야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이안은 바로 영상통화를 걸었다.
-이안? 무슨 일이야.
-이안? 이안! 보고 싶어!
이안이라는 말에 후다닥 달려온 에반은 앉아 있는 레이첼에게 매달렸다.
포동포동 오른 볼살이 레이첼의 얼굴에 닿아 뭉개졌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묘하게 닮았다.
“아, 놀러 가는 것 때문에 전화했어.”
-그거?!
“응, 같이 못 가게 됐거…”
툭!
핸드폰이 뚝 떨어졌고 애들 얼굴이 사라졌다.
화면에는 빈 천장만 보였고 상황을 설명해주는 레이첼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잠시 후 그렁그렁한 에반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으아아앙. 이안.
같이 못 논다는 것에 서럽게 울먹인 에반은 툭 하고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안은 공작새야. 으앙!
…공작새?
-미안, 다음에 또 연락할게.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가만히 내려보던 이안은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안? 어쩐 일이니.
“아일라, 벤 좀 혼내주세요. 에반에게 이상한 말을 가르쳤어요.”
-뭐?! 벤! 당장 와봐!
남편에게 애를 맡기면 안 되는 이유가 떠올랐다.
진짜 이 인간은 혼이 나야 했다.
***
공작새를 욕처럼 가르친 벤은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안은 에반과 같이 놀러 가지 못해도 따로 놀아주기로 굳은 약속을 잡았다.
대충 상황을 정리한 이안은 촬영장에서 남수에게 다가갔다.
“우리 히어로가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왔나.”
“할아버지까지 그럴 거예요?”
“흐하핫, 좋은 별명이니 실컷 불러야 하지 않겠니.”
스태프들이 짓궂게 놀리는 별명을 설마 남수까지 말할 줄이야.
고개를 가볍게 내저은 이안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이번 여름에 한국으로 가족끼리 놀러 갈 거 생각이거든요?”
“오, 잘 됐구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을 거란다.”
“찾아보니까 좋더라고요. 아무튼, 저번에 같이 약속한 거 있잖아요. 홍보로 한국에 들어가면 촬영장 구경을 하게 해준다고 하신 거요.”
“암, 기억하고 있지. 이번에 왔을 때 보면 되겠구나.”
남수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할리우드 스타의 홍보 일정은 분 단위로 짜여 있을 정도로 타이트했다. 많은 시간을 내기 힘들 테니 여행 왔을 때 보면 좋았다.
흔쾌한 동의에도 이안은 살짝 머뭇거리며 말했다.
“혹시 고사 현장도 볼 수 있을까요?”
“고사?”
“네, 신기했거든요. 한국에서 제대로 하는 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볼 수 있다면 그때로 여행 일정을 맞추려고요.”
여행 일정까지 고사에 맞춘다니 정말 보고 싶다는 게 느껴졌다.
촬영하는 작품이 한두 개도 아니고 어지간한 곳에선 전부 고사를 지내니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단 알아보긴 해야 하는데 어렵진 않을 거란다.”
“정말요?!”
“그럼!”
둘이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게 궁금했던 걸까. 준혁이 슥 다가왔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나누십니까?”
“아, 왔나. 이안이 여름에 한국으로 놀러온다고 하지 않나. 그때 고사 현장을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네. 혹시 그때 크랭크인하는 영화를 알고 있나?”
“몇 개 있긴 하죠. 저도 알아볼까요?”
“그러면 좋지.”
안 그래도 이안에게 고마운 게 많은 준혁이었다.
말썽을 일으키는 제작부장을 말려줬고 사고가 나는 것도 막았다. 이 정도면 남은 촬영 내내 업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인데 그 정도 알아보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원로 배우인 남수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대표적인 감독으로 꼽히는 준혁까지 발 벗고 나섰다.
감사를 표한 이안은 마지막으로 조건 하나를 더 붙였다.
“보는 것만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싶거든요. 괜찮다면 카메오로 짧게 나올 생각도 있어요.”
고사는 작품에 들어가는 사람이 참여하는 일이다. 남의 집 잔치에 멋대로 끼어들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얼굴 비추는 게 손해도 아니고.’
길어봐야 몇 시간 촬영하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이슈도 될 테니 절대 손해가 아니다.
오스틴도 좋은 의견이라고 해줬고.
이안은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했는데 둘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네가 작품에 참여하겠다고?!”
“잠시만. 진심이니?”
“네, 그런데요.”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한 이안의 대답을 들은 둘은 고개를 내저었다.
“꽤 시끄럽겠구먼.”
“그럴 거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얼마나 큰 폭탄을 던졌는지 당사자는 모르는 거 같다.
***
태평양 너머에서 들려온 소식에 한국 연예계는 발칵 뒤집혔다.
“뭐? 고작 고사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이안 프라이스를 카메오로 쓸 수 있다고?!”
“어떻게 하냐고?! 당장 얼마든지 된다고 말해! 남수 배우님과 아는 사람은 없어? 놓치면 안 돼!”
“마땅한 역할이 없어? 그럼 만들면 될 거 아니야!”
할리우드에서도 유명한 아역을 카메오로 쓸 수 있다.
이 엄청난 기회를 잡기 위해 사람들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