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9)
한국행
한국은 홍보를 위해 내한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부쩍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수입배급사 관계자가 너무 자주 몰려와서 내한 행사 준비와 의전을 챙기는 게 버겁다는 말을 할 정도로.
방송, 언론 할 것 없이 한 발 걸치기 위해 바동거리지만.
“그래 봤자 남의 일이지. 우리가 예능이면 몰라도 드라마에 참여하겠냐.”
“데려오면 외국인을 쓸 배역이나 있고?”
어설프게 넣어봤자 작품만 망가질 뿐이다.
누가 오든 신경도 쓰지 않던 드라마, 영화 관계자들은 이안이 카메오로 참여할 작품을 찾는다는 소문에 발칵 뒤집혔다.
“…농담이지?”
“그랜드 라인을 촬영 중인 고준혁 감독님과 박남수 배우님 측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할리우드에서 회당 억 단위의 돈을 받는 아역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아 앓는 소리를 내뱉게 만드는 톱스타 몸값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 아역이 카메오로 나와준다고? 두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안 믿었을 거다.
“거기다가 조건이 고작 고사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조건이지만 이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안이면 한국에서도 유명하잖아. 기껏해야 옛날 예능에 한 번 나왔을 뿐이고. 일단 화제성은 미쳤지.’
‘연기? 에미상 후보인데 누굴 의심해. 한국어도 잘하고 다른 할리우드 스타랑 달리 핏줄은 한국인이라 어떤 배역에 넣어도 상관없고.’
‘키가 거의 170이라고? 화장만 잘 하면 성인 배역으로 넣어도 될지도.’
아무리 계산기를 돌려도 손해 볼 점이 없다.
그랜드 라인의 촬영을 마치고 쉬던 준혁과 남수는 예상대로 쏟아지는 연락을 받아야 했다.
“아니, 자네들은 이미 고사를 지냈지 않나.”
-좋은 의미로 지내는 고사인데 한 번 더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요즘 촬영장이 어수선한데 액땜하는 기분으로 하면 되죠.
“안 될 거 같은데 일단 말이라도 전해줌세.”
-감사합니다!
이미 한 고사를 또 하겠다는 연락부터.
-우린 출연료도 어느 정도 챙겨줄 수 있으니 잘 말해주면 안 될까?
“절대 안 받는다고 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거지 이득을 볼 생각은 없다고요. 거기다가 돈 받았다가 이상한 소문이 날 수도 있잖습니까.”
-그건 소문 안 나게 주면 될 일이지. 이야기라도 해줘. 꼭 부탁할게.
뒷돈을 찔러주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둘과 만난 이안은 단호하게 말했다.
“저 때문에 고사를 두 번 한다고요? 말은 고마운데 내키진 않네요.”
“그렇지?”
애초에 고사의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러 가는 건데 두 번 고사가 말이 되나.
“그리고 출연료도 됐어요. 가뜩이나 빠듯하게 잡힌 예산일 텐데 제가 돈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촬영비가 비면 누군가는 피해를 보는 법이다.
‘몸값 비싼 스타들이 피해를 보겠어? 밑에서 고생하는 스태프들이 피해를 보겠지.’
그 정도로 돈을 바랐으면 광고부터 실컷 찍었을 거다.
이안은 두툼하게 쌓인 대본을 손으로 툭툭 쳤다.
“저는 이거로 충분해요. 아직 방영도 안 된 대본이잖아요. 돈 주고도 못 구할 것들인데 이걸 얻은 게 어디에요.”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여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는 이안을 보며 둘은 가볍게 웃었다.
둘은 대본으로 알 수 없는 작품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다가 돌아갔다.
홀로 남은 이안은 대본에 빠져들었고 초반부와 시놉시스뿐이라 생각보다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영화는 뺄까.’
자칫하면 두 영화 개봉과 겹칠 수도 있고 출연 작품을 눈으로 보기까지 오래 걸리는 게 별로였다.
드라마 대본을 재차 확인하는 이안에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내가 왔는데 인사도 안 하기야?”
“왜 왔어요?”
“그건 인사가 아니잖냐.”
옆에 털썩 앉은 벤은 대본을 휘리릭 넘겼다.
외부로 유출하면 안 된다고 경고를 들은 대본들이지만.
“어후, 무슨 글씨가 그림 같냐.”
“봐도 모르면서 그걸 왜 펼쳐봐요. 당당하게 보길래 한국어를 배운 줄 알았네요.”
“다른 사람이 너처럼 쉽게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줄 알아? 이래서 똑똑한 놈들이란.”
핀잔을 준 벤은 호기심이 생겼는지 물었다.
“한국 대본은 좀 어때? 특징이라도 있냐.”
“있죠. 연애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데 전부 엄청 풋풋해요.”
“풋풋하다고?”
“아일라와 손잡고 좋아하던 과거의 벤을 보는 듯하달까요.”
짓궂은 농담을 던진 이안은 벤이 한소리 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우린 드라마에서 남녀가 사귀면 손잡고 침대로 향하잖아요. 근데 한국에선 학생처럼 알콩달콩 연애하는 장면만 나오던데요.”
“그래? 특이하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드라마는 골랐고?”
“음, 이게 관심이 가네요.”
재회 연인. 제목처럼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 서른이 넘어 사회에서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유명한 스타가 된 남성과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여성이 다시 연인이 되며 벌어지는 로맨스 코미디였고.
‘한국 고등학생 역할도 재밌을 거 같고 원래 배우에게 문제가 생겨서 하차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어.’
남의 배역을 빼앗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진짜 우리 집에 왜 왔어요?”
“왜 왔냐고? 이것 봐봐.”
벤이 내민 핸드폰 화면을 본 이안은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SNS 사진에는 활짝 웃은 데미안이 공작새가 품고 있는 알들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공작새가 알을 낳았어요. 이안이나 벤에게 분양해줄까 해요!
누구에게 뭘 한다고?
“봤지? 어떻게 할래.”
“가서 처단하죠.”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데미안은 공작새 인형이 기둥에 묶이는 꼴을 본 뒤에야 SNS에 글을 내렸다.
***
이안의 선택을 받은 재회 연인 측은 환호성을 질렀고 다른 곳은 진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고작 며칠이지만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을 언론은 놓치지 않았다.
-이안 프라이스, 한국에서 드라마를 찍는다?
└기레기야. 말이 되냐.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애가 한국에서 드라마를 왜 찍어.
└그리고 고사를 보려고 찍는 거라고? 국뽕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소설도 적당히 쓰라고 욕이 무수히 달렸으나.
-WBE 에이전시, 이안 프라이스가 카메오로 참여하는 건 맞아. 작품은 비밀.
└…아니, 왜 진짜임? 귀하신 몸이 누추한 곳에 진짜 오신다고?
└맞긴 하나 본데. 가족 여행을 온 김에 참여하는 거래.
└진짜 미쳤다. 어디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꼭 본다.
에이전시인 WBE에서 확답을 받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도대체 어디에 참여하는지 추측하는 글이 수두룩하게 쌓일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입국 사진을 건지기 위해 사람들이 LA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열심히 살필 정도였는데 이안은 이걸 헛고생으로 만들었다.
“샬럿, 방금 전용기에 탔어요. 엄청 좋은데요?”
-허니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먼 길인데 편하게 가면 좋잖아.
“고마워요. 가족끼리 쓰는 거라면서요.”
-고맙긴. 네 덕분에 득을 본 게 있는데 고작 전용기 빌려주는 게 일이겠어? 모두 흔쾌히 동의했어. 오히려 불편한 거 있으면 꼭 말하라고 하더라.
이안이 제안한 허먼 폭로전에 샬럿 앞장서면서 명품을 파는 샬럿의 가문도 이미지가 굉장히 좋아졌다.
좋아진 평판은 고스란히 수익으로 연결됐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나중에 돌아오면 한번 보자고 하더라. 빨리 커서 성인 모델이 돼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던데.
“거절할 이유가 없죠.”
-그래, 잘 놀고 오고. 정 보고 싶으면 연락해 허니가 보고 싶다면 찾아갈 테니까.
“됐거든요.”
깔깔 웃는 샬럿과 통화를 종료한 이안은 좌석에 몸을 묻었다.
할머니 소피아를 포함한 네 가족에 경호원 둘.
고작 여섯 명이 타기엔 과한 전용기가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도착했다.
***
밤이 된 도시에는 화려한 불빛이 태양을 대신했고 늦은 밤에도 사람들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인 세 여성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남성이 카메라로 간판과 거리를 찍고 다니는 게 보였다.
“외국인인가.”
“그건 몰라도 잘 생겼을 거 같지 않아?”
조명 아래 드러난 하관만 봐도 그렇게 느껴졌다.
“조금 어린 거 같기도 하고.”
“그것보다 저거 괜찮은 거야?”
관광객이라면 주변을 찍고 다니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잘 생긴 거 같아 시선이 가긴 하지만 이렇게 여자 셋이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건 다른 이유였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소년 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무섭게 생긴 백인이 따라붙고 있었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살벌한 게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행인이라기엔 차이가 큰 둘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셋은 조심이 남성에게 다가갔다.
“저기… 익스큐즈 미?”
“네?”
대답이 한국어로 돌아오자 여성은 민망한 얼굴을 했다.
“아, 한국인이셨구나. 사진을 찍으셔서 관광객인 줄 알았어요.”
“관광객 맞아요. 한국어는 따로 익힌 거고요. 근데 무슨 일이죠?”
“그게 아까부터 뒤에서 이상한 사람이… 꺅!”
뒤를 돌아봤던 여성은 깜짝 놀라 남성 품에 매달렸다.
뒤따라 오던 백인이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빠르게 영어를 쏟아냈으니까.
가까이서 보니 덩치가 훨씬 컸고 얼굴은 더 무섭게 생겼다. 놀란 여성을 지탱해준 남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커스, 그렇게 갑자기 다가오면 놀라잖아요.”
“아니, 이게 제 일인데 어떡합니까? 여자라고 방심하면 안 된다니까요.”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뭘 그렇게 걱정해요.”
이안은 주변을 쓱 둘러봤다.
밤늦은 시간인데 거리엔 사람이 많았고 아직 학생으로 보이는 애들도 혼자 돌아다녔다.
미국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풍경은 기본적으로 치안이 잘 잡혀 있다는 뜻이다.
피곤하다며 호텔에서 쉬는 부모님을 두고 마커스와 함께 거리로 나와본 이유였고.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보스한테 혼난다니까요.”
“네네, 일단 좀 떨어져 봐요.”
마커스를 물러나게 한 이안은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여성들에게 말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 경호원이거든요.”
“경호원요?”
의아함을 품고 되물었던 여성은 눈이 점점 커졌다.
반쯤 안기다시피 붙어 있었기에 모자로 가려졌던 얼굴이 전부 보였다. 아무리 자세히 봐도 알고 있는 얼굴이 맞았다.
“이, 이안? 저 완전 팬인…”
“쉿!”
큰소리를 내려는 여성을 말린 이안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조용히 하는 대신 함께 사진이라도 찍을까요?”
“…정말요?”
어차피 한국에 온 건 금방 알려질 테니 상관없다.
이안은 손짓에 발을 동동 구른 세 여성은 이안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그날 밤 SNS에는 합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진이 올라왔다.
-이안 프라이스와 서울 한복판에서.
#방한 #이안 프라이스 #왜 여기에?
누가 봐도 서울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빠르게 번졌고 이안이 한국에 들어온 사실이 알려졌다.
***
“조용히 들어와서 얌전히 있다가 가는 줄 알았더니.”
“에이, 팬 서비스는 잘 해줘야 한다니까요.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렇긴 하지.”
끌끌 웃은 남수는 오늘 아침부터 연예계란을 뜨겁게 달군 기사들을 떠올려봤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른 할리우드 스타가 거리에서 만난 팬들과 사진을 찍어줬다. 이 자체로 자극적인 내용이 또 있을까.
남수의 기획사까지 기자들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입국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바로 촬영해도 괜찮겠니.”
“전용기로 편하게 와서 괜찮아요. 일부러 좀 늦게 왔고요.”
조용히 고사와 촬영만 하고 빠져나오는 게 목표다. 기자들이 예상 못 하도록 일정을 빡빡하게 잡은 이유였다.
도착한 곳은 꽤 예쁘게 꾸며진 학교였다. 주말이라 학생이 없는 학교에선 촬영팀이 바쁘게 움직였다.
남수가 연락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남성이 차로 다가왔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아! 이안 프라이스 배우님. 정말 저희를 선택해주셔 감사합니다. PD인 남한올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대본이 좋아서 골랐죠. 편하게 이안이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주변을 살핀 PD는 작게 말했다.
“사실 저희 배우들도 이안 군이 참여하는 걸 모릅니다.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정말요?”
“사실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어제 입국했다는 말에 포기했죠.”
하긴 어제 입국한 사람이 바로 촬영에 합류하리라 생각하는 건 어려웠다.
“자네도 참 짓궂구만.”
“하하하, 배우들이 놀라는 장면을 영상으로 남기면 재밌지 않겠습니까? 홍보에 써먹으면 쏠쏠할 테고요.”
시청률에 목숨 거는 PD다운 발언이었다.
“카메라를 보낼 테니 조용히 합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차에서 잠시 대기하는 사이 노크가 들렸고 문을 열고 나가자 카메라를 든 스태프가 보였다.
손짓하는 방향으로 따라가자 한참 고사가 진행 중이었다.
‘진짜 돼지머리를 올려놨네.’
태블릿 화면이 아니라 진짜 돼지머리가 올라간 상을 두고 사람들이 절을 하는 게 보였다.
차례대로 절을 하는 배우들 사이에 모자를 눌러 쓴 이안은 몰래 끼어들었다.
“어?”
“누구지?”
구경하던 사람들은 낯선 사람의 등장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안은 조용히 절을 했다.
‘아, 착각이 아니었어.’
순간 눈이 번쩍였다.
환상이 보이지 않은 짧은 섬광.
몸을 일으킨 이안은 잠시 멈칫했고 절을 끝내고 몸을 일으킨 배우들의 시선은 이안에게 향했다.
“…누구?”
대본리딩에서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끼어들었다.
혹시 스태프가 착각했나 싶었을 때 이안은 모자를 벗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안 프라이스라고 합니다.”
“…어?”
주변이 환하게 느껴질 정도로 방긋 웃는 소년. 눈을 비비고 봐도 상대가 바뀌지 않았다.
멀뚱멀뚱 서 있던 사람들은 현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이안이라고?! 우리 작품에 참여하는 거였어?!”
“한올 PD! 이 인간 어디 갔어! 우리 작품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이게 뭐야?!”
“아이고, 이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기분 좋은 소란이 번지는 고사 현장에서 한 배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아역이 쟤라고?”
잘 생긴 외모로 유명한 주연 배우였지만 이안의 얼굴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벌써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냐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