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046)
1013화 Always (3)
2019년 10월 17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더 퍼스트 팀 센터.
평양 원정에 따른 정신적 피로감을 간직한 채로, 나는 다음 있을 크리스털 팰리스 원정을 준비했다.
모든 팀이 입 모아 말하는 까다로운 경기다.
셀허스트 파크 경기는 언제나 쉽지 않다.
물론 전력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게 사실이지만, 문제는 현재 팀의 사정이다.
“니코가 뛸 수 없어?”
“응. 경고 누적이잖아.”
“아- 그랬구나.”
전날 컨디셔닝 때, 지뉴와 군도가 각각 몸의 불편함을 호소해 왔다. 당분간 사흘 간격으로 꾸준히 경기가 있는 만큼, 펩은 이 둘을 다음 경기 출전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민재와 니코가 다음 경기 센터백 조합으로 출전할 거로 생각했었는데, 니코 역시 경고 누적 결장 상태다.
“존이 출전할 수 있을까?”
“글쎄. 교체라면 어쩌면? 평소 펩의 성향으로 봤을 때 선발은 쉽지 않을 거야.”
“……잠깐 있어 봐.”
“응? 어디 가?”
“펩을 만나러.”
내가 공격 포지션으로의 전환을 꾀했던 건, 팀 사정상 그것이 가장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부상 이후 나의 신체적인 능력은 과거의 70~80% 수준이란 느낌이었고, 그것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데 있어 공격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본래 내가 공격수 외에 생각하던 포지션은 센터백.
마찬가지로, 많이 뛰지 않아도 되는 위치다.
그렇지만 리크/존/니코, 그리고 민재가 있는 센터백은 내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반면 공격 쪽은 가진 자원에 비해 빈틈이 많았다.
제주스는 지난 시즌 xG(기대 득점) 부분에서 리그 최하위권 수준을 기록했고, 마레즈는 실패한 영입이란 이야기가 많았으며 쿤은 시즌 전체를 풀타임으로 뛸 나이가 아니었다.
그나마 가장 젊고 건강한 스털링마저도 기복이 큰 유형이었기에, 내가 공격진에 힘을 보태는 일은 개인적으로도 또 팀을 위해서도 최선의 판단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니코는 프리미어리그에서 5경기 이상 출전한 수비수 중 가장 나쁜 지표들을 찍고 있으며, 리크는 장기 부상 중이고 스톤스도 시즌 전부터 자잘한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지뉴를 센터백으로 쓰거나, 컵 대회에서는 EDS 소속 선수를 투입하는 등의 변칙을 가용 중이다.
똑똑똑-
“?”
펩의 사무실 문을 노크했을 때, 안에는 마넬 에스티아르테가 함께였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마넬을 펩이 붙잡는다. 어정쩡한 자세로 있다가 다시 소파에 앉는 마넬을 보며, 난 펩에게 안에 들어가도 되는지를 물었다.
대답 없이 손을 까닥인 펩이 날 감독실 안으로 불러들인다. 우린 아직, 울버햄튼전 때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혹시 팀에 센터백이 필요하다면, 저도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려고요. 공격수로 뛰겠다곤 했지만, 팀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래. 마음은 고맙게 받지. 그게 단가?”
“……네. 일단은요.”
“알겠네. 고려해 보도록 하지.”
한국에서 통화를 나눴을 때보다, 지금 펩이 내게 하는 목소리가 훨씬 더 차갑다.
여전히 감정이 상한 상태인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A매치 주간 이전의 일을 매듭짓지 않는 한 똑같을 거라는 거다.
“후우~”
계속해서 삐걱거리는 펩과의 관계는 큰 문제다. 난 그가 나를 믿어 주길 바라고, 그 역시 내가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탁, 탁, 탁, 탁.
펩의 사무실 근처에서 답답하게 발을 구르던 나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식당에 내려가기로 했다. 계단을 밟으면서 생각한 건, 예전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이다.
아니, 그보다.
‘내가 변한 걸까?’
내가 다시 피치로 돌아오면 전부 끝날 거라고 믿었다. 모든 게 이전으로 돌아갈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위에 문제가 잔뜩 있다.
아무래도 2년 전 모스크바에서 당한 부상은, 생각보다 더 많이 내 삶을 바꾸어 놓은 것 같다.
1년이란 긴 공백과 함께.
***
2019년 10월 19일. 런던 SE25 6PU, 잉글랜드. 홈스데일 로드. 셀허스트 파크 스타디움(Selhurst Park Stadium. Holmesdale Rd. Selhurst Park Stadium).
.경기 시작 20분 전
크리스털 팰리스 0 : 0 맨체스터 시티
&Match-Up`s Best Eleven(맨시티/상대팀)
&Tactics(맨시티/상대팀) : 4-3-3/4-4-2
GK ? 에데르송 / GK ? 웨인 헤네시
RB ? 키런 트리피어 / RB ? 조엘 워드
CB ? 김민재 / CB ? 제임스 톰킨스
CB ? 로드리 / CB ? 개리 케이힐
LB ? 주앙 칸셀루 / LB ? 파트릭 반 안홀트
DM ? 올루프 뫼르크 / RM ? 셰쿠 쿠야테
CM ? 다비드 실바 / CM ? 제임스 맥아서
CM ? 케빈 더브라위너 / CM ? 루카 밀리보예비치
RW ? 베르나르두 실바 / LM ? 제프리 슐루프
LW ? 라힘 스털링 / ST ? 윌프레드 자하
ST ? 김다온 / ST ? 조던 아유
.
.
중앙 수비수 부재에 따른 펩의 선택은 로드리를 센터백으로 내세우는 것이었다. 올루프라는 또 다른 6번(DM)이 있음을 고려하면, 발상 자체는 괜찮은 것이었다.
문제는 로드리가 센터백으로 뛰어 본 경험이 없다는 건데, 펩은 그의 실력을 믿는 듯했다.
다만 걱정인 건, 그의 최근 컨디션이다.
프리 시즌 올루프가 부상을 당하고 센터백이 줄줄이 터져 나가면서 지뉴가 수비로 내려서게 되자, 자연스레 그 부담이 로드리에게 전가되었다.
모두가 로테이션을 가져가는 동안에도 꾸준히 출전해 왔는데, 이번 A매치 주간 이후엔 다소의 프로감을 느끼는 듯했다.
한국에서 누나가 보내 준 로열젤리와 홍삼 등을 로드리에게만 따로 선물한 건, 전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다리는 괜찮아? 통증은?”
“뛸만해. 세르토리가 잘 봐줬거든.”
“그가 최고지.”
“응. 정말 그렇더라.”
팀 역시 로드리가 과부하 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라, 마크 세르토리를 전담시키다시피 하여 각별하게 몸을 챙겨 주고 있다.
다행히 현재 로드리는 괜찮은 것 같았고, 난 이를 다행이라 여기며 펩의 등장을 기다렸다.
잠시 뒤, 코치들과 함께 등장한 펩이 우리의 앞에 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셀허스트 파크 원정은 쉽지 않다.
“힘든 상대다.”
“…….”
“그들은 작년에 우리를 3:2로 꺾은 전력이 있다. 그것도 에티하드에서 말이다. 로이 호지슨은 이 세계의 베테랑이다. 다소 구식이지만, 동시에 여우 같은 남자다. 그의 팀은 언제나 심리적인 허점을 찔러 온다. 따라서 우린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금방 펩이 말했던 것처럼, 크리스털 팰리스는 작년 에티하드 스타디움 경기에서 우릴 3:2로 꺾었다.
당시 우리는 7:3의 압도적인 점유율 우위를 가져갔지만, 전통적인 Big&Small 전술을 바탕으로 한 세 차례의 역습을 버텨 내지 못하고 몽땅 실점하며 패배하고 말았다.
로이 호지슨은 당시 우리의 약점이었던 왼쪽 수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는데, 그날은 주앙이 최악의 하루를 보냈던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주앙의 각오가 남달라 보인다.
지난 3월 복수 땐 벤치를 지켰기 때문일 거다.
“오늘 네가 수비를 도와줘야 해.”
“그래. 그럴 거야.”
“응. 부탁할게.”
아까 확인했던 오늘 크리스털 팰리스 선발 명단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안드로스 타운젠드가 벤치에서 출발을 한다는 것이었다.
로이 호지슨이 쉽게 전형을 바꾸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약간의 변칙을 들고나온 것처럼 보인다.
제프리 슐루프가 왼쪽 측면을 지킬 거란 사실은 당연하고, 그렇다면 윌프레드 자하에게 오른쪽 측면을 맡기면서 남은 세 명의 미드필드를 주앙으로 밀어 보낼 것이다.
4-4-2이지만 사실상 4-5-1이라는 건데, 중앙에서의 밀집을 어떻게 뚫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일단 펩은 그 답을 측면에서 찾고자 했다.
그래서 날 측면으로 보냈다.
“좋아, 잘 들어!!”
팀 토크가 전부 끝나고, 좁은 원정팀 드레싱 룸 가운데로 선수들을 불러 모은 다비드가 필승의 의지를 다진다.
현재까지 우린 리그 7승 1패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리버풀이 8승 무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단 3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더 삐끗하게 되면 그 차이는 6점이 되고, 그때부터 일은 몇 배는 더 힘겨워진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그게 바로 내가 살아가는 세계고, 그런 긴장감 속에서 나는 오랜 시간을 보내어 왔다.
스트레스가 차오르는 나날이지만, 언제인가부터는 그마저도 순수하게 즐겼던 것 같다.
‘잊고 살았던 게 많네.’
복도로 나서기 전, 난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늘 해 왔던 세 단어를 되뇌었다.
‘나는. 나를. 이긴다.’
그리고 그 세 마디가 끝났을 때, 난 완전히 준비되어 있었다.
***
.전반 20분
크리스털 팰리스 0 : 0 맨체스터 시티
예상한 대로, 크리스털 팰리스는 단단하면서도 끈질긴 모습을 보여 줬다. 감독이 바뀌어도 이곳은 늘 올드스쿨이었는데, 로이 호지슨까지 오고 나니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이들은 거친 플레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숨이 턱밑에 닿을 때까지 달리기를 멈추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런 투지(鬪志)의 중심엔 개리 케이힐(Gary Cahill)이 있다.
2004년부터 프로 생활을 해 온 백전노장이자, 축구를 향한 열정으로 도배가 된 남자다. 첼시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중심이었고, 잉글랜드 대표로서도 빛을 보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이 남자는.
“여긴 네 놀이터가 아니야, 이 머저리야.”
입담이 꽤 고약하기로 유명했다.
“풀백으로 뛰다가 공격수로 바꿔? 발롱도르 몇 개쯤 타니까, 네가 대단한 줄 알지?”
“…….”
“넌 오늘 내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해. 그거 알아?”
“……질문 하나만 할게요.”
“뭐?”
“어제 혹시 부부싸움이라도 했어요?”
사적인 자리에서, 개리 케이힐은 대체로 신사답고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 아까 복도에서만 해도 내게 다가와 발목을 걱정하며 잘 돌아왔다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지금 하는 짓은 불한당이 따로 없었는데, 이중인격자처럼 보이는데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개리 케이힐이 축구 선수기 때문이다.
때때로 축구 선수들은 본인들의 일터에서 가면을 쓴다. 케이힐도 지금 가면을 쓰고 있다.
이것을 피치 밖으로 끌고 나가지 않는 남자가 현명한 것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똑같이 행동하는 게 똑똑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니면 나이를 먹더니 아랫도리가 헐거워져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건 아니죠? Jesus, Gary. 만약 그런 거라면 저는 정말 슬플 거라고요.”
“…….”
“Come on-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저도 풀백이었다고요.”
“쯧-”
욕설 등으로 하는 심리전은 내가 평생 해 왔던 거다. 수비수는 때때로 저질스러운 농담이나 말로 공격수가 평정심을 잃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상대가 실수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선데, 100번의 기회 중 한 번만 살리면 되는 공격수와의 불균형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렇다는 말은 고로, 개리 케이힐이 나의 심리를 흔들고자 하는 말들은 일절 소용이 없다는 거다.
무엇보다.
‘북한이 더 셌어.’
지난 평양 원정에서 북한 선수들에게 들었던 말에 비하면, 지금 케이힐이 내게 하는 심리전은 유치원 수준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최소한 불구를 만들어 버리겠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목숨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했다.
20분 가까이 케이힐의 심리전을 듣고 있던 나였지만, 이젠 들어 주기 어렵다 싶어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경기의 상황에 집중한다.
.
(정지현) – SPORTV 해설위원
“맨체스터 시티가 경기를 주도하곤 있지만, 크리스털 팰리스의 저항이 상당히 거셉니다.”
(황은석) – SPORTV 캐스터
“점유율에서 약 7:3의 우위를 가져가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입니다. 크리스털 팰리스는 아직 유효슈팅이 없습니다. 맥아서가 앞쪽으로. 하지만 바로 김민재가 끊어냅니다.”
.
파트너가 센터백 초보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민재가 어느 때보다도 집중력을 높이고 있다.
아찔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로드리의 실수를 두 번이나 좋은 태클로 커버했고, 수비진을 진두지휘하면서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중이다.
저건 펩도 또 나도 예상치 못했던 거다.
팀 사정으로 인해 경험치를 강제로 먹게 된 탓인지, 민재는 시티를 대표팀처럼 편안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 같다.
본래 워낙에 잘하는 친구다.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며 처음 봤을 때부터 언젠가 빅리그에서 뛰게 될 거로 생각했고, 재작년 후반기부터 소튼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서는 성공을 확신해 왔다.
190cm/88kg의 탄탄한 체격. 탈(脫)아시아급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힘. 순간 최고 시속이 35.0km/h에 달할 정도로 발 역시도 빠르다.
후방빌드업이나 선택을 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아쉬웠던 게 사실이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겨우 스물둘.
민재는 분명 앞으로 더 성장할 거다.
“올루프!!”
팡-
아래로 내려서 올루프에게 패스를 전달받아, 공을 옆으로 파고들던 다비드에게 연결한다.
이후 두 번의 패스가 더 진행되며 파이널 써드로의 진입까지는 어떻게 성공했지만, 바로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팰리스의 박스 안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최근 우리를 상대해온 클럽들은 공격적인 전략으로 무장해 맞섰는데, 팰리스는 정확히 그 반대로 하고 있다.
오늘 로이 호지슨은 두 명의 공격수마저 페널티 박스 주변으로 끌어내리곤, 우리가 파이널 써드로 볼을 보냈을 때 남은 8명의 필드 플레이어를 박스 안에 밀집시켰다.
4-4-2에서 4-5-1로 변화를 줄 거란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오늘 크리스털 팰리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다.
두 줄의 플랫(Flat)을 통해 박스 주변의 공간을 잠그고, 파이널 써드 위로 볼이 움직이면 페널티 박스 안팎을 본인들의 영역으로 지정해 단단히 틀어막았다.
이를 뚫고자 우린 피치를 넓게 쓰고 있지만.
팡-!
‘이런!’
측면에서 보내어지는 크로스는 번번이 내 앞에서 팰리스의 수비에 커트를 당하고 있다.
민재의 활약으로 수비 불안을 잘 극복해 내곤 있지만, 기대만큼 공격이 잘 풀리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계속 측면으로 이동해 스위칭을 해 봐도, 결과는 썩 신통치 않다.
어느새 전반전은 30분을 향하여 가고 있다.
답답함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촤?악!!
“윽!”
존경하는 베테랑을 모욕한 것에 화라도 난 건지, 제임스 톰킨스(James Tomkins)가 옆쪽에서부터 거칠게 태클을 걸어왔다.
난 그대로 피치에 나자빠졌고, 오른쪽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작게 비명도 내질렀다. 본능적으로 지금의 태클이 고의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심 앤쏘니 테일러가 옐로카드를 꺼내 든다.
.
(정지현)
“지금은 퇴장을 줘야 하지 않나요? 김다온 선수의 오른쪽 발목을 정확히 겨냥해 들어왔습니다. 왼쪽이 아니길 천만다행이네요. 한국인들이라면 트라우마가 찾아올 만한 장면이었습니다.”
.
“헤?이!!! 완전한 고의였잖아!!!”
오른쪽 발목이 아파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펩이 나를 위해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는 게 기뻤다면 조금 이상할까?
그렇지만 정말로 그랬다.
나는 펩이 나를 위해서 소리치고 있다는 게 기뻤다. 그래서 난 인상을 찌푸리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베르나르두가 손을 뻗어 주려고 왔지만, 그것을 공손히 거부했다.
“내 스스로 일어나는 게 나아.”
“낫다고? 뭐가?”
“펩에게. 그는 내가 스스로 일어난 것을 보곤 목소리를 멈출 거야. 보나 마나 머리를 긁적이면서 뒤로 돌아서겠지.”
“…….”
내 말이 맞았던 건지, 벤치를 슬쩍 돌아본 베르나르두가 입술을 삐죽이면서 어깨를 으쓱해 왔다.
“말했지? 내 그렇대도.”
“너 잘났다. 다린 괜찮아?”
“응. 어차피 오른쪽이야.”
“Amigo.”
“?”
“그게 아니잖아.”
“…….”
아내도 그렇고 또 베르나르두도 그렇고. 가끔은 내가 이들에게 너무 무신경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쳤던 것도 나고 그것을 극복해야 했던 것도 나지만, 지금은 오히려 주변이 나보다 더욱 큰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럴 때면.
“미안. 난 정말 괜찮아.”
“……그래.”
나는 늘 같은 말로, 이들을 안심시켰다.
지금도 베르나르두는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돌아섰다.
그리고 곁으로 다가온 건.
“이봐, 케빈.”
“응?”
“이번에는 내가 찰 수 있게 해 줘.”
“……진심이야?”
“응.”
현재 내가 넘어진 위치는 골대로부터 30M 조금 못 되게 떨어진 지점이다. 대략 27~28M 정도 될 것 같았는데, 보통이라면 한 번 거쳐서 가는 위치였다.
하지만, 2년 전까진 여기는 나의 영역이었다.
“그래. 알았어.”
내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본 케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서고, 난 바닥에 놓여 있던 볼을 집어 들어 물기를 유니폼 상의로 닦아 내기 시작했다.
전처럼 프리킥을 찰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후, 난 세트피스를 동료에게 양보한 채 개인 훈련을 이어 왔다.
그러다 그 성과를 지난 A매치 주간에 볼 수 있었고, 거기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난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후우~”
신중하게 볼을 놓아둔 뒤, 정면을 보며 호흡을 고른 후 크게 발을 뒤로 내디딘다.
발등을 가져다댈 위치는 공을 놓아둘 때 이미 확인해 두었다. 그리고 호흡을 고를 때 슈팅을 보낼 위치도 정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제대로 할 수 있느냐다.
“…….”
고개를 살짝 돌려, 나는 펩을 바라본다.
벤치에 앉은 그가 이쪽을 보고 있다.
‘We have trust issue, Pep.’
신뢰라는 건 쌓기는 어렵고 깨지기는 쉽다. 그리고 한 번 깨진 신뢰는 다시 이어 붙일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처음부터 다시 쌓아 나가는 것이지만, 그건 처음보다 더 어렵다.
펩도.
또 나도.
우리는 우리가 각자 떠안은 상처 때문에 자기 자신을 믿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난 지금, 이 프리킥을 처리함으로써 내가 한 발 앞으로 나아갔음을 증명하길 원한다.
어느 때보다 신중히 전방을 주시하며, 나는 늘 해 왔던 대로 발을 앞으로 가져간다.
하나.
둘.
‘그리고 셋.’
퍽-!!
비록 전처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전에는 없었던 궤적을 그린 축구공은 크리스털 팰리스의 골대를 향해 좌우로 휘청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