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4)
낚시
모방 도시는 시각장애인 소녀가 자신 주변 사람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으며 시작하는 스릴러 영화다.
가족과 지인인 척하는 사람들을 속이고 진짜 지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 주된 내용인데.
‘결말은 전부 소녀의 오해였지. 작은 의심이 어떻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지 스릴러 형태로 보여주는 영화였고.’
화면에 나오는 인물들은 소녀가 상상하는 무서운 얼굴을 가졌고 화상으로 얼굴이 망가진 이안이 캐스팅될 수 있는 이유였다.
각본가와 시상식에서 간단히 인사만 했을 뿐이지만 배우 생활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에이든이 그런 사람과 관계가 있다고?
자리에 앉은 그가 바짝 긴장하자 이안이 먼저 나섰다.
“우리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 혹시 가리는 음식 있나요.”
“아, 아뇨. 없습니다.”
어차피 에이든이 도망갈 것도 아닌데 조급하게 굴 필요는 없다.
역시 좋은 음식을 먹으면 긴장도 풀리는 법이다. 괜히 비즈니스에서 식사 약속을 잡겠는가.
긴장을 털어낸 듯한 그에게 물었다.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던데 뭐예요?”
“저… 사실 Melted Moonlight 작가는 제가 아닙니다.”
“그래요?”
놀라지 않고 덤덤히 다음 말을 기다리자 그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작가는 제 여동생입니다.”
“여동생이 쓰신 글을 대신 올렸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쓴 건 제가 맞습니다.”
작가는 아닌데 글은 자신이 썼다.
브레이커가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라며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안과 달리 여동생 상황을 짐작도 못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상하게 들릴 말이다.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제겐 앞이 안 보이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가서 연락만 할 수 있죠.”
직접 본인 입으로 들으니 어떻게 된 건지 확신할 수 있었다.
“여동생이 입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글로 쓰시는 겁니까?”
“네, 그래서 제가 작가가 아니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대단하네요.”
“제 여동생이 대단하긴 합니다.”
이안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에이든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아뇨. 에이든, 당신이 대단하다는 말입니다.”
“…저요?”
뜻밖의 말이었을까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솔직히 그가 자신을 무슨 타이핑 기계 취급하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동생이 작가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제가 Melted Moonlight를 수차례 읽었거든요. 여동생분이 소설을 보고 읽는 것처럼 줄줄이 말해주던가요? 아니면 중구난방 말해서 그걸 정리해서 옮기시나요.”
“아무래도 정리해서 옮기죠.”
“그리고 구어체와 문어체를 구분해서 말해주던가요?”
“…아뇨.”
이것 봐라.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을 만들 때 그의 역할이 컸다.
‘어쩌면 여동생이 소설가가 아니라 각본가로 성공한 것도 에이든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똑같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일이라도 둘이 요구하는 바는 명백히 다르니까.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기 때문인지 입을 꾹 다문 그에게 이안은 재차 말했다.
“당신은 대단해요. 글에서 그동안 노력한 게 고스란히 묻어나고요. 여동생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오빠는 드물 겁니다. 좋은 오빠네요.”
단정지어 말하자 눈시울이 붉어진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전 좋은 오빠가 아니에요. 그 아이가 실명하게 된 것도 제 탓이거든요.”
“힘드셨겠네요.”
죄책감.
가족을 잃고 긴 세월 후회했던 이안은 그게 얼마나 정신을 갉아먹는 일인지 잘 알았다.
진심이 담긴 말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 같이 놀자고 하지 않았으면 실명할 일도, 부모님이 이혼할 일도 없었을 텐데. 매일 같이 후회해요. 차라리 실컷 원망이나 하지. 그 애는 바보같이 매번 괜찮다는 말이나 하고.”
흐르는 눈물에 이안은 마커스를 봤다.
“손수건 없어요?”
“진짜 남자는 손수건 같은 건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이건 또 뭔 헛소리야.
그에게 너무 큰 걸 바랐다고 생각한 이안은 브레이커를 봤고 그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총기 닦을 때 쓰는 수입포는 있는데 그거라도 줄까?”
“그건 왜 들고 다녀요. 이 정신 나간 인간아.”
“남자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거든.”
머리가 지끈거린다. 틀린 말은 아닌데 여기에 쓸 말은 아니지 않나.
결국 직원을 불러 휴지를 받아야 했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그에게 문득 드는 궁금증을 물었다.
“근데 어쩌다 루로 팬 픽션을 적게 된 거예요?”
“드라마 소리를 들었는데 이상하게 루의 대사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거든요. 관련 이야기를 찾아서 해주다 보니 둘 다 푹 빠져서 여기까지 왔네요.”
“와…”
추락 사고를 막고 변한 목소리가 이렇게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새삼 신기하다고 느끼며 이안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동생분 이름이 뭐죠?”
“아멜리아 후드입니다. 16살이죠.”
“에이든과 아멜리아. 그럼 출판할 때는 공동작가로 가야겠네요.”
“…출판요?”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상대를 이안을 살폈다.
‘확실히 가정 형편이 여유롭진 않아.’
오스틴이 남긴 수첩 내용을 떠올려보면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간 상태다.
꼭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런 자리에 늘어진 T셔츠를 입고 온 것만 봐도 어떤 형편인지 감이 잡혔다.
그러니 이 소식은 그에게 더 기쁠 거다.
“네, 원작자인 스텔라 작가님이 출판을 허락하셨어요. 로열티를 빼야겠지만 그것만 해도 엄청 좋은 기회에요. 알죠?”
“정말요?!”
“그럼요. 제가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감사합니다!”
또또 울려고 한다.
진정하길 기다린 이안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일을 물어봤다.
“이번 팬 픽션 말고 더 적어놓은 글은 없어요? 솜씨를 보니까 이번이 처음은 아닌 거 같던데요.”
“있긴 한데 대부분 완성이 안 된 습작들이라서요. 아, 하나 완성된 소설은 있어요. 빅 마운틴이라는 제목인데.”
즐겁게 소설 이야기를 늘어놓는 말을 들으며 이안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오스틴이 의심했던 것처럼 표절 맞네.’
18살이면 술도 못 사는 나이이다. 가뜩이나 죄책감을 품은 상태에서 자신 때문에 표절까지 당했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됐다.
‘둘의 작업방식을 생각하면 증거로 남은 것도 별로 없을 테고.’
머릿속에 있는 걸 그냥 풀어내는 아멜리아나 그걸 그대로 글로 남기는 에이든.
둘 다 비범했지만 그래서 증거가 될 게 없었다. 기껏해야 컴퓨터 정도일 텐데 그 정돈 집에 자주 들락거린 범인이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증거다.
“와! 진짜 설명만 들어도 재밌을 거 같은데요. 혹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평가받은 적도 있어요?”
“마테오라고 내가 글쓰기를 배울 때 도움을 주신 분이 있는데 그분은 봤죠.”
“그래요? 뭐 하는 사람인데요.”
“소설도 쓰고 문학 쪽으로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유명하진 않고요.”
이름을 몰랐던 표절 작가의 이름을 곱씹으면서 이안은 테이블을 두들겼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럼 그 사람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글을 쓰진 못했을걸요.”
“정말 믿을 수 있다고요?”
재차 묻는 말에 그는 잠시 멈칫거렸다.
사람은 의심의 동물이라서 이렇게 묻기만 해도 그냥 넘어갔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거다.
“에이, 너무 심각하게 굴 것 없어요. 설마 나쁜 짓을 했겠어요?”
“그렇겠죠?”
“음. 그 작품도 출판할 생각이 있잖아요. 혹시 찝찝한 게 있으면 알아볼까요? 미안하긴 해도 의심을 완전히 털어내고 더 잘해주면 되죠. 어때요?”
출판이 걸린 일이다. 이 말에 고민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수첩에 따르면 소설이 출판된 건 내년 2월이다.
‘그럼 지금쯤 계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크지.’
종이책은 계약 맺는다고 바로 뿅하고 나오는 게 아니다.
교정도 있고 판매량 예측이나 마케팅 그리고 인쇄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니 시간이 꽤 필요한 일이다.
이안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원작자인 스텔라였다.
-이안 군! 오늘 에이든 작가님을 만난다고 했잖아. 어떻게 됐어?
“지금 제 앞에 있는데 아마 직접 만나면 깜짝 놀라실 걸요.”
-뭔데?!
“재밌는 건 직접 확인하셔야죠. 그것보다 부탁할 일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출판 쪽 일은 오스틴보단 인기 작가인 그녀를 통하는 게 훨씬 나았다.
“제목은 빅 마운틴이고 물에 잠긴 세계에서 유일한 육지인 빅 마운틴을 두고 싸우는 내용의 소설이거든요. 이게 혹시 투고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음, Literary agent를 통해 들어온 게 있는지 출판사에 확인해봐야겠네? 기왕이면 다른 출판사도.
Literary agent는 작가 대리인을 뜻한다. 큰 영어권 출판시장답게 지망생도 엄청 많았고 출판사가 개인 투고를 받으면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여기서 문지기 역할을 하는 게 작가 대리인이고 이들의 선택을 받아야 출판까지 갈 수 있었다.
“어렵나요?”
-쉽진 않지. 인맥을 동원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말이야.
“뭘 원하는데요.”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들려왔다.
-요즘 작품 쓰는 게 조금 막혀서 말이야. 진짜 루를 한 번 보면 잘 써질 거 같은데. 어때?
“…그거 꼬리 다 뜯겼는데요.”
-다시 붙이면 되겠네.
“그냥 돈으로 해결하면 안 될까요?”
-세상엔 돈이 전부가 아니란다. 그리고 나도 돈 많아.
아무리 봐도 조건을 바꿀 거 같지 않았다.
‘진짜 모방 도시 각본가가 엮인 일만 아니었어도.’
친분은 없었지만 덕분에 좋은 영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고마움을 생각하면 코스프레 정도야.
“좋아요. 의상은 어떻게든 해볼게요.”
-좋아! 나도 한 번 최대한 찾아볼게.
통화 한 번에 진이 쭉 빠진 이안은 이를 바득 갈았다.
‘마테오라고 했지? 진짜 잡히기만 해봐라.’
아주 영혼까지 털어줄 생각이다.
***
분리된 아홉 개의 꼬리.
이걸 다시 등에 달아야 한다니. 하기 싫다는 생각에 이안은 꼬리를 전동 드릴에 붙여봤다.
“오!”
아홉 개 꼬리가 선풍기처럼 돌아갔고 이안은 영상을 찍어 스텔라에게 보냈다.
-이건 어때요?
-꺄악! 지금 루의 꼬리로 뭐 하는 짓이야. 혼날래?!
역시 이건 안 되는구만.
“좋은데 이게 안 되네.”
“꼬리가 빙글빙글!”
윙윙 드릴이 돌아갈 때마다 빙글빙글 도는 꼬리가 신기한지 에반이 폴짝폴짝 뛰었다.
“더 빠르게 해볼까?”
“응!”
변속 스위치를 꾹 누르자 드릴은 더 빠르게 돌아갔고.
후두둑!
“아…?”
버티지 못한 꼬리가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에반은 앞에 떨어진 꼬리를 들었고 죽은 것처럼 축 늘어지자 울먹거렸다.
“꼬리가… 죽었어.”
“아이고, 같이 마당으로 놀러 갈까? 응?”
이안은 잽싸게 에반을 품에 안았고 어깨에서 작게 끄덕이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 모습을 보던 레이첼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벤을 닮아가는 거 같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하잖아.”
어떻게 비교해도 벤이랑 한단 말인가.
에반을 무릎에 앉히고 볼살을 만지작거리던 이안은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이안.
“꼬리는 전문가에게 맡길게요.”
-그건 당연한 거고. 빅 마운틴 진짜 에이든 작가가 쓴 글 맞지?
“네, 혹시?”
-대리인이 여러 출판사에 한 번 돌렸대. 계약 맺은 출판사도 있다고 하고. 어떡할래.
작가라면 표절에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말만 하면 직접 나설 기세였고 이안은 바로 말렸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고마워요.”
-일단 알겠어.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하고.
“되도록 이상한 소문이 안 돌게 해주세요. 상대가 먼저 눈치채면 안 되거든요.”
-그건 당연하지.
통화를 끝낸 이안은 바로 에이든에게 전화했고 상황을 알려줬다.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배신했다는 말에 엄청 충격받은 듯했고.
-저, 정말 마테오가 그랬다고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요. 표절을 증명할 게 있을까요.” -컴퓨… 아! 얼마 전에 컴퓨터가 낡았다고 교체해줬는데…
꽤 치밀하다. 증거가 될 컴퓨터부터 치워버린 걸 보면.
작업한 파일이야 복사했을 테지만 증거가 되기 힘들 테고.
-어, 어떡하죠?
이안은 머리를 굴렸다.
빅 마운틴의 표절을 증명하는 건 쉽지 않다. 성공하더라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컸고.
‘그럼 다른 방향으로 공략해야지.’
우선 에이든에게 물었다.
“혹시 이번 팬 픽션을 출판한다고 이야기했어요?”
-아뇨. 하지 말라고 하셔서 안 했죠. 요즘 바쁘다고 못 만나기도 했고요.
“저랑 만난 것도 이야기 안 했겠네요.”
-네.
다행이다.
조건은 다 갖춰졌다.
“그럼 마테오에게 출판 계약을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해요. LA까지 가는 것도 힘들다고요. 그럼 아마 대신 갔다 온다고 할 거예요.”
-그럴까요?
거의 확실했다. 문라이프의 팬덤을 생각하면 빅 마운틴보다 더 돈이 될 작품이고.
‘불안한 것도 있겠지. 에이든이 진짜 작가가 돼서 유명해지면 표절 작품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클 테니까.’
직접 나설 테고 어떻게든 이번 작품도 가로채려고 할 거다.
자신을 단단히 믿는 에이든에겐 나이 같은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가스라이팅이라도 하겠지.
“그럼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어디 그 얼굴이나 한번 보자.
***
“반갑습니다! 제가 에이든 후드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는 마테오 화이트라고 합니다.”
“이안 프라이스에요. 이쪽은 출판사 직원분이고요.”
참 뻔뻔하다.
뺀질거리는 얼굴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후 마테오는 뭐가 그렇게 급한지 본론을 꺼냈다.
“출판 계약을 생각하신다고…?”
“네, 원작자께서 좋은 글인데 팬 픽션으로만 남겨놓기 아깝다고 하셔서요. 여기 계약서입니다.”
월척을 낚을 시간이다.
이안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