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066)
1033화 Hasta Luego (4)
2019년 12월 23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퍼스트 팀 피치.
크리스마스이브 하루 전, 우린 맨체스터 아동 병원을 방문하기에 앞서 훈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난.
“뭐??”
“어제, 리오가 우리 집에 왔었다고요.”
“……내가 아는 그 리오 말인가?”
“넵. 그 리오가 맞아요.”
“……잠깐 따라오게.”
표정이 심각해진 펩이 나를 한쪽으로 이끌고, 한창 걷던 와중 무언가가 생각난 그가 목이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벗으며 로돌포에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로돌포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훈련을 맡아 달라고 소리쳤다.
다시 뒤를 돌아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한 펩은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느껴졌다.
“화나셨나요?”
“그래.”
“어째서죠?”
“왜 내게 말을 하지 않았지?”
“리오가 원치 않았거든요.”
“뭐??”
훈련용 피치에서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길 중간쯤에서 발을 멈춰선 펩이 나를 돌아봤다.
“저도 통보를 받은 것뿐이에요.”
“……자세히 말해 보게.”
“네. 일단 저쪽으로 갈까요? 여긴 사람이 많으니까.”
“…….”
우린 우선 자리를 옆쪽 한적한 곳으로 바꿨다.
그런 뒤에, 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나흘쯤 됐을 거예요.”
집에서 옥스퍼드와의 카라바오 컵 경기를 TV로 시청하고 있을 때, 곁에 놓아두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리오로부터 걸려 온 것이었고, 난 바로 손을 뻗어 화면을 매만졌다.
[“올라, 리오. 어쩐 일이에요?”] [- 일정이 어떻게 돼?] [“네?”]대뜸 일정을 물은 리오는 22일에 양 팀 모두 휴식을 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타부타 설명 없이 우리 집을 찾을 거라고 통보를 해 왔다.
다만 가족들은 빼고 자신만 찾을 거라고 했는데, 비밀스럽게 찾는 것이니 사람은 되도록 없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난, 믿을 만한 친구만 집으로 초대했다.
“리오는 당신을 초대하는 걸 원치 않았어요.”
“어째서지?”
“그러면 일이 너무 복잡해질 테니까요.”
시즌을 마친 후 클럽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리오이긴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일방적인 계약 해지 사실을 통보한 후 리오는 공식적으론 칩거하는 중이었고, 집으로 찾아온 바르세로나의 관계자를 쫓아내는 건 그의 아버지 호르헤 메시의 몫이었다.
경호원 두 사람과 함께 제3의 명의로 빌린 전용기를 타고 맨체스터로 날아올 때까지, 메시는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 상태였어요. 무척 혼란스러워 보였죠.”
“…….”
“당신이 왔다면, 리오는 겁을 먹고 도망쳐 버렸을지도 몰라요. 무슨 뜻인지 알죠? 그에겐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일이 죽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일 거라는 걸 말이에요.”
길게 한숨을 내쉰 펩이 한 손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생각이 복잡해질 때면 나오는 버릇으로, 나는 그가 일종의 배신감을 느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그냥 친구끼리의 만남이었다.
FC 바르셀로나를 떠나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는 것을 확정하기 위한 자리가 아닌, 친한 친구끼리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서로의 근황을 말하는 자리에 더 가까웠단 거다.
물론 그 뒤에 숨어 있는 뜻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다음 날에 보고하는 것이다.
“곧, 뉴스가 나올 거예요.”
“뉴스라고?”
“네. 리오가 어제 아침, 바르셀로나에 이번 시즌이 끝난 뒤에 계약을 해지한다는 조항을 발동하겠다고 말했거든요. 바르셀로나는 이를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하겠지만, 그는 곧 모두가 알게 될 거라고 했어요.”
“……흘린다는 말이로군.”
“네. 그렇겠죠.”
어제 나는 단 한 번도 내 입으로 먼저 리오에게 함께 맨시티에서 뛰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베르나르두가 증인이 되어 줄 텐데, 영입 활동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고 장담한다. 시티 합류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리오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난 그것을 그저 듣기만 했고, 맨체스터에서 살아가는 것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던진 것 정도가 전부였다.
예를 들어.
“좋은 날씨는 기대하지 말라고 했죠. 하지만 근처에 좋은 학교가 있다고는 말했어요. 영어가 서툰 그의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리오는 바로 돌아갔나?”
“네. 딱 세 시간만 머물렀죠.”
“그렇군.”
격양되었던 감정이 진정된 펩이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와 나를 훈련장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퍼스트 팀 센터 건물로 들어섰다.
아마, 식당으로 향할 것 같다.
“…….”
걸어가는 길, 난 펩에게 밝히지 않은 전날 메시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가족들의 반응은요?”] [“아이들은 여전히 싫어하고 있어.”] [“친구가 다 거기에 있으니까요.”] [“응. 하지만 아내는…….”] [“?”] [“그녀도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걸 싫어해. 그렇지만, 너랑 함께 뛰는 거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하더라.”] [“?!”] [“하하. 아까 보여 줬던 네 방. 나도 그것과 비슷한 방이 있거든. 네게 받은 유니폼 하며, 이런저런 것을 모아 둔 장소가 있다는 거야.”]과거에도 또 지금도, 리오는 내가 가장 선망하는 대상이다. 그와 대등해지고자 하는 게 나의 목표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림자를 쫓고 있다.
이번 달 초 리오가 여섯 번째 발롱도르를 손에 넣으면서, 우리의 격차는 두 걸음에서 세 걸음으로 벌어졌다.
한데 그런 사람이, 나와 관련된 물품이나 사진 같은 것들을 모아 둔 방이 따로 있다고 말해 온 것이다.
현재는 ‘나이키’와 새롭게 계약했지만, 2년 전까지 같은 ‘아디다스’였던 리오는 나의 이름을 달고 출시된 시그니처도 전부 집에 모아 두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 우린 한참 배를 잡고 웃었다.
[“이번 발롱도르는 운이 좋았어.”] [“운도 실력이죠.”] [“하하. 너라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았지. 하지만 정말이야. 이번 발롱도르는 운 좋게 따낸 거야. 파리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던 날, 그때 대강 실감이 나더라고. 더는 내가 예전의 수준으로 뛸 수 없다는 걸 말이야. 최근 바르셀로나의 성적이 그걸 증명하고 있어.”]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최고예요.”] [“뭐, 그럴 수도. 그렇지만 봐. 4년 동안 빅이어가 없는 남자를 어떻게 최고라 부를 수 있겠어? 안 그래?”]나를 돌아보던 리오의 눈빛은 무척 서글펐다. 그제야 난 이 리오가 지쳤으며, 영원할 것 같았던 불꽃이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한국 나이로 벌써 32살.
축구 선수로서 여전히 전성기에 있는 나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리오의 마일리지는 35살 선수 그 이상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더 보았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준 클럽을 떠나게 되는 아픔과 빅이어를 획득하지 못하는 아픔 중, 무엇이 더 축구 선수에게 치명적인지를 말이다.
어떠한 축구 선수들은 트로피보다 특정 도시와 클럽 또 응원하는 팬들을 사랑하지만, 우리와 같은 욕심쟁이들은 그러한 것과 트로피를 모두 손에 쥐길 원한다.
굳이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아마 리오와 나는 트로피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린 늘 최고이길 원한다.
왜냐하면 최고여 봤으니까.
“응? 어디 갔다 오는 거야?”
“그냥.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왔어.”
“??”
다시 아무렇지 않게 훈련장 안으로 들어서며, 동료들과 함께 훈련 세션을 이어 나간다.
‘최고라…….’
서로 다른 이유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 있는 리오와 나. 그런 우리가 손을 잡는다면 과연, 둘 중 누가 최고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될까?
기왕이면, 그건 나였으면 한다.
같은 팀에서 뛰는 건 좋지만.
‘그건 내 자리거든.’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
【2시간 뒤】 맨체스터 M13 9WL, 잉글랜드. 옥스퍼드 로드. 로열 맨체스터 아동 병원.
시티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찰칵, 찰칵.
찰칵.
“가장 끝에 계신 분들! 죄송하지만, 조금만 비켜 주시겠어요! 이번엔 선수들끼리만 찍겠습니다!”
찰칵.
병원 바깥 한쪽에서 사진 촬영을 끝마친 후, 우린 삼삼오오 흩어져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 정해진 장소로 이동했다. 각자가 찾을 병실은 손에 쥐어진 노트에 다 적혀져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일정이 엉망이 된다는 걸 과거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시티의 사람들이다.
“헤-이! 환영해요!!”
병원으로 들어서자마자, 미란다 로디(Miranda Lordi)가 사람들을 지나쳐 내게로 와 포옹을 해 왔다. 미란다는 이곳의 수간호사로, 나와는 조금 안면이 있다.
당연히 자신을 포옹해 줄 것으로 생각한 칼둔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 사이, 내 허리에 손을 두른 미란다가 모두를 돌아보며 찾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잠시 뒤, 곁으로 온 칼둔이 미란다가 내게만 특별한 애정 표현을 해 온 이유를 묻는다.
“가끔 여길 들르거든요.”
“들른다고?”
“네. 아마나의 일 이후로요.”
세상의 모든 아픈 사람들이 마찬가지지만, 그중에서도 어린아이의 고통은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난 2018년 1월부터 매달 25,000유로를 이곳에 기부해 왔고, 가끔은 이곳을 찾아 간호에 지친 가족과 스태프를 위해 음식을 대접하곤 했다.
그리고 최근 아내가 임신한 후엔, 좀 더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자선활동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다비드도 저랑 함께하고 있어요.”
“왜 알리지 않았나.”
“뭐, 알릴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요?”
“아니. 이건 대단한 일이 맞아.”
“하하. 이제라도 알게 되셨으면 된 거죠.”
“이런, 세상에나. 자네 두 사람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어. 먼저 가 보게. 난 급하게 상의를 좀 해야겠으니까.”
“그러세요. 그럼 전 이만.”
Team CFG가 결정적이기는 했지만, 아내와 대화를 나눌 때면 아이를 갖는 것에 관한 생각이 바뀐 첫 번째 계기는 다비드의 모습을 보면서였다.
지금은 건강해진 마테오는 미숙아로 태어났었고, 다비드는 가족을 위해 클럽을 잠깐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린 셀레브레이션을 바친다거나 미숙아를 도울 수 있는 정보를 조사해 메시지로 전달하는 등. 동료가 아닌 가족으로서 다비드의 곁을 지켰다.
본래 2017/18 시즌 이후 클럽을 떠나려고 했던 다비드는 그것 때문에 팀에 더 남기로 했고, 이 모든 모습은 내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동료가 진정으로 어려울 때 곁에 선다는 것. 그리고 그런 그를 지지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나를 시티(City)이자 파랑(Blue)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도 이렇게 될 수 있어.’
리오 역시 나처럼 시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나는 노트의 가장 위에 적힌 호실부터 순서대로 방문을 시작했다.
어린아이나 그 부모님과 함께하는 게 어색한 이들은 단체로 움직일 예정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나처럼 혼자서 병실을 방문한다.
똑똑똑-
딸깍.
“헤~이!!”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 이런 세상에나. 포옹해도 되나요?”
“그럼요. 엉덩이를 만지실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돼요?”
“아뇨. 그건 아내의 허락이 필요해요.”
종종 아영이와 데이트할 때 듣는 말이지만, 나이를 먹어 가며 능청스러움이 더해졌다.
전이라면 받아치지 못했을 말들이나 농담에도, 요즘은 당황하지 않고 능글맞게 대처하고 있다. 보고 배운 게 무섭다고, 많은 사람과 지내다 보니 이런 게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오~ 정말 귀엽네요. 몇 살이죠?”
“16개월요. 공주님이에요.”
“그렇게 보여요.”
코와 목에 인공장치를 연결한 아이를 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고자 방문한 날에 눈물을 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난 시종일관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만났고, 클럽이 준비한 선물과 사인을 전하거나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병실을 계속 탐방했다.
가장 슬펐던 건 작년에 보았던 친구를 또 보는 일이었는데, 나의 경우에는 그게 벌써 2년 전이었다.
“오~ 내가 다 들었지. 네가 이 병원의 보스라며?”
“네. 제가 최고예요.”
“그렇고말고. 하이파이브를 할까?”
“……아뇨. 싫어요.”
“Come on, 부끄러워 말고.”
“…….”
여기 수줍음이 많은 앤퍼니는 벌써 4년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 약간의 발달장애가 있는 데다, 가지고 있는 병 자체가 완치가 어려운 종류라 병원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입원 당시만 해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지금은 보란 듯이 시티의 유니폼을 걸치고 있다.
“비니가 보고 싶어요.”
“그래. 안 그래도, 그와 이야기했어.”
“당신 말고 비니요.”
“헤이, 앤퍼니. 그건 실례잖니.”
“괜찮아요. 앤퍼니가 비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니까요.”
앤퍼니의 어머니를 말리며, 난 다시 아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좋아, 앤퍼니. 만약 나랑 하이파이브를 해 주면, 지금 당장 비니랑 영상 통화를 시켜 줄게.”
“…….”
“진짜야. 오늘 아침에 메시지를 보냈다니까. 그도 너를 보고 싶어 해. 그러니까, 어때? Give me Five.”
짝-
“바로 그거지! 아주 잘했어.”
“……비니가 보고 싶어요.”
“좋아. 잠깐 기다려 봐.”
미소와 함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난 비니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다행히 신호가 울리자마자 연결이 되었고, 곧 화면에서 비니가 나타났다.
– 이게 누구야!! 앤퍼니이-!!!
나를 만났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앤퍼니가 비니와 한참 통화를 나눴다.
내년에는 꼭 퇴원하자는 약속과 함께,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앤퍼니를 자신이 있는 벨기에로 부르겠다고도 말하는 비니였다. 그리고 그런 사이, 난 가족에게 선물을 따로 전달했다.
모두에게 주는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로, 안에는 치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현금이 들어 있다.
“이건 비니랑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아뇨, 아뇨. 이러실 건 없어요.”
“Come on. 힘드시잖아요. 다니엘이 최근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열심히 택시 면허를 준비한다는 것도요. 비니나 저나 앤퍼니를 많이 아껴서 드리는 거니까, 꼭 받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뭐라고 말을 해야…….”
“괜찮아요.”
봉투를 꼭 쥐고 눈물을 흘리는 앤퍼니의 어머니를 달래 준 뒤, 통화가 끝나고 아쉬워하는 아이에게 조만간 또 방문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때도 비니랑 통화할 수 있어요?”
“물론이지. 약속할게.”
“네. 당신이 조금 좋아졌을 수도 있어요.”
“뭐? 하핫-! 그래. 그거 영광이네.”
“Good Bye.”
“잘 지내렴.”
앤퍼니의 병실을 나선 나의 다음 목적지는 마지막 병실이자, 내가 가장 각별하게 여기는 아이가 있는 곳이었다.
이름은 피오 니에토(Pio Nieto).
스페인에서 온 9살 소년이다.
글로벌 무역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가 이곳 맨체스터로 발령이 나면서, 지난 1월 전학을 오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사 후 며칠 뒤 혈액암 진단을 받게 되었는데, 학교에 제대로 적응해 보기도 전에 병원에만 머무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처음 피오를 만난 건 지난 8월로, 그때 아이는 TV에 눈을 고정한 채 게임만 하고 있었다.
똑똑똑-
[피오~ 나 들어간다.] [다온!!] [에-이! 잘 지냈어?] [네!]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안색이 좋잖아. 요즘도 매일 게임만 하는 건 아니겠지?] [하루에 두 시간요?] [뭐, 그 정도야. 수업은?] [잘하고 있어요.] [좋아. 마지막으로, 영어는?]아직도 영어는 어렵다고 답한 피오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는 아이의 어머니 이사벨라와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이 다시 열리고 펩이 등장했는데, 깜짝 놀란 피오가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특이하게도, 이 아이는 선수가 아닌 펩을 우상으로 동경했다.
[네가 피오로구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단다.] [에? 아, 네. 네. 바, 반갑습니다.]잔뜩 긴장해 격식을 차리는 피오를 바라보며, 나는 두 사람이 좀 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며 병실을 나섰다.
이제, 나의 일정은 대충 끝이 났다.
“이보게나.”
“?”
“일정은 다 끝났나?”
“넵. 적힌 곳은 전부 방문했어요.”
“그렇군. 잠깐, 이야기 좀 할까?”
“…….”
손가락을 까닥인 페란 소리아노를 따라, 난 복도에 있는 문을 열고 비상구로 나섰다.
딸깍.
“어제, 자네의 집에 리오가 찾아갔었다고?”
“네.”
“후우- 이건 정말로 큰 문제야. 들키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했나?”
“쉬는 날 친구의 집을 찾은 건데요, 뭐.”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나를 보며, 페란이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하지만 난 오래전에 이미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은 상태다.
결국, 페란이 먼저 백기를 들어 올렸다.
“다음부터는 꼭 우리에게도 말해 줘야 하네.”
“네. 하지만, 다음은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리오가 헤어질 때 이렇게 말했거든요.”
“??”
“Hasta Luego.”
“?”
“정확히는 Nos vemos de nuevo el proximo verano였지만요.”
“!!”
리오가 어제 나를 찾았던 건, 자신이 바르셀로나를 떠나 시티로 합류할 거란 확답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마지막 끝인사에 있었다.
Hasta Luego.
또 보자는 말.
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그는.
[Nos vemos de nuevo el proximo verano.]내년 여름에 보자고 했다.
난 그게 휴가를 같이 보내잔 뜻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나 역시, 똑같은 대답을 해 주었다.
[“Hasta Luego, Leo.”] [“하하. 그래.”]오래전부터 팀은 리오가 내년 여름 시티로 ‘합류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었고, 이적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리오가 아닌 그의 아버지 호르헤 오라시오 메시의 입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확신은 할 수 없었다.
5:5 정도 되는 확률이었달까?
그러한 상황에서 지금 내가 페란에게 전달한 말은, 그 확률을 8:2 정도 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계약서를 적는 순간까지 100%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교감은 이미 나눴다고 보는 게 옳다. 리오 역시, 내가 이런 식으로 시티에 전달해 주길 원했던 것 같다.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하기엔, 바르셀로나를 향한 애정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쉬는 날 친구의 집을 찾은 것뿐이라는 것을 핑계로, 대신 전해 달란 부탁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거다.
“메리 크리스마스.”
“응?”
“제가 전한 이 내용이 당신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하네요. 그럼 전 이제 가 봐도 되죠?”
“아- 그, 그렇게 하게나.”
“네. 그럼.”
딸깍-
비상구의 문을 열고 다시 복도로 나선 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모습으로 일정을 마치고 모이기로 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2019년 크리스마스.
내게도 또 시티에게도, 큰 선물 하나가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 이곳에 도착했다.
물론, 내용물은 아직이지만 말이다.
그것이 도착하는 건, 내년 여름이다.
‘배송 한번 참 길기도 하지.’
그래도 덕분에, 올 크리스마스는 제법 풍성하다.
***
작가의 말 ? 병원 치료 일정으로 8월 5일은 오후 6시 한편이 업로드됩니다. 8월 5일 정오 분량은 오는 일요일 7일 정오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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