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ier Lord - The reincarnation of a phantom demon RAW novel - Chapter 75
13. 왕도행 – 작위 수여식과 마탑 (4)
영지에서 이반의 짐을 챙길 때 도움을 주었는데 그렇게 큰 보석함을 보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 가져왔는지 궁금하게 생각했고 스타치온도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그들이 왕도 유카리스에 당도한 다음 날 오후에 마침내 내성 안에 저택을 배정받았다. 외성 안도 아닌 내성이니 엄청난 일이었다. 내성의 경우에는 가격도 비싸지만, 왕실의 허가를 받아야 일반 주택을 구입할 수가 있었다.
저택에 입주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세간은 다 주어지고 필요할 경우 교체하거나 추가로 구입할 수도 있었다. 그저 몸만 입주하면 되었다. 더한다면 각종 의류만 가져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그들이 입주하고 나자 여기저기서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성이 출입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귀족이거나 귀족의 보증을 받아야 가능했다. 그렇기에 찾아온 자들은 대부분 귀족의 혈육이거나 고위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작위를 가진 귀족은 하나도 방문하지 않았다. 작위 수여식 직전이라 작위를 가진 귀족은 방문하지 않았다. 자칫 모욕하러 행차한 것으로 오해받기 때문이었다.
“오늘 무려 열다섯 명이나 찾아왔다. 그들이 찾아온 이유는 너도 알다시피 이번에 출정할 때 내 휘하에서 종군하고 싶다는 것이다. 스스로 나서는 자들이니 실력도 있는 자들이다.”
“기사나 군인은 전쟁터에 나가야 공을 세우고 진급을 하거나 작위를 받을 것이니 서로 출정하려고 하겠죠. 거기에 어떤 전투대에 속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달라지니 신중하게 고르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전투대장도 유능한 부하가 필요하고요.”
“그렇기야 하지만 신중할 필요는 있다. 그보다 정작 올 사람이 오지 않은 것 같다.”
“왕자들이나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 말씀이군요.”
“사실 지금의 국왕 폐하의 나이도 50이 넘었다. 태자 전하가 있지만, 사후에 잡음이 없이 즉위한 경우는 드물다. 누군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칼라드 왕국의 국왕과 유칼라드 공국의 대공을 겸임하는 상황에서 유칼라드 공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왕위쟁탈전은 치열했다. 심지어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고 태자가 축출되거나 암살을 당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헬싱키 공작과 유리스 후작이 대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변방의 귀족이 그런 다툼에 개입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고 싶지만, 상황이 간단하지 않아. 중립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적으로 돌아설 위험한 존재이기에 적보다도 더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한쪽에 속해야 집중적인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이죠.”
“물론 다른 때라면 모르지만 전쟁을 앞둔 상황이니 더 예민할 수도 있다. 전쟁이 나면 군사를 움직일 수 있고 그러면 군벌이 형성될 수가 있으니. 특히 이번 전쟁에서 어느 쪽이 더 큰 공을 세우느냐에 따라 대세가 결정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한쪽에 줄을 설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 일에 휘말리면 멸문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기에 신중하게 상황을 관망할 필요가 있다.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냥 영지에 돌아가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군인이 전쟁터에서 죽는 일도 있지만, 문관의 농간에 몰락하는 예도 허다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맹장이라도 적진에 고립이 되거나 보급이 되지 않으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라가 망한다고 봐야지. 전쟁에서 그런 짓을 할 정도면 싸우기도 전에 무너지고 만다. 그런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내전도 전쟁이 끝난 후에 벌어질 것이다.”
아직 국왕은 건재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허튼짓한다면 그런 자도 무사하지 못했다. 스타치온의 말에 이반도 대충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반은 자신을 찾아온 손님이 있다는 그로센의 전언에 응접실로 갔다. 응접실 입구에는 헤롯 총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탑에서 손님이 왔다고요?”
“마탑의 장로이신 세스포 레온 백작님께서 찾아왔습니다. 현재 영주님과 환담하고 있습니다.”
이반은 누구인지 확인을 하자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응접실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반입니다.”
이반은 가까이 다가가서 달리 소개하지 않고 짧게 이름만 말을 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고 상대도 자신을 알았다. 이반은 더 말을 하지 않고 스타치온의 옆자리에 앉았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물론 탑주님의 전언도 있고요.”
탑주의 전언이라는 말에 이반은 물론 스타치온마저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룬어나 고대 마법이 대단하지만 로에난 크레스포 공작이 관심을 가질 줄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룬어를 해독하실 수 있다면서요?”
“운이 좋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이야 굳이 언급할 이유는 없는 것이고요.”
이반은 그 비결이 무엇인지 밝힐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마탑이라도 그것에 대하여 뭐라 말할 권리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다 말을 해야 할 것이지만 마스터인 스타치온의 손자였고 이반의 실력도 마탑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준은 아니었다.
“사실 마탑에서도 그동안 많은 연구를 거쳐 룬어를 대부분 해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 때문에 고대 엘프들의 마법 서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하나는 당시에 사용하는 어휘의 의미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점, 다른 하나는 당시의 마법 체계, 일종의 마법 수식을 파악하지 못해 지금의 서클 마법과 다르기에 해석을 못 하고 있습니다.”
세스포 레온 백작은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마치 하급자가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것처럼 설명했다. 그런 모습에 오히려 더 경계심이 드는 이반이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수천 년 전에 사실상 사라진 룬어를 다시 복원하여 그 의미를 해석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룬어를 볼 때마다 의미가 모호해 곰곰이 검토해도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이반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사실 우리 유칼라드 왕국만 해도 지방마다 말이 달라 어떨 때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주인이라는 말이 엔리케 영지를 비롯한 동북 지방에서는 정령이라는 말이고 그 말의 유래가 룬어에서 비롯된 것은 잘 모를 것입니다.”
“주인이라는 말이 신이나 정령, 또는 영혼, 권리를 가진 사람이나 주체라는 의미인 것은 알지만 룬어에서 비롯된 것은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언어 대부분은 엘프어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문자나 어순이나 엘프어와 같습니다. 룬어는 엘프들이 마법을 사용할 때 사용하는 언어이고 그 유래는 엘프가 아닌 드래곤입니다. 그렇기에 엘프들에게도 외국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엘프어에도 룬어로 된 말들이 상당한 부분 사용이 되었고 그것이 지금에 이어져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쓸데없어 보이는 룬어와 엘프어, 현대 언어의 관계에 대하여 장황스럽게 떠들었다. 그런 이반의 모습에 세스포 레온은 말을 끊지도 못하고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무려 30분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내 본론을 꺼내었다. 이반이 계속 모른 체하니 조급해진 세스포 레온이 결국 먼저 용건을 꺼냈다.
“탑주께서 한 번 이반 공자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형식은 요청이지만 내용은 호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말을 하는 세스포 레온은 스타치온과 이반의 눈치를 살폈다.
“저를 말입니까? 저야 만나 뵙는 것이 어려운 것은 없지만 마탑에 계시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를 앞둔 상황이라 마탑에 복귀하셨습니다. 새해가 되면 신년하례회도 있기에 마탑에 들리는데 올해는 조금 빨리 연구실을 떠났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찾아뵙도록 하지요. 저만 마탑에 가야 하는지요?”
“초면인데 아직 성인식을 하지 않은 이반 공자만 보는 것은 예가 아니기에 엔리케 남작님도 같이 방문했으면 하십니다. 물론 작위 수여식을 앞둔 상황이니 행사를 마무리하고 마음 편히 다음날로 일정을 잡았으면 합니다.”
세스포 레온이 스타치온을 보면서 그렇게 언급을 했다. 작위를 받기 직전에 귀족들은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일종의 예의였다. 작위를 받기 전에 만나면 기존 작위만 인정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작위를 받기도 전에 인정해주기도 애매했다. 그러니 백작의 작위를 받은 이후 그런 어색한 경우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만나자는 의미였다. 마탑에는 5, 6 서클의 백작이나 자작이 꽤 많은데 남작인 스타치온이 방문하면 이상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전에 마탑으로 방문을 하면 됩니까?”
“그렇게 했으면 합니다. 시간은 10시경이 어떨까 합니다.”
“그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그때 저와 손자가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것으로 하지요.”
로에난 크레스포 공작은 나이가 100살이 훨씬 더 넘었고 공작의 작위를 가진 상황이니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는 없지만, 그 정도 예우를 하나 같이 방문하기로 했다. 엔리케 일족은 바쁘게 움직여서 작위 수여식을 준비했고 마침내 며칠이 지나 작위 수여식 당일이 되었다. 몇몇 기사들이 방문했지만 작위 수여식과 관련이 있는 관리들 외에 귀족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작위 수여식은 후작의 작위를 받은 벤 클리프 백작을 필두로 하여 총 여섯 명이 해당이 되었다. 마스터가 되었다고 소문이 난 몇몇은 심사과정에서 마스터가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후작 하나, 백작 셋, 자작 둘이었다. 자작은 기사와 마탑의 마법사 중에 6서클이 된 자가 해당이 되었다. 6서클의 마법사도 마스터와 동급으로 쳐주는 상황이었다. 자작이 된 경우에는 2~3년 후에 백작으로 다시 한번 승작을 했다.
“현재 파사칸 왕국에서 호시탐탐 우리 유칼라드 왕국을 노리고 있습니다. 저들이 언제 침략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저들이 야욕을 드러내더라도 여기에 있는 마스터들이 그들을 격퇴할 것이라 믿겠소이다.”
국왕은 작위를 수여한 직후에 마스터들에게 새롭게 작위를 수여한 목적이 무엇인지 밝혔다. 노골적으로 신규 마스터를 이번 전쟁에 출정시키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물론 그것을 짐작하고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한 것은 전쟁이 임박했음을 의미했다. 작위 수여식이 끝난 직후에 왕족과 귀족들이 참여하는 왕실 연회가 이어졌다. 이반은 작위 수여식이 끝날 때까지 뒤쪽에 마련된 가족들 자리에서 행사를 지켜보았다.
“이제 연회장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이반은 긴장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캐서린과 엔젤라를 에스코트하여 옆에 붙어 있는 대연회장으로 이동했다. 대연회장은 기둥만 열여섯 개 있는 거대한 홀이었다. 기둥 사이의 거리가 20m는 족히 되어 보였다. 가로세로 100m 정도이니 그 규모가 압도적이었다.
“엄청나게 넓구나.”
연회장으로 들어간 캐서린은 그 규모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엔젤라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변방의 하급 귀족들은 평생 왕실에 한두 번 들어오기도 쉽지 않았다. 매년 신년하례회가 열리지만, 중앙귀족과 백작 이상의 고위 귀족만 참여했다. 국왕의 즉위식이 열릴 때나 모든 귀족이 부부 동반하여 참석했다. 그 외에는 왕궁에 올 일이 없었다. 이렇게 작위를 받는 경우에나 가족들이 지켜볼 수가 있었다.
“여기로 가서 앉으면 됩니다.”
작위를 받은 귀족을 위한 별도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들은 엔리케 가문의 문장이 걸려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기사들도 동행했기에 스타치온의 자리를 제외하고 모든 자리를 다 채울 수 있었다. 이반은 다른 사람들이 단아하게 차려입고 품위 있게 치장한 캐서린과 엔젤라를 주시하고 있는 것에 꽤 기분이 좋았다. 특히 두 여자가 패용한 각종 장신구를 보면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수만, 수십만 골드를 호가할 수도 있는 목걸이와 반지를 보면서 그것이 엘프의 유산이라는 것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여자들은 대부분 알고 지내는 사이라서 순식간에 그런 사실이 퍼져나갔다. 그들은 힐끔거리면서 두 사람을 보았다. 하지만 긴장한 캐서린이나 엔젤라는 그런 사실은 알지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나아진 것도 같지만 여전히 여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