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5)
도로시2
사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평소처럼 대본 넘어가는 소리였다면 기분 좋게 들었을 텐데.
‘아니, 원래 저 계약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 보는 거라면 이런 불쾌감도 안 들었겠지.’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얼굴로 계약서를 훑는 남성은 푸근한 아저씨처럼 생겼다.
견물생심이라고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줬지만 에이든이 완성한 글을 보고 욕심이 생겼을 가능성이 컸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애가 도움을 구한 건데 처음부터 표절할 생각으로 다가갔겠는가.
‘근데 어쩌라고. 시작은 중요하지 않아. 지금 나온 결과가 중요하지.’
빅 마운틴을 표절한 것도 모자라서 또다시 작품을 가로채기 위해 왔다.
정상참작의 여지는 전혀 없었다.
조용히 지켜보는 이안을 대신해 출판사 직원이 물었다.
“계약 조건은 어떠십니까?”
“여기 로열티 부분은…”
“원작이 있는 소설이니까요. 대신 원작의 인기를 생각해서 인세와 초기 발행 부수는 넉넉하게 잡았습니다.”
당연히 팔릴 책 부수를 생각해서 미리 지급하는 선인세 금액도 눈이 휘둥그렇게 변할 정도다.
목이 타는지 마테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여기 이 조항은요?”
작가의 귀책사유로 출판에 문제가 생길 시 배상을 한다는 조건을 가리키자 직원은 그걸 왜 묻냐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그건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조항입니다. 큰 계약금을 먼저 드리는데 기본적인 안전장치는 있어야죠. 혹시 걸리는 점이 있으십니까?”
“아뇨. 그냥 혹시나 하고 물어봤습니다.”
“사인은 변호사와 검토하신 후에 하셔도 됩니다. 물론 조건 조율은 가능하지만 다른 출판사와 계약은 안 됩니다. 원작은 저희 출판사 작품이니까요.”
보통이라면 출판도 안 될 팬 픽션이다.
주억거리는 마테오를 보며 이안은 속으로 조소를 지었다.
‘변호사랑 상담해도 문제 될 건 없을걸. 진짜 평범한 계약서고 일반적인 작가에게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으니까.’
근데 표절 작가에겐 글쎄다. 마테오 사인을 해보면 어떻게 될지 직접 느끼지 않을까.
변호사와 상담을 해보겠다며 그는 계약서를 챙겼고 간단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작가가 된 지요? 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 변변치 못한 작품만 내놨네요. 물론 쉽지 않았죠.”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참을 늘어놓은 그를 향해 이안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팬 픽션까지 쓰셨어요? 원래 이런 건 돈이 안 되잖아요.”
“드라마를 보다가 캐릭터가 마음에 쏙 들었거든요. 돈이 중요한 게 아니죠.”
“대단하네요!”
말은 잘 한다.
누가 들으면 진짜 본인이 쓴 글인 줄 알겠다. 마음 같아선 당황할만한 질문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지.’
미끼도 안 물었는데 낚싯대를 당기면 쓰나.
오히려 이안은 그의 헛소리를 경청하며 칭찬해줬고 효과가 있었는지 돌아갈 때 그는 한껏 들뜬 얼굴이었다.
“정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이야, 유명한 아역을 만나다니 영광이었습니다.”
“저도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마테오를 보내고 돌아온 이안은 직원과 함께 웃었다.
“작품 홍보는 빵빵하게 부탁드려요. 일부 부담해줄 사람도 생겼잖아요.”
“하하하, 기왕이면 전부는 안 될까요?”
“그건 법정에서 알아서 뜯어내세요.”
마테오는 배상이라고 해서 계약금을 내뱉는 정도만 생각했나 본데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마음 같아선 계약금의 몇 배를 배상한다는 조건을 걸고 싶었지만 멍청이도 아니고 그런 조건에 선뜻 서명할 리가 없지.’
물론 마테오 이름으로 홍보를 했다가 표절 작품이라고 알려지는 건 작품에 똥물을 끼얹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았다.
“그나저나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그렇게 작품을 쓰시는 작가님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거기다가 스토리도 좋죠.”
부모님의 이혼으로 헤어진 남매, 실명된 여동생을 위해 기꺼이 눈과 손이 되어주는 오빠.
공개된다면 마테오의 표절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만들 정도로 파급력 있는 이야기다. 출판사가 괜히 이런 일에 합류한 게 아니다.
‘둘에게도 미리 허락을 받아놨고.’
아직 어린 둘에게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는 건 부담될 수도 있지만 둘은 흔쾌히 동의했다.
Melted Moonlight의 표절을 증명하기도 쉽다. 에이든이 직접 쓴 글이라는 증거는 미리 챙겨놨고 대화 내용도 전부 녹음 중이니까.
‘빅 마운틴이 문제인데.’
표절 작가인 게 들통나면 일단 출판은 멈춰질 거다. 막대한 소송비를 감당 못하고 한계에 몰린 그가 말 실수를 하면 좋고.
여차하면 형량을 줄여주는 대가로 자백을 받아내면 됐다.
“일단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이네요. 얼마나 걸릴지 내기할까요? 전 하루 정도면 될 거 같은데요.”
“이런 내기가 안 되겠군요. 저도 같은 생각이거든요.”
역시 예상대로일까.
다음 날에 계약서에 사인했다는 연락이 왔다.
마테오의 파멸이 결정됐다.
***
“으휴, 진짜 너는.”
“왜요.”
인상을 팍 찡그리자 머리를 꾹꾹 누르는 벤의 손에는 힘이 더해졌다.
“뭐하러 직접 만나기까지 하냐. 그냥 맡기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지.”
“어떤 인간인지 궁금하잖아요. 이런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된다니까요.”
“이번에도 도움이 되든?”
“제법요. 욕심과 불안이 얼마나 사람을 근시안적으로 만드는지 확실히 느꼈죠.”
계약서에 적힌 계약금과 이미 빅 마운틴을 표절해서 불안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쉽게 서명했을까. 아닐 가능성이 컸다.
당당하게 대답하자 벤은 고개를 내저었다.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자제까진 안 바랄게. 그래도 너무 나서진 마라. 하여튼 성격은 꼬여서.”
“내가 뭐요?”
“뭐긴 뭐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잖아. 굳이 불순한 마음으로 콘도그를 준 걸 티를 내야 했냐.”
“그게 좋다고 바로 다음 날 가게로 찾아온 사람이 누군데요.”
“내가 그땐 미쳐서 그랬지.”
이안은 이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지금도 정상은 아니지만 그때 벤은 더 심각했다.
“그때 벤은 3데미안 정도 됐죠.”
“3데미안?”
“이상한 정도요. 데미안의 세 배 정… 악! 아하핳!”
얼굴을 와락 구기며 간지럽히는 손길에 이안은 발버둥 쳤다.
마구 휘젓는 손에 몇 대 맞은 벤은 얼얼한 팔을 손으로 쓸었다.
“진짜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게 얼마 전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냐.”
“빨리 커야죠. 아직도 invisible children을 못 보고 있다니까요.”
노아가 하차한 뒤 어떻게 진행됐는지 그저 줄거리만 보며 만족해야 했다.
‘쇼러너도 언제쯤 다시 합류할 수 있는지 계속 물어보고 있고.’
드라마에 계속 묶여 있을 순 없으니 한 시즌 악역이라면 생각해보겠다는 답변을 돌려준 상황이었다.
“ADR 녹음을 하라고 불렀더니 둘이 뭘 그렇게 놀고 있나. 일 안 해?”
핀잔에 고개를 돌리자 한심하게 보는 게빈이 보였다.
“에이, 제건 별로 안 되잖아요. 금방 해요. 금방. 못 믿으시면 제 옆에서 녹음하는 거 보실래요?”
“…싫다, 이놈아.”
질색하는 모습에 이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후시 녹음은 영상을 보며 하니 싫어할 만도 했다. 더군다나 어느 정도 CG가 입혀진 영상일 테니까.
그나저나 진짜 여전하다. 에일리언 헌터3를 찍어도 무서워하는 건 똑같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안.”
“네?”
“빨리 커서 좋을 건 하나도 없을 거다. 필릭스가 네가 빨리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거든.”
“필릭스가요?”
아이작, 게빈과 친한 사이기도 하고 그랜드 라인의 공동 제작사 대표기도 한 사람이다.
혹시 작품 때문에 그런가 했는데.
“네가 크면 같이 밥을 먹으러 다니겠다더구나. 그때면 아이작에게 혼날 일도 없다면서 말이야.”
“음.”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는 괴식가 다운 바람이다.
“밥은 지금도 같이 먹을 수 있는데요.”
“안 될걸. 그 말을 했다가 아이작이 뉴욕으로 끌고 갔거든.”
참 다들 여전하다.
나중에 살아 있는지 전화나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할 때 핸드폰이 울렸다.
“패트릭?”
한국에서 번호 교환하고 짧게 안부 전화를 몇 번 나눈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런 건가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패트릭, 어쩐 일이에요.”
-바쁜데 전화한 건 아니지?
“바쁜 건 아니에요.”
먼저 녹음하고 오라고 벤을 툭툭 쳤고 그는 투덜거리며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2, 3일 정도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
“잠시만요.”
이안은 날짜를 확인했다. 벌써 8월 중순이고 방학이 끝나기까지 2주도 안 남았다.
“방학 기간인 8월 말까진 가능해요. 무슨 일인데요.”
-제이의 부모님이 널 한번 보고 싶대.
스노우 레이크 밴드의 탄생에 이바지하고도 잊힌 소년이다.
제이가 영화에 나오는 걸 반대하던 부모님이 자신을 만나자고 하는 건 좋은 소식이다.
이안은 흔쾌히 동의했다.
“알겠어요. 한 번 만나 뵈러 갈게요.”
-그럼 날짜 좀 정해줄래. 스노우 레이크도 같이 만나보겠다고 했거든.
“그분들이요?”
노래를 들을 시간에 대본을 보는 성격이니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90년대부터 엄청난 인기를 끈 얼터너티브 록 장르에서 알아주는 밴드였다.
아무리 힙합, R&B, 일렉트로닉 뮤직이 대세로 떠올랐다고 해도 가진 유명세는 대단했다.
-응, 어차피 영화를 준비하다 보면 마주칠 일도 많을 거야. 영화 음악에 꽤 깊이 관여할 거거든.
“저야 좋죠.”
혼자 가는 것보다 아무래도 같이 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
-알겠어. 그럼 일정 조율을 해줄게.
“네!”
통화가 끊겼다.
‘어떤 사람들이려나.’
밴드의 시작부터 독특했고 4인조 혼성이다.
스노우 레이크 영화를 봤지만 영화는 다큐가 아니다. 실제 성격이 다를 가능성이 컸다.
어떤 사람들일지 꽤 궁금했다.
***
궁금증을 품은 과거의 자신을 때려주고 싶었다.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헤이! 드롭킥 보이!”
“아니지. 롤링 보이라니까. 그래서 WWE는 언제 들어가는데.”
와. 옛 별명을 지금 들을 줄은 몰랐다.
둘 다 소피아 집에 침입한 강도를 잡았을 때 별명이다. 드롭킥으로 강도를 잡아서 드롭킥 보이, 그 후 호쾌하게 데굴데굴 굴러서 롤링보이.
“아니지. 이 친구를 WWE로 불러야겠는걸. 주먹 좀 쓰시나.”
“총을 더 잘 쏠걸요.”
겁도 없이 마커스 앞에서 기웃거리는 모습을 봐선.
‘약이라도 했나.’
아니면 푸아그라처럼 간이 부었거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정신없는 3인조의 머리를 누군가 호쾌하게 때렸다.
“이 자식들아! 애 놀라겠다. 인사부터 해야 할 거 아니야.”
허스키한 목소리로 타박을 날린 사람은 붉은 머리를 동여맨 여자였다.
“미안, 이 녀석들은 좀 멍청이라서. 난 나오미야. 키보드를 맡고 있지. 여기 검둥이는 베이스의 월터. 민머리는 드럼의 맥스, WWE 타령하는 이놈은 일렉의 프레드야.”
“이안 프라이스에요. 이름은 전부 알고 있죠.”
누군지 몰랐으면 마커스가 얌전히 있지도 않았을 거다. 바닥에 눕혔겠지.
이안은 천천히 멤버를 둘러봤다. 하는 것만 봐도 거침없는 성격인 건 알겠다.
‘하긴 이런 사람들이니 그렇게 밴드를 만들었겠지.’
맞은 곳을 문지르며 프레드는 투덜거렸다.
“살살 좀 때려라. 애도 있으면서 손은 더 매워진 거 같아.”
“어쩌라고. 사과나 똑바로 해.”
“미안. 너무 갑작스러웠나.”
“옛 별명을 말해서 좀 놀라긴 했죠.”
잘 말했다는 듯이 그는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진짜 네가 배우보단 프로레슬러가 될 줄 알았다고. 호쾌한 드롭킥을 보고 감동했거든. 킬링 엔젤이란 별명도 내가 붙여줬었다고.”
…드디어 찾았다.
언제였나. 허먼 폭로전 이후였던가. 아기 천사랑 합성돼서 골치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그 범인 중 하나를 드디어 잡았다.
“그나저나 제이를 이안이 한다니 좀 그렇다.”
“이거 왜곡이라고. 아무리 추억으로 미화해도 정도가 있지. 걔는 이렇게 잘 생기진 않았잖아.”
“안 되겠다. 우리도 엄청 잘 생긴 배우로 해달라고 해야지.”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가 비글과 산책 온 느낌이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고 이안은 그들에게 말했다.
“일단 자리부터 옮기죠.”
“좋아. 따라오라고.”
공항을 벗어나 차에 올라타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일단 호텔부터 가서 짐부터 내려놓자고. 괜찮지?”
“물론이죠.”
어차피 제이의 부모님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꽤 남았다. 호텔로 향하는 차 안에서 프레드가 물어봤다.
“우리 음악은 좀 들어봤어?”
“대본을 받고 들어봤죠. 좋던 데요.”
“에이, 대본을 받기 전에는 몰랐구나.”
“요즘 애들이 우리 음악을 듣겠어? 그럴 수도 있지.”
나오미의 말에 프레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자주 듣는 가수는 있어?”
가수라. 거의 음악을 안 들으니 마땅히 떠오르는 이름은 하나뿐이었다.
“라이요.”
직접 부르면서 듣는 거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혹시 누군지 모르나 했지만 페트릭의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아! 라이. 뭐 그런 애를 좋아하냐. 얼굴도 안 보이는 걸 보면 맥스처럼 대머리일걸. 악기도 가상 악기나 쓰고 말이야. 난 좀 별로야.”
“오, 그렇구나. 또 뭐가 별로인데요?”
“할 말이야 더 있지. 그러니까…”
호응해주니 당사자가 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말을 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는 건가.’
말실수로 밴드까지 만들었으면서 지난 세월만큼 교훈도 함께 잊었나 보다.
‘내가 라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하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결말은 도로시2였다.
이 날 도로시의 흑역사 친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