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008)
975화 re – Organization
2019년 3월 12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더 퍼스트 팀 센터, 감독실.
일찌감치 일어나 ‘Hydrowork 350’을 통한 재활을 마친 후, 나는 카를레스의 말대로 펩의 사무실을 찾았다.
현재 시각은 오전 8시 55분.
곧, 펩이 출근할 것이다.
“응?”
“?!”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몸을 돌리면서 일어서자, 문 앞에서 우뚝 멈춰선 펩이 보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펩.”
“……지금 몇 시지?”
“오전 9시가 되기 조금 전이요.”
“……그렇군.”
애써 감추고는 있었지만, 펩은 크게 당황한 상태였다. 본인의 테이블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그는 몇 번이나 나를 흘끗거리면서 입을 떼려고 했다.
이곳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려는 것 같았는데, 그렇게 말하면 너무 차갑게 느껴질까 고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네.”
나는 펩의 수고를 덜어주기로 했다.
“어제, 카를레스가 우리 집으로 왔어요.”
“……듣지 못했네.”
“네. 당신에게 비밀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처음에만요. 지금 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도, 카를레스가 그렇게 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이고요.”
“무슨 말이지?”
“후우~”
“??”
숨을 한 차례 고른 후, 난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기로 결정했다.
“실은, 당분간 중앙에서 뛰는 건 어떨까 해요.”
“?!?!”
“전에 스프린트를 한번 시도했는데, 전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더라고요. 저도 알아요. 지금 제 몸이 충분하지 않다는 거.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였어요. 경기에 뛸 만큼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제가 전과 같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
이것이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꺼내 들었다. 40야드 대시 이후 하늘을 올려다보며 했던 생각을 말이다.
여전히 재활이 남았고 본격적인 운동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난 전처럼 뛰지 못할 거라 생각 중이었다.
그래서 내일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라몬 쿠가트 박사님께 이런저런 것들을 물을 생각이었다.
손상된 조직의 수준을 다시 예전처럼 끌어 올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를 알아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그렇게 되는 게 가능하다면.
“그때 다시 풀백으로 돌아가도 되니까요.”
“그게…….”
“?”
“그게 그렇게 쉬운 결정이었나?”
“쉽지는 않았지만, 어렵지도 않았어요.”
“어째서지?”
어째서라니.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축구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풀백으로 뛰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 볼-게임을 오래오래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피치를 떠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나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특히 Team CFG의 아이들이 축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과 마주할 수 있었다.
왜 내가 축구와 사랑에 빠졌고.
왜 내가 축구에 상처받았으며.
왜 내가 이토록 집착하는지.
축구는 현재 나의 모든 것이고, 축구 선수로서 살아가며 현재의 삶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저는 최고이기를 원해요, 펩.”
“자네는 이미…….”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최고이길 원한다고요. 과거에도 또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최고가 되기를 원해요. 하지만 이 다리로는 그럴 수 없죠, 펩. 왜냐하면 저는 고장 났거든요. 전 망가졌어요, 펩. 이런 상태로는 풀백에서 전처럼 할 수 없을 거라고요. 오히려 팀에 피해만 끼치겠죠. 그건 죽기보다 싫어요.”
축구는 나의 삶을 바꿔 주었다.
그리고 내게 친구를 소개했다.
난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인정할 만큼의 퍼포먼스를 펼쳐야만 한다.
“다른 포지션에서는 그게 가능하다는 건가?”
“그야 모르죠.”
“뭐라고?”
“그건 당신의 몫이니까요. 잊었어요? 당신은 감독이에요. 저를 어디에다 뛰게 할지는, 온전히 당신의 권한이죠.”
“제멋대로군.”
제멋대로라는 펩의 말에, 난 엉덩이를 떼며 몸을 살짝 앞으로 내밀어 손을 뻗었다.
악수를 권하는 것이었는데, 얼떨결에 손을 맞잡은 펩에게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나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멋대로인 사람인지 몰랐느냐는 익살스러운 표현이었다.
피식하고 웃어 보인 펩이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그리고 살짝 머쓱해진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코를 긁적였다.
“예전부터.”
“?”
“예전부터 저는 중앙에서 뛰는 법을 배웠어요. 노르셸란에서 뛸 때도, 모르텐 비그호스트 감독님은 제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중앙에서 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선견지명이 있는 사내였지.”
“네. 정말로 그래요.”
올보르 BK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며 해임된 이후, 모르텐 감독님은 현재 안식년을 갖고 있었다. 당분간 축구를 멀리하며, 자신의 원점(原點)을 찾아볼 거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내게 일어난 일은 끔찍한 비극이지만, 어쩌면 이번 일을 통해 나의 원점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쉼 없이 달려온 길의 끝에 찍은 하나의 챕터(Chapter)를 마무리하는 마침표를 찍은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다시금 되새긴 원점을 지니고 다음 장(章)을 열게 된다면, 이번에는 쉬어 가는 일 없이 선수 생활의 끝까지 힘껏 달려 나갈 수 있을 거랬다.
나의 원점은 축구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의 목표는.
“맨체스터의 주인이 되고 싶어요, 펩.”
“나도 그러하네.”
“네.”
“……좋아, 알겠네.”
“?”
“자네를 중앙에서 뛰게끔 하지.”
“!! 진짜로요?”
“그래. 방법을 찾아보겠네.”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일이 풀렸다. 펩은 어떠한 반발도 없이 내 의견을 받아 주었다. 친구를 잘 알고 있다는 카를레스의 말은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클럽하우스에 도착해 차를 주차했을 때만 해도, 난 불안함으로 심장이 두근거려 참을 수 없는 상태였다.
펩을 마주하고 나서도 실은 엄청나게 용기를 낸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지금 내 손에 있다.
흥건히 젖은 손바닥의 땀을 바지춤에 닦아 내며, 나는 이제 그만 일어나 보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9시 30분부터 재활인 만큼, 얼른 움직여 봐야 한다.
“그럼 훈련 메뉴를 손봐도 되죠?”
“내가 따로 전하겠네.”
“중앙에서 뛰는 훈련인 거죠?”
“그런 셈이지.”
“환상적이네요.”
행여 말을 바꿀까 봐, 나는 미소를 지은 채 뒷걸음질을 치며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곤 양손 엄지를 치켜세운 뒤, 마침내 뒤로 돌아섰다.
얼른 펩의 사무실을 벗어나야, 조금 전에 들은 말이 실감이 날 것 같다.
그런데 몸을 돌리기 무섭게, 펩이 다시 나의 이름을 불러왔다. 했던 말을 철회할까 싶어 굳어 버린 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움직였다.
“부, 부르셨나요?”
“그래. 자네 혹시…….”
“…….”
만약 펩이 이야기를 철회하겠다는 말을 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유치한 감성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무르지 못하도록 만들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단순한 기우였다.
“따로 이야기를 들은 것 없나?”
“이야기요? 어떤?”
“그러니까…… 카를레스라든가 아니면 두 명의 박사들로부터 말일세. 그러니까…… 어떤 종류라도 말이야.”
“Nope. 말씀드린 게 전부예요.”
“그래. 잘 알겠네.”
“?? 그럼 가 봐도 되나요?”
“그래.”
“네. 그럼.”
부리나케 몸을 돌려 감독실을 빠져나온 이후, 난 복도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불가능할 거라고 믿었던 일을 해낸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했다.
“YES!”
그런데 그때, 열려 있는 감독실의 문에서 뭔가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난 깜짝 놀라, 다시 펩의 사무실 앞으로 걸어갔다.
“펩?”
“?!”
“혹시 저를 부르셨나요?”
“……아니. 그렇지 않네.”
“진짜요?”
“그래. 재활에 늦은 것 아닌가?”
“아차! 그러면 진짜 가 볼게요.”
재활 시간에 늦게 되면 도너의 잔소리를 한참 동안 들어야 한다. 꽤 소심한 구석이 있는 남자라서, 한번 잔소리를 시작하면 다른 서운한 이야기까지 쏟아 낸다.
그것을 듣는다는 건 큰 고역인지라, 난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걸음을 재촉했다.
“택시-!!”
“이건 택시가 아니거든??”
“EMA로 부탁해요.”
“뭐? 난 지금 세탁실로 가야 한다고.”
“Come on, 리키. 신세 한번 좀 지자고요.”
“이런! 빚은 달아 둔다?”
“얼마든지요.”
주로 킷맨들이 타는 카트에 몸을 실으며, 나는 재활을 진행할 EMA 건물로 움직였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부쩍 곁으로 찾아온 지금, 맨체스터의 아침 햇볕은 제법 따뜻했다. 클럽하우스 곳곳에 심어 둔 나무에서도 조금씩 새싹이 자라나고 있다.
‘겨울은 끝나는 법이니까.’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찾아오는 게 계절이긴 하지만, 지금 나의 기분은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생명으로 가득한 봄을 맞이하는 농부만큼이나 들뜬 희망으로 부풀고 있었다.
저 멀리, EMA가 보이기 시작했다.
.
.
.경기 결과(2018/19 UCL 16강)
맨체스터 시티 8 : 0 샬케 04
***
※ 2018/19 UCL 8강 대진
AFC 아약스 VS 유벤투스 FC
리버풀 FC VS FC 포르투
토트넘 홋스퍼 FC VS 맨체스터 시티
FC 바르셀로나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2019년 3월 15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이스트 맨체스터 아카데미.
하루 전, 펩은 새로운 훈련프로그램과 함께 복귀 후 내가 뛰게 될 포지션을 이야기했다.
“뭐라고?”
“들으신 대로에요. 스트라이커로 뛸 것 같아요.”
“…….”
풀백이 아닌 스트라이커로 복귀하게 될 거라는 말에, 프렛웰은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크게 뜬 눈을 껌뻑거리며,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무리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난 그가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하며 한쪽으로 걸음을 가져갔다.
조금 전, 누군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잠깐 대화 좀 되나?”
“그럼요. 얼마든지요.”
현재 Team CFG는 3월 말부터 약 3주 동안 이어질 대회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훈련을 진행 중이다.
IFC와 The MYC에 참가했던 클럽을 포함, 총 16개의 유스팀이 참여할 이번 대회는 Team CFG의 마지막 여정이기도 하다. 이후 아이들은 U-13과 U-15 팀으로 흩어지게 된다.
최종적으로 정식 유스 팀에서 한 달여간 기량을 테스트하고, 이후 시티 합류 여부가 결정될 거다.
그래서 최근 제임스 윌콕스가 나를 찾아, 아이들의 성격이나 태도 등을 물어보곤 했다. 시티는 단순히 축구만 잘한다고 해서 영입하는 클럽이 아니다.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그래서 본래라면 프랭크 오세이나 앨런 드레이크 같은 아이들은 절대 시티로 합류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두 녀석 모두 계약서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앨런은 맨체스터가 아닌 뉴욕 시티다.
“오게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네.”
“?!”
“내일 맨체스터로 온다고 하더군.”
“……이유는요?”
“글쎄. 따로 밝히지는 않았어. 누가 올지도 말해 주지 않았지. 내가 지금 우려하는 건, 지금 이 타이밍에 오게를 덴마크로 데려가는 일이야.”
“…….”
오게는 이곳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가 됐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심장을 지닌 사람이라 해도, 저 환한 미소 앞에서는 얼어붙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을 수밖에 없다.
축구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저 아이는 계속 이곳에 머물 수 있게 되어 행복해했다.
그리고 그런 오게에게, 난 앞으로도 축구를 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지금 저 아이를 데려가려는 거라면…….”
“큰 상처가 되겠지.”
“큰 상처? 아뇨, 제임스.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요. 저 아이의 성격과 더 나아가 삶 전체에 영향을 줄 거예요.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될 거라고요.”
아직 오게의 부모님이 어떤 목적으로 맨체스터에 오는 것인지는 알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만약 정말로 저 아이를 덴마크로 데려가는 거라면, 그건 정말 잔인한 행동이다.
차라리 지난 1월에 오게를 데려가는 게 나았다. 헛된 희망을 안겨다 주고 그걸 도로 빼앗는 건, 부모로서 자신의 아이에게 할 짓이 아니다.
최대한 희망적인 생각을 품어 보다가도, 그때 본 니콜라이 매틴손을 떠올리면 이를 이어 나가기 힘들었다.
그는 아들의 꿈은 신경 쓰지 않는 남자다.
아이가 아닌, 본인의 최선을 추구한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때.’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는 요즘, 생각지도 못한 암초 하나가 등장해 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
2019년 3월 16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시티 HQ.
맨체스터에 온 것은 오게의 어머니, 리케 매틴손 혼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방문 목적이, 아이를 덴마크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했다.
[그럼?] [그때 찢어 버린 계약서. 아직 유효한가요?] [!!!!]놀란 나를 보며 의아해하는 이들을 위해, 나는 금방 들은 말을 영어로 통역해 줬다.
그러자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정말인가?”
“네. 좀 더 대화해 볼게요.”
“그러게나.”
덴마크로 돌아간 뒤, 오게의 부모님은 잦은 의견 다툼을 보였던 것 같다.
리케 씨는 우리가 내밀었던 계약서를 이야기하며 아이에게 정말 재능이 있다면 축구를 계속하게 만드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지만, 니콜라이 씨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그토록 고집불통인 이유에 대해 리케 씨는.
[남편도 한때는 축구를 꿈꾸는 소년이었죠.] [니콜라이 씨가 말인가요?] [네. 지금은 믿기 어렵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하는 소년이었죠. 우린 어릴 때부터 이웃사촌이었던지라, 전 누구보다 그를 잘 알고 있어요.] […….]셸란(Sjælland)섬이 아닌 윌란(Jylland)반도에서 태어난 니콜라이는 어린 시절에는 꽤 재능을 인정받던 유망주였다.
그는 바일레(Vajle)라는 도시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소년으로 금세 알려졌고, 인근 축구 클럽인 오덴세/에스비에르/호르센스에서 동시에 스카우트를 해 왔다고 한다.
이에 니콜라이 씨의 부모. 그러니까, 오게의 할아버지/할머니는 아들을 그나마 가장 가까운 호르센스로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당시의 덴마크는 뭐랄까…….] [저도 알아요.] [그런가요?] [네. 제가 노르셸란에서 뛸 때도 머저리 같은 녀석이 있었거든요. 핼리 갤이라는 녀석인데, 집이 굉장히 잘살았죠. 그 녀석은 안하무인으로 굴었어요. 절 동양인이라며 차별했고, 시도 때도 없이 갖은 방법으로 괴롭혔죠.] [……미안해요.] [응? 뭐가 말이죠?] [덴마크에서 그런 안 좋은 기억을 떠안게 해서요. 하지만 모든 덴마크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예요.] [하하. 네. 저도 알아요.] [그런가요?] [그럼요. 지금 저와 가장 친한 친구도 덴마크 사람인걸요. 올루프 뫼르크라고, 보신 적이 있었을 거예요.]전에도 말했지만, 유럽에 대한 환상은 덴마크에서 뛰던 시절부터 산산이 깨졌다.
그리고 그런 시각에서 바라본 덴마크는 귀족/부자와 나머지 99% 사람들의 세계, 두 가지로 존재했다. 부유한 이들은 그곳에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아니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이 편하게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 기준에서 8, 90년대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번듯하게 벌어지는 게 유럽이라는 동네다.
니콜라이 씨는 그런 일의 희생양이었다. 그는 입단과 동시에 실력을 인정받았고, 이를 질투한 귀족 가문 자제의 질투를 받아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계단에서 그대로 니콜라이를 밀어 버린 거다.
게다가 당시는 CCTV가 있던 시절도 아니다.
기절 후 깨어난 뒤 니콜라이 씨는 범인을 지목했지만, 돌아온 거라곤 치료 뒤에 받은 퇴단 통보였다.
[남편은 오게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거예요.] [그런 일은 이곳에선 벌어지지 않아요.] [네. 저도 보았어요. 여긴, 정말 좋은 분들이 많더라고요. 당신도 그중 한 사람이고요. 남편이나 제가 축구를 잘 모르는 척했지만, 실은 전부 알고 있답니다. 당신은 전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죠. 그런 당신에게, 제가 감히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제발. 제발 우리 아들이 축구를 계속해서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제 남편에게, 아들의 삶은 다르다는 걸 알게 해 주세요. 그럼, 그이도 괜찮아질 거랍니다.]리케 씨가 이곳을 찾은 이유. 그것은 지금 한 말을 내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들었던 그 어떠한 말보다,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하지만 난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기로 했고, 똑바른 덴마크어로 필요하다면 오게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답을 했다.
[하하. 거기까진 괜찮아요.] [그런가요?] [네. 그저 그 말이면 충분했어요. 당신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죠.] […….]마냥 순박하게만 보였던 리케 씨였지만, 실제 그녀는 누구보다도 강인한 여성이었다.
본래 그런 사람인 걸까?
아니면.
‘남자가 그렇게 만드는 걸까?’
우리 남자들은 세상을 지배하지만, 그런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언제나 여성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남자들은 여자의 강인함을 끌어내기도 한다.
바보 같은 행동으로건.
아니면 사랑으로건.
혹은 지금처럼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해 괴로워하며 동정심을 끌어내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증 무엇이 되었건, 현재 중요한 것은 리케 매틴손이 훌륭한 어머니이자 누구보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난 그런 그녀에게, 다시 한번 오게가 불행해지지 않도록 곁에서 돕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럼, 해결됐네요. 얼른 계약하죠.] [니콜라이 씨는 어떻게 하실 거죠?] [하하. 그건…….] [?] [제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요.]여유 있는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파묻는 리케 씨를 보며, 난 항복했다는 의미에서 손을 들어 올렸다.
매틴손의 남자들은 이 여성을 이길 수 없을 거다.
“어떻게 됐지?”
“아.”
곁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온 제임스 윌콕스를 보며, 나는 계약서를 제안해도 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환한 표정이 된 제임스 윌콕스가 영어와 덴마크어로 각각 작성된 두 장의 계약서를 리케 씨의 앞으로 내밀었고,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놀란 토끼 눈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전날 내가 찢어버린 계약서에 적힌 것보다, 오늘 적힌 숫자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돈인데요?] [하하. 실은…….] [?] [오게가 지난 두 달 동안 증명했거든요. 자기가 얼마만큼 좋은 재능을 갖췄는지요. 그리고 그건, 그동안 성장한 오게의 평가가 반영된 계약서예요.]축구는 한편으론 대단히 정직한 스포츠다.
실력과 재능의 변화가 그대로 숫자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작년 월드컵 결승 직전 2억 8,500만 유로까지 치솟았던 나의 몸값은 현재 2억 유로까지 떨어졌다. 여전히 세계 최고지만,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유동폭이 클 것이다.
그리고 오게는 자신의 실력으로, 지난 1월의 것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계약금을 따냈다.
그건 매틴손 가족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오게로 하여금 축구 선수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를 더 심어 줄 게 틀림없었다.
돈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돈은 때때로 우리가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중요한 건, 그를 올바로 다루느냐다.
– 멋진 분이네.
“네. 정말 그래요.”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떠난 리케 씨가 덴마크로 돌아간 뒤, 나는 요나스에게 전화를 걸어 두 시간 전 클럽하우스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설명했다.
이로써, 오게는 맨체스터 시티의 식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