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96)
만우절2
철컥!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총을 들고 달렸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피하며 달린 이안은 몸을 비틀어 멀뚱멀뚱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니 큰 고함이 울렸다.
“좋아요! 자세도 완벽합니다!”
가벼운 박수 소리가 울리자 이안은 총구를 내리고 총을 봤다.
두툼한 원판처럼 생긴 드럼 탄창이 꽂혀 있는 총은 토미건으로 불리는 톰슨 기관단총이다. 미국 마피아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그 총 말이다.
“와, 이거 진짜 뛸 때 거추장스럽네요. 특히 이 탄창요.”
“괜히 일반 군대에서 안 쓰는 게 아니죠.”
“제가 군인이면 욕부터 했을걸요.”
탄창에 총알이 많이 들어가면 무슨 의미가 있나. 그 장점을 빼면 단점이 수두룩 한데.
Melted Moonlight의 액션 감독은 이안의 말에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저였어도 그랬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솔직히 놀랐습니다. 사격 자세가 굉장히 빠르고 좋군요.”
“꽤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배워서요. 저기서 노는 사람이 제 선생님이죠.”
손짓하는 방향에는 와이어를 타고 높은 장애물을 넘나드는 마커스가 보였다.
스턴트맨 출신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와이어를 자유자재로 타고 다녔다.
“한 살만 더 먹었으면 저도 와이어를 탈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액션 장면도 더 화려하게 할 수 있고요.”
얼마 전에 생일 파티를 하고 15살이 됐지만 16살하고 차이는 컸다.
미국에서 괜히 16살 생일을 sweet sixteen이라고 부르며 성대하게 축하하는 게 아니다. 어른의 상징인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고.
‘아역에게 덕지덕지 붙은 제약도 풀리는 시기지.’
5시간 촬영 제한부터 안전을 위해 승마, 곡예, 와이어 같은 걸 금지하는 것도 16세 미만까지다.
1살이 아쉽게 느껴질 따름이다.
“괜찮습니다. 와이어을 사용한 액션이 없더라도 장면을 살릴 방법은 많으니까요.”
감독은 액션 시퀀스를 위해 이안을 평가한 종이를 펄럭였다.
배우만 아니면 운동선수를 제안해도 될 정도라서 꽤 놀랐다. 이젠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다.
“나중에 동작을 전부 다 짜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촬영 전에 합을 맞추는 연습도 꽤 해야 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마커스!”
이안의 부름에 와이어를 풀고 돌아온 그는 바로 경호원이 되어 차로 인도했다.
차가 체육관을 떠나자 툴툴거렸다.
“혼자 와이어를 타면 재밌어요?”
“오랜만에 하니까 재밌더군요.”
말이라도 못 하면.
이안은 멀어지는 체육관을 봤다. 액션 준비를 슬슬 하기 시작하니 Melted Moonlight 촬영이 성큼 다가온 걸 느꼈다.
‘중간에 낀 스케줄이 엄청 많지만.’
그사이에 개봉하는 영화만 두 개이니 말 다 했다.
눈을 감고 책으로 본 루를 어떻게 살리면 좋을까 고민하던 이안은 벨소리에 눈을 떴다.
“도로시?”
왜 전화를 걸었는지 의아할 것도 없다. 뜬금없이 전화할 때는 이유가 뻔했으니까.
-이안! 프레드, 이 인간 뭐 하는 사람이야?!
“왜 또.”
-또 SNS에 글을 올렸다고. 라이가 3집을 얼마나 제대로 내놓는지 보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니까?!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3집이 나오면 냉정하게 평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긴 했는데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이럴 줄은 몰랐다.
“냅둬. 그러다가 밴드까지 만든 사람이잖아. 그래도 사람은 괜찮아.”
-괜찮기는 무슨!
“그리고 라이에게 나쁠 건 하나도 없어. 이것도 다 공짜 홍보라니까.”
라이가 꽤 유명해도 스노우 레이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경력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애초에 콘서트 한 번 안 한 가수가 인기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오히려 지금 정도도 대단하지.’
모래알처럼 많은 가수와 지망생들 사이에서 송곳 같은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괜히 업계 관계자가 유망한 가수로 꼽는 게 아니다.
아무튼, 둘 사이에 인지도 차이는 컸으니 노이즈 마케팅 효과는 톡톡히 볼 게 뻔했다.
도로시를 위해 냉정하게 상황을 평가해줬으나.
-몰라! 이 멍청아! 라이는 분명 너하고 저 인간이 입을 닥치게 할 엄청난 앨범을 갖고 올 거야!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통화가 끝나자 이안은 아픈 귀를 만졌다.
운전하던 마커스는 능글맞게 말했다.
“하하하, 여자와 대화할 때 기본은 공감입니다. 액션뿐만 아니라 저한테 여자 마음도 배워야겠습니다?”
“시끄러워요.”
그걸 몰라서 공감을 안 했겠나.
‘다 도로시를 위해서야.’
공감해줬다가 라이를 갖고 주접을 떨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중에 진짜 수치사할 지도 모른다.
“아닌가? 벌써 늦었나.”
미래의 도로시를 위해 이안은 조용히 명복을 빌어줬다.
***
4월 2일.
라이의 앨범 공개가 확정됐고 이안의 생각대로 프레드의 글은 노이즈 마케팅이 됐다.
원래도 유명한 밴드였는데 이들이 주인공인 영화까지 나온다고 해서 이목이 쏠린 상태였다.
그런 밴드 리더에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라이를 거론했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라이? 얜 또 뭔데.
└한 번 들어봐. 노래는 괜찮은데 얼굴 한 번 안 보여주고 콘서트도 안 했다더라.
└콘서트도 안 했다고? 녹음실에서 만져준 노래로 무슨 좋고 나쁘고를 평가해.
└하긴 프레드가 또라이긴 한데 괜히 까진 않았겠지.
-지금까지 프레드가 공격한 가수들을 생각하면…
└우리 리더가 문제가 많긴 해요. 귀가 썩었거든요.
└그래도 데뷔하기 전에 하던 짓 아니야? 데뷔하곤 이번이 처음이잖아.
└원래 유명한 밴드를 욕하긴 했지.
└그래, 이번하곤 경우가 다르잖아. 애초에 밴드도 아닌 가수를 왜 들먹이는진 모르겠지만.
평소 록을 듣던 사람들은 호기심에라도 라이의 노래를 들어볼 정도가 됐다.
곧 사람들은 프레드가 왜 계속 라이를 들먹였는지는 나오미의 SNS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라이, 미안해. 이안이 우리 노래보다 라이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고 해서 어떤 머저리가 날뛰었네.
나오미의 사과글을 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드의 병이 또 돋았나 보네.’
‘얘가 뭐 그렇지.’
스노우 레이크의 탄생 배경은 꽤 유명한 일화였기에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앨범 발매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커졌고 발매 전날 SNS에 라이에 대한 글이 또 올라왔다.
-솔직히 고백할 게 라이는 이안이야. by Big Sound Records
Big Sound Records는 라이가 속해 있는 음반사다. 그런 곳에서 라이의 정체를 밝혔다. 이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기보단 날짜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이안, 네가 라이래!”
“응, 사실 내가 라이야.”
“그래, 오늘은 라이 해라. 내가 이해해줄 게.”
키득키득 웃는 도로시 너머에 숨죽인 레이첼과 순간 놀라 대본을 구긴 다니엘이 보였다.
주변 상황도 모르고 웃던 그녀는 이안의 어깨를 툭 쳤다.
“이런 글이 올라올 건 미리 알았지?”
“당연하지.”
애초에 만우절에 저 글을 올리자고 한 사람이다.
‘역시나 안 믿네.’
Big Sound Records에서 저런 만우절 장난을 칠 개연성이 확실한 탓이다.
작년 이안과 라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만우절 장난에 화답하는 형태였고 프레드 때문에 이안이 라이의 곡을 즐겨 듣는다고 알려진 상태다.
사람들이 그저 만우절 장난으로 넘어간 이유였다.
“빨리 내일이 와서 3집이 나왔으면 좋겠다. 바로 앨범을 사야지.”
“그래, 듣고 소감을 말해줘.”
“물론이지!”
아마 3집이 공개되면 타이틀 곡이 가진 의미 때문에 꽤 떠들썩할 테지만 이안이 더 궁금한 건 제이의 기타로 연주한 다른 수록곡의 반응이다.
연말이나 돼야 영화가 개봉되니 사람들은 힌트를 모르고 넘어가겠지만.
‘스노우 레이크 멤버들은 다르지.’
촬영하면서 연주하는 걸 직접 들었으니까.
과연 눈치챌 수 있을지 궁금했다.
***
프레드는 앨범 CD를 넣고 활짝 웃었다.
“어디 한번 평가해볼까.”
“어휴. 나오미,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네가 리더를 하는 게 어때?”
“그렇지 않아도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한심하게 보는 친구들을 무시하고 그는 앨범을 재생했다.
몽환적인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멤버들은 대화를 멈추고 노래에 집중했다.
“좋은데?”
“응, 요즘 트랜드에 딱 맞는 곡이야. 잘 먹히겠다.”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록은 주류에서 밀려나는 중이고 지금 나오는 R&B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긍정적인 멤버들의 평가에 프레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감점이야. 트랜트를 너무 따라가잖아.”
“아이고, 저 또라이가 또 저러네.”
물론 프레드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다. 노래가 좋아서 꽤 놀란 상태였으니까.
이어지는 앨범 수록곡을 멤버들은 집중해서 들었고 어느덧 마지막 곡이 재생되자 프레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이거.”
“잠시만 다물어 봐.”
어쿠스틱 기타와 어우러지는 목소리가 교묘하게 가렸지만.
“제이의 기타가 맞는 거 같은데. 몇몇 코드를 짚을 때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게 똑같아.”
“뭐지? 우연인가.”
혹시나 하고 반복해 들어도 확신만 더해질 뿐이다.
“기타를 이안이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나?”
“그랬겠냐. 제이의 부모님이 가져갔으면 좋겠단 말에 소중히 관리하겠다고 직접 말했다고.”
그런 이안이 타인에게 기타를 맡겼을 리가 없다. 확신을 가진 프레드는 전화를 걸었다.
-프레드?
“이안, 3집 앨범의 기타 말이야. 너지? 네가 세션으로 들어간 거 맞지?”
-와, 바로 아셨네요?
“당연하지. 우리가 제이 기타 소리를 모를까.”
정답을 맞췄다는 생각에 웃던 프레드는 이안에게 물어봤다.
“야, 그럼 라이도 직접 봤어?”
-봤죠.
“어떻게 생겼냐. 내가 말한 것처럼 못생겼지?”
“야, 그걸 왜 물어봐.”
“비밀이면 안 말하겠지. 너희도 궁금하잖아.”
솔직히 궁금하긴 하다. 3집 앨범을 들으니 더 궁금하고.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지고 이안의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만날까요? 옆에 다른 멤버들도 있는 거 같은데 다 같이 와요. 소개해줄 사람이 있으니까요.
“물론이지. 언제?”
-올 수 있으면 당장요.
이안의 쿨한 대답에 프레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가자.”
지금 상황에서 소개해줄 사람이라면 뻔했다.
스노우 레이크 멤버들은 보내 준 주소로 우르르 걸음을 옮겼다.
***
프레드는 초인종을 누르고 휘파람을 불었다.
“여기가 연기 연습실이라고?”
베벌리힐스의 비싼 주택을 통으로 연습실로 쓰고 있다니 사치가 아닌가 싶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문이 벌컥 열리고 이안이 나왔다.
“빨리 왔네요. 들어와요.”
앞장선 이안은 발걸음을 지하로 옮겼다. 넘어지지 않게 신경 쓴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여니 넓은 공간이 한 눈에 들어왔다.
멤버들은 감탄했다.
“미쳤네.”
“우리 연습실보다 더 좋은 거 같은데.”
마음껏 연주해볼 수 있게 나열된 악기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했고 한쪽엔 전문 녹음시설까지 보였다.
넓은 지하 연습실에 감탄하던 멤버들은 한쪽에 잘 거치된 제이의 기타에 살포시 웃다가 낯선 두 사람을 발견했다.
정장부터 구두까지 하얀 남자와 예쁘게 생긴 소녀였다.
서로 다른 의미로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두 사람에게 이안은 다가가자 프레드는 맥스를 툭 쳤다.
“저 사람 같지?”
“못 생기진 않았는데 패션 감각은 최악이다.”
프레드는 성큼성큼 다가가서 남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노우 레이크의 프레드 켈리야. SNS 글은 미안하게 됐어, 라이. 이번 3집 노래 좋더라.”
잠시 손을 내려본 남성은 웃으며 맞잡았다.
“3집이 마음에 드셨다면 다행입니다. 닉 윌슨입니다. 라이의 에이전트죠.”
닉의 대답에 프레드는 순간 멈칫했고 뒤에서 미친 듯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푸하하하, 라이가 아니라 에이전트라고 하잖아.”
“겁나 웃기네. 네가 그렇지 뭐.”
바닥을 뒹굴 정도로 웃는 멤버들의 행동에 프레드는 얼굴을 구겼다.
“이 자식들아, 적당히 웃어. 너희도 착각했잖아.”
핀잔을 줘도 멈출 생각을 안 하자 그는 이안을 보며 툴툴거렸다.
“소개해줄 사람이 에이전트였어? 난 진짜 라이를 소개해주는 줄 알았잖아.”
“실망하지 마요. 진짜 라이를 소개해주려고 부른 거거든요. 그렇죠, 닉?”
“네, 이렇게 인연이 된 거 라이와 관련해서 도움을 구하고 싶었거든요.”
닉까지 확답하자 프레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도움? 그건 라이가 마음에 들면 결정할 문제고. 그래서 언제쯤 오는데.”
이안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벌써 와 있는 걸요.”
“…와 있다고?”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숨어 있는 사람은 안 보였다.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시선은 소녀에게 꽂혔다.
진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프레드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 혹시 네가 라이니?”
이 물음에 소녀는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었다.
“전 라이가 아니라 ‘라’에요.”
“라..?”
이집트 태양신?
어리둥절한 프레드를 이안이 톡톡 두들겼다.
“제가 ‘이’고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그를 위해 이안은 레이첼과 어깨동무를 했다.
“우리 둘이 합쳐서 라이에요.”
순간 돌처럼 굳었던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안 네가 착각했나 본데 만우절은 어제였다고?”
“그래요. 만우절은 어제였죠.”
동의한 이안은 목을 살짝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I had a dream last night. We finally met~”
아까와는 다른 미성이 연습실에 울렸다. 못 알아들을 수가 없다. 조금 전에 들은 노래였으니까.
입을 떡 벌린 프레드는 귀를 후벼봤지만 들리는 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진짜 너희 둘이 라이라고?”
“네.”
“진짜?”
“진짜요.”
부정할 수 없는 확답에 프레드는 지금까지 이안 앞에서 라이에 대해 떠들었던 게 머리를 빠르게 스쳤다.
주마등처럼 떠오른 기억에 그는 몸을 돌렸다.
“으아아악!”
프레드가 연습실을 뛰쳐나가자 이안은 벙찐 얼굴로 나오미에게 물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 제이 옆자리를 파러 가나 보지. 제이가 외롭진 않겠네.”
글쎄, 제이가 싫어하지 않을까.
이날 프레드는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걸 뼈저리게 체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