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ier Lord - The reincarnation of a phantom demon RAW novel - Chapter 137
24. 결혼식과 냉해 (7)
하지만 페레우스는 움푹 들어간 프레드릭 만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에 에스테반으로 가는 직선항로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어 기항을 하게 되면 수백 km는 돌아가야 했고 항구에 기항하려면 이틀의 시간이 더 소요될 수가 있었다.
“그 부분은 제가 바로 말씀을 드리기 곤란할 것 같습니다. 영지와 마탑, 상단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라 경제성을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페레우스에 기항하는 문제는 검토를 했지만 기각이 된 안건이었다. 먼저 기항을 요청할 경우 프레드릭 영지에서 거부를 할 수도 있고 설사 승인을 하더라도 운송할 물품이 별로 없었다. 이반의 대답에 로델 자작도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툭 던져보는 것이지 진짜로 기항을 하라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여간 남 잘 되는 꼴을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는 심보이군. 거기로 돌아가면 완전 망하는 일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듀안의 권유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글로셜이 오는데 우리 프레드릭 영지는 곡물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걱정입니다. 전쟁이 나는 통에 군량으로 많은 곡물이 유출이 된 상황이니. 크로나 강 유역은 풍년이 들었으니 곡물이 풍부할 것 같습니다.”
“적당히 비축을 했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입니다. 그나마 전쟁이 빨리 끝난 것이 다행입니다. 그 덕분에 이 지역의 곡물이 군량으로 사용되지 않은 면도 있으니.”
이반은 슬쩍 프레드릭 후작 벡스터가 렌슬릿 상단을 지방 3군단의 전용 군납 상단으로 지정하여 곡물을 납품받은 사실을 언급했다. 그 때문에 그란델 상단은 곡물을 확보한 이후에 납품하지 못해 고스란히 곡물을 재고로 떠안기까지 했다. 지금이야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상당한 손실을 입기도 했다.
이반의 말에 로델 자작은 한숨만 내쉬었지 달리 말을 하지 못했다. 군량의 납품을 단일화시켜 이득을 취하기도 했지만 문제가 발생하여 한두 끼의 배식에 차질이 발생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사전에 그런 사실을 알고 각 전투대장이나 군장이 외부에서 조달하여 굶기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벡스터 후작은 모든 공직에서 추방이 되는 징계를 받았다.
“그런 면이 있겠군요. 그보다 최근에 영지로 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곤혹스럽기도 합니다. 영도 인근에 빈민들이 모여들어 무단으로 집을 짓고 정착을 하려하니 걱정입니다. 영지를 개발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말입니다.”
“프레드릭 백작령의 프레드릭 강 유역은 곡창지대가 아닙니까? 그곳을 개발하여 정착을 시키면 영지가 더욱 번창할 것 같습니다. 우리 영지는 개발을 하려고 해도 겨울이 길고 땅이 워낙 척박하여 걱정입니다.”
이반은 다시 반응을 살피려고 타진을 하는 로델 자작의 말에 그런 식으로 대답을 했다.
“프레드릭 강이라고 하지만 크로나 강에 비하면 작은 하천에 불과합니다. 주변을 개발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이제는 개발할 곳도 없습니다. 기존의 영지민도 둘째 아들을 분가시키는데 소작할 땅을 주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로델 자작의 말에 이반은 굳이 대답을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여 듀안이 따라준 술잔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여전히 로델 자작이 이반을 보면서 대답을 촉구하고 있었다. 영지분할계획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을 바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깝지만 농사지을 땅이 있은 곳으로 이동하면 되겠군요. 자유민이니 영지를 떠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고. 척박한 곳이라도 개간을 해서 농사를 지으면 되는 일이고. 자유민인 영지민이 영지의 재산도 아니니 말입니다.”
이반의 말을 시작할 때 눈을 빛내던 로델 자작은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이자 맘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워낙 잠깐 드러난 표정이라 곧 그런 기색은 사라졌다. 프레드릭 영지에서 다른 영지의 일부를 할양받아 개발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영지민이 영지를 떠나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입니다.”
“발 달린 사람이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야 각자의 의지인 것인데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영지에 속한 농노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자유민은 노예가 아닌 것인데 구속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반은 유민의 주인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들의 이주에 숟가락을 얹어 영지를 분할하려는 시도 자체를 봉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것이 없는데 제대로 이주를 하여 정착을 할지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해당 영지에서 모든 것을 부담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오면 각 영지에서 알아서 조치를 취할 것이라 봅니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통제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각 영지마다 매년 수백 명, 수천 명 정도는 수용할 능력이 있지요.”
장원 한두 개 정도 개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각 영지마다 작위를 받지 못한 영주의 혈족도 많았고 그들을 분가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굳이 왕실이나 중앙귀족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그렇게 되면 북방의 영지가 너무 비대해지는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문제였다. 그것을 빼앗아가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에 불과했다.
“각 영지의 일에 중앙이나 다른 영지에서 관여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걸 강제하려고 한다면 오만한 생각이라 봅니다. 각 영지의 영주가 알아서 잘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 있는 영지민을 잘 건사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반은 반론을 제기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그런 생각으로 남의 영지 넘보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이반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서 운기조식을 하여 술기운을 제거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귀를 열어놓고 여기저기서 진행되는 대화를 들었다. 술을 마시면서 각자의 고민을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글로셜이나 영지개발계획 문제로 화제가 옮겨갔다.
“우리 영지는 작년에 운이 좋아 세금으로 거둔 곡물을 일찌감치 처분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좋은 일이 아니었어. 고작 3개월 정도의 물량 밖에 없어 최근에 비축물량을 확보하느라 난리가 났어. 거기는 좀 낫지?”
“눈치 빠른 어느 영지와 달리 우리는 풍년이 든다고 좋아하다 처분할 시기를 놓쳤는데 다행인 것 같아. 작년 세금으로 거둔 물량이 고스란히 있고 각 장원도 예전에 글로셜이 왔을 때를 대비하여 마련한 지침에 따라 충분히 곡물을 비축했으니.”
두 영지는 서로 인접한 곳인지 서로의 사정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다.
“이번 글로셜도 전처럼 문제가 되겠지?”
“그럴 것 같지만 자네는 어떻게 할 거야? 독립을 생각하는 것 같은데. 계속 그대로 있을 거야? 지금이야 형이니 가만있지만 조카가 영주가 되면 모든 편의가 사라질 것인데.”
목소리를 낮춰서 그런 이야기를 은근히 나누기도 했다.
“중앙에서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하는데 어떨까?”
“자네 상단에 투자했고 그들을 움직인 것 같더군. 영지의 곡물을 사서 외지로 보낸 것 같던데. 그걸 자네 형 웬슬릿이 알면 죽이려고 할 텐데.”
“그러는 자네는? 몬스터 토벌까지 하지 않아 영도로 가는 길을 폐쇄하려는 것 같던데. 우리 영지 쪽으로 왕래를 하면서. 그리고 곡물창고를 외곽에 세워 혹시라도 영주가 곡물을 지원하라고 하면 외면하려는 것 같던데.”
둘이 은근하게 속삭이는 소리는 영주가 되지 못한 귀족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글로셜이 온다고 하니 뒤에서 영지에 해가 되는 일을 벌이고 있었다.
“소작인들 중에 먹고 살기 어려워서 빌리러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빌려줄 거야? 나중에 영주가 탕감하라고 할 것인데.”
“그렇게는 못하지. 이번에 명분을 확실히 만들 생각이야.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곡물을 빼돌리는 것이고.”
“그렇기야 하지.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아는지 감시를 하고 방해를 해서 골치 아파. 빌미를 주면 죽이려고 해서. 귀족원에 청원이라도 해야 할까 고민일세.”
“자네만 그런 것이 아니군. 영지개발계획이 이야기가 나오니 더 심해진 것 같아. 빨리 시행이 되어야 뭔가 결판이 날 텐데.”
글로셜로 시작된 이야기는 영지분할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중앙귀족에 가까운 자들은 영지개발계획을 옹호하는 편이었고 각 영지의 영주직계는 결사반대를 외쳤다. 반면 영주의 혈족들은 둘 다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면서 영지내부의 분할을 옹호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북방의 영지는 개발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영지 면적이 너무나 넓습니다. 길이 좋지 않은 면도 있지만 영지 내에서도 하루를 달려야 도달하는 곳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느 곳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해서 이틀이 걸리기도 합니다. 더구나 가는 길에 몬스터가 우글거려 호위가 수백은 있어야 하고요. 굳이 그런 상황에서 한 영지로 둘 필요는 없죠.”
헤세라 자작령에서 온 클론 헤세라가 영지분할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영주의 동생이지만 작위를 잇지 못한 것이 불만인지 영지분할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거야 그 지역에 행정관을 보내어서 통치를 하는 상황이고 실제로 영지를 분할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무슨 이유로요? 중앙에서 남의 영지 욕심을 내는 것이죠?”
어느 영지에서 온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반론을 제기했다.
“중앙에서는 한 영지가 너무 비대해지는 것이 걱정되는 것이니 그렇다면 영지의 주인들이 서로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말은 영지를 받지 못한 영주의 혈족들이 영지의 일부를 받아서 독립하자는 말이었다.
“그런 면이 있기야 하죠. 오래 전 영지가 생길 때야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지만 그동안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영지의 인구는 서너 배 증가한 면도 있고. 그러면서 몬스터도 깊은 산이 아니라면 다 토벌이 되면서 이제는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니 말입니다. 외부에서 유민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인구가 100만이 넘어갈 영지도 꽤나 될 것입니다.”
사실 영지개발계획의 핵심은 바로 그런 영지의 탄생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거기에 겸해 중앙에서 통제가능한 자들은 요소마다 영주로 보내 지방의 세력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이익을 챙기겠다는 의도였다.
여기서 각 부류마다 이해관계가 달랐다. 영주나 소영주는 영지분할에 절대 반대의 입장이지만 영주의 혈족들만 해도 영지를 분할하자는 의견에는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자신들이 소유한 장원과 주변을 떼어서 남작령 정도로 독립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초기에 남작령은 인구 1~2만 명일 경우도 허다했다. 엔리케 영지도 엔리케 골짜기에 있는 엔리케 일족 4천여 명과 주변의 일부 부족들을 통합하여 남작령으로 독립을 했으니 지금에 비하면 천지차이였다. 왕실이나 중앙귀족들은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영지를 분할 받고 영지민을 이주시켜 영주가 되기를 원했다. 그런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글로셜이 발생하면 다시 중앙에서 유민이 발생하여 지방으로 이주할 것인데 난리가 날 것입니다.”
“우리 이스턴 주나 웨스턴 주가 그나마 여유가 있을 것인데 유민도 영지민이라고 장사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짓을 하지는 못하지요. 글로셜이 아니라면 그게 가능하지만 그런 짓을 하다가는 빈민들의 반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일을 방지하려면 먹을 것을 줘야지요.”
술을 먹으니 자제력이 사라지고 차츰 노골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했다.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노골적으로 폭로하면서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하긴 자유민일지라도 영지를 떠나려면 이주세를 내야 하는데 굶어죽게 된 사람들에게 이주세를 내라고 하면 난리가 나겠죠. 거기에 세금을 낼 사정도 아닌데 밀린 세금을 내라고 하면 야반도주를 하겠군요.”
세금을 내지 못한 자유민은 농노나 마찬가지로 자유가 없었다. 그런 자들은 도망을 치더라도 죄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지간 이주를 한다면 기존 영지에서 이주서류를 발급받아야 정당한 이주민으로 대접을 받는데 그렇지 않으면 부랑자로 처리하여 농노의 신분으로 격하가 이루어졌다.
이런 것 때문에 각 영지가 유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기도 했다. 빈민들은 자유민이 아닌 농노라는 입장이기에 그들이 이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고 그것이 영지개발계획에서 내세우는 명분이기도 했다.
“각 영지에서 유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영지의 재산을 빼돌리는 것이란 입장이기도 합니다.”
“어느 영지에서 온 유민인지 알 수 있나요? 그런 논리라면 자신의 영지로 들어온 이상 그 영지의 사람이고 권리인데.”
둘이 서로 논리에 대하여 논쟁을 벌였다. 답이 없었다. 그렇지만 입장에 따라서 옹호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하면서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