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95)
3집
이안은 촬영에 들어가면 주변에 소홀해지는 편이다.
하루 최대 다섯 시간 촬영에 학업까지 소화하는 일정이 버겁기 때문이 아니다.
‘일종의 습관이지.’
과거로 돌아오기 전 수십 년 동안 연기에 몰두하는 삶을 살았고 그만큼 좁아터진 인간관계를 가졌다.
촬영 기간에 전화 좀 안 한다고 섭섭해할 사람은 없었으니 이런 성격으로 굳어지는 건 당연했다.
오죽하면 먼저 전화를 거는 샬럿의 첫 마디가 항상.
-허니, 이젠 마음이 식은 거야?!
이런 말이겠는가.
물론 이젠 주변 사람도 이안이 작품에 들어갔을 때는 고작 안부 인사로 전화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네가 어쩐 일로 먼저 전화를 했냐. 뭔 일 있어?
전화를 받은 벤이 이렇게 대답할 만했다.
“촬영은 어때요. 잘 되고 있어요?”
-너… 데미안에게 뭘 들었구나.
이야, 눈치는 빠르다. 정확히는 들은 게 아니라 본 거지만.
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내가 장담하는데 저건 공작새가 아니라 사람이야. 데미안이 슈퍼 공작새를 만들었다니까?
“그 정도예요?”
데미안 집에 찾아갔을 때 여러 번 보기야 했는데 그렇게 관심 둔 적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능 검사를 해봐야 해. 아무튼 두 콤비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무슨 요원 설정에 조류 공포증을 갑자기 넣냐고.
“저런. 근데 많고 많은 새 중에 하필 공작새예요?”
-몰라. LA 인근에서 돌아다니는 야생 공작새가 킬러를 따르는 이유를 알게 뭐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사는 공작새가 무슨 LA에 있냐 싶겠지만.
‘언제나 인간이 문제지.’
19세기 후반에 인간 손을 탈출한 공작새가 야생동물이 됐고 엄청난 번식력 때문에 꾸준히 붙잡아 격리시설로 보내는 상황이다.
기억을 더듬던 이안은 문득 떠오르는 기사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숫자가 엄청 늘어서 수십,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는 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그 기사를 보고 전부 잡아서 치킨으로 만들고 싶다며 노숙자들이 웃었던 기억이 있으니 확실했다.
“캘리포니아의 터가 안 좋나.”
농담 안 하고 베벌리힐스까지 그 꼴이 된다면 바로 뉴욕으로 이사할 거다.
-안 되겠어. 집에 고양이나 개라도 키우든가 해야…
다짐하던 벤은 말꼬리를 흐렸고 바로 기겁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뭐야. 왜 들어왔어?!
-술이나 한잔하자고. 어때?
-꾸엑!
-안 마셔! 악! 깃털 빠지잖아. 저리 안 꺼져?!
소리만 들어도 훤한 상황에 이안은 통화를 종료했다.
“버디물을 찍으면서 친해지길 바라긴 했는데.”
둘이 아니라 셋이 친해졌네?
벤이 들었으면 질색했을 생각을 했다.
***
죽음.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가장 두렵고 슬픈 일이다.
보는 관객에게도 큰 인상을 주는 만큼 영화에서 죽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스노우 레이크에서 제이의 죽음은.
“담백하네요.”
“그렇지?”
성인도 못 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소년이다.
영화 중반부까지 큰 존재감을 보여주는 인물인 만큼 장면을 얼마든지 비극적으로 꾸밀 수 있었지만.
“너무 멜로드라마처럼 만들고 싶진 않더라. 스노우 레이크의 멤버들도 같은 생각을 했고.”
패트릭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객에게 억지로 감정을 강요하는 신파 자체가 서양의 연극인 멜로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거다.
그런 만큼 할리우드에서도 억지로 눈물을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영화는 넘쳐났다.
‘그래도 과감한 결정이긴 하네.’
괜히 자주 나오겠는가. 관객에게 먹히니까 써먹는 거지.
대신 패트릭은 멜로를 포기하고 다른 쪽을 주목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긴 하죠.”
“그렇지? 슬픔보단 당혹감과 이 모든 게 꿈처럼 느껴지는 비현실성을 주목하고 싶었어. 실제로 멤버들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고. 그렇지?”
패트릭의 물음에 프레드는 걸어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죠. 무덤에 관이 묻히는 것까지 봤는데 당장 연습실을 박차고 들어와 구박할 것만 같았으니까요. 어쩌면 제이가 죽고 나서 한동안 게으르게 연습실에 있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죠.”
이안은 얼굴을 만져봤다.
화상으로 인해 나무껍질 같던 감촉이 아니라 매끈한 피부가 느껴졌다.
‘닉도 똑같은 느낌이었을까.’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있는 게 청각이 맞긴 하는지 아득해지는 정신에도 그의 외침은 들렸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는 이안 프라이스, 여기에 묻히다’라고 묘비에 쓴다고 했던가.
그때 기억을 떠올린 이안은 프레드를 바라봤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뇨, 누군가 떠올라서요.”
아니다, 둘을 같은 사람 취급하는 건 역시 닉에게 실례다.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프레드는 이안을 툭 쳤다.
“관에 눕는 경험은 처음이지? 잘 하고 오라고.”
기억은 못 해도 관에 누워본 적은 있다.
쓴 웃음으로 과거를 털어낸 이안은 걸음을 옮겼다.
촬영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농담이지?
밴드 이름을 뭐로 지을까 수다를 떨던 멤버들은 믿기지 않는 소식에 멍한 얼굴을 했다.
“거짓말 아니야.”
“지랄 말라고! 걔가 갑자기 왜 죽어?!”
“사고라고! 즉사라잖아! 이따가 가보면 알 거 아니야!”
프레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드럼 스틱이 맥없이 떨어졌다.
네 사람이 걸음을 옮긴 교회에는 조촐한 인원이 모였다. 목사가 나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에 안 남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편하게 관에 누워 있는 제이의 얼굴이 보였다.
“…어울리지 않게 꽃은 무슨.”
관 주변을 장식한 꽃만큼 제이에게 안 어울리는 게 있을까.
“이게 낫지?”
프레드는 주머니에서 기타 피크를 꺼내 제이의 가슴팍에 올려놨다.
눈물 섞인 인사도 없는 장례식이 끝나고 연습실에 모인 멤버들은 슬픔에 잠기지 않았다. 지독한 무력감에 짓눌려 있을 뿐.
‘왜 이러고 있을까.’
이렇게 시간 낭비할 거라면 연습실에 모일 이유도 없다.
그걸 알면서도 네 명은 항상 같은 시간에 이곳에 모였다. 마치 제이가 있을 때처럼.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분위기를 깨부순 건 거친 기타 소리였다.
-지이이잉!
“아, 귀 아파! 뭐 하는 데?!”
“미쳤냐. 시끄럽게 굴 거면 나가서 놀아, 이 자식아.”
연습실에서 기타를 쳤다고 욕을 먹은 프레드는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닥쳐봐. 좋은 생각이 났어. 우리 밴드 이름은 스노우 레이크로 하는 게 어떻냐. 눈 덮인 호수를 밟는 사람이지. 멋지지 않아?”
“뭔 헛소리야.”
“헛소리라니 잘 되면 제이 녀석이 엄청 배 아파할 이름인데.”
“지랄. 차라리 볼케이노 같은 거로 하자고.”
“재난 영화냐.”
투덜거리는 목소리는 어느덧 왁자지껄한 다툼으로 번졌다.
한 명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더욱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연습실 밖으로 퍼져나갔다.
스노우 레이크라는 밴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후우…”
중반부의 끝에 해당하는 촬영이 끝나자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고?”
“그래야죠. 다들 재밌었어요!”
이안의 인사에 스태프와 배우들이 찾아와 정신없이 인사를 건넸다.
오늘로 이안의 촬영 분량은 끝났으니 아쉬움 가득할 수밖에 없다.
“나처럼 가끔 놀러 오는 건 어때?”
“프레드처럼 시간이 많은 줄 알아요? 학교도 가야하고 따로 일정도 있다고요.”
“이래 봬도 나도 바쁜 사람이야.”
바쁘긴 무슨. 저래서 영화 개봉에 맞춰서 앨범이나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번호는 있잖아요. 나중에 일이 있으면 연락이나 해요.”
“굳이 전화할 일이 생기겠냐. 그냥 심심하면 전화할 게.”
“마음대로 해요.”
그와 손바닥을 부딪친 이안은 걸음을 옮겼다. 정이 든 촬영현장을 떠나는 건 언제나 아쉬움이 남았지만 배우라면 익숙해져야 할 일이다.
차에 올라타자 운전석에 앉은 마커스가 물어봤다.
“집으로 갈까요?”
“아뇨, 연습실로 가요.”
노을이 지는 하늘이 보였다. 해가 빨리 지는 겨울이라 그렇지 아직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이안은 통화를 걸었다.
-응, 이안.
“가고 있어.”
-알았어. 준비해두고 있을 게.
딱히 전화할 일이 없을 거 같다고?
‘글쎄다.’
이번 앨범을 듣고도 그럴진 두고 볼 일이다.
***
스피커를 타고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멜로디 위로 드럼의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얹혔다.
일렉트로닉, 록, 힙합 등 다양한 장르가 R&B와 결합한 얼터너티브 R&B다.
“이게 타이틀이지?”
“응.”
“역시 좋네.”
이안은 가사를 펼쳤다.
몽환적이고 감성적인 멜로디에 어울리는 가사가 쓰여 있었다.
-I had a dream last night. We finally met~
드디어 우리가 만나는 꿈을 꿨다는 가사는 얼핏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랑 이야기처럼 보였다.
-It’s time to open the door. I’ll see you after a long wait
문을 열고 당신을 만나겠다.
반복되는 가사를 보던 이안은 고개를 들어 제목을 봤다. promise, 약속.
‘라이의 팬들에겐 사랑 노래가 아니겠지.’
가사와 제목의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긴 기다림 끝에 이젠 모습을 드러내겠다는 뜻이다.
“솔직히 라이의 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이런저런 말로 시끄럽긴 하겠지만.”
사람은 제각각이니 모두가 같은 의견일 순 없다.
여전히 라이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지금 이대로가 더 좋다는 팬들도 있는 걸 보면.
‘실망하기 싫다는 걱정과 이게 라이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어차피 모두가 만족할 방법은 없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보다 완벽하게 3집을 준비하는 것뿐.
“준비 끝났어!”
1집 때부터 함께 한 엔지니어인 토니의 외침에 걸음을 옮기던 이안은 멈춰섰다.
“레이.”
“응?”
“4집을 내면서 우리 정체를 밝힐 거잖아.”
엘리엇과 맺은 앨범 계약도 4집으로 끝이니 라이가 어떻게 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난 가수가 아니니까.’
배우 일을 하면서 가볍게 접근할 정도로 가수 일은 만만한 게 아니다. 월드 투어를 다니느라 이 자리에 없는 아일라만 봐도 알 수 있다.
OST 같은 거로 간간이 노래를 부를 수도 있지만 이걸로 모든 활동을 종료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럼 4집 타이틀은 듀엣으로 부르는 게 어떨까?”
“…어? 듀엣?!”
놀란 토끼처럼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꽤 어른스럽게 변했기에 겁쟁이처럼 놀라는 모습은 오랜만에 봤다.
“응, 좋지 않아? 라이는 우리 둘인데 나 혼자 무대 위로 올라갈 순 없지.”
“…난 신경 안 써도 되는데.”
“그래도 한 번 생각해봐. 나랑 듀엣이라니 이런 기회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레이첼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탁하고 녹음실 문이 닫혔고 마이크를 붙잡은 이안의 얼굴이 보였다.
“I had a dream last night.”
변성기가 오지 않은 듯한 얇고 맑은 가성이 몽환적인 멜로디와 어우러졌다.
매력적인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가 되어 그루브를 만들어냈고 스피커를 통해 퍼져나오는 소리는 오색찬란하게 빛났다.
동화 속 풍경처럼 퍼져나가는 색감을 보던 레이첼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내가 이안하고 듀엣?’
잘 완성된 그림에 칙칙한 먹물을 뿌리는 꼴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욕심도 났다.
어우러진 두 개의 목소리는 어떤 빛을 낼까. 그걸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주고.
노래가 귀에 안 들어올 정도로 상상에 빠져 있던 레이첼은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해볼까?”
라이를 통해 자신이 성장해왔다는 건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았다.
위튜브라는 넓은 세계에 발을 디뎌봤고 저주라고 생각한 눈이 사실 축복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작곡으로 많은 칭찬도 받았고 음반사와 계약을 맺으며 책임감도 느껴봤으니 성장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래, 라이는 우리 둘이지.’
이안만 내세우면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느끼며 생각을 정리하던 레이첼은 어느덧 소리가 멈췄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 내가 괜한 소리를 했었나?”
언제 녹음실을 나왔는지 모를 이안이 사과하자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잖아. 생각해볼 일이기도 하고. 음…”
입을 몇 번 달싹이는 동안 그는 기다려줬고 그녀는 용기를 내서 말을 이었다.
“해볼래. 듀엣.”
“정말?! 바꾸기 없기야.”
“…알겠어. 꼭 약속 지킬게. 대신 별로면 타이틀로는 안 쓸 거야.”
“그건 어쩔 수 없지.”
앨범 완성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다.
‘아일라가 엄청 놀라겠네.’
레이첼이 노래를 부르게 하는 걸 반쯤 포기하고 있던 만큼 엄청 놀랄 거다.
아일라와 함께 손발을 맞추면서 그녀를 어릴 때부터 봐온 토니의 입이 떡 벌어진 것만 봐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럼 우리 같이 운동도 할까?”
“갑자기 운동은 왜?”
혹시 폐활량 때문에 그런가 싶던 레이첼은 이어지는 말에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도로시에게 살아남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지. 다니엘은 벌써 주짓수를 배우고 있다더라.”
“…어?”
도로시.
라이로 온갖 주접을 떠는 친구를 떠올린 레이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취소하면 안 될까?”
이안은 활짝 웃었다.
“걱정 마, 내가 지켜줄게. 우린 운명 공동체잖아.”
생사를 함께 할 사이.
이 순간 둘은 전우에 가까운 사이가 됐다.
***
이상할 정도로 갑자기 잘 해주는 레이첼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도로시는 금방 그 의문을 떨쳐버렸다.
“3집이야! 곧 라이의 3집이 나온다고!”
방방 뛰며 좋아하는 도로시의 목소리가 이안 집 거실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