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99)
칸 영화제
타락 전개는 많은 이목을 끌 정도로 극적이다. 그만큼 동서고금 막론하고 자주 쓰이는 전개고.
당장 성경만 봐도 배신의 아이콘인 유다를 비롯해 타락하는 많은 사람이 등장하잖는가.
‘중요한 건 개연성이지.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뜬금없이 변하면 캐릭터 붕괴니까.’
하지만 노아는 괜찮았다.
“노아는 원래 어른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줬잖아. 악역이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봐. 악역으로 재등장할 걸 생각하면서 시즌2를 찍었지?”
“글쎄요. 대본대로 한 걸요.”
이안이 장난스럽게 웃자 케이틀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대본을 읽는 게 끝이면 캐릭터 분석은 왜 있겠는가. 대본이 같아도 캐릭터는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근데 가끔 노아가 무섭지 않냐? 아무리 적이라지만 가차 없달까.
└왜? 오히려 시원하고 좋은데.
└작은 노아를 건드리면 다 죽는 거야.
괜히 시즌2가 방영될 때 이런 반응이 올라온 게 아니다.
“이렇게 됐으니 노아를 끝까지 책임져줄래? 그리고 괜히 악역을 하고 싶어 한 게 아니잖아. 들어오는 배역 때문이지?”
“그렇죠.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동양인 편견에 딱 맞잖아요.”
“사고 안 치고 공부 잘 한다는 편견에 딱 맞긴 하지.”
이안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벤이나 샬럿 같은 사람이야 ‘사고를 안 친다고?’라며 헛웃음을 치겠지만 외부에 보이는 이미지는 이랬다.
같은 아역을 구하기 위해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부터 시작해서 스태프 입을 타고 미담만 전해지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캐스팅 소문이 빠삭한 아델리아도 동의하며 말을 이었다.
“네게 제안이 갔다는 역할들은 나도 봤는데 딱 전형적인 동양인 캐릭터가 대부분이더라. 잘 거절했어. 작품 하나가 아쉬운 단계는 넘었잖아.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도 생각해야지.”
흐뭇하게 웃는 모습이 잘 큰 동생을 보는 듯해서 기분이 묘해진 이안은 말을 돌렸다.
“아무튼, 악역같이 이미지 변신을 줄 만한 캐릭터가 필요하긴 했어요.”
“잘됐네. 대우는 섭섭하지 않도록 할게. 우리도 시즌7은 승부수거든. 성공 여부에 따라 시리즈 수명이 달라질 테니 그만큼 제작비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야. 방송국도 긍정적이고.”
“오, 그건 반가운 소식이네요.”
많은 제작비가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작품의 질은 높일 수 있다. 작품 홍보할 때 제작비를 괜히 거론하는 게 아니다.
긍정적인 대답에 아델리아가 수첩을 꺼냈다.
“출연료야 에이전시랑 이야기를 나눠볼 문제고. 다른 쪽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아. 어느 정도까지 파격적으로 나올 생각이야?”
“아, 시즌7 촬영 때면 16살이죠.”
“그래, 어느 정도 자유가 생길 때잖아. 미성년자니 과한 장면은 안 넣을 거지만 혹시 상의 노출이나 여자와 스킨쉽 장면에 거부감이 있니?”
어느 정도 수위까지 가능한가. 워낙 미국 드라마에서 선정적인 장면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지만.
‘나한테 이런 걸 묻다니 기분이 묘하긴 하네.’
미녀와 야수를 찍는 것도 아니고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이런 요구를 받은 적이 없었다.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상관없어요.”
“다행이네. 연애도 안 하는 거 같아서 거부감 있으면 어떡하나 했거든. 그래도 기회가 되면 연애는 해봐. 연기에 도움이 될 테니까.”
아무리 기억이 없다고 해도 전 애인에게 이런 조언을 듣다니 확실히 다른 관계가 됐다는 걸 새삼 깨닫게 했다.
잠시 침묵에 빠진 이안의 행동을 오해했는지 케이틀린이 끼어들었다.
“이안인데 어련히 잘 하겠지. 시즌7에선 노아도 성인이니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 확인해보려는 거야. 대본을 보고 장면을 거절해도 되니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야 할 점은 이게 끝인가요?”
“그래. 나머지는 에이전시랑 먼저 이야기를 나눠야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잘 돌아왔어. 환영할게.”
“고향에 방문한 느낌이긴 하네요. 한 시즌뿐이지만 잘 부탁해요.”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보자고. 이번엔 후보가 아니라 수상까지 노려봐야지.”
에미상 남우조연상.
벌써 그 이름을 꺼내는 건 섣불렀지만.
“꿈이 커서 나쁠 건 없죠?”
이안은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
“짐 준비는 끝났지? 또 옷 대신 대본으로 채웠기만 해봐.”
벤의 지적에 이안은 콧방귀를 뀌며 큰 여행 가방 두 개를 보여줬다.
“하,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요. 봐봐요.”
“웬일로 네가 옷을 잘 챙겨놨냐. 비행기 타기 전에 옷가게라도 들려야 하나 했더니.”
“별거 아니죠.”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이안은 침대 밑에 삐져나온 대본 더미를 발로 쓱 밀었다.
어젯밤 샬럿의 협박 전화에 빼낸 물건이다. 벤이 수상함을 느끼기 전에 이안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러는 벤은 또 가족사진을 잔뜩 들고 가는 건 아니죠?”
“이번에는 하나만 들고 가거든.”
“어쩐 일로요?”
진짜 의외다.
벤이라면 고작 하나로 만족할 사람이 아닌데.
“당연하지. 작년 칸 소식 못 들었어? 장난 아니었잖아.”
“알긴 알죠. 그렇게 떠들썩했는데.”
작년 칸 영화제는 화려했다.
생방송 중인 행사장에 공포탄을 쏘는 괴한이 나타나지 않나.
호텔에 침입한 도둑이 금고를 뜯어 협찬을 위해 가져온 보석을 훔쳐간 걸 시작으로 절도 사건이 여러 건 발생했고 급기야 파티장에서 수십억짜리 목걸이까지 사라졌다.
전부 같은 해에 벌어졌다고 믿기 힘든 사건들의 연속이고 영화제를 먹칠하긴 충분했다.
“근데 그게 사진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강도가 들어서 사진을 가져가면 어떡하냐. 불안해서 가져갈 수가 있어야지.”
역시 ‘이 인간이 제정신인가.’ 싶으면 벤이 맞다.
더 상대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이안은 짐을 챙기고 그를 툭 쳤다.
“헛소리 말고 짐이나 내려줘요.”
“알겠다고.”
구시렁거린 벤은 짐을 챙겨 1층으로 내려갔고 이안의 부모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안은 잘 챙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올게요.”
걱정하는 부모님과 포옹으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이안은 밖으로 나왔고 찌푸린 얼굴과 마주했다.
“꼬맹이,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안 늦었잖아요. 그보다 굳이 브레이커가 따라올 필요 있어요? 칸이면 별로 위험하지도 않을 텐데.”
다른 경호원들에게 짐을 옮기게 한 그는 시큰둥한 얼굴로 답했다.
“작년을 보니까 안전해 보이지도 않더만. 그리고 너 하나 경호하는 일이면 나도 안 왔어, 인마.”
이안 덕분에 5인방 경호까지 스컬 택틱스가 맡게 됐다.
주목받는 아역인 이안의 이름값이 가장 떨어질 정도로 유명한 이들이니 브레이커까지 나설만했다.
“총은 안 되는 거 알죠?”
“알아.”
“칼이랑 도끼도요.”
“내가 무슨 살인마냐. 알아서 할 테니까. 시끄럽게 하지 말고 차나 타!”
작게 웃음을 터트린 이안은 차에 올라타 공항으로 향했다.
언더힐에서 내준 전용기 덕분에 나중에 합류하는 필릭스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다 같이 움직일 수 있게 됐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공항에 도착한 상태였다.
“꼴찌네. 또 벤이 문제겠지.”
“진짜 지긋지긋하다. 이놈의 공작새는 촬영장도 부족해서 영화제까지 같이 다녀야 하나.”
만나자마자 반갑게 인사하는 둘의 모습을 무시한 이안은 두 감독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두 분 다 잘 지내셨어요?”
“나야 그럭저럭 잘 지냈단다. 랜든, 이 친구야 보다시피 엄청 잘 지내고.”
“못 지낼 게 뭐 있겠어. 그보다 이안.”
“네?”
고개를 숙인 랜든이 속삭이는 말에 이안은 깜짝 놀랐다.
“invisible children 촬영에 또 들어간다며?”
“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결정된 지 얼마 안 된 일이다. 배우는 물론이고 스태프조차 극히 일부만 아는 사실일 텐데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유쾌하게 웃은 그가 답했다.
“나한테 조언을 구해서 말이야. 덕분에 알았지.”
“아.”
랜든은 크리쳐물로 유명한 감독이다. 처음 만난 장소도 invisible children 촬영장이고.
생각해보니 엄청 놀랄 일은 아니었다.
둘의 대화에 게빈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둘이 뭘 그렇게 속닥거려?”
“왜 궁금하나? 그럼 나랑 영화 한 편 같이 보는 게 어떤가. 아직 대외비라 쉽게 알려주면 안 될 일이거든.”
“됐다네. 필요 없어!”
“딱 한 편만 같이 보세나, 이 친구야. 여기 포스터도 가져왔다네.”
“저리 안 치워?!”
몇 주 동안 포기도 안 하고 질기게 제안하는 랜든이나 이를 꽉 깨물고 거절하는 게빈이나 둘 다 참 대단했다.
10년 뒤에도 저렇게 싸우고 있지 않을까?
비행기에 올라탄 이안은 잠시 잊고 있던 걸 물었다.
“근데 우리 숙소는 어떻게 돼요?”
아직 미성년자라서 보호자가 필요한 만큼 벤이 알아서 한다는 말만 들었다.
그걸 이제야 묻냐는 듯이 한숨을 내쉰 그가 답했다.
“원래는 나랑 같이 숙소를 잡으려고 했거든?”
“그런데요.”
“내가 벤을 어떻게 믿고 혼자 맡기냐고 막았어.”
끼어든 데미안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셋이서 같은 방을 쓰겠네요?”
“아니.”
아니라고?
의아해하자 어깨에 따뜻한 손이 올라왔다.
“촬영할 때 같이 한동안 같이 지내봐서 알잖니. 저 둘에게 어떻게 널 맡기겠어. 나도 같이 지낼 거란다. 문제는…”
“하하하, 이렇게 재밌게 모여서 지낸다는데 내가 빠지면 섭섭하지 않니. 그래서 나도 같이 지낸다고 했지.”
랜든의 대답에 이안은 순간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뉴욕에서 촬영하며 넷이 지냈을 때도 정신없었는데 거기에 랜든까지 추가된다고?
“지금이라도 방을 바꿔도 될까요?”
“이미 늦었어. 이제 와서 방을 구하기도 힘들걸. 노숙이라도 하려고?”
하, 사람을 어떻게 보고.
“당연히 노숙이 좋죠. 박스 하나만 구해줄래요? 잘 지낼 자신 있거든요.”
물론 당연히 거절됐고 룸메이트를 태운 비행기는 프랑스로 향했다.
***
칸 영화제는 철저하게 급이 정해져 있다.
당신이 누군지는 배지가 결정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수천 명이 넘는 취재진은 배지로 등급이 나뉜다.
프리패스인 화이트는 상영 직전 도착해도 길게 줄을 선 다른 배지의 기자를 제치고 가장 먼저 입장할 수 있다.
가장 낮은 옐로우 배지는 뙤약볕에서 계속 기다려도 입장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과 대비된다.
‘급 나누기는 초청받은 감독이나 배우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같은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감독이나 배우도 급에 따라 배정받는 숙소가 달라지니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이안의 숙소는 조금 급이 떨어지는 곳을 받는 게 맞다.
큰 수상경력이 없는 건 물론이고 주연 경력조차 없는 배우였으니까.
“내가 영화제를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이런 경우는 진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마찬가지야.”
운영진은 배정된 숙소 명단을 확인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칸 영화제를 운영하면서 별의별 사람을 다 경험하지만 이런 요청은 처음이었다.
“다 같이 한 곳에서 지낸다고 한 거 맞지?”
“혹시 몰라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잖아.”
연인인 관계도 아니고 독방을 요구해도 괜찮을 사람들이 한방에서 지낸다고 하니 당혹스러웠다.
“어쩌겠어. 아역이 걱정돼서 다 같이 지내겠다는데. 이미 허락도 했고 그래서 좋은 숙소로 내줬잖아.”
“그건 알지만 신기하잖아.”
보모 역할은 다 귀찮아 할만한데 이쪽은 알아서 자처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도대체 얘가 뭔데 이렇게까지 하나.’
아역치곤 유명하다지만 칸은 세계 최고의 영화제고 유명하고 잘난 사람이야 수두룩하다.
영화계라는 큰 틀에서 보면 크게 놀라운 존재도 아닌데 이렇게 챙기니 이안의 이름이 영화제 관계자 머릿속에 깊게 남을 수밖에.
물론 그 좋은 숙소에 함께 배정받은 당사자는.
“악! 당장 안 치워요?”
“왜! 널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라고. 내 비서가 훌륭한 수제 인형 장인을 얼마나 힘들게 찾았는데.”
“비서 좀 그만 괴롭히라고, 이 인간아.”
이안은 사람만 한 공작새 인형을 던졌다. 잘도 가져 왔다 싶을 정도로 큰 인형이다.
쫀득거리는 촉감의 인형은 데미안의 얼굴에 폭 들어갔고 인형을 받은 그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 인형이 얼마나 대단한 줄 알아?”
아래쪽에 있는 지퍼를 스르륵 열자 작은 공작새 인형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열심히 쑤셔 넣었는지 바닥에 인형이 잔뜩 깔렸고 데미안은 문틀에 기대 부드럽게 웃었다.
“이 모든 걸 널 위해 준비했어, 아기 공작새.”
“당장 다 가지고 나가!”
매섭게 던져진 공작새 인형을 맞으며 데미안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고 소란에 짐을 풀고 나온 벤은 질색했다.
“왁! 이게 다 뭐야?!”
“데미안이 또 정신 나간 짓을 했죠. 봉지나 가져와요. 싹 다 담게.”
진짜 이 많은 인형이 어떻게 저 인형에서 다 나왔는지 모르겠다.
‘마술인가?’
이딴 마술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이안은 큰 봉투에 인형을 전부 담아 데미안에게 쥐여줬다.
“알아서 다 버리고 와요!”
“아니, 잠시만!”
“잠시만이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그거 들고 들어올 생각하지 마요!”
데미안을 내쫓은 이안은 땀을 닦으며 랜든의 방문 앞에 있는 게빈을 봤다.
“감독님은 뭐 하세요?”
“이 녀석 방은 봉인해야 해. 괴상한 인형하고 포스터를 잔뜩 가져왔다고.”
방문에 십자가를 걸고 성수를 뿌리는 게빈의 모습에 이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영화제는 시작도 안 했는데 피곤했다.
그날 거리에서 공작새 인형을 나눠주는 데미안의 모습이 신문에 나왔다.
칸 영화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