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97)
집합
부끄러움은 중요한 감정이다.
도덕성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감정이니까. 잘못하고도 뻔뻔하게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사람이 발전하는 거지.’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쿠션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프레드는 그나마 낫다는 뜻이다.
“제이 옆자리로 가는 줄 알았더니 왜 돌아왔나 모르겠네.”
“좋은 삽이라도 하나 사줄까?”
“…닥쳐.”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다른 멤버들은 낄낄거리며 놀렸다.
소꿉친구 아니랄까 봐 짓궂은 놀림이 이어지자 레이첼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고 남자 셋을 한심하게 보던 나오미의 시선이 소녀에게 닿았다.
“그러니까 레이첼 그레이스라고 했지?”
“네, 그리고 아일라 씨의 딸이에요.”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팝스타다. 그녀의 딸이라니 놀라운 한편 이해가 갔다.
번뜩이는 재능과 함께 느껴진 탄탄하게 쌓인 작곡 지식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라이의 곡을 떠올리던 그녀는 닉에게 시선이 닿았다.
“아!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 뮤직비디오 주인공 맞죠? 추모곡이요.”
“아하하, 네 저 맞습니다. 절 위해 라이가 불러준 곡이죠.”
위튜브 조회수만 생각하면 라이의 대표곡이다. 당연히 스노우 레이크 멤버 전원이 그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바로 떠올리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영상에선 저런 복장이 아니었는데… 그때 충격이 너무 컸나.’
‘어쩐지 환자복 같은 옷을 입고 있더라니.’
닉을 안타깝게 바라본 나오미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때 그 곡은 이안이 쓴 거지? 라이가 둘이라니까 확실히 알겠네.”
“제가 쓴 곡이긴 하죠.”
이안의 대답에 맥스는 실실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 곡을 보며 평론가들이 뭐라고 했더라. 일부러 부족한 곡 구성을 통해 슬픔을 강조했다고 했나?”
“푸하하하, 평론가라는 인간들이 다 그렇지 뭐. 우리 팀의 방구석 평론가도 비슷하잖아. 프레드,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네 동료가 잔뜩 생길 테니까.”
“…닥치라고.”
전문성이 떨어진다. 조잡하게 결성된 밴드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평론가들과 사이가 나빴던 멤버들인 만큼 라이의 정체가 밝혀지면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지 벌써 기대가 됐어.
“일단 알겠어. 여기서 예쁜 소녀께서 라이의 곡을 만든 천재 작곡가시고 이안은 배우랑 가수 일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셨다. 뭐 그런 거 아니야.”
“양다리라뇨.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그럼 그냥 가수를 하시던가. 아무튼, 꼭꼭 숨긴 정체를 밝히면서 부탁하려는 게 뭐야. 그냥 프레드가 무덤 파는 걸 보고 싶었던 건 아닐 거 아니야.”
월터의 질문에 닉이 나섰다.
“이번 앨범을 들으셨으면 아시겠지만 타이틀 곡의 의미는 이제 정체를 밝힌다는 뜻입니다.”
“…어라. 그런 거였어?”
“생각해보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돌아온 반응에 혹시 의도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나 싶어 이안은 핸드폰을 꺼냈다.
오늘 발매된 앨범이지만 반응을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꺄아아악! 다들 타이틀 좀 들어봐! 다음 앨범에 라이가 정체를 밝힐 거 같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도로시의 SNS를 본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팬들은 확실히 무슨 의도로 쓴 곡인지 눈치챈 거 같다.
이안이 보여준 화면을 힐끔 본 닉은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다음 앨범을 기점으로 라이의 정체를 밝힐 생각입니다. 이때 도움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안의 일인데 당연히 도와줘야죠.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도 쿠션에 머리를 박고 있는 프레드까지.
라이에 대해 떠들 때 웃기만 한 게 괘씸해도 잊었던 제이와 인연을 알려준 고마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만장일치.
무슨 내용인지 듣지도 않고 나온 결과였다.
“그래서 뭘 도우면 됩니까?”
“라이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허무하게 밝히면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뭘 좀 아시는구만. 그래서요?”
“이번 연말에 콘서트 투어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LA 공연 때 라이를 게스트로 넣는 게 어떻습니까?”
어떤 게스트를 초청하는지는 콘서트의 성패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다.
거기에 라이를 넣어달라고?
“존나 좋은데? 이거 아무리 봐도 우리가 부탁해야 할 일 아니냐.”
“당연하지. 벌써 암표 값이 치솟을 게 뻔히 보인다.”
라이의 정체를 밝히는 콘서트라니 잘못하면 주객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얻는 성과에 비하면 걱정할 게 아니다.
그래서 의문이다.
“굳이 우리한테 부탁 안 해도 같은 Big Sound Records 소속 가수들 무대에 오르면 되잖아요. 오히려 그걸 바랐을 거 같은데.”
“중요한 일인데 비즈니스로만 접근하고 싶진 않거든요. 인연이 있는 사람하고 같이 하는 게 좋죠.”
이안의 대답에 멤버들은 환하게 웃었다.
“역시 이안이야. 뭘 좀 아는데.”
“이러니 좋아할 수밖에 없지. 괜히 프레드가 라이를 질투한 게 아니라니까. 결국은 헛짓거리긴 했지… 악! 깜짝이야.”
쿠션에 머리를 박고 있던 프레드 고개를 휙 들곤 비실비실 걸어갔다.
“쟤 또 어디가?”
“몰라. 진짜 제이 옆자리를 파러 가나.”
멤버들은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잠시 후 종이를 들고와 반성문을 쓰는 프레드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
Big Sound Records의 홍보와 프레드의 노이즈 마케팅 덕분에 라이의 3집은 많은 관심을 받으며 발매됐다.
이번 라이의 곡은 얼마나 괜찮을까 기대하던 팬들은 타이틀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나만 타이틀이 이상하게 해석되는 거 아니지?
└나도 곧 정체를 밝힌다고 하는 거 같은데.
└위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봐봐 확실하다니까?!
Ra-I의 채널에 올라온 타이틀 Promise의 뮤직비디오는 애니메이션이었다.
흑백으로 된 남성은 가사처럼 꿈에서까지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젠 당신을 만나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겠다는 가사처럼 밖으로 나가자 흑백 세상이 색으로 채워졌다.
특별한 애니메이션은 아니었으나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Promise에서 나오는 시계를 잘 봐봐. 0시에서 시작한 시계가 문밖으로 나갈 때는 4시를 가리키잖아.
└0시는 첫 싱글 앨범이고 4시는 4집 앨범이다?
└당연한 거 아니야? 괜히 저런 장면을 넣었겠냐고.
└누가 4집 나올 때까지 나 좀 재워줘라. 응?
└선생님, 선생님께선 10년 동안 혼수상태에 있으셨습니다.
└끼약! 닥쳐. 4집이 나오는 데 10년이 걸릴 리가 없잖아!
-나 너무 떨려. 드디어 라이를 볼 수 있게 되다니.
└엄청 못생겼을까 봐 심장이 떨리는 게 아니고?
└아니지. 괜히 나오겠다고 한 거겠냐. 성형이라도 했겠지.
└아오, 썅! 프레드인지 뭔지 그 인간 때문에 이상한 놈들이 또 왔네.
라이가 어떤 사람일지 누구보다 걱정과 기대를 안고 있는 사람이 팬들이다.
4집에 정체를 밝힌다니 기쁘면서도 불안한데 그걸 와서 쓱쓱 긁어대니 화가 날 수밖에.
남의 집 잔칫상을 엎으러 오는 분탕과 살벌한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였다.
아론은 코웃음을 치며 상황을 봤다.
“소년처럼 맑은 미성? 카스트라토도 아니고 무슨.”
카스트라토는 변성기 전에 거세한 가수를 말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라이의 미성을 놀린 아론은 SNS를 켰다.
“솔직히 노래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냉정하게 라이의 곡을 평가해보자는 프레드의 말을 떠올린 아론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라이? 그냥 유행만 좇아가는 평범한 가수 아니야? 그래도 이번엔 가상 악기가 아니라 세션을 불렀더라. 이게 프레드의 말이 맞았다는 증거지.
글을 올려놓은 지 얼마 안 돼서 밑에 글이 달렸다.
-유행을 잘 따라는 것도 능력이지. 설마 촌스러운 게 개성이라고 할 생각은 아니지?
날카로운 지적에 눈살을 찌푸린 아론은 상대가 누군지 봤다.
“도로시 브루스? 아역이네.”
애랑 싸워서 뭐하냐는 생각에 무시하며 글을 올리던 아론은 알림이 울리자 기쁜 얼굴을 했다.
SNS에 프레드가 새로운 글을 썼다는 알림이다.
과연 그가 이번엔 어떤 말로 라이를 평가했나 싶어 바로 SNS에 들어갔고.
-라이는 최고야!
“…어?”
다시 봐도 프레드의 계정이고 내용도 변하지 않았다.
“해킹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한 아론은 바로 프레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신호가 가고 통화가 연결됐다.
“프레드, 저 아론이에요. SNS가 해킹당한 거 같은데요. 방금 라이에 대해 올라왔…”
-너도 노래를 들어봤으면 알겠지? 라이는 최고야. 이렇게 좋은 앨범을 내다니 나는 팬이 된 거 같아. 너도 그렇지?
“네?”
-아무튼, 그렇게 됐어. 나 지금 바빠서 나중에 또 연락하자.
뚝!
이 말을 끝으로 프레드가 통화를 끊었다.
“…드디어 이 인간이 약을 했나.”
아론은 오랜 팬심이 시험대에 오르는 걸 느꼈다.
***
얼굴 없는 가수, 라이의 정체 공개가 임박했다.
언론도 덥석 물 수밖에 없는 재밌는 이야기였고 진실을 묻는 기자들에게 Big Sound Records는 짧은 답변을 건넸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사실상 확답이나 마찬가지였고 많은 언론에서 라이에 대해 기사를 썼다.
이슈가 될수록 곡에 관한 관심도 올라갔고 Promise는 메인 차트인 빌보드 핫 100에까지 올라갔다.
“좋아?”
“그럼.”
에반을 끌어안고 레이첼은 배시시 웃었다.
사람들이 많이 들었다고 겁먹었던 게 얼마 전 같은데 이젠 인기도 즐길 수 있게 됐다니.
그녀의 성장을 느낀 이안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아일라 씨에게 노래를 배우는 건 할만하고?”
“…말도 마. 작곡을 배울 때보다 더 심하다니까?”
아일라가 싱어송라이터라 해도 데뷔는 가수로 했다. 당연히 노래에 더 까다로울 수밖에.
얼마나 힘든지 불평을 내뱉으면서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흐뭇하게 웃던 이안의 귀로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반!”
소리치며 들어온 사람은 벤이었다.
에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간 그는 들고 온 걸 내밀었다.
“공룡이란다. 어때? 이 인형이 훨씬 멋지지 않니. 그러니까 인형을 바꾸자.”
“시러!”
“…이런 데미안 같으니라고.”
단호한 거절에 벤은 좌절하며 에반을 바라봤다.
귀여운 아이 품에 안겨 있는 애착 인형. 깃털을 활짝 펼친 인형의 형태는 끔찍했다.
“왜 하필 공작새 인형이냐고.”
좌절하는 벤을 보며 이안은 혀를 찼다.
“그러게 데미안하고 만나게 한 사람이 잘못했죠.”
“촬영 내내 붙어 다녀서 나도 모르게 방심했단 말이야. 설마 선물이라면서 말릴 틈도 없이 인형을 줄지 누가 알았냐고.”
방심은 뼈아팠다. 이제부터 평생 남을 에반의 사진은 공작새 인형과 함께라는 뜻이다.
끔찍한 상상에 몸서리친 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아이에게 물었다.
“에반, 정말 그 인형이 좋아?”
“공작 조아.”
“왜 좋을까? 다른 좋은 인형도 많잖아.”
이건 이안도 궁금했다. 공작새 인형이 귀엽게 생기긴 했어도 바로 애착인형이 될 정도는 아니다.
에반은 시선이 스르륵 돌리더니 이안과 눈을 마주치고 활짝 웃었다.
“이안은 공작새야. 반짝반짝여.”
앨범 준비하면서 귀가 망가졌나.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에반… 다시 말해볼래?”
“이안은 멋진 공작새이야!”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머릿속이 뒤엉킨 이안과 달리 벤은 폭소를 터트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흐하하하, 그래 이안이 반짝이며 멋있긴 하지. 공작처럼 말이야. 그치?!”
“응! 이안 좋아.”
“크크큭, 그래. 이안은 이제 공작새 2호로 불러야겠다.”
이 망할 인간이.
웃는 벤을 향해 소파에 있던 쿠션을 집어 던졌다. 얼굴을 맞고도 뭐가 좋은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괜히 버디물을 찍고 오라고 했어.’
데미안 같은 인간이 돼서 돌아오다니.
고개를 흔들던 이안은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안 군! 잘 지냈어요?
“아, 감독님. 잘 지냈죠. 한국은 어때요?”
-뭐 특별한 일이 있나요.
그랜드 라인의 감독인 준혁이었는데 시끄러운 사람들 목소리가 함께 들렸다.
“주변이 조금 시끄럽네요?”
-아직 확인 안 하셨구나. 칸이요! 칸 경쟁 부문으로 초청받았어요!
이안은 아차 싶었다.
칸 영화제까지 한 달 정도 남았고 슬슬 초청작들을 발표할 시간이었다.
‘라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네.’
그나저나 경쟁 부문이라니 대단했다.
“축하해요! 경쟁 부문은 힘들 줄 알았는데.”
-저희도 그럴 줄 알았죠. 운이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이안 군도 축하해요. 칸 출품작이 두 개나 되던데요.
“…두 개요?”
이안이 되묻자 준혁이 더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에일리언 헌터2요. 비경쟁 부문으로 초청받았던데요.
명망 있는 감독의 신작이나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초청받는 비경쟁 부문에 에일리언 헌터2가 초청받았다고?
출품 사실조차 전해 듣지 못한 이안의 고개를 돌렸다.
실실 웃고 있는 벤이 보였다.
“짜잔, 서프라이즈.”
“…이 망할 인간들이.”
벤에게 쿠션을 한 번 더 던진 이안은 순간 멈칫했다.
‘잠시만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에일리언 헌터의 감독인 게빈과 랜든은 물론이고 주연인 벤과 데미안도 참여할 게 뻔하다.
거기다가 그랜드 라인의 공동 제작사 대표인 필릭스도 참여할 테니.
“…아이작 감독님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하나.”
지금 라이니 공작새가 에반의 애착 인형이 됐다느니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칸에 이상한 사람들이 집합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