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079)
1047화 Destiny (5)
2020년 3월 20일. 런던 HA9 0WS, 잉글랜드. 웸블리, 웸블리 스타디움.
.경기 시작 2시간 전
맨체스터 시티 0 : 0 애스턴 빌라
&Match-Up`s Best Eleven(맨시티/상대팀)
&Tactics(맨시티/상대팀) : 4-4-2/4-2-3-1
GK ? 클라우디오 브라보 / GK ? 외르얀 닐란
RB ? 키런 트리피어 / RB ? 프레데릭 길베어
CB ? 페르난지뉴 / CB ? 비요른 엥겔스
CB ? 김민재 / CB ? 타이론 밍스
LB ? 올렉산드르 진첸코 / LB ? 맷 타겟
RAM ? 필 포든 / CM ? 마벨러스 나캄바
CM ? 로드리 / CM ? 도글라스 루이스
CM ? 다비드 실바 / RAM ? 아메드 엘모하마디
LAM ? 라힘 스털링 / CAM ? 안와 엘 가지
ST ? 김다온 / LAM ? 트레제게
ST ? 세르히오 아궤로 / ST ? 알리 사마타
.
.
전날 펩이 발표한 선발 명단은 생각과는 살짝 달랐다. 최정예가 아닌 로테이션에 가까운 베스트일레븐이었고, 살짝 동요하는 우리의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거저 얻어지는 건 없다.”]일정 때문이긴 했으나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카라바오 컵에서 뛴 선수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알맹이만 쏙 빼먹으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펩은 이 명단으로도 애스턴 빌라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던 상대 분석과 전술적 지시는 그런 그의 말에 힘을 실어 줬었다.
물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긴 하다.
“Come on, 인상 펴.”
“……내가 무례한가?”
“어쩌면.”
선발 명단에서 제외된 케빈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나와 로드리처럼 카라바오 컵 대부분을 쉬고도 선발로 기용된 사람이 있어서기 때문일 거다.
대놓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너무 뻔했다.
워낙에 솔직한 녀석이니까.
얼굴에 다 드러난다.
“나나 로드리는 운이 좋았던 거야.”
“……특별히 그런 이야긴 아니었어.”
“나도 알아.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하는 거지. 우리가 투톱을 설 때 내가 아니면 쿤과 호흡을 맞추기 어렵잖아. 너도 그걸 잘 알지? 그리고 올루프가 뛸 수 없고 말이야.”
올루프는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서 결장한다. 팀에는 다른 중앙 미드필드 옵션인 군도가 있지만, 두 명의 중앙 미드필드만을 세우는 상황에서의 그는 믿음직한 옵션이 못 된다.
최근엔 아예 10번(AM)으로 포지션을 바꾸려는 모습도 있었는데, 군도의 훈련 매뉴얼이 조금 바뀌었다.
축구 센스가 워낙 탁월한 남자라서, 차라리 공격적으로 나서면 피지컬이 떨어진 부분이 가려질 것도 같았다.
어쨌거나, 나와 로드리가 선발로 투입된 것은 어디까지나 전술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다비드에겐, 마지막 카라바오 컵이잖아.”
“그건 그래.”
다비드도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클럽을 떠나는 게 확정되었다. 지난 마드리드 원정 때, 보드진이 아예 못을 박아 버렸다.
본래 팀은 연수를 제안하며 선수가 아니라 EDS의 코치로서 새로운 동행을 권유했으나, 현역을 관둘 마음이 없었던 다비드가 그것을 사양하며 이별이 확정된 상태다.
‘리더십이 더 중요해졌어.’
다비드가 클럽을 떠나게 되면, 베테랑의 위치에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지뉴와 스콧 정도밖엔 없다. 게다가 스콧은 임대 신분이다.
훈련장에서는 약간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수는 있어도, 오늘처럼 경기가 있는 날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애초부터 팀과 동행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에디나 브라보가 명단에도 오를 수 없을 땐 교체 후보로서 벤치에 몇 번 앉곤 했지만, 말 그대로 몇 번뿐이었다.
“가자. 몸을 풀어 둬야지.”
“응.”
시무룩한 케빈을 일으켜 세우며, 난 곁에 있던 베르나르두와 함께 그라운드로 나섰다.
내 앞에선 온갖 투정을 부리기는 해도, 다른 사람과 있을 때의 케빈은 평소와 완전히 똑같다. 본인의 팀 내 입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시티 내에서 케빈 더브라위너라는 선수의 존재는 대체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필 이랑은 잘 이야기했어?”
“응. 애가 좀 긴장했더라고.”
“그래- 피카딜리에서부터 그래 보이더라.”
“그래서 긴장을 좀 풀어 줬지.”
“그거 잘했네.”
“그렇지?”
“응.”
생에 처음으로 성인 대회 결승전 무대에서 선발로 나선 포든은 런던으로 오는 기차역에서부터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무대에 압도되었다기보다는 본인 스스로의 기대치가 워낙에 높아 거기에 함몰되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런데 베르나르두가 나서서 그런 포든을 달래 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훈련 중 포든의 곁으로 가 녀석의 등을 두드리면서 할아버지를 위해서 꼭 승리하자고 말했다.
포든의 등번호 47번은 녀석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이며,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등번호를 바꿀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47번을 고집하고 있다.
똑똑하고 충성스러운 포든은 팀 전체의 사랑을 얻고 있었는데, 이 녀석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 승리하고 싶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렇게 될 거야.”
“열심히 하면 말이죠. 그렇죠?”
“아니.”
“?”
“잘. 잘 뛰어야지. 넌 평소에도 잘하던 녀석이야. 그러니까, 평소처럼만 해.”
“네.”
고개를 끄덕이는 포든을 보며 미소를 한껏 지어 보인 후, 난 이번엔 웸블리를 돌아보고 있던 민재의 곁으로 다가갔다.
[뭘 보냐?] [와- 웸블리야, 형.] [처음 와 봐?] [어. 내가 또 언제 와 봤겠어.] [하긴. 그래서 긴장되냐?] [긴장? 안 되는데?] [그럴 줄 알았다, 야.] […….] […….]생각할수록 대단한 녀석이다.
다른 포지션도 아니고 센터백으로서, K-리그에서 곧장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한 뒤 소튼에서 1년 반을 뛰며 능력을 인정받고 이젠 시티의 주전 센터백이 됐다.
실력이 쑥쑥 성장하는 게 눈에 보였는데, 본래부터 그만큼 하던 녀석이고 적응을 끝낸 것뿐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도 통곡의 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줬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지단과 벤제마에게서 동시에 인상적인 선수였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훈련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지라, 노력이 보상받는 것 같아서 볼 때마다 그저 흐뭇하다.
[왜 웃어?] [어?] [아니,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고 있어.] [아- 내가 그랬냐?] [아우, 진짜. 소름 돋아.] [야이 씨. 형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내가 누구 보고 배웠는데?] [……설마 그게 나냐?] [그럼, 누구겠어?]대표팀에 있을 때 내가 더 형들에게 심했다고 말하는 민재의 말을 들으면서, 난 앞으로 태어날 아이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은 언제나.
‘빨리 배운다니까.’
조금씩 관중들이 입장하고 있는 웸블리.
우린 이곳에서, 카라바오 컵 3연패를 노린다.
***
.경기 시작 03분 전
@ 시티의 벤치
양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이는 현재, 시티의 벤치에는 묘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뒤쪽 줄에 있는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잡담이 오가고 있었지만, 앞쪽 줄에 앉은 시티의 코치들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곱씹는 중이다.
그리고 얼마 뒤, 카를레스 플랜차르트가 이 묘한 침묵을 깨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Good Talk.”
“…….”
“…….”
쏟아지고 있는 함성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어도 이상하지 않은 크기의 목소리였지만, 신기하리만치 귀에 쏙 박혀 들어왔다.
시티의 코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는 사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플랜차르트가 펩 과르디올라를 바라봤다.
“Good Talk.”
“그래. 좋은 이야기였지.”
“이젠 자연스러워졌군. 그렇지 않은가?”
“음-”
“그 꼬맹이가 이젠 완전히 어른이 됐어.”
조금 전, 김다온은 드레싱 룸 안에서 팀 전체를 일깨우는 멋진 연설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오늘의 승리를 다비드와 그의 가족에게 바치자는 부분이었다.
2년 전 조산으로 태어났던 다비드의 아들은 이제 건강을 완전히 되찾았지만, 김다온은 그 일이 시티를 가족으로 만들었다면서 유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만약 오늘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면, 그건 어느 한 사람의 공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경기에 뛰는 선수들에게만 말하는 게 아니었다.
백 룸, 보드진, 그리고 모두의 가족.
오늘 이곳엔 남편 혹은 아들이나 조카의 경기를 보고자 웸블리를 찾은 가족들이 앉아 있다.
자연스럽게 다비드의 이야기에서 모두의 가족에게로 주제를 옮겨 간 김다온은, 오늘의 승리가 시티를 향한 의심의 시선을 모두 씻어 줄 거라고도 이야기했다.
“뭐였지? 닥치게 만든댔나?”
“닥치게 될 거라고 했지.”
“오- 맞아. 바로 그거였어. 큭큭큭.”
부드럽게. 때로는 과격하게.
자유자재로 드레싱 룸을 주무른 김다온은 마지막 순간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두드렸고, 애스턴 빌라를 박살 내자며 전투를 앞둔 전사처럼 크게 포효했다.
“마치, 비니를 보는 것 같더군.”
카를레스 플랜차르트는 이번 시즌 김다온이 얼마나 많은 고뇌에 빠졌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1년의 공백을 따라잡는 것은 물론, 쉬다 온 사이에 생겨난 뱅상 콩파니라는 위대했던 리더의 빈자리까지 채워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사실 그것은 시티의 코칭스태프들이 바라는 게 아니었으나,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그리되고 말았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지닌 숙명이다.
그들에겐, 기대가 모인다.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또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위기의 순간이 오면 모르는 사이에 팀이 짊어져야 할 짐을 김다온의 어깨에 얹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내내, 시티는 계속 위기였다.
리버풀과의 채리티 실드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리그 개막전 웨스트햄 경기에서 6:0 승리를 거뒀을 때만 해도 좋았지만, 얼마 안 가 노리치에 패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9월 이후 맨체스터 시티는 단 한 번도 리그 1위 자리에 오르지 못했고, 2019년에만 세 번의 패배를 당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조금씩 멀어졌다.
자연히 팀은 무의식적으로 기적을 바라게 되었고, 그 기도는 경이로움(Wonder) 그 자체인 이에게로 향했다.
“사실, 짐작조차 되지 않네.”
“…….”
“본래라면 그런 큰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는 자기 한 몸 건사하기에도 벅찬 게 사실이지. 하지만 저 남자는 그 무거운 짐을 얹고도 잘도 해내더군. 게다가 집에서는 아빠가 될 준비를 하면서 말이야. 나라면 과연 그러한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겠는지를 여러 번 자문해 보았네. 그런데 단 한 번도, 긍정적인 답이 도출되지 않더군. 게다가 저 친구는 자네까지 챙기고 있지 않나.”
FC 바르셀로나에서 기초를 쌓고 안식년을 통해 완성한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실행한 실험 이후 맨체스터 시티에서 결실을 얻었다.
하지만 그 결실을 보자마자 세상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 강요했고, 아무리 과르디올라라고 할지라도 시티라는 클럽을 이끌며 새로움을 한꺼번에 하기엔 힘들었다.
과도기.
과르디올라도 김다온도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도, 2019/20 시즌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과도기를 겪는 중이다.
그것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어떠한 모양으로 완성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와 작은 실패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김다온이 가장 큰 책임감을 둘러메고 있다.
“난 다온이 우리에게 보여 줬다고 생각하네.”
“뭘 말이지?”
“우리의 성공. 그리고 실패. 모두를 말이야.”
“…….”
“우린 이 주제로 오랜 기간 대화해 왔네, 펩. 과연 우리의 축구에서 어떠한 공격수가 와야 좋겠느냐고 말이야. 그런데 다온이 그 답을 보여 주고 있어. 하지만 보게나. 우리는 동시에 계속 실패하고 있는 셈이야.”
전에 없던 방식으로 전방에서 플레이하는 김다온을 볼 때마다, 과르디올라와 플랜차르트는 그의 다재다능함을 깎아 먹는 중이란 생각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어떠한 경기에서 김다온은 가장 많은 볼 터치를 하지만, 대부분에서는 팀 내에서 4~6번째 위치에 머문다.
하지만 시티는 김다온이 볼을 잡고 선택을 할 때 가장 매서워졌고, 그렇게 하려면 그를 사이드백으로 보내야 했다.
“그의 몸 상태는 어떻지?”
“건강해. 특별한 차이는 없어.”
“……그렇군.”
특별한 차이가 없다.
플랜차르트는 이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했다.
“도대체…….”
“?”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플랫 4-4-2 따위를 쓰기 시작한 거지?”
의문 하나를 남긴 과르디올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아간다. 그와 동시에 주심 리 메이슨이 휘슬을 불어 카라바오 컵 결승전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자리에 남은 플랜차르트는 과르디올라가 본래 목표로 하던 축구가 쓰리백임을 떠올렸다.
‘……엇나가고 있는 건가?’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쳤다곤 하지만,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가 갈피를 일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지난 레알 마드리드전과 오늘 카라바오 컵 결승전. 그리고 시티가 올 시즌 중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 준 경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것들은 전부 과르디올라의 철학과 거리가 있었다.
토털 풋볼과 비엘시즘.
포지션 축구.
이러한 것들이 과르디올라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시티가 하는 축구는 사키이즘에 좀 더 가깝다.
고개를 들어 과르디올라의 등을 바라보는 플랜차르트. 그가 보기에 시티의 감독은 지금, 깊은 자괴감에 의한 혼란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플랜차르트의 시선은 김다온에게로 향한다.
***
몇 차례의 좋은 기회가 무산되긴 했지만, 우린 애스턴 빌라를 단어 그대로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다.
.
(황은석) – SPORTV 캐스터
“빠르게 올라갑니다, 맨체스터 시티. 김다온이 반대쪽으로!”
(정지현) – SPORTV 해설위원
“아~ 좋아요.”
(황은석)
“오른쪽엔 키런 트리피어가 있습니다. 트리피어.”
(정지현)
“안쪽에 선수가 비었어요.”
(황은석)
“트리피어. 그리고 로드리. 로드리이-!!”
.
.전반 16분
애스턴 빌라 0 : 0 맨체스터 시티
투웅-!!
“!!”
“!”
미드필드에서 볼을 차단한 후 진행된 빠른 역습 상황. 세 번의 패스 이후 로드리가 중거리 슈팅을 날렸지만, 골대가 우리의 득점을 가로막아 버렸다.
크로스바를 두드린 축구공이 그대로 골라인을 벗어나고, 잠깐 주심에게 코너를 어필했던 로드리가 아쉬워하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던 팬들도 머리를 감싸 쥐었는데, 금세 손을 떼고 로드리에게 큰 박수를 보내 주었다.
‘젠장. 지금은 진짜 좋았는데.’
전방 압박과 속도를 중시하는 우리의 축구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 위력을 드러내고 있다.
애스턴 빌라는 좀처럼 파이널 써드로 공을 집어넣지 못했고, 중원에서 볼을 빼앗긴 후 역습을 막느라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 줬다.
전환의 속도라는 측면에서, 애스턴 빌라는 오늘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중이다.
다만.
삑-!
‘이런!’
진첸코의 불안한 수비는 조금 걱정이다.
지금도 불필요한 파울을 범했다.
포지셔닝에 순간적으로 실수가 생기면서 아메드 엘모하마디를 놓쳤고, 그가 뒷공간으로 파고드는 것을 저지하고자 유니폼을 붙잡다가 경고를 받아 버렸다.
벤치에 있던 펩이 진첸코에게 진정하라며 목소리를 높여 오고, 이어 진행된 빌라의 프리킥은 별문제 없이 지나갔다.
.
(정지현)
“최근 맨체스터 시티의 축구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새로운 시도가 먹혀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전에는 좌우 측면 전환을 중시했다면, 지금은 강한 전방 압박으로 역습의 비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황은석)
“점유율이 여전히 높은 맨체스터 시티지만, 그래도 역습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로군요.”
(정지현)
“그렇습니다. 역습이라는 게 꼭 수비하는 팀만 시도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상대에게서 볼을 되찾아 왔을 때. 그때는 항상 역습으로 전개를 할 수 있습니다.”
(황은석)
“말씀하신 순간, 김민재가 볼을 빼앗습니다.”
.
순간적으로 전진한 민재가 안와 엘 가지에게서 볼을 강탈한 순간, 왼쪽 측면에 머물던 스털링이 손을 들어 올렸다.
“헤?이!!”
바로 그쪽을 확인한 민재가 길게 볼을 보내온다.
역습의 시작.
우린 기민해진다.
넓은 공간을 노출한 애스턴 빌라의 오른쪽 진영은 스털링이 쉽게 파이널 서드로 진입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뒤늦게 두 명의 수비가 달라붙어 보지만 압박 강도는 강하지 않다.
오늘 상대는 사람이 아닌 지역을 걸어 잠그는 방식의 수비를 택했는데, 딱히 그물이 촘촘하진 않아 보인다.
스털링의 뒤로 돌아가는 진첸코가 주의를 분산시킨 사이, 빠르게 전진한 로드리가 포켓 쪽 넓은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이건 무척 중요한 포지셔닝이었는데, 만약 스털링이 저기로 볼을 보낸다면 빠른 방향 전환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스털링은 그렇게 했다.
“라힘-!”
팡-
반대 방향을 바라본 스털링이 패스. 자연스럽게 몸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가져간 로드리를 보며, 난 멀리에서 뛰어들고 있는 트리피어를 보았다.
그리고 넓게 반원을 그리며 박스 안으로 움직이는 쿤의 모습 역시도 말이다.
로드리의 측면 전환 패스가 박스 안으로 쇄도하는 트리피어에게 향한 순간, 나는 타이밍을 맞춰 몸을 박스 바깥쪽으로 빼내 버렸다.
마치 컷 백을 받는 것처럼 수비를 착각하게 할 심산이었는데, 기대한 대로 비요른 엥겔스가 딸려 나와 주었다.
덕분에 쿤은 골키퍼 앞에서 자유를 얻었고, 로드리의 패스를 헤더로 연결한 트리피어의 빠른 판단이 우리의 오늘 첫 번째 득점을 만든다.
헤더로 보내진 패스에 다이렉트로 발을 가져간 쿤의 슈팅은 비록 완전하진 않았지만, 빗맞은 것만으로도 득점하기에 충분할 만큼 좋은 위치였다.
볼에 닿은 그물이 가볍게 출렁거린다.
{“YEAH—-!!!!”}
끓어오르는 웸블리.
트리피어와 포옹하는 쿤.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한 채 돌아서며 손을 뻗었고, 우린 그들에게 달려가 끌어안으며 선제 득점을 마음껏 기뻐했다.
민재가 볼을 빼앗은 순간부터 득점이 만들어질 때까지, 우리의 플레이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또 완벽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방식으로 뛰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승리라는 가치 앞에서, 고집과 철학은 얼마든지 굽힐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