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ier Lord - The reincarnation of a phantom demon RAW novel - Chapter 44
9. 엘프의 유산 (2)
이반은 시종인 그로센의 안내를 받아 영주관 뒤편에 있는 부속 건물로 다가갔다. 영주관이라 통칭하지만 영주관에는 상당히 많은 건물이 있었다. 보통은 영주인 스타치온의 집무실과 가족이 생활하는 건물을 지칭했지만, 외부에서는 영빈관이나 기사단 숙소, 연무장, 정원, 심지어 공방 구역까지 영주관이라 했다. 연무장 뒤쪽 산 아래 위치한 여러 부속 건물은 10여 동이나 존재했다. 절반인 다섯 개는 창고 같은 건물이었고 나머지는 공방이었다. 여기에는 각종 대장간이나 목공방, 그릇 공방이 있었다.
“이반 공자님이 무슨 일입니까?”
“음, 광석을 모아둔 창고에 들러 광석을 볼 수가 있나?”
“원광석과 제련된 금속 괴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습니다.”
대장간에 가자 책임자가 다가왔고 그 책임자에게 용건을 말하자 직접 공장 옆에 있는 창고로 안내를 했다. 일할 때라서 그런지 창고 문이 열려 있었다. 창고는 꽤 컸다. 3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구역 대부분은 몇 개의 원광석 무더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영지에서 산출되는 철과 구리의 원광석이 있었다.
“나는 잠시 여기서 원광석과 금속들을 살필까 하는데 일을 볼 것이 있으면 보게나. 여기는 그로센만 있으면 되니.”
그렇게 말하고 철광석 무더기가 산처럼 쌓여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반은 오행 선공 중에 금의 속성을 불러내면서 정령을 불러냈다. 그러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철광석 사이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일렁거리더니 형상을 잡아갔다.
‘너는 금속의 정령인가?’
이반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질문을 던졌고 그 기운은 그렇다고 의사를 표명했다. 말은 못 하지만 만나서 반갑다는 듯이 이반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반은 속으로 계약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러자 곧 이반의 몸 안으로 달려들어 왔다.
이반의 몸 안으로 들어왔던 기운은 잠깐 교감을 나누고 밖으로 다시 나왔다. 오행 선공의 금기와 연결이 되었다. 특별한 절차가 없이 그런 식으로 계약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정령과 감각을 전부 공유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생각이 전해졌다.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선명하고 뚜렷하게 변해 있었다. 전에는 탁하고 형태도 둥글게 뭉쳐있는 모습이었는데 교감을 이루고 난 이후에는 어린아이의 형상으로 반짝거렸다. 형상은 아이언 골렘을 축소해 놓은 모습이었다.
‘너는 이름이 없다고? 금속의 정령이니 메탈의 이름을 따서 메탈리카, 어때? 좋다고? 그러면 메탈리카로 하자.’
이반이 금속의 정령의 이름을 지어주자 다시 한번 빛이 번쩍거리는 것 같았다. 이반은 역 소환했다. 그러자 정령계로 가지 않고 이반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자연계 정령이라고 하더니 역시나 현 세상에 그대로 머물렀다.
사실 자연계 정령은 보통 자연계에 존재하지만 실재하지 않은 기운에 불과했고 정령사가 코어가 되어 의념을 담아야 실체를 갖추었다. 일종의 정령 탄생이었다. 정령이 소환한 정령사와 계약을 하지 못하면 다시 흩어지고 말았다. 그렇기에 자연계 정령은 하급부터 상급까지 정령사가 성장을 시켜야 했다. 아울러 정령사의 몸 안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했고 마나를 기반으로 존재하기에 마나를 잃으면 정령도 소멸했다.
이반은 다시 메탈리카를 불러내었고 원광석과 제련이 끝난 금속의 덩어리를 살폈다. 메탈리카는 금속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것의 성질은 잘 아는 것 같았다. 물론 한쪽에 있는 설명서를 읽어서 이름과 용도를 알게 되자 메탈리카도 기억해나갔다. 이반은 그로센을 동행하고 얼음이 얼어있는 호수에 가기도 했고 눈이 쌓인 침엽수림으로 가기도 했다. 거기서 어렵지 않게 얼음의 정령과 수목의 정령을 계약할 수 있었다.
수목의 정령은 드루이드라고 했는데 그대로 정령의 이름으로 사용을 했다. 드루이드는 녹색의 빛을 내는데 나무 몬스터인 엔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수목을 관장하는 것이라 그런지 약초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고 해독을 할 수도 있었다.
얼음의 정령은 투명했는데 특별한 이름이 없기에 차가운 바람인 블리자드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자 이반의 의지가 반영되어서 그런지 둥근 형태를 가진 톱날의 원반 모양이 되었다. 평상시에 회전하는데 부딪치면 얼음 칼날이 되었다.
“무슨 마른하늘에 벼락을 치는 말입니까? 이런 겨울에 벼락을 치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하죠.”
무난하게 나무와 숲의 정령 드루이드, 얼음의 정령 블리자드까지 소환하여 계약을 맺었는데 번개의 정령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천둥, 번개가 치는 곳이 어디인지 물었다가 그로센에게 그런 면박을 당했다.
그로센이야 이반이 정령을 소환하고 계약을 맺는 것을 모르니 난데없이 이상한 곳을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눈 덮인 숲 깊숙이 들어가서 한동안 앉아 있거나 꽁꽁 언 호수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결국 번개의 정령을 소환하여 계약하려면 여름에 천둥 번개가 치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정령이 몸 안에 들어와 있는데 문제가 없겠지? 내 기운과 교감을 하면서 공존을 하는 것 같은데 역 소환해도 사라지지 않고 몸 안에 머무는 것이 신기하다. 일단 언제쯤 원소 정령이 소환될지 모르겠군. 자연계 정령을 소환하여 계약했으니 빛과 어둠의 정령도 소환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이반은 빛의 정령을 소환하기 위해 태양 아래에 나가기도 했고 등불의 옆에서 시도했지만 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밤에 나가서 어둠의 정령을 불러내려고 했지만, 그것도 되지 않았다. 아직 자격을 갖추지 못했거나 소환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 같았다. 정령에 대해 좀 더 연구하여 방도를 찾기로 했다.
정령이 역 소환 된 지 5일이 지난 후에 마침내 정령을 소환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뭔가 묵직한 충격이 몸에 가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급 정령이 중급 정령으로 성장을 한 상황이라 정령 소환 시에 사용되는 마나가 몇 배나 더 증가했다.
넷 전부를 소환하니 오러를 사용하는 것에 버금갈 정도로 마나의 소모량이 많았다. 이반은 마나 소모량을 고려하면 한 시간 정도 소환하면 마나 고갈 상태에 빠질 것 같아 일단 아공간부터 열었다. 여전히 소환된 정령은 아공간 반지를 끼고 있는 왼손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아공간을 열어달라는 거야?’
정령과의 교감은 생각만으로 가능했다. 그리고 정령의 의사도 마찬가지로 말이 아닌 일종의 느낌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요. 우리에게 필요해요.’
‘세계수의 정기로 봉인을 한 것이라 우리에게 아주 좋지만, 엘프나 드래곤만이 봉인을 해제할 수 있어요. 우리가 돕는다면 계약자도 가능할 것 같아요.’
‘4대 정령이 전부 다 나서야 기운을 없앨 수 있어요. 세계수의 기운이라 우리에게 좋아요.’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는 없어요. 신성의 기운이 감돌아서 접근하지 못해요. 단지 봉인한 기운만 제거할 수 있죠.’
이반의 의문에 바로바로 정령들이 반응했다. 동시에 네 개의 음성이 들려왔다. 실제 음성이 아니라 혼자 생각할 때처럼 저절로 뇌리에 의미가 전달되었다. 이반은 얼핏 생각만 했는데 또렷하게 의사를 표명하는 정령들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언제 봉인을 해제할 수 있을지 몰라요. 단지 우리가 성장하면 봉인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정도에요.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기운도 한계가 있어요. 한 번 받아들이면 내뱉을 수도 없어요.’
‘아주 조금 냄새만 맡은 정도인데 하급에서 중급이 되었어요. 중급이 되면서 다시 한번 받아들일 수 있지만, 더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이반은 아공간을 열었고 정령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봉인에 달라붙어서 기운을 흡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작 2~3분 정도만 있다가. 나오고 말았다.
‘저번보다도 더 적게 흡입했어요. 악마를 봉인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신성의 기운마저 느껴져요.’
그렇게 말을 하던 정령들은 기분이 좋은 것인지 주변을 활기차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반이 주위에 존재감을 내보이지 않기를 바라서 그러는지 하급 정령일 때보다 오히려 내뿜는 기운이 약했다. 그렇지만 느껴지는 느낌은 더 묵직했다.
이반은 자연계 정령마저 소환했다. 같이 소환하면 더 시간이 짧아질 것이지만 공존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두 가지 정령을 소환해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세 정령이 나타나자 원소 정령 넷이 신기한 것을 본 것처럼 주변을 맴돌았다. 두 정령 간의 존재감은 확실히 달랐다.
‘애들은 아직 봉인에 접근하면 안 될 거예요. 하급 정령에서 벗어날 수준이 되어야 가능해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강한 기운이라 정체성마저 상실하고 소멸할 수 있어요.’
운디네에서 운다인으로 성장한 물의 정령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렸다. 정령들이 서로 싸울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령들끼리 교류를 하거나 친근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쟤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접점 자체가 없어요. 계약자가 보기에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존재감만 대략 느끼는 것이지 어떤 물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고 의사소통도 불가능해요. 차원이 다르기에 겹쳐도 겹치는 것이 아니에요.’
자연계 정령과 원소계 정령이 존재하는 공간이 다르다는 말에 이해가 되면서도 그걸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연계 정령은 현세에 기반을 두고 존재하는 반면 원소계 정령은 정령계라는 곳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다.
운다인이 자연계 정령과 겹치는 장면을 연출했다. 두 존재가 같은 공간에서 부딪쳐도 충돌하지 않고 통과를 했다. 서로 같은 위치에 있는데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차원을 달리하여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실감했다.
‘물론 서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마나를 사용하여 현실 세계에 간섭하면 서로 충돌이 발생하죠. 하지만 그때도 직접 충돌할 수 없어요. 현실의 뭔가를 매개로 하여 공격이나 방어는 가능하죠.’
‘가능하기도 하다는 말이네. 뭔가 참 애매한데.’
‘계약자님이 저들을 공격하라는 의지를 갖추면 가능해요. 하지만 굳이 그럴 생각은 없지 않아요?’
‘그거야 그렇지. 저들도 아군인데.’
‘저들도 우리만큼 성장을 하면 그때는 서로를 인식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스스로 차원 전이를 전개하면 물리적인 공격마저 회피할 수가 있어요.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상황이니까요.’
이반은 중급 정령과 한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궁금한 것을 서로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마나를 상당히 소진하여 고갈될 상황이 되자 역 소환했다. 반면 자연계 정령은 그의 몸을 기반으로 존재해서 그런지 마나를 사용하는 양이 극히 미미했다.
하나 정도라면 온종일 소환해도 문제가 없어 보였고 둘이라면 자는 시간 동안 소환을 해제하면 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셋이라면 두세 시간 정도면 마나 고갈 상태가 될 것 같았고 넷이라면 한 시간을 버티기도 쉽지 않았다.
‘아공간 반지는 엘프의 유산인 것 같군. 세계수가 진짜로 존재했다니 신기하다. 지금은 세계수가 사라졌다니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엘프의 피가 인간 사이에 남았다니 혼혈할 수 있었다는 말인데. 일단 봉인을 해제한 이후에 뭔가 알 수 있겠지.’
‘맞아요. 엘프의 후손은 아니지만, 계약자님의 피에도 정령 친화력이 존재해요. 그것도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물론 그냥은 우릴 불러낼 정도는 아니지만 스스로 기존의 친화력을 극대화했기에 가능해요.’
이반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면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로센은 이반의 지시를 받고 약재, 몬스터 식물을 모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마기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정화를 하면 약효가 대부분 사라지기에 정화하지 않은 상태의 약재를 모아야 했다.
“약초꾼에게 정화하지 않은 약재를 가져오라고 했고 의뢰한 것을 약초 상들로부터 수거한 것입니다.”
그로센이 꽤 많은 약초를 가져왔다. 그가 제시한 목록에 있는 것을 구해왔지만 몇 가지 약재는 구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런 약재를 추가로 구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약재가 없으면 비슷한 효능을 내는 대체 약재를 사용하면 되지만 대체 약재도 구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수고했고 매일 약초 상에 다니면서 필요한 약재를 더 구해와. 그리고 채취하지 않는 약재도 채취하라고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