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09)
108화
2012년 7월 28일. 워싱턴 북동37, 영국. 노던 아레아 플레잉 필즈, 스테픈슨 길. 워싱턴 풋볼 허브.
이틀 전에 끝난 런던 올림픽 본선 첫 번째 조별 예선 경기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일본이 스페인을 상대로 1 : 0의 승리를 거둔 것이다.
스페인으로서는 전반 41분에 나온 이니고 마르티네스(Inigo Martinez)의 퇴장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하기엔, 그전까지의 경기력이 무척이나 좋지 못했다.
실점 상황도 그 전인 전반 33분이었고 말이다.
어제 아침에 하이라이트로 그 경기를 봤었는데, 호드리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영상만으론 스페인이 그리 강한 팀이라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 외에는 특별한 이변은 없었다고 본다.
물론 사람들은 우릴 이변이라 말한다.
미안하지만, 거기엔 동의하기 힘들다.
우린, 실제로 무척 강한 팀이니까.
“빨강!!”
“오-! 잘했는데?”
“좋아, 다음. 노랑!”
올림픽 본선 조별예선은 3일 간격으로 경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첫 경기 이후부터 시작될 컨디션 관리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회복이나 훈련에 투자할 시간이 많지 않은지라, 특별히 뭔가 더 나아지기보단 컨디션을 유지/상승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팀이 움직이고 있다.
지금 나는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밟힌 발등 때문에, 잠깐 한쪽으로 빠져서 조치를 받는 중이다.
심각한 부상이거나 한 것은 아니라 뛰는 것엔 전혀 문제가 없고, 그냥 단순히 멍을 빨리 가라앉히려고 이러는 거다.
“그럼, 다음은 범영이!!”
“화이팅, 화이티잉-!”
현재 팀에서 가장 여성 팬들이 많은 사람을 꼽으라면, 그중 한 사람은 아마도 범영이 형일 것이다.
저 형은 강찬일 감독님과 오래전부터 인연이 많았는데, 2008년 U-20 대회 때부터 쭉 함께해오고 있다.
일단 성룡이 형님이 주전 장갑을 끼고 있지만, 언제 출전해 활약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형이다.
골키퍼들의 훈련이 펼쳐지고 있는 근처에 앉아, 난 목소리를 높여 응원을 보내는 중이었다.
물론.
“어제 통화한 건 누구예요~?”
“윽-!”
촤르륵-!
“야, 이범영! 너 집중 안 해?”
“죄송합니다~! ”
형들을 놀리는 것도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은 김봉수 코치님이 옆에서 마음껏 떠들어도 된다고 하셨기에, 훈련 도중이더라도 이런 장난을 칠 수 있었다.
골키퍼를 하다 보면 골대 뒤쪽 관중석에서 별 희한한 말들이 다 튀어나오는데, 그런 상황을 겸한 훈련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야-! 너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훈련이 끝나고, 범영이 형이 날 가리키며 묻는다.
그냥 해본 말인데, 바늘까지 덥석 물어버렸다.
“뭐야? 나 낚인 거?”
“아, 경기도 분이에요?”
“어, 어?”
“아니, 경기도 사투리를 하길래~”
난 전부터 범영이 형이 말을 자꾸 줄이기에 혹시나 했었다.
“야. 너 그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특히 종우한테는.”
“장거리라니. 전 그거 죽어도 못할 거예요.”
“여자는 만나봤냐?”
“아뇨?”
“연애도 안 해본 게 말이 많아, 쯧.”
“어? 지금 화냈어요?”
“아, 아니? 아닌데?”
멕시코전에서 승리를 거둔 덕분에, 확실히 팀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좋다.
강찬일 감독님은 후반전은 썩 잘하진 못했다며, 우리가 방심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고 계시기는 하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장담할 수 있다.
어제 회복훈련이 시작되기 전, 태휘 형님이 조금 일찍 선수들을 모아 나사를 조금 더 조이도록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
“다온! 뭐해? 얼른 와!”
“네! 지금 가요!”
30분의 개인 연습이 허락된 필드의 곳곳엔, 슈팅을 하나라도 더 차려거나 하는 형들의 모습이 있었다.
특히, 흥민이 형은 후반전 거의 마지막에 놓친 1 : 1 상황을 지금까지도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분위기가 밝은 것과 느슨한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고, 그런 면에서 우린 그냥 밝은 것에 불과하다.
내일은 조별예선 두 번째 상대인 스위스를 만나는 날이다.
그들은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우리에겐 악연으로 남아있는 팀이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그때의 복수를 올림픽 대표팀이 해주길 바란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중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우린 거기에 하나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가십거리가 필요한 기자분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 것처럼, 우리 역시 올림픽 메달이라는 목표를 위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지려고 할 뿐이다.
우린 스위스에 그 어떠한 개인적인 원한도 없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그저.
‘일단은 8강.’
목표를 위한 첫 번째 계단을 밟아 올라가려고 한다.
승리라는, 축구에서 가장 완벽한 표현방법을 통해서.
누가 더 강한 팀인지를 알게 되기까진, 이제 30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
·2012 London Olympic Switzerland U-23 Squad
GK ? 디에고 베냘리오(볼프스부르크/독일) – W
GK ? 벤자민 지그리스트(아스톤빌라/잉글랜드)
RB ? 마이클 모르가넬라(팔레르모/이탈리아)
CB ? 프랑소와 아폴터(베르더 브레멘/독일)
CB ? 팀 클로제(뉘른베르크/독일) – W
CB ? 파비앙 셰어(바젤/스위스)
LB ? 파비오 다프렐라(브레시아/이탈리아)
LB ? 리카르도 로드리게스(볼프스부르크/독일)
DM ? 사비에르 호흐트라써(루체른/스위스) – W
DM ? 아미르 아브라쉬(그래스호퍼/스위스)
DM ? 파비앙 프라이(바젤/스위스)
MC ? 올리버 버프(취리히/스위스)
MC ? 알라인 비스(루체른/스위스)
MC ? 파이팀 카사미(풀럼/잉글랜드)
W ? 슈테벤 추버(그래스호퍼/스위스)
SS ? 아드미르 메흐메디(디나모 키에프/우크라이나)
ST ? 이노센트 에메그하라(로리앙/프랑스)
ST ? 요시프 드르미치(취리히/스위스)
***
하이피크, 영국. 마켓 스트리트, 헤이필드. 로얄 호텔(Royal Hotel. Market St, Hayfield. High Peak SK22 2EP, England).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지함을 찾아 나가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팀과는 달리, 스위스 대표팀엔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가봉과의 경기에서 전반 5분 만에 P.K 득점으로 앞서나갈 때만 해도, 그들은 승리를 강하게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의 경기력은 어떠한 말로도 합리화가 되지 않을 만큼 좋지 못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지 못했던 부분은, 고작 한 경기 만에 팀의 약점이 만천하에 노출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국적의 스위스 올림픽팀 감독 피에를루이지 타미(Pierluigi Tami)가 크게 고민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는 아직, 내일 경기 명단을 확정 짓지 못했다.
몇몇 확고한 포지션에 이름을 써넣는 것이야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만, 외의 몇몇은 고민이 컸다.
특히, 센터백 한 자리가 그랬다.
“후우~ 죽겠군.”
스위스의 축구는 전통적으로, 더블 볼란치를 중심으로 한 중앙밀집 형 전술을 사용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꽤 좋은 모습을 보여왔다.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기엔 수비형 미드필드의 자원이 늘 풍부했다 보니, ‘굳이 다른 것을 왜 시도하는가?’라는 문화가 스위스 축구계 전체에 팽배하게 퍼져있다.
그리고 외의 특징을 손꼽자면 유럽보다는 남미에 조금 더 가까운 풀백 활용을 들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더블 볼란치를 활용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옵션으로 봐야만 했다.
하지만, 피에를루이지 타미는 같은 방법으론 대한민국을 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베스트일레븐 중 두 명을 아는 선수들을 불러 대화를 나눠본 결과, 기존의 4-2-3-1이 아닌 4-4-2라든가 4-3-3처럼 조금 다른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투톱을 조합할 경우, 대한민국의 라인을 전반적으로 낮출 수 있을 거라는 데 어떠한 확신마저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러기엔, 이 둘의 경기력이…….’
그렇게 새로운 선택을 할 경우, 포기해야 할 몇 명의 경기력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준비를 해오면서 단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투톱+플랫 4의 전술을, 선수들이 순순히 따라줄 것인지 역시도 의문이 들었다.
만약 그런 시도를 했다가 패배라도 하게 되면, 모든 비난은 감독인 자신이 짊어져야 할 부분이 된다.
그러한 비난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타미는 이 단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결국, 그는 빈 공란에 이름을 새겨 넣는다.
그리고 그건, 이틀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아- 모르겠군. 정말 모르겠어.”
객실 밖으로 나와 복도에 임시로 설치해둔 게시판에, 선발 명단을 붙이고 돌아서는 타미.
그는 계속해서 입버릇처럼, 모르겠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
2012년 7월 29일. 코벤트리, 영국. 주즈 레인. 씨티 오브 코벤트리 스타디움(City of Coventry Stadioum. Judds Ln. Coventry CV6 6GE, England).
·경기 시작 2시간 전
대한민국 0 : 0 스위스
&Match-Up`s Best Eleven(대한민국/스위스)
&Match-Up`s Tactics(대한민국/스위스) : 4-3-3/4-2-3-1
GK ? 정성룡 / GK ? 디에고 베냘리오
RB ? 김창수 / RB ? 마이클 모르가넬라
CB ? 곽태휘 / CB ? 파비앙 셰어
CB ? 김영권 / CB ? 팀 클로제
LB ? 김다온 / LB ?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DM ? 박종우 / DM ? 아미르 아브라쉬
CM ? 기성용 / DM ? 파비앙 프라이
CM ? 구자철 / RAM ? 슈테벤 추버
RW ? 남태희 / CAM ? 파이팀 카사미
LW ? 김보경 / LAM ? 이노센트 에메그하라
ST ? 손흥민 / ST ? 아드미르 메흐메디
.
.
어제 오전 훈련이 끝난 뒤에, 우린 짐을 챙겨 호텔을 떠났다.
예정된 일정이었고, 앞으로의 결과에 따라 한번에서 두 번 정도 다시 숙소를 옮기게 될 것이다.
이번엔 런던에 한참 더 가까운 카디프로 내려와 새로운 숙소를 잡았는데, 뉴캐슬을 떠나기 전 객실에다가 각자 가져온 과자나 물건 같은 것들을 선물삼아 남겨두었다.
워낙 호텔 분들이 잘 챙겨주었던지라, 자철이 형이 그렇게 하자고 말했을 때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던 기억이 난다.
난 그것이 꽤 멋진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발등은 좀 어때?”
“완전히 나았어요.”
“잘됐네. 오늘도 하나 보여줘야지. 응?”
선수단은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피치로 나가 잔디의 상태 등을 살폈다.
이것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무척 중요한 과정으로, 잔디의 모습을 보며 오늘은 어떤 식으로 뛰어야 한다는 것을 먼저 그려볼 수 있다.
이곳 코벤트리 스타디움의 잔디는 세인트제임스파크보다 훨씬 건조했는데, 볼 컨트롤이나 달리기가 첫 경기를 치를 때보다 조금 더 수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각자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루틴에 맞춰 경기를 준비하는 중이다.
예를 들어 흥민이 형이나 영권이 형은 가장 빠르게 복장을 갖춰 입고, 한쪽에서 계속해서 몸을 달구는 작업을 한다.
축구선수 중에는 예열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나처럼 큰 예열 없이도 곧바로 최고 속도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에는 어렵고, 그냥 사람의 신체가 다른 것이라 이해하는 게 옳다.
난 지금 멍과 붓기가 거의 빠진 왼쪽 발에다가, 테이핑을 칭칭 감고 있었다.
지난번 연습하다가 빠진 새끼발톱도 조금 자라났는데, 이거야 어차피 또 빠질 테니까 별로 신경을 쓰진 않고 있다.
발바닥 쪽에 작은 물집이 난 태희 형도 곁에서 함께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는 중이다.
“야, 걔 어떻다고?”
“아, 그게.”
지금의 이런 풍경은, 스위스전을 앞두고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스위스에는 나나 자철이 형이 알고 있는 선수들이 꽤 되었는데, 태희 형이 상대하게 될 리카르도 로드리게스도 작년 FC 노르셸란에서 유로파를 치를 때 만났던 선수다.
지금은 작년 1월에 팀을 옮겨, 자철이 형과 한 팀이 됐다.
어쨌든 사람들은 나나 자철이 형을 통해, 스위스 대표팀 선수들의 특징 등을 많이 파악하고 있었다.
“걔 느리다고요.”
“개 느리다고?”
“아니이- 걔, 느리다고.”
“아~ 개 느리다고?”
“아, 씨!”
“큭큭큭큭큭.”
나는 또 태희 형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나를 놀리려고 괜히 그랬던 것이다.
아직 스위스 대표팀의 선발 명단을 확인하지 못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올림픽이라는 대회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풀백 자리는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중요한 대회이기 때문이 아닌, 명단이 18명밖에 안되다 보니 참가팀 대부분이 풀백을 세 명만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또 축구라는 종목의 특성과 조직력의 중요도를 생각해보면, 수비에 변화를 가져가는 팀은 거의 없을 거라는 게 나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다.
“야. 넌 애인 진짜 없냐?”
“아, 없는 거 알면서 왜 자꾸 물어요?”
“아니, 그냥. 네 얼굴이 아깝다.”
“형 얼굴은 왜요?”
“뭐? 놀리는 거냐?”
“아뇨, 진짜. 그냥, 궁금해서요.”
조금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축구와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빼고 나면,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거의 90%는 여자가 주제였다.
감독 코치님들은 젊을 땐 다들 그렇다고 하셨다.
그렇게 또 한참을 태희 형과 여자 이야기로 시시덕거리고 나서야, 테이핑 작업을 모두 끝내고 바닥에 다시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어때? 괜찮아?”
“네! 좋아요. 감사합니다.”
“자, 그럼 다음!”
현재 대표팀에는 송준섭 원장님을 포함하여, 총 네 분의 메디컬스태프가 팀을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주고 계신다.
지금도 나는 임현택 트레이너님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축구화의 끈을 단단히 묶고 테이핑 이후의 감각을 확인코자 복도를 걸어 다녔다.
3일 만에 치르는 경기가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피로를 느끼고 있진 않다.
“조오아써.”
테이핑의 감각이 만족스러웠던 나는, 축구화의 여기저기를 꼼꼼히 만져본 뒤에 다시 라커룸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역시나,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자아-!! 모두 주목!!”
강찬일 감독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난 조용히 필승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