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014)
981화 re – Organization (7)
.경기 종료(The WYC)
맨체스터 시티 4 : 1 우디네세
***
2019년 4월 5일. 맨체스터 WA15 0NJ, 잉글랜드. 헤일, 알트링엄. 16 힐 탑.
지난 3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볼리비아와 콜롬비아를 불러들여 각각 2:0의 승리를 거뒀다.
실패로 끝나 버린 아시안 컵으로 인한 우려를 잠재웠다는 평을 끌어내었지만, 세대교체를 이뤄 가야 할 젊은 선수들의 부진은 여전한 숙제로 남았다.
그리고 오늘, 삼파올리 감독님에 이어 새롭게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파울루 벤투 감독님이 우리 집을 찾았다.
탁-
“여기 드세요.”
“오-! 이건?”
“네. 바칼라우예요. 다행히 대구는 잉글랜드에서도 잘 잡히거든요. 감독님이 오신다고 해서 특별히 물어물어 비법 양념에 절여 두었죠.”
“이거, 예상치 못했던 대접이로군.”
“먼 길을 오셨잖아요.”
포르투갈 리스본 태생인 벤투 감독님은 SL이 아닌 CF 벤피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CF 이스트렐라 다 아마도라로 이적했고, 1991년 비토리아 SC로 이적한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포르투갈 최고의 미드필드 중 하나로 평가를 받았다.
포르투갈 대표팀에 뽑힌 것도 이 시기였는데, 골든제네레이션의 일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몸은 좀 어떤가? 팀에 합류했다고 들었네.”
“8월 복귀가 목표죠.”
“9월 예선에는 출전할 수 있겠군.”
“그랬으면 하네요.”
오는 9월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22년 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을 시작한다.
파울루 벤투 감독님은 거기에 나를 부를 생각이셨고, 나 역시 맨체스터를 찾은 이유가 그것 때문일 거라고 예상했다. 최근 대표팀은 조금 흔들리는 중이다.
새로운 감독 아래 새로운 축구를 하게 되어 겪는 과도기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경쟁력의 상실에 있다고 본다.
굳이 승리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경기에서도 지나치게 PLAN A만을 고집하다 보니,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 버린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우려가 되는 건,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번번이 외면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
포르투갈 요리로 채워진 푸짐했던 저녁 식사가 끝난 이후, 나는 아껴 둔 포르투갈산(産) 레드 와인을 열어 벤투 감독님의 잔에 채웠다.
몸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금주 중이었기에, 나는 술 대신 포도 주스를 잔에 따랐다.
지금부터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 거다.
하지만, 난 반드시 말해야 했다.
“제가 복귀하면, 은퇴할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키와 쿠 말이로군.”
“네.”
파울루 벤투호(號)가 승리를 거두고 그나마 괜찮은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성용이 형이 포백 앞에서 균형을 잡아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용이 형은 내가 돌아오는 대로 대표팀을 떠날 생각이고, 9월 월드컵 2차 예선 직전에 가질 평가전이 될 대표팀 은퇴 경기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삼파올리 감독님은 우영이 형을 원 볼란치로(Volante)로 두는 전술을 실험 중이었지만, 영 신통치가 않았다.
“혹시, 대체자를 찾지는 않으실 건가요?”
“뭐, 두루 보고는 있네.”
“예를 들면요?”
“……설마, 내 권한을 침범하려는 건가?”
“그래야 하나요?”
“…….”
잔을 내려놓은 벤투 감독님이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매서운 시선을 내게 보내왔다.
하지만 난 별로 물러설 생각이 없다.
이대로 멈출 생각 역시도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찔러봤다 물러설 거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다.
“난 자네를 뽑지 않을 수도 있어.”
“잘됐네요. 회복에 더 집중할 수 있겠어요.”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며 말인가?”
“비난 누구요? 저요? 아니면, 감독님?”
이제 벤투 감독님의 시선은 강철이라도 녹일 것처럼 이글이글 불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것을 정면으로 쳐다봤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감독님께는 무척 죄송한 말이지만, 현재 이 관계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쪽은 나다.
만약 벤투 감독님과 내 사이가 틀어져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사람들은 누구의 편을 들까?
무척 쉬운 질문이다.
“……듣던 대로군.”
“무엇을 들으셨던 그 이상일 거예요.”
“훗. 확실히 그런 것 같아. 내가 졌네.”
“졌다고요?”
“그래. 제주스의 말이 옳았어. 자네가 무모하게 덤빌 때면, 무언가 반드시 생각이 있는 거라고 했지.”
“어…… 제가 아는 그분 맞나요?”
“세상에 조르제 제주스는 한 사람뿐이지.”
“대화해 보셨나요?”
“수백 번도 더. 특히 한국 축구 협회에서 제안이 왔을 땐, 거의 매일같이 통화를 나눴지. 그는 자네를 지도해 볼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어. 길들이기 어려운 품종의 종마이지만, 일단 신뢰를 얻으면 감독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고 했지.”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내가 없는 곳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건 늘 색다른 경험이었다.
제주스 감독님이 그랬다는 말이지?
‘허- 종마라니.’
듣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감사한 이야기였지만, 길들이기 어렵다는 부분은 딱히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난 그저, 승리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에?”
“무슨 이야기인가. 만약 시답잖은 이야기라면, 해고되든 뭘 하든 내가 있는 한 자네가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을 일은 없을 걸세. 그러니까, 신중히 생각해야 할 거야.”
“그러죠.”
역시 포르투갈 출신답게, 파울루 벤투 감독님도 한 성깔 하시는 것 같았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벤투 감독님의 이러한 성격을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리스본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누구보다 많은 포르투갈 친구가 있는 내겐 긍정적인 부분이다.
성깔은 내겐 매력 포인트다.
“K리그를 외면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무시한 적 없네.”
“그런가요? 제가 전해 듣기로는 그렇지 않은데요. 벌써 몇몇 형들이 당신에게 추천하지 않았던가요?”
베테랑 선수들이 감독에게 특정 선수를 추천하는 일은 대표팀과 클럽을 가리지 않고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소속 팀에 애정이 있어서 건네는 조언인 만큼, 감독들도 이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최종 결정은 감독의 것이기에, 조언이 100% 수용되진 않는다.
그것을 아는 게, 선수들이 지켜야 할 선인 셈이다.
그런데, 벤투 감독님은 닫혀 있다.
도무지 조언이 먹혀들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적응을 돕고자 수많은 사람이 감독님께 이런저런 선수를 추천하고 성향들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경기 날이 되면 모든 것이 똑같았다.
“K리그의 쏜 말이로군.”
봤지?
벤투 감독님도 결국은 모든 걸 알고 있다.
그저, 듣지 않을 뿐이다.
“네. 저도 그를 추천하려고 하거든요.”
“후우~ 와인을 더 마셔도 되겠나?”
“그럼요. 감독님 드리려고 딴 건데요.”
“훗. 훌륭한 교섭 방법이로군.”
“좋은 스승님들 덕분이죠.”
나의 시답잖은 농담에 웃어 보인 벤투 감독님이 잔에 와인을 다시 채워 잔을 기울였다.
“그라면 나도 알고 있네.”
“그러시겠죠.”
“그래. 좋은 선수인 건 맞아. 하지만 나의 축구에 어울리는 선수인지는 잘 모르겠더군. 너무 성급하고 또 실수도 잦아. 무엇보다 그는 8번 아닌가?”
“넵.”
“그런데도 그를 추천한다는 건가?”
“네.”
“어째서지?”
현재 내가 추천하고 있는 선수는 K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뛰는 준호 형이다.
영남대에서 3년을 보낸 후 드래프트에 참가해 포항의 지명을 받았고, 데뷔 시즌 35경기 2골 3어시스트를 기록한 후 이듬해 바로 기량이 만개했다.
그래서 한때는 2016 브라질 리우 올림픽 승선도 거론됐었는데, 하필이면 그해 4월 전방 십자인대를 다치면서 선수 경력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간단해요. 그가 적임자기 때문이죠.”
“그걸론 부족해.”
“네. 알고 있었어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몸을 숙여 소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빔 프로젝터를 작동했다.
“……왜 이게 놓여 있는가 했지.”
“하하. 함정에 걸린 기분이 어떠세요?”
“아직은 모르겠군.”
“다행이네요. 앞으론 나아지실 거예요.”
“…….”
본래 이 빔 프로젝터는 우리 부부의 침실에 있던 것이다. 아영이와 나는 종종 침대에 누워 천장에 빔을 쏴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곤 했다.
그런 물건이 여기에 있다는 건 내가 이것을 가져왔다는 뜻이었고, 내가 이것을 가져왔다는 건 전부 이유가 있어서였다.
지금 내가 재생한 것은 축구 영상이다.
“그가 아니군.”
“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내 경기의 영상이야.”
“정확히 맞추셨어요.”
축구에 있어 연속성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잦은 변화보다는 꾸준히 하나를 파고드는 게 훨씬 좋은 경기력을 만든다.
낯선 환경에서 움츠러드는 인간의 습성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데, 모든 축구 감독에게 허니 문(Honey Moon) 기간이 존재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은 허니 문 기간이고, 잦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뭐가 보이시나요?”
“우리의 실수 장면이군.”
“네. 바로 맞췄어요.”
벤투호의 첫 번째 시험 무대였던 2019 아시안컵 본선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인 8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직전 월드컵 준우승 국가가 아시아 최고가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팬들은 실망했고, 벤투호는 바로 비난을 얻게 되었다.
극성맞은 미디어와 축구에 한정된 이상스러울 정도로 극성스러운 국민성이, 벤투 감독님으로부터 허니 문을 빼앗아 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본래 더 여유 있어야 했을 기간을 가져다주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아마.”
“?”
“아마 감독님은 아시안 컵을 치르면서 이렇게 생각하셨을 거예요. 이 팀은 중원이 약하다. 키와 쿠가 은퇴하면, 나는 이 팀에서 중원을 기대할 수 없다. 맞죠?”
“…….”
“부정하진 않으시네요. 그러니 제 생각이 맞는 걸로 하죠.”
아시안 컵 예선 1차전 이후, 성용이 형은 대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작년 월드컵 때부터 쌓여 온 마일리지가 화근이 되었던 것인데, 중요한 건 모두가 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외에도 대회 도중에 부상당한 재성이 형 역시도, 지난 2년 동안 어마어마한 마일리지를 쌓아 올렸다.
“감독님의 축구는 기본적으로 많이 뛰어야 해요.”
“그렇네.”
“네. 그리고 많이 뛰려면 체력이 필요하죠.”
“…….”
“오해하지는 마세요. 최고의 선수들을 뽑지 말라는 말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전 절반 이상이 잘못된 선발이라 생각해요.”
지난 아시안 컵을 두고, 한국 네티즌들은 ‘국밥’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뽑혀야 할 선수가 뽑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너무 우려먹었다는 뜻이 조금 더 강했다.
성용이 형이나 재성이 형 또 자철이 형은 마일리지를 생각하면 뽑지 말아야 할 사람이었다.
실제로 세 사람은 아시안 컵 조별예선 2차전 이후 몽땅 사라졌다.
2018시즌 K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윤빛가람/이명주/손준호/최영준/한찬희/한승규와 같은 선수들을 얼마든지 뽑을 수 있었지만, 벤투 감독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대한민국 축구 협회가 우승이 아닌 세대교체를 주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팬들 역시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준우승으로, 성과에 대한 집착은 많이 벗어던진 상태였다.
“기동력과 중원이 약해지면, 축구는 단순해지죠.”
“매우.”
“네. 더구나 점유율을 높이는 상황에서는요.”
“…….”
단순한 전술이 가장 큰 효율을 보이는 경우는 선(先) 수비 후(後) 역습을 택할 때다.
외의 모든 상황에 전술은 선수가 받아들이기에는 쉬워도 상대가 이해하기는 어려울 만큼 복잡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중앙이 튼튼해야 한다.
현대 축구가 제아무리 윙(Wing)과 풀백의 시대가 되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트렌드를 주도하는 팀의 중원이 강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상 윙과 풀백의 중요도가 높아진 것도, 인버티드(Inverted/반대 발)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입되면서부터였다.
측면에서 머무는 선수가 측면에서 플레이할 때가 아니라, 과거라면 측면에서 뛰어야 했을 선수가 중앙에서 우수한 플레이를 보여 주기에 인버티드가 선호받았던 거다.
어떻게 보면 중원의 의미 확장인 셈이었고, 이를 외면한 인버티드 자원의 사용은 단점이 드러날 때가 더욱 많았다.
“아시안 컵에서 중원이 약했기에…….”
“크로스에 의존했지.”
“네. 자연히 톱은 고립되었고요.”
“…….”
“대표팀은 중앙에서 힘을 보태 줄 사람이 필요해요. 준호 형은 첫 번째 대안이 되어 줄 수 있겠죠. 외에도 많은 선수가 K리그에서 당신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어요.”
삼파올리 감독님도 과거 한때 K리거들을 외면했다. 하지만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이후 태도를 바꿔,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그 결과, 황의조와 조현우로 대표되는 선수들이 탄생했다.
민재도 K리그에서의 활약을 통해 계약을 맺은 케이스고, 비록 월드컵에는 승선하지 못했지만 테스트 과정에서 수많은 K리그 선수들이 본인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애석하지만, K리그의 선수들은 리그에서 뛸 때보다 대표팀에서 뛸 때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진출하려면,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필수적이다.
여전히 유럽에 있어 동북아시아 리그는 축구의 변방과도 같은 곳이었고, 거기를 통과하여 대표팀에 뽑혀야 비로소 본격적인 스카우트 작업이 들어갔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붙잡는 감독은, K리그 선수들에게도 열린 마음이어야 한다.
당장의 실력은 유럽 선수들이 더 나은 것도 사실이지만, 지난 아시안 컵과 같은 상황이라면 국내파가 더 좋은 선택이 된다.
한데 벤투 감독님은 K리그 선수들의 활약을 꾸준히 외면했고, 동기를 잃어버린 K리그 최고의 선수들은 어차피 대표팀에 뽑히지 못할 거라면 돈을 쫓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나마 성용이 형이 [“한국의 캡틴은 중국에서 뛰지 않는다.”]며 한껏 자긍심을 불어넣는 발언을 해 중국 진출 의지를 꺾었지만, 그 효과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서, 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감독님을 설득해야 했다.
대한민국 축구와 K리그는 벤투 감독님이 한국 대표팀을 떠난 뒤에도 계속될 테니까 말이다.
“저는 특정 선수를 추천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든 게 아니에요. 감독님이 진심으로 대한민국 축구를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K리그는 유럽으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어야 해요. 중국이나 일본이 아니고요.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나요?”
“…….”
딸깍-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은 중요한 길목에 놓여 있다.
마치 2002 한일 월드컵 직후와 같다.
업적에 들뜬 사람들은 대표팀을 향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져 있고, 그것을 충족시켜야 하는 감독은 매 순간 과거의 망령과 맞서 싸워야 했다.
다가오는 9월, 나는 대표팀에 복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망령을 떨쳐 내고 싶었다.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은 이미 과거의 일이다. 중요한 것은 2020 도쿄 올림픽과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이고, 우리는 그것을 미래라고 부른다.
그리고 난 그 미래로 향하기 전에.
“당신의 비전을 제게 보여 주세요.”
“…….”
파울루 벤투 감독님으로부터, 미래를 향한 비전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2019 AFC 아시안 컵을 포함한 지난 3월 평가전의 모습은 아니었다.
K리그와 세계 각지에는 지금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을 겨냥한 젊은 재능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만약 앞으로도 그들의 땀이 외면받는다면, 나는 ‘검은 양(Black Sheep)’을 자처해서라도 벤투 감독님을 자리에서 쫓아낼 의향이 있었다.
축구는 나의 모든 것이고, 대한민국 대표팀 역시 그중 큰 조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침묵한 벤투 감독님이 어느새 또 비어 버린 와인 잔을 매만지다가 그것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한 잔 더 주게.”
“네.”
마지막 잔이 될 술이 다시 따라지고, 잔을 빙빙 돌리다 입가로 가져간 벤투 감독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약속하듯 한마디를 전해 왔다.
“조직을 재편하겠네.”
“?! 네!”
“그렇군. 자네. 아니, 자네의 나라에 중요한 건 2022 월드컵이었어. 그때가 되었을 때 최고의 실력을 발휘해 줄 친구들이, 지금 내가 뽑아야 할 녀석들이겠지.”
“네! 제 말이 바로 그거예요.”
“난 언제나 고집이 셌어. 그것 덕분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타인을 상처입히기도 했지. 가정을 가지면서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나 보군. 알겠네. 좀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지.”
성숙한 태도를 보여 주는 벤투 감독님의 앞에서, 나는 이제야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무례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계획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앞으로 감독님과 함께하게 될 나날을 기다리겠다고 전했다. 이는 내 진심이었고, 다행히 그것은 잘 전달된 것 같았다.
“괜찮다면 오늘, 자고 가도 되겠나?”
“그럼요. 물론이죠. 손님 방이 비었어요.”
“잘됐군. 이대로 호텔로 돌아가기엔 어쩐지 아쉬워서 말일세. 그나저나, 어떤가? 1990년대의 조르제 제주스가 어떠한 남자인지는 궁금하지 않나?”
“완전요. 술을 더 가져올까요?”
“아니. 이젠 나도 음료가 좋겠어. 탄산수는 있나?”
“바로 대령하죠.”
리스본과 SL 벤피카, 그리고 조르제 제주스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파울루 벤투 감독님과 난 어렵지 않게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제법 늦은 시각까지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고, 서로의 방으로 들어갈 땐 훈훈한 인사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그럼, 잘 자게나.”
“네. 내일 아침은 드실 거죠?”
“그러지. 기대하겠네.”
“네. 그럼, 내일 뵈어요.”
딸깍-
벤투 감독님이 손님 방 안으로 들어서고, 뿌듯함을 느끼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나는 중간에 걸터앉아 두터운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집 주변의 전경을 감상했다.
당장 소쩍새가 울어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미소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역시 난…….’
클럽도 내게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한민국 대표팀 역시도 나의 축구에 있어서는 중요한 부분이다.
나를 응원하는 5천만의 사람들.
그들이 내게 보낼 함성을 기대하며, 나는 복귀를 향한 의지를 조금 더 다져 나간다.
“아.”
그런데 잠깐.
내가 복귀 후 스트라이커로 뛴다는 걸 말했던가?
“…….”
현재 한국 대표팀엔 스트라이커가 필요치 않다.
어떻게 보면 가장 확실한 포지션이다.
“에라 모르겠다. 그때 생각하지 뭐.”
괜히 머릿속에 복잡해져 생각을 멈추기로 한 나는,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워 마저 남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고 있음에도, 다리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