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ier Lord - The reincarnation of a phantom demon RAW novel - Chapter 1
1. 그룬힐트 자작령에서 (1)
소년의 표정은 겉으로 판단하기에 모호했다. 기분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기가 참 애매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눈치를 보다가 달리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제가 꼭 가야 해요?”
소년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주 중요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소년이 질문을 던지자 문으로 향하던 어머니가 돌아서서 소년 앞에 앉았다. 궁금한 것을 답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엄마는 네가 갔으면 하는데, 왜 싫어?”
이반에게 그룬힐트 자작가의 차남이라는 위치는 참으로 애매한 자리였다. 형인 레이 그룬힐트와 작위를 승계하기 위한 경쟁을 치러야 함을 의미했다. 보통 장남과 차남이 경쟁하여 차남이 승리하는 경우는 넷에 하나 정도도 되지 못했다. 바보만 아니라면 장남이 훨씬 유리했다. 그런 희박한 가능성 대신에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었다.
“알다시피 네 외가에는 후손이 아무도 없어. 방계는 있지만 말이야. 나와 네 외삼촌이 유일한데 외삼촌은 3년 전에 돌아가셨고 애가 하나도 없지. 네 외할아버지가 너나 헨리를 엔리케 가문의 양자로 보냈으면 하신다. 돌아가신 외삼촌의 양자로.”
로엔 그룬힐트 자작은 부인인 세레나와의 사이에 총 넷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첫째가 레이, 둘째가 이반, 셋째가 딸인 로위나, 넷째가 헨리였다. 레이는 열다섯 살, 이반은 열두 살, 로위나는 열 살, 헨리는 여덟 살에 불과했다.
“외가가 남작가여서 싫은 거야? 아니면 북방의 오지여서 싫은 거야? 하지만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영지 크기는 우리 그룬힐트 자작령에 비해서도 훨씬 크단다. 북쪽으로 확장하면 열 배, 백 배도 가능하지. 단지 사람이 조금 적고 몬스터가 많지만.”
열두 살의 이반은 자신이 가지 않으면 동생인 헨리가 가야 함을 알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거기에 간다고 하면 평생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3년 전에 외삼촌마저 몬스터 웨이브를 막다가 전사했다.
“알았어요. 가야죠.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겠죠?”
“오려면 올 수도 있겠지만 자주 오기는 그렇겠지. 여기서 거기까지 2천km는 떨어져 있으니.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도 여기서 헬포트 백작령까지 가야하고 거기서는 벨라 백작령으로 가야 하는데 둘 다 무려 300km 거리는 되고.”
소년의 눈은 벽에 걸려있는 지도로 향했다. 어린 이반은 유독 지도에 관심이 많았다. 단순히 지도에 관심이 많은 것보다 사실은 유클라드 왕국이나 이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왕국이 참 넓어요. 그룬힐트 영지는 왕도 유카리스 북쪽에서 1천km 북쪽에 있는데 북쪽 변경도 그만큼 가야 하니 말이에요. 엔리케 남작령은 10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최북단 영지이고요.”
“그래도 그사이에 데크리안 요새와 동해안의 펠리시안 요새를 건립하고 확장을 했단다. 내가 시집오기 전까지만 해도 남작령의 중심인 로컨 하나만 있었어. 론도나 해안가의 볼리비오도 있지만 거긴 작은 곳이고.”
친정에 관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세레나가 발전하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물론 그렇게 확장하기 위해서 엔리케 남작령의 사람들이 그만큼 희생하기도 했다. 해안가의 펠리시안 요새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영주 노릇을 하던 외삼촌이 전사하기도 했다.
“외할아버지도 이제 쉰다섯인데 제가 가야겠죠?”
평균수명이 50이 갓 넘는 수준인 세계에서 쉰다섯이라면 할아버지였다. 앞으로 10년 정도 살면 오래 사는 것이었다. 재수가 없으면 도착하자마자 영지를 이어받을 수도 있었다.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나이 마흔이면 손자, 손녀를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조혼 풍조는 귀족이나 평민이나 차이가 없었다. 나이 60이면 증손자를 보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기에 언제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실지 몰랐다. 하루라도 빨리 가서 영지의 사람들과 안면을 익히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 사실 외삼촌이 돌아가신 3년 전에 이야기가 나왔지만, 선뜻 말하기 그랬어. 알다시피 거기는 언제 몬스터 웨이브가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고.”
그런 곳에 어린아이를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외할아버지가 직접 요청했다고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데려갈 생각인 것 같았다.
“갈게요. 가야겠죠? 3년 전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요.”
이반은 답답한 그룬힐트 영지보다 변경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변경이 아닌 일반 영지도 산에는 여전히 많은 몬스터가 있어 매년 사냥하지만, 변경보다는 약했다. 이반은 수업을 듣는 것이 지루하면서도 한편으로 이 세상을 알 수 있게 해주기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예법에 대해 배우는 것은 짜증이 났다. 그나마 최근에는 법에 대하여 배우고 있었다.
“우리 유칼라드 왕국은 크게 두 가지 법이 있습니다. 일명 귀족법과 영지 법이라고 합니다.”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은 4남매의 교육을 위해 수도에서 초빙한 페라도 잔센이라는 몰락 귀족이었다. 4남매 모두 배우는 수준이 다르기에 하루에 오전 오후 두 타임씩 이틀에 걸쳐 한 번씩 수업했다.
“두 가지 법의 정식 명칭은 왕족, 귀족의 신분 보장에 관한 협약과 영지 운영 및 세금의 징수에 관한 일반 협약이라는 명칭이 있지만, 그냥 귀족법, 영지 법이라고 칭합니다. 이후에 제정된 모든 법령은 이 두 가지 협약을 보완하거나 실제 적용하기 위한 세부적인 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설명을 하면서 유칼라드 왕국이 천 년 전에 성립할 때의 배경에 대하여 설명했다. 유칼라드 왕국은 유칼라드라는 곳의 대공령이 되었다가 주변의 부족들을 복속하고 회유하면서 마침내 왕국이 되었다는 설명을 했다.
“왕국이 처음 성립할 때의 작위는 국왕과 백작, 자작, 남작만 있었습니다. 물론 귀족마다 휘하에 기사를 두었는데 왕의 기사를 로열나이트라 하여 100명을 두었습니다.”
“영지를 가진 계승 귀족이 작위를 이어받으면 영지의 등급에 따라 백작부터 자작, 남작의 작위를 받겠군요.”
“그렇습니다. 대신 후작이나 공작 같은 높은 작위는 남작이거나 심지어 평민이어도 공이 크면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위는 계승이 되지 않고 당대에 한합니다.”
“단승작위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8백여 년 전에 후작과 공작, 대공에 관한 내용이 일부 추가가 되었고 백작의 경우 휘하에 자작과 남작의 작위를 수여할 수 있도록 변경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왕과 대공,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일곱 등급의 귀족 신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면 기사나 준 남작은 신분이 아닙니까?”
“신분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신분이라고 하기도 애매하여 그저 준 귀족이라고 칭합니다. 하지만 귀족이라고 하여 그런 직책을 갖지 않는 것도 아니고 평민이라고 하여 그런 직책이 되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현직에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주어지는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준 남작은 행정관에게 주어지는 작위이고 기사는 무관에게 주어지는 직책이라고 설명했다. 귀족마다 임명할 수 있는 준 남작과 기사의 숫자는 제한이 되어 있고 임명권자가 서임을 취소하면 사라지는 신분이었다.
“하지만 물러난 후에도 관례로 기존의 직급으로 불리면서 이제는 하나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귀족에 따르는 신분, 준 귀족이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내용은 역사와 함께 배우게 되기에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영지와 세금에 관한 내용은 더욱 복잡했다. 영지 법이라고 하지만 세부적인 것으로 들어가면 행정부터 군사까지 다양했다.
“초기에 영지는 산과 강을 경계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도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경계를 정할 때는 강의 하류만 고려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류 지역까지 영역을 넓히다 보면 지류와 본류가 있는데 둘의 구분이 애매한 경우에 그 사이에 있는 지역을 놓고 분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문구를 정할 때와 분쟁을 벌이는 시점은 최소 몇십 년에서 몇백 년이 되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합니까?”
“그럴 때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선점법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먼저 분쟁지역에 진출했는지 따져봅니다. 그 외에 평원법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접근하기 쉬운지 따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따지기가 불가능하면 결국은 전쟁으로 해결을 합니다. 그래서 영지 전에 관한 규정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이해하려면 유칼라드 왕국의 역사까지 알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이라는 것은 보통 분쟁이 생겨야 그런 경우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산을 경계로 삼을 때에는 보통 유역 법을 채택합니다. 능선을 경계로 삼아 물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살펴 물이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경계를 정합니다. 보통 산이 상당히 높은 상황에 해당이 됩니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나마 분쟁이 덜하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분쟁이 아예 없지도 않습니다. 분쟁이 종종 발생하는데 산사태가 발생하여 유역이 급변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이 됩니다. 200년 전에 데니스 백작령과 에르나 자작령의 분쟁이 그런 케이스입니다.”
“들어본 것 같습니다. 지진으로 협곡이 붕괴하고 강줄기마저 바뀌었죠? 호수도 크게 생기고요.”
“그렇습니다. 이 캐빈 협곡이 무너진 이후에 발생한 유역변경으로 인해 협곡 안쪽 분지 지형인 안데나 지역이 에르나 자작령의 영역으로 변한 사건으로 인해 논란이 되었는데 결국은 왕국과 귀족원의 중재로 안데나 지역은 데니스 백작령에 그대로 귀속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작위가 높은 귀족의 편을 들었다고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캐빈 협곡이 막혔는데도 그 험한 길을 넘어 다녀야 하는 상황이고요.”
에르나 자작령에서 불만을 품고 안데나 지역의 사람들이 영지를 통하여 이동하는 것은 금지했다. 결국은 안데나 지역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 되고 말았다. 한때 3만 이상이 살던 지역이 지금은 1천여 명도 살지 않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가정교사인 페라도 잔센은 수업이 끝난 후에 평소처럼 로엔 자작을 방문하여 그날의 교육상황을 보고했다. 그것은 그가 영지에 교사로 온 이후 꾸준히 하는 일이었다.
“레이 공자님은 지루한지 조금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반면에 이반 공자님은 열성적으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페라도 잔센은 대 공자인 레이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를 하면서 이반에 대하여는 칭찬을 했다. 그런 보고는 1년 전부터 이루어지는 일이라 로엔 그룬힐트 자작은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귀족들 대부분 적당한 수준의 교양을 갖추면 검술에 중점을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쉽지만 이반은 엔리케 영지로 갈 예정이니 앞으로 굳이 수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기 전까지 편하게 지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굳이 제가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총명한 분이니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페라도 잔센은 아쉬워했지만 이미 충분할 정도로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보증을 했다. 그런 보고에 로엔 자작은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는데 어딘지 모르게 장남인 레이가 부족해 보였다. 거기다 조만간 처가에 양자로 가야 하는 상황이니 더 아쉬웠다.
이반은 형인 레이를 보았다. 친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 거리를 두는 이반 때문에 서먹서먹한 관계였다. 레이가 그 나이 또래의 아이처럼 즉흥적이라면 이반은 답답할 정도로 이성적이었다. 그렇기에 레이는 이반을 만날 때마다 편하지 않았다.
동생이라면 편하게 장난치고 가끔은 괴롭히고 그러는 것이 보통인데 이반은 그런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타당하지 않으면 끝까지 대들었고 어떻게든 사과를 받아내고 말았다. 그러니 레이도 동생에게 뭔가 하기 전에 생각부터 했다.
“외가에 가기로 했다고 들었어. 진짜로 갈 거야?”
레이는 이반이 엔리케 영지로 간다고 한 사실을 듣자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서운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이 동생이 이반과 항상 비교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장남이기에 작위 계승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이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었다. 이반은 그가 함부로 하기에는 만만치가 않았고 몇 년 전부터 위축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지도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