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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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저녁
집 안으로 들어가니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오랜 사용감이 느껴지는 그을린 벽난로와 낡은 소파.
사냥을 즐기던 할아버지가 잡았다던 거대한 사슴의 머리는 트로피가 되어 거실 벽에 장식되어 있고 그 밑에는 가로줄들이 그려져 있었다.
딜런과 클로이가 어린 시절 키를 잴 때 그린 줄이다.
“거기에 서보렴. 얼마나 큰가 비교나 해보자.”
박제된 사슴 아래 선 이안을 보고 딜런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 더 열심히 커야겠네. 클로이가 어렸을 때보다 더 작은 걸 보면 말이야.”
“하아? 우리가 저 나이 때는 너보다 내가 더 컸거든?!”
“그랬었나?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거짓말하기는. 봐봐 저기 사진으로도 남아 있잖아.”
환영받지 못한 이안을 위해 과장되게 티격태격한 클로이는 액자를 가리켰다.
먼지 한 톨 안 쌓여 있는 액자는 어린 두 남녀를 포함한 네 명의 가족사진이다.
할머니인 소피아는 조금 전 건조한 표정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진 속에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살피는 이안의 귓가로 딜런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어라? 어머니, 언제 컴퓨터 사셨어요?!”
“동네 청년이 중고를 싸게 주더구나. 몇 번이나 집에 찾아와서 사용법도 알려줬지.”
딜런은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9년 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멈춰 있던 집이다. 아직도 2개의 칫솔이 세면대에 걸려 있을 정도로.
여기에 변화가 생겼다니 기분이 좋았다.
딜런은 전원 버튼을 눌렀고 달그락거리며 켜지는 화면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 컴퓨터로 뭐 하세요?”
“청년이 심심하면 위튜브를 보라고 가르쳐줬는데 쉽지 않더라.”
“아, 그래요?”
위튜브라는 말에 이안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딜런이 위튜브 홈페이지에 들어가자 느린 속도로 낯선 화면이 떴다.
추천 동영상과 가장 인기 많은 동영상이 첫 화면에 떴고 옆에는 1080p 출시를 자랑스럽게 적어놨다.
위튜브를 보니 새삼 지금이 2009년이라는 걸 느꼈다.
‘위튜브도 하긴 해야지.’
유명 위튜버가 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나중에 캐스팅 디렉터에게 보여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 정도만 돼도 만족이다.
콘텐츠야 노숙자로 살며 배운 것들을 올리면 그만이고.
어느새 와서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이안을 힐끔 본 소피아는 딜런의 어깨를 툭 쳤다.
“그거 하려고 온 게 아니잖니. 그만하고 나오렴.”
“왜 이렇게 미세요?”
저항하는 딜런을 거의 내쫓다시피 거실로 밀어낸 소피아는 말을 돌리듯 물었다.
“요즘 가게는 잘 되니? 금융위기니 뭐니 하고 요즘 전부 힘들다고 하던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우리 아들이 큰 역할을 해서 엄청 잘 됐거든요. 아, 보여주려고 신문 기사도 전부 스크랩해왔는데 한 번 보실래요?”
반색하며 움직이려는 딜런을 손으로 막은 소피아는 시계를 힐끔 봤다.
“괜찮단다. 지금 일이 있어서 나갔다 와야 하거든. 아마 저녁쯤 들어올 거다.”
“어딜 가시는데요? 같이 갈까요?”
“됐다. 먼 길 운전하고 왔는데 뭐하러 같이 가니. 그냥 쉬렴.”
힘들게 이안까지 데려왔는데 소피아가 밖으로 나간다니 부부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둘의 표정이 어떻든 신경도 안 쓰고 소피아는 나가버렸고 짧게 한숨을 내쉰 클로이는 이안을 끌어안았다.
“데려와서 안 좋은 꼴만 보여줘서 정말 미안하다. 원래 저렇게 매몰찬 분이 아니신데.”
씁쓸하게 웃은 클로이는 사진 속 남자를 바라봤다. 딜런을 빼닮은 얼굴이었다.
“널 보러 오시다가 사고만 안 나셨어도…”
“클로이.”
표정을 굳힌 딜런은 하품을 하는 이안의 등을 톡톡 두들겼다.
“피곤하면 2층에 올라가서 잠 좀 자. 어디에서 자야 하는지 알고 있지?”
잘 됐다. 어떻게 하면 혼자 있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에 올라온 이안은 귀를 쫑긋거렸다.
“후, 어머니는 원래 한국에서 이안을 입양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하셨잖아. 그래서 그날도 아버지 혼자 오셨던 거고.”
“그건 나처럼 위탁 가정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가 미국에도 엄청 많은데 굳이 한국에서 데려올 필요가 있냐고 하신 거잖아.”
“아무튼, 내 엄마지만 너무하다고.”
과거 딜런이 취했을 때 들었던 내용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갑자기 사고로 잃은 여자는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을 거다. 마침 원망할만한 대상이 있었고.
불합리한 이유로 미움받아왔지만 이안은 소피아를 이해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앞에서 이성은 무의미하지.’
직접 잃어봤기에 공감할 수 있다.
씁쓸한 미소를 지은 이안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니 이젠 그런 슬픔을 느낄 생각은 없어.”
재차 다짐한 이안은 2층을 둘러봤다.
2층에는 2개의 방이 있다. 이곳에 오면 자신이 자는 작은 방과 자물쇠가 걸린 방이다.
자물쇠가 단단하게 걸린 방문 앞에 섰다.
올 때마다 궁금했지만, 신경 쓰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던 이 방을 들어간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바로 과거의 오늘.
이안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두 개의 철사를 꺼냈다.
“그럼 한 번 따볼까?”
좀도둑 출신 노숙자에게 배운 나쁜 기술이라도 배워놓으면 써먹을 곳이 생기는 법이다.
미리 모양을 잡은 두 철사를 열쇠 구멍에 넣고 움직이길 1분 남짓.
달칵
자물쇠가 풀렸고 관리가 조금 소홀했는지 텁텁한 공기가 흘러나오는 방문을 활짝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방안 곳곳 장식된 사진이다. 총을 들고 자랑스럽게 잡은 사냥감과 찍은 사진들.
가끔 트로피 헌팅을 즐겼다는 할아버지의 흔적들이고 가장 중요한 흔적이 벽에 걸려 있었다.
‘엽총’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 사냥용 총인 엽총을 꺼냈다.
가볍지 않은 무게감. 손때 묻은 총은 살상용 무기라는 것처럼 서늘한 촉감을 안겨줬다.
이안은 총과 서랍 안에 있는 탄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후우… 상태가 불안하긴 한데 어쩔 수 없지.”
녹이 슨 총은 말할 것도 없고 제대로 관리가 안 된 탄약의 수명은 이미 다했을 수도 있다.
쏴봤자 불발될지도 모르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총기 소지율이 30% 남짓한 캘리포니아에서 딜런과 클로이는 총이 없는 70%에 해당했으니까.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순간에 써야 해.’
이안은 입술을 씹었다.
정말 총을 쏴서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 당연히 무서웠다. 노숙자로 살면서 사람이 죽는 걸 지겹게 봤지만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달랐다.
만약 사람을 죽인다면 배우로서 앞날이 막힐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다. 살인자란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을 테니.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그게 아니야.’
부모님의 시선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게 가장 두려웠다. 과연 살인자를 지금처럼 살갑게 친자식처럼 대해줄 수 있을까?
괜찮다는 이성과 달리 사람 일은 모른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괴롭혔다.
이안은 총을 꽉 붙잡았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해야지.”
그때의 슬픔을 다시 겪는 것보단 차라리 버림받는 게 나을 테니까.
이안의 눈동자에는 망설임이 사라졌다.
장전까지 마친 이안은 1층으로 내려가 딜런에게 말했다.
“아빠, 핸드폰 좀 빌려주세요. 잠시만 갖고 있을게요.”
의아해하면서 건넨 핸드폰을 챙긴 이안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필요한 준비를 차근차근하며 틈틈이 밖을 살피던 이안은 몸을 움찔거렸다.
늘어진 후드티를 입은 남성이 보였다. 단순한 행인이 아니다.
‘행인이라면 집 주변을 저렇게 기웃거릴 이유가 없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안은 총이 있는 방문을 열었다.
***
-똑똑똑
집에 도착해서 차를 멈춘 소피아는 차창을 두들기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한 소피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스티븐, 네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니?”
“동네 산책하다가 차가 들어오는 게 보이길래 인사하려고 왔죠. 위튜브에서 원하시던 건 찾으셨나요?”
자신이 위튜브에서 뭘 찾아봤는지 유일하게 아는 스티븐이 묻자 소피아는 살짝 민망해하며 답했다.
“그래, 덕분에 잘 찾았단다.”
“그럼 다행이네요. 근데 오늘 집에 누가 왔나 봐요?”
“오늘이 내가 말한 생일이란다. 그래서 애들이 왔지.”
답변하면서 차에서 내린 소피아는 순간 초조하게 변한 스티븐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낸 소피아가 물었다.
“온 김에 인사나 좀 할래? 오늘 보니까 널 좀 궁금해하는 거 같던데.”
“……”
“스티븐?”
돌아오는 답이 없자.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린 소피아는 얼굴에 닿는 차가운 감촉을 느꼈다.
머리를 겨눈 총이다.
“스티븐?!”
“죽기 싫으면 제발 조용히 해요. 저, 저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요. 개 같은 빚만 없었어도 안 이랬을 거라고요. 알고 있어요?”
소피아는 초조해하며 말을 쏟아내는 스티븐에게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돈 때문이니? 그렇게 급하다면 잠시만 기다리렴. 내가 돈을 가져올게.”
“지랄 마요. 그딴 거 안 믿으니까.”
스티븐은 집 안에 있을 소피아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이를 까득 물었다.
어쩔 수 없다. 가게가 힘든 가족에게 돈을 준다고 했으니 오늘이 지나면 끝이다.
“시끄럽고 빨리 문이나 열어요.”
강압적으로 끌려가던 소피아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대로 가면 다 위험할 수 있다.
자신의 두 자식은 물론이고.
‘그 아이도.’
그 불쌍한 애한테 몹쓸 짓을 너무 오랫동안 했다. 뒤늦게나마 후회를 바로 잡으려고 했거늘 신은 멍청한 노인네에게 더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차 안에 있는 선물을 못 전한 게 아쉽지만 사실 그걸 줄 자격조차 없는 듯했다. 이런 일이 생긴 걸 보니까.
쓴웃음을 지은 소피아는 열쇠를 쥔 손을 크게 휘둘렀다.
“어?!”
수풀 속으로 날아가는 열쇠를 보며 스티븐은 깜짝 놀랐고 소피아는 소리를 질렀다.
“강도다! 강도란다! 얘들아, 절대로 문을 열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알겠지?!”
“이런 개 같은 년이!”
끼긱거리는 방아쇠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아이들에게만이라도 아무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피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고.
타앙-
총소리가 들렸다.
짧은 적막이 지나고, 스티븐은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자신이 쏜 게 아니다.
갑자기 들린 총소리에 놀라 두리번거리는 스티븐에게 누군가 쇠긁는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내 집에서 안 꺼져?! 죽여버리기 전에 당장 꺼져!”
지독한 분노가 담긴 고함이 섬뜩하게 울렸다.
심장을 꽉 움켜쥐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 스티븐은 몸을 벌벌 떨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스티븐의 귓가로 철컥이는 총 장전 소리가 들렸다.
“이런 젠장.”
오금이 저린 스티븐이 도망치려고 할 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안?! 이안! 거기서 뭐 하니?!”
놀란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든 스티븐은 봤다.
1층 지붕 위에서 총을 들고 숨어 있던 꼬마가 낭패 섞인 표정을 짓는걸.
‘당했다.’
애한테 농락당했다는 걸 깨닫고 분노한 스티븐이 행동하는 것보다 아이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아이는 들고 있던 총을 집어 던졌다.
위에서 떨어지는 쇳덩이에 스티븐은 본능적으로 팔을 위로 치켜들었고 아이는 지붕을 박차 뛰어내렸다.
퍼억!
“크허억!”
가슴이 걷어차인 스티븐은 나자빠졌고 이안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안은 끙끙거렸다.
온몸이 아팠다. 빌어먹을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질 않는다고 불발탄만 안 났어도 이 짓거리는 안 했을 텐데.
“이안! 얘야! 괜찮니?!”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이안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내려보는 소피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말 좋은 저녁이네요.”
활짝 열린 문으로 부모님이 뛰어오는 걸 보면서 이안은 아프지만 환하게 웃었다.
정말 좋은 저녁이었다.
다리에 금이 간 거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