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081)
1049화 Destiny (7)
2020년 3월 8일. 맨체스터 M16 0RA, 잉글랜드. 서 맷 버스비 웨이, 올드 트래퍼드, 스트렛퍼드, 올드 트래퍼드.
.경기 결과
맨유 1 : 1 맨시티
[골] 김다온 : 후반 07분(베르나르두 실바)김다온 ? 97분 출전(1골/평점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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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분에서 실망스러운 하루였다.
케빈의 부재가 경기 내내 나타났고, 측면은 측면대로 맨유의 윙백들과의 1:1 대결에서 고전했다. 볼은 우리가 압도적으로 점유했지만, 사실상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미팅은 없대.”
“진짜요?”
“응.”
가볍게 대답한 다비드의 표정에도 씁쓸함이 묻어났다. 펩이 경기 후의 미팅을 생략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린 펩을 실망하게 했다.
이제, 리버풀과의 격차가 다시 벌어졌다.
오늘 승점 1점을 얻는 것에 그친 우린 22승 2무 4패로 승점 68점을 기록 중이고, 전날 본머스를 2:1로 제압한 리버풀은 우리보다 한 경기를 더 치른 가운데 25승 3무 1패로 승점 78점을 기록하며 리그 선두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한때 승점 차이를 4점으로 좁히며 추격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가 컵 대회를 치르는 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차곡차곡 승점을 쌓은 리버풀이 다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덜 치른 한 경기에서 승점 3점을 추가한다고 해도 차이는 7점. 다시 한번 리버풀이 세 번 정도 리그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바라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리그 우승이 많이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후우~”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운 것들만 자꾸 떠오른다.
모두의 동의를 얻고 결정된 것이었지만, 전지 훈련에 팀과 동행하지 않았던 것도 지금에 와서는 아쉬운 부분이 되고 있다.
비니의 공백과 케빈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처럼, 우리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채로 시즌을 시작했다는 걸 미리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애초에 팀이 흔들린 첫 번째 이유는 수비수들 쪽에서 줄지어 부상이 발생했기 때문인데, 지금도 리크와 스톤스는 다쳤던 부위에 반복해서 문제가 생겨 팀과 함께하고 있지 못하다.
레알 마드리드 경기부터 3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한 민재가 휴식을 취한 오늘, 대신 출전한 니코는 90분 내내 불안한 모습만을 보이다가 통한의 실점에 빌미를 제공했다.
부상.
폼의 저하.
이러한 것들은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오늘 케빈의 역할을 대신해줬어야 할 다비드 역시도, 이젠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쟁력을 갖기 조금 어려운 실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타고난 감각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몸이 그것을 버텨 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무승부가 패배처럼 느껴지고 있는 이 순간, 난 다시 한번 나의 발목을 원망하고 있다.
‘이것만 멀쩡했어도.’
통증 없이 버텨 주고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난 지금 잃어버린 나의 운동 능력이 그저 한없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오늘 우린, 리버풀과의 차이를 5점으로 좁힐 수도 있었던 기회를 우리의 부족함으로 놓쳐 버리고 말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할 자격 따윈, 애초에 우리에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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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 과르디올라, “우승은 스스로 증명하는 것. 증명할 기회를 놓친 우리에게 그럴 자격은 없다.” – Sky Sports]***
[경기 연기! : 지난달 28일 올림피아코스와 유로파 리그 32강전을 치른 아스널의 선수단이 코로나에 확진된 올림피아코스의 구단주와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리그 사무국은 내일로 예정되었던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경기를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일정은 일주일 이내에 사무국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 맨체스터 이브닝(U.K)/20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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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 레스터 시티의 선수 3인이 증상 발현으로 자가격리 중이었음이 밝혀져 충격을 안겨다 주고 있다. 정부와 리그 사무국은 레스터 시티가 의도적으로 이를 감췄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나서기로 했다. – BBC(U.K)/20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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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청정 지대였던 잉글랜드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침투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역시 무관중으로 치러질 수 있을 거란 내용이 빠르게 확산 중이다. – ESPN(U.S)/20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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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 아르테타 : 검사에서 코로나 양성 반응을 보인 아스널의 감독 ? BBC(U.K)/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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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연기된 아스널의 경기 : 미켈 아르테타의 확진으로 3월 14일 진행 예정이었던 브라이튼 호브&알비온과 아스널이 맞붙는 파머 스타디움에서의 경기가 연기되었다. – James Cook Via Twitter/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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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터져 나오는 고백, 토트넘의 사이드백 뱅자멩 멘디와 첼시의 윙어 칼럼-허드슨 오도이가 코로나 테스트에서 양성이 나왔음을 스스로 밝히며 격리에 들어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따라, 토트넘과 첼시의 경기 일정에도 변화가 생겨날 수 있게 되었다. – Sky Sports(U.K)/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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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계속되는 코로나 이슈에 급하게 회의를 소집한 프리미어리그 사무국 ? BBC(U.K)/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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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여 프리미어리그 시즌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리네커. 그는 질병 위협 상황에서 축구가 위험을 안겨다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메일 온라인(U.K)/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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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FA, EFL, WSL의 임원들이 모두 모인 회의 결과, 잉글랜드 지역에서 펼쳐지는 모든 축구 경기들은 오는 4월 30일까지 중단되었다. – 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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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COVID-19 여파! : 사상 초유 리그 중단을 선언한 프리미어리그. 외에도 잉글랜드 내의 축구 단체가 추진하는 모든 경기가 오는 4월 30일까지 중단되기로 결정되다! – 데일리 미러(U.K)/2020.03.13.]***
2020년 3월 15일. 맨체스터 WA15 0NJ, 잉글랜드. 헤일, 알트링엄. 16 힐 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 경기 이후, 나의 삶은 갑작스럽게 큰 변화를 맞이했다.
잉글랜드 전역을 강타 중인 코로나의 영향으로 팀의 모든 훈련 일정은 취소되었고, 클럽하우스 전체에 이뤄지는 방역이 끝난 뒤에도 당분간은 그곳에 출입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팀은 아예 선수단 전체에게 보름 동안의 휴가를 주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 첫 번째 날이다.
“읏-차.”
쿵-
양손 가득 들었던 봉투들을 바닥에다 놓아둔 뒤, 나는 다시 차로 돌아가 트렁크에 가득 채워져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집 안으로 날랐다.
요나스를 포함한 남자 세 사람이 도왔음에도, 몇 번이나 왕복할 만큼 양이 많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넵. 곧 이런 게 필요해진대도요.”
“……그런가?”
오늘 아침, 나는 사람들을 이끌고 맨체스터 시티의 대형상점들을 돌며 휴지나 비누 같은 생필품들을 엄청나게 사들였다.
코로나 대유행 상태로 접어든 아시아에서는 기본적인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곳에도 혼란이 찾아오기 전에 한발 먼저 빠르게 움직였다.
사재기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한국을 생각하면 여기도 곧이다.
“아,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요.”
“마스크? 난 이거 별론데.”
“어서요. 앞으로 이걸 끼고 다니지 않으면, 집에는 못 오는 줄 아시라고요.”
“진심이야?”
“넵.”
아영이 때문에라도 개인위생과 방역에 신경 쓰는 요즘, 사태가 점점 심각하게 변하게 되자 나는 더욱 철저하게 출입 절차(?)를 밟아 나가는 중이다.
일단 우리 집에 오고자 하는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오기 전, 현관 옆에 설치된 수돗가에서 손을 씻어야 했다.
외에도 집에 들어선 뒤에는 분무기에 넣어 둔 희석한 소독약을 뿌려야 했고, 아영이와는 그 어떠한 신체적인 접촉도 허락하지 않았다.
포옹이나 볼에 뽀뽀하는 게 인사인 유럽인지라, 나의 이런 행동은 조금 극성맞게 비치고 있다.
하지만, 내겐 꼭 필요한 일이다.
“이제 이것들을 똑같이 나누자고요.”
“그래. 돈은 이따가 송금할까?”
“아뇨, 아뇨. 됐어요. 이건 절 도와주신 것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냥 가져가세요.”
“진짜? 그래도 돼?”
“네. 당연하죠.”
구매해 온 물품들을 정확히 1/3로 나누고 있는 사이, 주방 식탁 위에 올려 두었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웅–!
웅–!
대리석 위에 올려놔 생각보다 더 큰 소음이 발생했고, 요나스에게 분배를 부탁한 나는 얼른 식탁 앞으로 이동하여 전화기를 손에 쥐었다.
“응?”
먼저 확인한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보통은 지금 이런 시간에 통화를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손을 움직여서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Guten Tag. 어쩐 일이세요?”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볼파르트 박사님이다. 독일어로 인사를 건네자, 수화기 너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바로 전해져 왔다.
– Guten Tag. 식사는 했나?
“아뇨. 지금 하려고요. 박사님은요?”
– 난 아까 먹었네.
나는 볼파르트 박사님이 전화를 걸어온 이유가 몸 상태에 관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나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안부를 묻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간단히 안부를 묻고 난 후에 들려온 이야기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 리그가 4월 30일까지 중단이던가?
“네. 거의 두 달이나 축구를 못 하게 됐어요.”
– 그거 잘 됐군.
“……잘 됐다고요?”
– 그래. 전에 이야기한 것 기억하나?
“전이라면 어떤 것 말이죠?”
볼파르트 박사님은 내게, 메이요 클리닉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했다.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분야에서 세계 첫손가락에 꼽히는 병원을 말이다.
– 지금 당장 미국으로 가는 게 어떻겠나?
“하하.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서요.”
– 팀 훈련 때문인가?
“그것도 그거지만, 코로나도 있고. 무엇보다 아내의 출산일이 가까워지고 있어서요. 곧 부모님이 입국하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곁에 있어야죠.”
병원에서 말한 아영이의 출산 예정일은 5월 6일에서 10일 사이다. 이를 기준으로 2주에서 3주 정도의 오차가 있을 수는 있긴 하지만, 어지간하면 예정일이 맞을 거랬다.
우리 부부는 이미 오래전에 아이의 방을 꾸며 두어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는데, 아이의 친구가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동물들도 입양한 상태다.
지금 우리 집엔 월드컵과 빅이어라는 이름의 리트리버 두 마리와 크림과 밀크라는 랙돌 두 마리가 지내고 있다.
요즘은 나보다 동물들을 더 챙기는 것 같아 질투가 날 만큼, 아영이는 새로운 식구들에게 진심이다.
“그것도 거의 두 달이나 자리를 비워야 하잖아요.”
– 정확히는 6주일세.
“…….”
– Hallo?
“네. 듣고 있어요.”
– ……망설이는군. 이유가 뭐지?
깜빡 잊고 있던 메이요 클리닉과 관련한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시도해 보고 싶단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이 꺼려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한 차례 큰 부상을 겪은 이후, 내가 나를 관리하는 수준은 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철저해졌다.
시티가 나를 위해 고용해 주었던 오스틴 케네디를 전속 주치의로 고용해 경기 다음 날마다 발목의 상태를 점검하는 한편, 아바짓 프리사드로부터 별도의 개인 운동 일정을 받았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먹던 탄산도 완전히 끊었고, 치팅데이라는 느낌으로 나 자신에게 포상을 주곤 했던 것도 멈췄다.
‘Hydrowork’와 간단한 운동 기구들만 있었던 곳엔 어느새 크라이오 머신과 같은 최첨단 기구들이 들어찼고, 집에서 쉴 때도 수영과 머신을 통한 훈련을 빼놓지 않았다.
덕분에, 체지방이 6% 수준까지 떨어졌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제 발목은 여전히 그대로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은 이게 한계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 바보 같은 생각이군.
“하하.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죠. 하지만 나아질 거란 보장이 없다면, 전 굳이 미국으로 가기보다는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미국이라는 나라까지 가서 6주간이나 치료를 해야 하는데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무척 실망할 것 같다.
볼파르트 박사님과 쿠가트 박사님 모두 권유는 해 주고 계시지만, 두 분 역시 장담은 할 수 없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나을 거라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말했듯, 아내의 출산이 가까워져 오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뭔가를 하고 싶진 않았다.
– 역시.
“응?”
– 내 생각대로군.
“……무슨 말씀이시죠?”
볼파르트 박사님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있던 순간, 뒤쪽에서 두꺼운 유리창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라스로 나와 통화를 하고 있던 난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고. 그곳에 있는 아영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 그녀가 있나?
“네? 네. 에??”
– 아내와 대화를 해 보게나. 그리고 내게 다시 전화를 걸도록. 혹시나 전화를 못 받으면 환자를 보고 있는 걸세. 그럼 내가 전화를 걸지. 그럼.
“어? 저, 자, 잠깐만요!”
-딸깍-
전화가 끊기고, 더욱 영문을 알 수 없게 된 내가 아영이를 쳐다보자 문을 연 아내가 밖으로 나왔다.
“통화했어?”
미소를 지어 보인 아영이가 내 얼굴로 손을 뻗어 온다. 그리곤 부드러운 손길로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 때문에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예쁜 얼굴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렇게 한참 내 볼을 어루만지던 아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해 온다.
“미국에 다녀와.”
“어?”
“거기 미식축구 선수들도 찾는 곳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신경 쪽 치료를 잘하는 곳이라더라. 6주라고 했지? 걱정하지 마. 그때까지는 우리 튼튼이도 안 태어날 거니까. 그리고 아버님이랑 어머님도 곧 오시잖아? 난 괜찮을 거야. 조금 외로워도, 고양이들이 나랑 같이 자 줄 거고.”
“…….”
아영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당했음을 깨달았다. 볼파르트 박사님은 나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아내의 허락이 있어야지만, 미국으로 날아갈 용기를 낼 것이라고 말이다.
“기억해? 내가 자기 때렸던 날.”
“평생 못 잊지.”
“하하. 응. 지금도 미안해. 그렇지만 있잖아. 그때 말한 것은 전부 진심이야. 난 자기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도 행복한걸.”
“알아. 그치만, 전처럼 행복하진 않잖아?”
“…….”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참 좋은데 말이다.
하지만 난 아내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며칠 전에도 그랬어.”
“응? 며칠 전?”
“응.”
팀에 셰필드 웬즈데이에 고생했던 날, 난 거실에서 TV로 그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날 나는 팀의 부진한 경기력에 실망했고, 내내 가슴을 졸이면서 경기를 지켜봤다. 후반 초반 쿤의 득점이 터지고 마침내 리드를 잡은 다음에도, 계속 답답해했던 것 같다.
“자기는 지금 팀으로 돌아갔지만, 돌아가지 않았기도 해. 진짜 자기는 아직 여기에 없어. 물론 내 남편 김다온은 여기에 있지만, 축구 선수 김다온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아.”
“아영아.”
“자기는 다시 축구를 하게 되어서 행복해? 내가 본 건 줄곧 고민하는 자기였어. 괴로우면 괴로워 보였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어.”
“…….”
어쩐지, 너무나도 미안해졌다.
아영이가 나를 보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말한 것처럼, 팀에 복귀한 후에 나는 축구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무언가에 쫓기면서 지내 왔던 것 같다. 좋을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고민의 나날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게 우리가 프리미어리그에서 1위를 하고 있지 못해서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난.
“풀백으로 뛰었을 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아.”
“응. 지금은 자기가 행복해질 기회잖아. 나를 걱정해 주는 건 너무 고마워. 내 곁에 있어 주고 싶은 것도 알아. 하지만 괜찮아. 난 잘 지낼 수 있어. 가족들이랑 또 새로운 아가야들이랑 잘 지내고 있을게. 이젠 이곳에 친구들도 많으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구. 미국에 다녀와. 응?”
여자란, 참으로 대단한 존재다.
남자가 용기를 갖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여자가 강인한 존재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혹은.
‘어머니는 위대하다. 그건가?’
아영이 역시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아이를 가진 순간부터,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 아빠가 되자고 몇 번이나 약속했다.
난 어떠한 아빠가 되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싶나?
분명한 건, 이번 시즌과 같은 모습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심을 굳힌 후, 한참 동안 아영이와 끌어안은 채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짐 정리를 마치고 소파에서 쉬고 있던 요나스를 불렀다.
“저기, 요나스?”
“?”
“팀과 대화를 좀 하고 싶어요.”
“??”
나는 최대한 빨리, 미국으로 날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