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7)
아멜리아 후드
미국의 출판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크다.
수천만 부에서 수억 부까지 팔리는 책들도 많고 다른 나라에선 말라죽은 장르도 나름 큰 규모를 갖고 있을 정도로.
‘하지만 빌어먹게도 정상이 높은 산은 바닥도 넓지.’
에이전트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작가를 모으면 도시를 만들 정도가 되고 현실을 부정한 지망생들은 출판 비용을 자신이 내는 자비출판으로 손을 뻗는다.
미국이 불쏘시개 같은 책들의 규모로도 세계 최대인 이유였고 자비 출판사를 Vanity Press, 허영 출판사라고 부르는 까닭이기도 했다.
마테오도 20년 가까이 제대로 책도 출간 못 하고 불쏘시개만 만들던 처지였다. 얼마 전까진.
“빅 마운틴도 인쇄에 들어갔다고요?”
-네, Melted Moonlight와 맞춰서 출간할 계획인 거 같습니다. 두 작품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럼 또 전할 소식이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에이전트와 전화를 끝낸 마테오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됐다. 됐어.”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 이건 어디서나 통용되는 말이다.
Melted Moonlight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때는 당혹스럽고 불안했지만 빅 마운틴 출간까지 영향을 주니 기쁜 마음이 앞섰다.
좋아하던 마테오는 문득 에이든이 떠올랐다.
“난 나쁘지 않아. 내가 없으면 이런 글을 쓰지도 못했을 거 아니야. 먼저 작가로 성공해서 도와주면 되지. 그렇고말고.”
자기 합리화라는 건 마테오도 알고 있다.
Melted Moonlight를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하는 걸 들켰을 때 에이든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정말 믿었는데!”
“진정해봐. 너희를 위해서 이런 거라니까. 원작자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계약을 맺었어야 했다고. 급해서 내 이름으로 한 것뿐이야.”
여동생이 미성년자인 것까지 들먹이며 설득을 했고 이게 통했는지 팬 픽션의 완결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
오래 쌓은 정과 유일하게 의지하는 어른이며 아직 멋모르는 애라서 통한 설득이다. 언제 변심할지 모르지만.
‘괜찮아. 어차피 소송은 제대로 하지도 못해.’
법적 싸움은 돈이 중요했다. 이미 큰 계약금을 받은 마테오는 가난한 에이든이 소송을 걸어봤자 그다지 무섭지도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이런 사실을 들먹이며 돈이나 조금 챙겨주면 된다.
구름을 걷는 것처럼 행복한 나날을 부수는 전화가 오기 전까진 이렇게 생각했다.
-작가님! 표절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표, 표절이라뇨.”
-녹취록까지 공개됐는데 모르십니까! 직접 확인해보시죠.
Melted Moonlight 출판사에서 걸려온 전화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마테오는 대충 전화를 끊고 서둘러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자신이 진짜 Melted Moonlight의 에이든 후드다. 녹취록 공개.
-20년간 무명 생활을 했다는 마테오 캠벨, 추악한 민낯이 공개되다.
-루 역할을 했던 이안 프라이스 ‘끔찍하다. 녹취록이 사실이면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기사 제목에 덜덜 떨며 녹취록을 확인해봤다.
-마테오, 정말 저 대신 Melted Moonlight 출판 이야기를 듣고 와줄 수 있나요?
-뭐 어려운 일이라고. 걱정 말고 맡기라니까.
-고마워요. 출판이라니 아멜리아도 좋아할 거에요.
길게 이어진 녹취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LA로 가기 전에 대화가 녹음 됐다는 말은 처음부터 의심했다는 말이다. 배신감이 차오른 마테오는 거칠게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연신 울리는 전화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미친 듯이 에이든의 집으로 찾아간 그는 평소 갖고 있던 열쇠를 꺼냈지만 자물쇠를 바꿨는지 열쇠가 들어가지 않았다.
쾅쾅!
“에이든! 당장 문 열어!”
부술 것처럼 두들기자 참지 못했는지 문이 열렸고 에이든을 붙잡으려던 그는.
“시끄럽게 뭐야?”
흉악한 얼굴을 마주했다.
짜증으로 구겨진 얼굴에서 시선을 내리자 가슴팍에 권총과 나이프가 꽂힌 홀스터가 보였다.
풍기는 분위기만 봐도 갱이 의심될 정도였고 잔뜩 주눅 든 마테오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나? 에이든 친척.”
“거짓말!”
이런 친척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고 애초에 인종도 달랐다.
강하게 부정하자 그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그렇다는데 어쩔 건데. 어?! 그래서 남의 집에 왜 왔냐고!”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웠다. 그래도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려고 할 때 뒤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멈춰 선 대형 밴에서 우락부락한 서너 명의 남성이 내렸다.
“보스, 설마 때린 건 아니죠?”
“내가 때렸으면 서 있지도 못했어, 인마. 안에서 애나 데리고 와.”
잠시 후 여행 가방을 멘 에이든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나왔다.
마테오는 반색하며 소리쳤다.
“에이든! 오해가 있었어! 잠시 이야기만 하자. 응?!”
“아, 거참 시끄럽네. 안 닥쳐?!”
윽박지르며 에이든이 차에 탈 때까지 시간을 번 남성은 마테오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물어봤지? 스컬 택틱스의 브레이커다. 불만 있으면 LA까지 찾아오라고.”
LA.
목적지를 듣고 무너지듯 주저앉은 마테오는 깨달았다.
짧은 행복이 끝났고 이젠 그 값을 치를 때였다.
***
경호원들과 비싼 호텔.
전부 에이든에겐 낯설었다. 무섭게 생긴 경호원들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안과 달리.
“브레이커! 사고치고 온 건 아니죠?”
“어쭈? 사고는 내가 아니라 네가 치고 다니는 거겠지.”
“다들 오랜만이네요. 이야, 언제 사격 한 번 해야죠.”
“무시하지 마, 이 녀석아!”
브레이커가 버럭 소리를 질러도 이안은 무섭지도 않은지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보스한테 저렇게 할 수 있는 애는 쟤밖에 없을 거야.”
“쟨 처음 봤을 때부터 저랬잖아.”
아웅다웅하는 둘을 보며 시시덕거리는 경호원들을 봐선 친한 사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텍사스까지 직접 갔다 온 브레이커와 인사를 나눈 이안은 에이든 앞에 앉았다.
“오기 전에 마테오를 만났다면서요. 괜찮았어요?”
“…네. 근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런 말을 내뱉을 만했다.
‘이번엔 작품을 빼앗기고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내몰리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피해자가 죄책감을 느끼는 건 옳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던가요?”
“아뇨. 그래도 대화를 하면 하지 않았을까요?”
“급하니까 했을 수도 있죠. 근데 그게 진심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정말 용서할 생각이라면 빅 마운틴까지 되찾고 결정하세요. 그건 에이든의 마음이니까요.”
선처하든 말든 어차피 이 이상 간섭할 생각도 없다. 에이든이 선처해도 두 출판사의 손해배상 요구는 여전할 테고.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가족과 이야기는 해봤어요?”
“아버지는 이번 운송이 끝나면 바로 오신다고 하셨어요.”
에이든의 아버지는 트럭으로 화물을 옮기는 트럭커고 대륙을 횡단하는 만큼 한 번 나가면 몇 달씩 못 돌아왔다.
괜히 마테오를 의지한 게 아니다.
“어머니랑 여동생은요?”
“준비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오신다고 했어요. 아, 그리고 아멜리아가 이안을 엄청 만나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래요? 저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같은 생각이네요.”
깊은 인연이 있는 모방 도시의 각본가다.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주된 이유였고.
만남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이안은 경호원들을 향해 장난스럽게 말했다.
“가족들이 와도 안전은 걱정하지 마요. 갱단처럼 보여도 제대로 된 경호원이거든요.”
“앙? 갱단처럼 굴어줄까?”
“몇 년 동안 봤는데 말만 저래요.”
“야, 고객님이라서 봐주는 거지. 고객을 향한 진심 어린 노력을 그렇게 평가할 거냐.”
에이든이 경호원과 빨리 익숙해지도록 괜히 티격태격한 이안은 그가 쉴 수 있게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방 밖으로 나온 이안은 브레이커에게 부탁했다.
“괜한 걱정인 걸 알지만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은 어떻게 할지 모르잖아요. 잘 부탁할게요.”
“당연히 우리가 할 일이지.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 하라고.”
“믿을게요.”
둘은 웃으며 주먹을 맞부딪혔다.
***
중고등학생 시절 숙제를 베끼는 것조차 큰 문제로 생각할 정도로 미국에서 남의 글을 표절하는 건 중대한 죄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표절 사례는 적지 않았다.
거부의 자녀, 정치인, 심지어 하버드 교수들까지 논문 표절이 들통난 적이 많고 베스트셀러까지 오른 책이 이미 출판된 책의 상당 부분을 베낀 게 밝혀진 적도 있었다.
‘그나마 정식 출간도 안 된 책이 표절로 밝혀진 거니 무난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 평범한 책이라면.’
하필 인기 소설의 팬 픽션이 출간된다고 온갖 관심을 다 받은 상황이다. 출판사가 열심히 홍보한 건 덤이고.
이뿐이면 다행이지 진짜 작가로 밝혀진 둘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두 남매 작가의 아름다운 공동 작업과 기생충.
-어떻게 두 남매는 작품을 빼앗겼는가.
-원작자 스텔라 위버 ‘내 작품에 먹칠했다. 곱게 넘어가지 않을 것.’
쏟아지는 기사만큼 커뮤니티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와, 진짜 대단하다. 여동생이 말한 이야기를 오빠가 소설로 만들었다는 거지?
└근데 오빠 역할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직접 소설을 보고 와 봐. 그런 말 절대 못 할걸.
└평론가들도 같은 말을 하더라.
-소름 끼친다. 어떻게 이렇게 쓴 글을 뺏을 생각을 했지?
└하필 이름이 마테오냐. 이거 기독교 혐오야.
└이 세상 모든 마테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특히 나한테 말이야.
└걱정하지 마. 감옥에서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될 테니까.
└LOL!
-표절한 소설이 하나가 아니라던데. 빅 마운틴이라고 곧 출간할 책도 표절이래.
└확실해?
└본인은 아니라는데 일단 출판사에서 멈춘 걸 봐선 문장 같은 게 확실히 비슷한가 봐.
└어떻게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냐.
표절 의혹이 퍼지자 빅 마운틴 출간도 멈췄다.
두 출판사가 소송을 준비한다는 소식으로 마테오는 완벽히 추락했고 두 남매 작가는 단번에 엄청난 인지도를 얻었다.
Melted Moonlight 출판사에서 이보다 더 가성비 좋은 홍보는 없다고 평할 정도로.
모든 게 만족스러운 상황에서 이안은 전화를 받았다.
-또 허니 작품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우리가 함께 보낸 세월이 한두 해야? 딱 보면 알지.
부정해도 의미 없을 정도로 샬럿은 확신에 가득 찼고 이안은 순순히 자백했다.
“그냥 그렇게 됐어요.”
-나한텐 아무 말도 없었다니. 흑흑, 난 필요할 때만 써먹는 그런 여자였니?
“이상한 소리 하지 마요. 요즘 바쁘잖아요.”
사업도 사업인데 TellMe 프로젝트는 있었다.
1년이 조금 지나서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치고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관심이 있긴 하구나?
“쿠퍼에게 들었죠. 교육 받아서 참여한다고 들었거든요.”
총기 난사의 범인으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쿠퍼가 이젠 받은 도움을 남에게 베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소식을 듣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교육을 진행한 상담사도 쿠퍼의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 실제로 통화를 나눈 학생들의 평가도 좋고. 경험한 아픔이 있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죠.”
학창시절 상처는 보통 평생을 따라다닌다. 사회적으로 성공한다고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고.
이 아픔을 누구보다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니 앞으로도 잘 할 거다.
-쿠퍼는 쿠퍼고. 허니, 자주 연락 안 하면 섭섭하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야. 촬영에 들어가면 바쁘다고 소홀할 거면서.
“촬영 때는 어쩔 수 없죠. 직접 한 번 만나죠. 안 만난 지 꽤 됐잖아요.”
-좋지. 안 그래도 우리 가족 식사에 한 번 초대하려고 했거든.
이게 본론이었구만.
어쩐지 통화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연락한다 했다.
‘샬럿의 가족이면 만나볼 만하지.’
언더힐 가문이 돈 많고 비즈니스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니다. 순수하게 샬럿의 가족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지.
“좋아요. 시간 약속 잡아주세요.”
-이렇게 호쾌하게 결정할 때 허니가 제일 멋있다니까. 상견례니까 잘 차려입고 와야 해요?
“헛소리하면 그냥 끊을 거예요, 달링.”
-꺄하하, 농담이야. 농담. 편하게 입고 와. 아무도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약속 시각이나 알려주시죠.”
-정해지면 보내줄 게. 그때 보자.
통화를 끝낸 이안은 가볍게 웃었다. 진짜 변하질 않았다.
샬럿에 대한 생각을 마친 이안은 마커스와 함께 이동했다. 오늘은 아멜리아를 만나는 날이었다.
호텔 방 안으로 들어가자 네 명의 가족이 함께 있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어서 와요.”
에이든의 두 부모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이안은 방 안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낀 소녀를 봤다.
귀를 쫑긋거리는 소녀의 얼굴을 천천히 봤다.
‘같은 사람은 맞는데 엄청 다르네.’
눈은 떴지만 세상에 관심이 없어 보인 각본가와 눈앞의 소녀는 달랐다.
작은 소음에도 관심을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자 코를 움찔거리는 걸 봐선 후각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으로 세상을 다채롭게 느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멜리아 후드에요.”
수줍게 내민 손이 보였다.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고 에이든에게 보인 환상을 마무리 지을 사람이다.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손을 맞잡자 예상대로 새하얀 섬광이 시선을 가렸다.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성공한 각본가인 그녀의 삶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가 느끼는 세상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