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3)
에이든 후드
영화 개봉을 앞두고 배우의 홍보 일정은 빡빡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북미만 해도 바쁜데 해외 일정까지 소화해야 하니 오죽하겠는가.
이번에 내한한 패트릭도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공작새 인형까지 챙겨왔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인간도 평범하진 않아.’
유유상종이라고 일단 데미안과 친하게 지내는 것부터 의심이 됐다.
-야, 그럼 우리는?
“에이, 우리는 다르죠. 벤이 같은 부탁을 받았다고 해봐요. 들어줄 거에요?”
-내가 미쳤냐.
“거봐요.”
아무튼, 다르다면 다른 거다.
벤과 함께 연락 두절인 공작새의 처분을 결정하고 약속한 패트릭의 홍보 일정에 참여했다.
이안은 주변을 쓱 둘러봤다.
해외 홍보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역효과를 낼 얼굴 때문에 기회가 없었고 돌아온 후에는 나이가 어려서 참여하지 않았는데.
‘하는 방식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하네.’
해가 저문 청계광장에 레드카펫과 펜스가 깔렸고 패트릭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함께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주면서 친절하게 무대까지 올라온 패트릭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또 이렇게 한국을 찾아오게 되니 참 기쁩니다.”
통역가의 말이 묻힐 정도로 큰 함성이 들렸다.
패트릭의 인사를 듣는데 누가 옆에서 크게 밀쳤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어?”
사과한 남성이 잘못한 건 아니다. 조금이라도 패트릭을 가까이서 보겠다고 밀치는 사람 때문이지.
눌러 쓴 모자 밑으로 눈이 마주친 남성이 눈을 크게 뜨는 게 보였다.
“쉿.”
이안이 장난스럽게 웃는 사이 패트릭의 인사는 이어졌다.
“사실 입국하자마자 큰 환대를 받아서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안 프라이스는 알죠? 제 작은 친구가 공항까지 직접 찾아왔더라고요.”
“이, 이안…?”
앞에서 하는 말에 확신을 얻었는지 남성은 이름을 내뱉었고 이안은 펜스를 훌쩍 넘었다.
그걸 본 사람들은 당황했다.
“왜 저래?”
“막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이상한 사람이 펜스를 넘은 상황인데 막아야 할 경호원들은 오히려 길을 열어줬다.
괴한은 눌러쓴 모자를 벗어 무섭게 생긴 경호원 머리 위에 얹는 당당함을 보여주니 당황하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했고.
무대 위로 발을 디딘 남자를 향해 패트릭이 두 팔을 벌렸다.
“도와줘서 고마워, 이안.”
“불러줘서 저야말로 고맙죠.”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친근하게 포옹하는 둘을 보고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자리에 이안이 나올 거로 생각한 사람은 없었으니 놀랄 수밖에.
성공적으로 깜짝 등장한 이안은 능숙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요?”
“내가 가져온 인형을 받고 네가 기뻐 보일 때?”
“공적인 자리에서 당당하게 거짓말하면 그 인형으로 맞을 수 있어요. 무슨 인형이냐고요? 대답 안 할 거예요. 절대로.”
중간에 패트릭이 이상한 대답을 한 것만 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만약 일이 끝나고 스노우 레이크 대본을 넘겨주지 않았다면 데미안과 동급 취급을 했을 거다.
일정이 바쁘니 나중에 미국에서 따로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돌아온 이안은 바로 대본을 펼쳤다.
-삐요옥!
발에 깔린 공작새 인형이 비명을 지르든 말든 무시하며 대본을 읽었고 특히 자신이 맡을 동양인 소년을 중심으로 봤다.
“이름은 제이. 시대는 90년대 후반이고 나랑 같은 한국계 입양아네.”
어째서 부모를 설득할 때 도움이 된다고 한 줄 알겠다. 소년이 한국계인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지금도 해외입양이 꽤 많지만 70~80년대에는 유독 많은 수를 입양 보내 한국이 아기 수출국이라는 오명까지 얻었을 때니까.
-미쳤다. 내 발가락으로 기타를 쳐도 이것보단 잘 칠 거 같은데.
-아오! 꺼져줄래?!
-진짜 갑니다?
-멈춰! 얘가 지금 손가락 대신 발가락을 달고 있어서 그렇다니까. 네가 좀 참아.
분명 스노우 레이크 멤버들의 추억을 토대로 작성된 대본일 텐데 제이의 괴팍한 성격이 대사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이것만 보면 진짜 소년을 그리워하는 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지만.
-얼굴이 왜 그래. 어디서 맞았어?!
-아슬아슬하게 졌으니까 연습이나 해요.
-지금 연습이 중요하냐! 어떤 새끼야?!
-당연히 연습이 더 중요하죠. 앨범 만들겠다는 사람이 뭐가 중요한지 몰라요? 어처구니가 없네.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았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면서 까칠한 성격이 된 당위성도 어느 정도 보였다.
대본 속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빠져들었던 이안은 소년이 교통사고로 죽자 탄식을 내뱉었다.
-걔가 죽었다고? 농담이지?
-나도 농담이면 좋겠다. 걔 부모님이 직접 해준 말이야.
-씨발! 구라치지 말라고!
멤버들은 큰 상실감을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걸 마지막으로 대본이 끝이 났다.
패트릭의 간략한 설명과 직접 대본으로 본 건 느낌이 완전히 달랐고.
‘하고 싶다.’
욕심이 생겼다.
미래에서 본 영화는 소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그뿐이다.
대본에 비하면 불완전한 영화였고 직접 이 영화를 제대로 완성하면 어떨지 기대가 솟구쳤다.
“필요하면 부모님을 직접 설득하러 가봐야겠네.”
이 정도 공을 들일 보람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
‘돌아가면 바쁘겠네.’
에이든도 만나야 하고 제이의 부모님도 설득해야 한다. 거기다가 좋은 기회가 있으면 오디션도 틈틈이 봐야 하고 레이첼이 준비 중인 라이 3집도 녹음을 해야 했다.
당장 참여하는 작품이 없어도 바쁜 일정이었고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데미안을 처리하는 일이지.”
-삐욕!
발에 힘을 더하자 인형이 한 차례 더 울었다.
***
한국에서 여행 기간은 보름이나 됐다.
가족들은 이번 여행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에는 서울 근방이 아니라 부산이나 다른 지역도 가보자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한국에 또 놀러 올 생각이냐고요? 네, 기회가 되면 또 오려고요.”
덕분에 조용히 입국했을 때와 달리 출국 인터뷰를 하는 지금 거리낌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여행 동안 좋았던 점과 앞으로 일에 대해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와중 어떤 기자가 불쑥 물어봤다.
“혹시 친부모님이 궁금하지 않나요.”
“친부모요?”
“네, 해외 입양자들이 요즘 한국으로 들어와 친부모를 찾는 경우가 많거든요.”
주변에 마중 나왔던 팬들이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지만 기자는 뻔뻔한 얼굴을 했다.
솔직히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서도 할 말이 없는 질문이지만.
‘어차피 한 번쯤 나올 질문이긴 해.’
한국에 여행하면서 느꼈는데 미국이라는 국적보단 순수한 한국인이라는 핏줄을 더 신경 쓰는 듯했다.
한국어까지 쓰니 그냥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안은 다신 이런 질문이 안 나오도록 단호하게 대답했다.
“전혀 안 궁금합니다. 제 부모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와도 전혀 만날 생각이 없고요.”
“왜죠?”
“제겐 진짜 가족이 있으니까요. 아, 궁금하진 않아도 고맙긴 해요. 덕분에 지금 가족을 만났잖아요.”
화사하게 웃은 이안은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났다.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사진이 한동안 한국에서 이슈가 되면서 이 질문을 한 기자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한국에서 반응이 어떻든 말든 샬럿이 보내준 전용기를 타고 돌아온 이안은 가장 급한 일을 해결했다.
“데미안! 당장 안 나와요?!”
-삐욕!
잘못한 건 알고 있는지 들어오는 걸 막진 않았고 데미안을 찾기 위해 이안은 집을 돌아다녔다.
넓은 저택을 수색한 결과 자신이 키우는 공작새를 끌어안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잠시만! 진정해봐.”
“뭔데요.”
“그래도 인형은 귀여웠잖아. 안 그래? 꽤 신경 써서 보내준 거라고.”
이안은 고개를 내려 인형을 봤다.
인형이 귀엽긴 했다. 에반에게 가져다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넘어가 줄 이유는 절대 못 됐지만.
“변명은 그게 끝이에요?”
공작새 인형의 머리를 구기며 살벌하게 웃자 그는 뒤에서 바구니를 들었다.
“나에겐 자식 같은 애들이 있는데. 봐주면 안 될까?”
-삐빅?
여행을 다녀온 사이에 알에서 부화했는지 갈색의 새끼 공작새 세 마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손바닥만 한 새끼들이 바구니에서 나오더니 타박타박 걸어와 이안 다리 주변을 돌아다녔다.
“어휴, 진짜.”
화를 가라앉히고 새끼 공작새를 쓰다듬자 데미안이 물었다.
“애들도 좋아하는데 한 마리 데려갈… 악.”
-삑!
“아주 매를 벌어요.”
공작새 인형을 던진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 된 게 기자를 상대하는 것보다 더 피곤했다.
***
한국에서 사 온 기념품을 데미안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며칠을 보냈고.
-아안 군, 에이든 후드 작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정말요?”
희소식이 전해졌다.
-네, SNS 개인 메시지로 연락을 줬더군요. 계정에 로그인한 사진을 첨부해서요.
에이든 때문에 평소에 막아 놓은 개인 메시지를 열어놨고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상한 연락이 엄청 왔다.
‘팬이라면서 연락 오는 건 귀엽지.’
이미 질릴 대로 들어서 상처도 안 나는 인종차별부터 혹시 연인이 필요하지 않냐는 쓸데없는 연락까지 왔다.
이 사실을 눈치챈 오스틴이 한동안 직접 관리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연락이 왔다.
“뭐라고 연락 왔어요?”
-팬이라며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근데 만나서 솔직하게 말할 게 있다더군요.
“좀 묘한 말이네요.”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것 같은 말이다.
-직접 만나보시겠습니까? 조금 걱정됩니다만.
“힘들게 찾았는데 만나봐야죠. 마커스랑 브레이커까지 같이 갈게요.”
-…싸움이라도 하러 가십니까?
둘이 같이 다니면 갱단 같은 느낌이긴 하다.
“글쎄요. 둘을 보고 싸움을 걸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긴 하네요.”
-그것도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이쪽에서 약속을 한 번 잡아보겠습니다.
“고마워요.”
감사 인사와 함께 통화를 종료한 이안은 문라이트의 작가인 스텔라에게 문자를 남겼다.
-에이든 후드 작가님하고 연락됐어요. 먼저 만나 뵙고 소개해드릴게요.
-고마워! 출판 이야기도 잘 해줘!
-물론이죠.
연락을 끝낸 이안은 다시 팬픽 사이트에 들어가서 글을 빠르게 읽어봤다.
‘어떤 사람이려나.’
다시 읽어도 섬세한 글이다. 장면 묘사나 이런 것도 훌륭하지만 감정선을 살리는 것도 대단했다.
글을 재차 읽는 사이 오스틴에게 문자가 왔다.
-텍사스에 살고 있더군요. LA로 향하는 표를 끊어줬습니다. 모레 점심입니다.
-고마워요.
수첩에 적힌 에이든의 지역도 텍사스였고 둘이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팬픽 말고 다른 글을 쓴 게 있을까? 어떤 성향의 사람일까?
온갖 궁금증을 안고 기다리자 금방 시간이 흘렀고 당일이 되어 약속 장소로 향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확인하는 게 낫지 않아? 몸수색부터 해야 하잖아.”
“미쳤어요? 그렇게 하면 겁먹잖아요.”
“그럼 이야기도 잘 통하겠지.”
괜히 브레이커를 데려왔나.
누가 보면 협박하러 가는 줄 알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안은 가게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이안을 보고 반기던 직원은 뒤따른 둘을 보고 겨우 말을 이었다.
훌륭한 직업 정신에 이안은 속으로 감탄하며 물었다.
“이안 프라이스로 예약된 방이 있죠?”
“네, 일행분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가자 한 남자가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라틴계로 보이는 남자였다.
비싼 가게와 유명한 할리우드 아역 거기다가 무섭게 생긴 두 경호원까지.
평범한 사람이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니 이안은 방긋 웃으며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에이든 후드입니다.”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소설 재밌게 읽었거든요.”
활짝 웃으며 칭찬을 해줬는데 에이든은 기뻐 보이기보단 약간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약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안은 악수를 했고.
“어?”
눈앞에 섬광이 보였다.
사방팔방에서 빛나는 플래시가 흑백 시야로 보였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으신 기분이 어떠십니까?
…각본상?
에이든은 내년에 죽는 사람인데.
별다른 접점도 없는 에이든에게 이런 섬광이 보인 이유와 갑자기 각본상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의아했다.
시작부터 의문을 안겨준 인물이 입을 열었다.
“행복하며 슬퍼요.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할 사람이 한 명 있었거든요.”
-그게 누구죠?
“제 오빠요.”
오빠? 에이든을 말하는 건가. 근데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오빠에 대해 더 듣고 싶었지만 여성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기자들은 다른 질문을 했다.
-모방 도시는 어떻게 쓰시게 됐나요?
“시각장애인이던 제가 이 눈을 갖기 전까지 경험한 걸 최대한 담고 싶었어요.”
모방 도시?
이 제목을 듣고 놀라는 순간 퉁겨지듯 환상에서 나왔다.
“왜 그러시죠?”
“…잠시만요.”
혼란스러웠다. 모방 도시라고?
너무나 잘 아는 작품이었다.
‘내가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은 작품이니까.’
에이든, 각본가, 모방 도시.
갑자기 연결된 이 셋에 이안은 에이든을 바라봤다.
“우리 할 이야기가 많을 거 같네요.”
실마리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