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98)
라스베이거스의 왕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칸은 수상 없이 초청만으로도 작품성을 인정받을 정도로 권위가 있다.
작년에 실패했던 경쟁 부문 진출을 그랜드 라인이 성공하면서 한국 언론이 시끄럽게 굴만했지만.
‘냉정하게 평가하면 수상은 힘들겠지.’
다른 영화제에 비해 보수적이라서 그랜드 라인처럼 SF가 들어간 장르 영화는 경쟁 부문에 초청도 잘 못 받는 편이다.
수상작이라고 해봤자 일반인에겐 낯선 경우가 수두룩한 것도 이 때문이고.
아무튼, 출연작 2개가 초청을 받으면서 칸 영화제 일정이 못 박힌 이안에게 익숙한 손님이 찾아왔다.
“허니! 나 없이 외롭지 않았어?!”
“안 외로웠는데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니까요.”
이안의 핀잔에 로티와 함께 온 중년 남성은 유쾌하게 웃었다.
“신경 쓸 거 없다. 샬럿이 말썽부리는 건 어릴 때부터 봐 왔으니까. 디자이너인 로렌조 안드레티라고 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칸에 입고 갈 정장을 위해 언더힐에서 특별히 보내준 디자이너였다.
패션 쪽을 잘 모르는 이안은 누군지 잘 몰랐지만 찾아보니 경력이 굉장히 화려한 디자이너였고.
벤이 진짜 언더힐에서 양자로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장난을 칠 정도로.
통성명한 로렌조는 이안을 위아래로 살폈다.
“5피트 9인치 정도 되겠네.”
175를 살짝 넘는 키.
이 대답에 샬럿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자주 안 만나니까 볼 때마다 불쑥불쑥 커진다니까. 로티, 제발 도와달라며 울먹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을까. 그땐 참 귀여웠는데.”
“로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하고 제발 나가줄래요?”
“꺄하하, 싫어. 그러게 몇 달 동안 누가 내버려 두래? 그리고 벤저민이 나보고 네 옷을 신경 쓰라고 했다고.”
…언제부터 오빠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로렌조가 줄자로 치수를 재기 시작하자 한 발자국 떨어진 샬럿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파파라치예요?”
“왜 졸졸 쫓아다니면서 사진이라도 찍어줄까? 같이 타블로이드지 1면을 장식하는 것도 재밌겠네.”
할리우드 아역을 파파라치 하는 전직 파티광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어지러운 조합이다. 샬럿은 눈웃음을 치며 키득키득 웃었다.
“농담이야. 이젠 그런 거로 기사에 오르면 집에서 쫓겨날걸.”
“알긴 알아서 다행이다. 네 오빠는 너 때문에 장가를 가는 것도 힘들 뻔했어.”
평범한 사람도 결혼할 때는 상대 가족을 보는데 보수적인 미국 상류층은 오죽하겠는가.
파티광으로 유명한 샬럿의 악명은 여러모로 악영향을 주기 충분했다.
로렌조의 지적에 그녀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건 벤저민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고요. 그보다 허니, 칸에서 그렇게 입고 다닐 생각은 아니지?”
“레드카펫이 아니면 편하게 입고 다녀도 되잖아요.”
“이럴 줄 알았다니까. 칸에 업계 관계자가 얼마나 많이 모이는 줄 알아? 전 세계에서 모이는 기자만 해도 얼마인데. 그냥 발에 챌 정도로 파파라치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해야 한다니까.”
일반인이 보기 힘든 영화제로 악명이 높은 만큼 기자, 초청 관계자, 영화 수입업자들은 그만큼 많았으니 그녀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가서 입을 옷을 맞춰서 보내줄 테니까 잘 모르겠으면 그대로 입고 다녀. 알겠지?”
“네.”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얄밉다는 듯이 샬럿은 이안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둘의 모습에 로렌조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지간히 이 소년이 마음에 들었구나? 네가 이렇게 남을 챙겨주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워낙 말썽꾸러기라서 그래요. 나보다 더한 거 같다니까요.”
“말이 심하네요. 아무리 그래도 로티와 비교하는 건 좀.”
“네가 한 일을 생각해봐.”
이마를 톡 치고 웃은 샬럿은 이안이 찍힌 사진을 흔들며 말했다.
“보내준 옷을 잘 입고 다녀야 한다? 언더힐에서 챙겨주는 배우가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는 꼴은 못 보거든.”
“이상한 옷을 보내줄 생각은 아니죠?”
“왜 호피 무늬 옷이라도 보내줄까 봐? 걱정 마. 줘도 안 입을 옷은 안 보내니까. 대신 잘 안 입고 다니면 칸까지 쫓아갈 줄 알아. 알겠어?”
세상에.
가뜩이나 칸에 함께 가는 사람들이 화려해서 문제인데 거기에 샬럿까지 합류한다고?
이안은 굳게 약속했다.
“꼭 제대로 입고 다닐게요.”
“너무 싫어하는 거 아니야? 기분 나쁜데. 한소리 하고 싶은데 네 옷을 챙기려면 바쁘니까 이만 가볼게. 다 하셨죠?”
“치수 재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벌써 다 했지.”
사실 바쁜 로렌조가 굳이 찾아올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조수나 보내면 그만이니까. 여기까지 온 건 궁금증 때문이다.
‘언더힐에서 노골적으로 챙겨주는 배우는 이 소년이 처음이니까.’
패션계에서 큰 지분을 가진 가문의 움직임이니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순수한 호감인지 아니면 아시아 시장을 노리기 위한 포석인지에 따라 결정할 부분도 꽤 다르고.
‘일단 전자로 보이는 거 같긴 한데.’
친한 남매처럼 행동하는 둘의 행동엔 계산적으로 보이는 사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온갖 인간군상을 보며 상처받았던 여자가 마음을 활짝 열 정도로라는 뜻이니까. 앞으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로렌조는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또 보자. 옷은 걱정하지 말고. 칸에 가기 전까지 확실하게 만들어서 보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허니, 또 봐!”
장난스럽게 손 키스를 하고 샬럿이 떠나자 이안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좋긴 하네.”
칸은 엄격한 드레스코드로 유명하다. 남성은 반드시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매야 하고 여성은 이브닝드레스에 하이힐을 신어야 했다.
레드카펫을 밟을 때 정장은 로렌조가 해결해줬고 그 외 시간 편하게 입을 옷은 샬럿이 정해준다니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저녁 옷 배달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이안? 내려와 볼래?!
당혹스러운 클로이의 부름에 1층으로 내려간 이안은 멈칫했다.
거실을 옷이 걸린 행거가 점령한 상태였다.
“전부 너한테 온 거라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아니?”
“잠시만요.”
매장을 통째로 뜯어온 듯한 숫자에 이안은 핸드폰을 들었고 방금 막 도착한 문자를 볼 수 있었다.
-어울리는 걸 고르다 보니 옷이 좀 많아졌네. 전부 허니 탓이야.
잘못한 건 알고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린 이안은 문자를 남겼다.
-달링, 당장 전화 안 받으면 진짜 혼날 줄 알아요.
잠시 후 전화로 호되게 혼난 샬럿은 투덜거리며 반품을 진행해야 했다.
***
칸 영화제는 다른 3대 영화제 중 가장 상업적인 영화제이기도 했다.
그만큼 영화 산업의 최강자인 할리우드와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고 매해 유명 스타들이 많이 찾아오는 행사였다.
한 마디로 이안이나 처음 가는 행사지 이번에 함께 가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영화제란 뜻이다.
“근데 왜 다들 나한테 연락을 할까요.”
진지한 이안의 고민에 아이작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글쎄다. 네가 구심점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제가요?”
-그래.
끔찍한 소리.
칸 일정이 다가올수록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는 5인방은 정신 사나울 정도다.
-이안! 네가 좀 어떻게 해봐. 너랑 같이 먼 곳을 갔다 온다니까 에반이 삐졌다고.
벤은 SOS를 보냈다면 데미안은 정신 나간 고민 상담이었다.
-안이랑 같이 칸 영화제에 참석하는 건 어때. 공작새도 정장을 입히면 허가해줄까?
되겠나.
영화제 관계자가 허락해줘도 벤과 함께 그 꼴은 철저하게 막을 생각이다.
유명 감독인 게빈과 랜든은 괜찮지 않냐고?
-이안, 이 망할 인간 좀 막아봐라. 칸에 초청받은 공포 영화를 같이 보자고 난리란다!
-할리우드 명감독의 용기 있는 도전! 멋지지 않나. 자네의 용기를 세상에 알리자고!
-개소리하지 말고 내 사무실에서 꺼지게나! 영화 편집도 끝났는데 왜 계속 찾아와?!
-친구끼리 섭섭한 말을 하기는. 혹시 아나. 이번 영화가 잘 되면 3까지 찍을지.
-안 해! 이젠 절대로 안 할 거라네!
전화로 여전히 돈독한 우정을 자랑했다.
마지막인 필릭스? 누가 미식의 나라 프랑스로 가는 거 아닐까 봐 낯선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은밀한 제안을 틈날 때마다 했고.
‘칸, 이대로 괜찮나.’
진지하게 걱정하게 만드는 5인방인데 그 구심점이 자신이라니. 이안은 질색하며 말했다.
“농담이시죠?”
-농담이라니. 그 전부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누구니?
“…저죠?”
-그렇지?
평범하게 작품 활동한 것밖에 없는데 어쩌다 주변에 개성 넘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였을까.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독특하긴 해도 큰 말썽은 안 피우니 다행이지. 안 그러니?
“…저랑 같이 영화제에 가실래요?”
-아쉽지만 요즘 네이선을 도와주고 있어서 말이다. 손자가 나랑 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잖니.
아이작이 있으면 든든할 거 같은데 바쁘다면 어쩔 수 없다.
‘그나저나 진짜 진지하게 감독을 준비하나 보네.’
쿠퍼의 일 때문에 영화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네이선이 감독이 될 준비를 계속하고 있다니 변화가 실감 났다.
아이작과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이안은 통화를 종료하고 이번 칸 영화제 출품작을 봤다.
“변화라. 칸에서도 확실히 보이긴 해.”
칸에 출품됐던 모든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눈에 익숙한 영화는 많았다. 포스터와 줄거리만 봐도 기억이 새록새록 났고.
그만큼 배우가 달라지고, 기본 줄거리가 묘하게 바뀐 걸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실제 영화를 보면 자잘한 변화는 더 많겠지.’
더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망하기도 할 거다.
아니, 차라리 제작이라도 했으면 다행이지. 이 단계까지도 못 가고 사라지는 영화도 많을 거다.
이안은 요즘 가장 고민하는 게 이 부분이었다.
“제작이라.”
벤이 가볍게 말한 일이지만 고민이 깊어질수록 흥미가 생기긴 했다.
하다못해 괜찮은 작품에 투자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당장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 고민을 떨쳐 낸 이안은 평소처럼 대본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정신없이 빠져들 때 벨소리가 울렸다.
“오스틴, 어쩐 일이에요?”
-혹시 바쁜데 전화했습니까?
“아뇨, 평소랑 똑같이 대본이나 읽고 있었죠.”
어차피 일정이 빈 걸 알고 전화했을 테니 의례적인 인사일 뿐이다.
-다행입니다. 저번에 보내준 대본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좀 별로였어요.”
굳이 오디션을 볼 필요도 못 느꼈달까.
‘그냥 찔러보는 식의 작품들이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느낌이 들어서 더 별로였다. 대본을 준 오스틴도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했고.
“왜요. 새로운 작품이라도 들어왔어요?”
-들어온 건 맞는데. 새로운 작품이라고 말하긴 애매하군요. 정식 출연 요청을 한 작품이 invisible children이니 말이죠.
과거로 돌아온 이안이 배우로 처음 참여했고 에미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한 작품.
종종 연락을 주고받은 만큼 놀랍다기보단 올 게 왔다는 느낌이다.
“지금이 시즌5였나요?”
-네, 올해 시즌6를 방영할 예정이죠.
새삼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차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는 뜻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요즘 분위기가 안 좋습니다. 처음 같은 재미를 주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더군요.
“그건 대부분 드라마가 그렇잖아요. 시간이 갈수록 이름값으로 보는 거죠.”
-그래도 제작자라면 위기감을 느낄 법합니다. 지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훌륭한 처방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테고요.
“그게 노아고요?”
이안은 테이블에 놓인 대본을 톡톡 두들기며 고민했다.
노아가 빠지고 재미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건 들었다. 손익을 계산하며 물었다.
“오스틴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일단 만나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손해 볼 건 없잖습니까.
“좋아요. 한 번 만나볼게요.”
invisible children 제작진의 반응은 빨랐다.
오스틴의 연락을 받고 바로 약속이 잡혔으니 말이다.
***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이안은 반가운 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쇼러너인 케이틀린과 캐스팅 디렉터 역할을 했던 아델리아였다.
“오랜만이야! 많이 컸구나.”
“둘 다 오랜만입니다.”
“칸에 작품이 초청됐다며. 축하한단다. 너무 급하게 부른 건 아니지?”
“괜찮아요. 빨리 만나면 저야 좋죠.”
미래에서 잠시나마 연인이었던 아델리아는 물론이고 촬영 내내 신경 써준 케이틀린과도 좋은 기억만 남아 있었다.
까다롭게 굴 이유가 없고 이안은 자리에 앉아 물었다.
“제가 드라마에 출연하길 바란다고요?”
“몇 번 이야기는 했잖니. 시즌 7에서 정식으로 나왔으면 좋겠어. 6에선 시즌 마지막에 얼굴을 비추는 형태로 나오고.”
“한 시즌만 나오면 되나요?”
“그래, 네가 그걸 바랐으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대신 노아의 마지막인 만큼 강렬하게 나왔으면 좋겠단다.”
강렬한 인상이라.
이전에 쇼러너에게 건넨 의견이 받아졌다는 걸 알겠다.
“노아가 악역으로 나오는군요.”
“그래, 완전한 악역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이지. 시즌2에서 노아 혼자 라스베이거스에 남잖니.”
“그랬죠.”
“시즌7에선 라스베이거스의 왕이 된 노아가 나올 예정이야.”
라스베이거스의 왕.
invisible children의 팬들이 경악할 재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