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106)
1074화 One Game (7)
침묵은 무겁다.
그건 분명, 침묵엔 여러 의미가 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그것은 때때로 백 마디 말보다 무겁다.
18세기 프랑스의 설교가이자 문필가 그리고 세속 사제이기도 했던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Joseph Antoine Toussaint Dinou)는 침묵엔 열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신중, 교활, 아부, 조롱, 감각, 아둔, 동조, 무시, 정치, 그리고 예민.
하지만 나는 지금 디누아르가 환생했다고 해도, 지금의 이 침묵을 정의 내릴 수는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건.
‘말도 안 돼.’
그래.
정말로 말도 되지 않는다.
.
.
(마틴 타일러) – BT Sports 코멘테이터
“이 경기는 말도 되지 않습니다!! 4:3!! 이젠 리버풀이 위기에 빠집니다!”
(스태브 맥매너먼) – BT Sports 공동-코멘테이터
“프랭크 램파드의 선수 교체가 완벽히 먹혀들었습니다. 확실히 이 남자는 용병술에 재주가 있습니다. 벌써 몇 번째나 선수 교체로 흐름을 뒤집고 있습니다.”
***
.후반 28분
리버풀 4 : 3 첼시
후반 10분 호베르투 피르미누에게 네 번째 실점을 허용한 순간, 첼시의 감독 프랭크 램파드는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시즌 내내 해 왔던 축구를 포기하고 시티를 좇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지를 이해한 것이다.
챔피언스리그를 향한 열망이 감독으로서는 아직 초보인 프랭크 램파드의 마음을 뒤흔들고 말았다.
“더 밀어붙여!! 할 수 있어!!”
선수들을 향한 독려의 목소리를 높인 램파드가 벤치로 돌아오고, 자리에 앉은 그가 숨을 고른 이후 곁에 있는 조 에드워즈에게 본인의 한심함을 토로한다.
“잡아먹히고 말았어.”
“네?”
“펩이 보내온 메일을 열었을 때, 난 거기에 잡아먹히고 말았던 거야. 아무리 훌륭한 무기가 있어도 그것을 쓰는 사람이 신통치 않으면 일이 이렇게 되는군.”
“…….”
“한심한 일이야.”
프랭크 램파드는 자신이 언젠가 감독으로서도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말은 즉, 현재는 최고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올라서야 할 목표가 있고 본인의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에, 램파드에겐 발전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오늘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되는 날이었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하기엔, 걸려 있는 상품이 너무나도 컸다.
같은 유럽대항전이라고 말은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는 대회에 참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수입에서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대회의 상금 자체도 그렇지만, 뒤따르는 스폰서 수입 등을 계산해 보면 많게는 10배의 격차가 난다.
첼시 역시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할 경우, 차기 시즌 4000만 유로(약 538억 원)+@를 손해 보게 된다.
비록 자신의 돈을 잃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빅리그에서 생활해 온 프랭크 램파드는 그 돈이 지니는 무게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선수들이 저렇게 뛰는데, 내가 벌써 좌절할 수는 없지. 후우~ 거의 다 왔어. 리버풀이 흔들리고 있다고.”
조 에드워즈의 무르팍을 손바닥으로 몇 차례 두들긴 후,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아간 램파드가 다시 한번 손뼉을 강하게 부딪친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분 전. 그러니까 세 명의 선수를 동시에 바꾸는 도박을 앞두었을 때, 램파드는 투입될 세 공격수를 모아 두고 이런 이야기를 전했었다.
[“사흘간의 연습은 잊어라.”]라고 말이다.이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행동이었다.
.
(한희준) – SPORTV 해설위원
“역시 프랭크 램파드 감독은 선수 교체를 통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재주가 있습니다. 공격수 세 명을 동시에 바꾸는 판단은 도박이었지만, 그 이후 효과가 확실히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리버풀이 밀리는 이유를 보면, 첼시의 좌우 측면 윙어들을 제어하지 못하는 부분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뛰었던 윌리안이나 메이슨 마운트 선수와는 달리, 칼럼 허드슨-오도이와 크리스천 풀리식은 전부 크랙 유형입니다. 이 두 명의 윙어에 리버풀의 풀백이 밀리고 있거든요? 4:1이 되면서 약간 마음이 느슨해진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4:1이 되었을 때, 경기를 지켜보던 모두는 승부가 사실상 가려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심지어 프랭크 램파드 역시, 패배를 거의 받아들였다.
세 명의 선수를 동시에 교체하는 판단도 승부를 뒤집기보다는 남은 시간 첼시의 축구를 보여 주자는 의도가 컸다.
하지만 이 초탈한 마음에서 한 선택은 리버풀 선수들의 안이함과 겹치면서, 경기를 새로운 모습으로 이끌었다.
이제는 반대로 위르겐 클롭이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내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리버풀의 감독은 분명한 불만을 표출 중이다.
그리고 후반 31분, 프랭크 램파드는 클롭이 택한 두 개의 교체 카드를 보며 확신했다.
‘지키려고 하는군.’
리버풀은 남은 시간, 달아나는 것 대신 한 골 차의 리드를 지키는 방식으로 플레이에 변화를 줄 것이다.
삑-!
.
(마틴 타일러)
“리버풀이 선수를 바꿉니다. 모하메드 살라와 조르지니오 베이날뒴이 피치를 떠납니다.”
(스티브 맥매너먼)
“클롭이 지키는 것을 택하는군요. 놀라운 선택은 아닙니다. 그들에겐 오직 승리만이 필요하니까요. 아무래도 클롭은 첼시의 윙을 막아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살라를 빼고 제임스 밀너를 투입한 것은, 첼시의 왼쪽 공격을 막겠다는 의도입니다. 밀너가 윙어로 뛸 때, 그는 거의 풀백처럼 플레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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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맥매너먼이 이야기한 대로, 이번 교체를 통해 클롭이 기대하고 있는 부분은 크리스천 풀리식과 칼럼 허드슨-오도이가 날뛰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제임스 밀너에게 대인 수비를 지시했다.
하프 라인 부근에서부터 윙을 1:1로 강하게 압박하는 클롭의 전술은 바로 효과를 발휘, 연속해서 골을 집어넣으면서 끓어올랐던 첼시의 기세를 꺾어 놓았다.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지지만, 첼시의 젊은 윙어들은 머지않아서 해답을 찾아낸다.
활발한 스위칭.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12시를 찍은 컨디션을 앞세운 허더슨-오도이와 풀리식이 클롭이 시도한 용병술의 효과를 단 3분 만에 없애 버렸다.
이제 다시, 경기는 첼시가 지배한다.
***
【5분 뒤】 맨체스터 WA15 0NJ, 잉글랜드. 헤일, 알트링엄. 16 힐 탑.
(카일 워커) : Come on, Come on-!!
(존 스톤스) : 좀 더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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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준)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선수의 컨디션은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감독이 가장 잘 아는 게 사실입니다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차라리 풀리식을 선발로 투입하는 것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선수의 컨디션이 좋습니다. 중계방송 중인 Sky Sports의 마틴 타일러가 벌써 몇 번이나 Great American이란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 정도로 지금 풀리식의 플레이는 환상적인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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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Sky Sports’를 TV로 틀어두고, 랩톱 화면 한쪽에 한국 포털사이트의 채팅 화면을 띄워 놓고 있었다.
보기 좋지 않은 글들이 많이 올라오긴 했지만, 한국 중계진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채팅의 흐름으로 대강 짐작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보건대, 한국 쪽에서 용병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용병술 영향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긴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보단 전술 변화와 리버풀의 방심이 흐름을 이렇게 끌고 간 근본적인 이유 같았다.
나는 선수 교체가 있기 직전, 경기가 잠시 멈춘 틈을 타 램파드가 조르지뉴를 호출한 장면을 떠올렸다.
띵-
“…….”
아까부터 동료들도 어째서 크리스천 풀리식과 칼럼 허드슨-오도이가 아닌 윌리안과 메이슨 마운트가 선발이었는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착각할 만큼 경기력의 변화는 극적이었고, 지금도 풀리식은 알렉산더-아놀드와 고메즈를 능숙하게 요리하며 박스 안으로 파고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후 땅볼 크로스를 시도했지만, 쇄도하던 코바치치의 슈팅이 빗맞으며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다시 랩톱 스피커에서, 아쉬움 가득한 동료들의 목소리가 정신없이 울려 퍼졌다.
(카일 워커) :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
(올렉산드르 진첸코) : 도움이 안 돼!!
(니콜라스 오타멘디) : Vamos, 마테오!! 그것보다는 더 잘할 수 있었잖아!!!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대강 이 세 명 정도였다. 외에는 말이 뒤섞여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띵-
두 번째로 도착한 케빈의 메시지를 확인한 뒤에야, 난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띵-
교체로 출전한다는 건, 선발로 뛸 때와는 전혀 다르다. 바로 다른 사람들의 템포에 맞추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감독의 의도를 수행하고 에너지도 불어넣어야 한다.
역대 교체 자원으로서 전문가(Specialist)로 평가받았던 인물들. 그들은 이런 역할을 100% 이행해 냈다.
어쩌면 축구 역사상 유일한 유형이었을 수도 있는 올레 군나르 솔셰르를 비롯, 나이가 들며 교체로 뛸 때 더 위력을 보였던 선수들 모두 그러한 일들을 훌륭히 해냈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경기를 이해하는 수준이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선발 욕심을 버린 베테랑 선수가 교체자원으로서 훌륭한 커리어를 이어 나가는 경우가 빈번한 것도, 그들이 쌓은 경험이 경기를 보는 눈을 키워 놓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풀리식(이성)과 허드슨-오도이(본능)는 각자의 개성으로 경기를 읽는 눈이 좋은 친구들이다.
선발로 뛸 때는 경기의 큰 흐름 속에 파묻혀 무색무취한 선수처럼 비춰질 때도 많지만, 지금처럼 경기의 흐름을 충분히 파악한 상태에서의 출전은 실보다는 득이 많다.
물론 꾸준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다는 게 솔셰르와 이들의 차이이긴 했지만, 축구에서 전문가라는 말이 애초부터 성립되는 이야기던가?
그저, 솔셰르가 너무 대단했을 뿐이다.
그렇다.
이 모든 건 우연이다.
사실상 4:1이 되었을 때 경기는 끝났지만, 우연한 상황들이 계속해서 겹치면서 희망이란 열매를 빚어 내고 있다.
하지만, 난 정말 모르겠다.
팀의 미래를 나나 우리가 아닌 타인의 손에 맡겨야 하는 현실이 익숙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로 희망이란 열매가 빚어진 게 맞는지가 의심스러웠다.
오늘 경기를 치르는 건, 우리가 아닌 리버풀과 첼시인데 말이다.
정말로 축구의 신이라는 게 존재하고 그의 변덕이 지독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도라면, 과연 피치 밖에 있는 우리를 위해 신경 쓸 정신이 있을까 싶었다.
물론 세상 모든 곳을 보살피는 게 신(神)이라지만, 결국 그것도 인간의 어리석은 희망이 멋대로 상상해 낸 결과물 아니겠는가?
신에게는 다 뜻이 있고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행과 불행조차 그의 뜻 아래에 있는 것이란 말을, 나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싫어했다.
우리의 삶은 오롯이 우리에게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이겨야 한다.
그러니.
‘결과가 나올 때까진,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겠어.’
난 희망을 애써, 가슴속 깊숙이 밀어 넣는다.
【삐?익!!】
(라힘 스털링) : 됐어!! 파울이야!!
(카일 워커) : 풀리식, 이 예쁜 녀석!! 다음에 만났을 땐 볼에 뽀뽀해 주겠어!!
후반 38분, 리버풀이 첼시의 페널티박스 오른쪽 바깥 지점에서 프리킥을 획득했다.
***
【같은 시각】 리버풀 L4 0TH, 잉글랜드. 안필드 로드, 안필드. 안필드.
.후반 38분
리버풀 4 : 3 첼시
선수 교체를 통해 가져간 수(手)가 막힌 순간부터, 리버풀의 감독 위르겐 클롭은 오늘 경기의 결과를 자신이 아닌 신의 뜻에 맡기고자 결정했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뒷짐만을 진 채로 간헐적인 외침만을 하고 있었던 이유다.
위르겐 클롭은 피치 위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끊임없이 자신에게 장난을 건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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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맥매너먼)
“진정으로 위대한 시즌입니다. 그리고 대단한 경기고요. 분명 피치 위에서는 리버풀과 첼시가 경기하고 있습니다만, 어쩐지 제3의 클럽도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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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나, 펩? 결국 자네와 나의 승부였어.’
후반전 15분을 기점으로 첼시가 본인의 색을 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펩의 전술에 손을 빌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효과를 봤다.
한 골 차로 추격을 당한 상황에서 모하메드 살라를 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를 활용한 수비에 고전한 그가 일찌감치 방전되었기 때문이었다.
팀 내에서 가장 믿음직한 공격수를 교체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클롭이 지키는 축구를 택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프랭크 램파드가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를 모방했다고 확신한 그 순간부터, 위르겐 클롭은 첼시 FC가 아닌 맨체스터 시티와 싸우고 있었다.
“집중! 집중해!!”
벤치에 앉은 페테르 크라비츠가 리버풀 선수들에게 세트피스 수비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여전히 뒷짐을 진 클롭은 준비가 되는 상황을 지켜본다.
‘나도 이제 궁금해지는군. 과연 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이야.’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
독일과 잉글랜드에서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닌 팀을 감독했고 또 감독하고 있는 클롭과 과르디올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며 라이벌리(Rivaly)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라이벌이라고 부르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위르겐 클롭은 펩 과르디올라에게 철저히 밀렸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에는 단 하나의 트로피도 거머쥐지 못했고, 잉글랜드로 온 뒤에도 진정한 의미에서 시티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시즌만 해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차지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티와의 경쟁에서는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더구나 작년은 김다온도 없었다.
남들에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위르겐 클롭은 작년 여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이 들었다.
본인의 역량을 향한 의심의 목소리는 내면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왔고, 그것을 부정하려고 할 때마다 지난날의 성적표를 의문의 존재가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위르겐 클롭은 침묵 외의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그랬다.
자신은 줄곧 패배자였다.
‘난 빅이어를 원하지 않아.’
선수들이 들었다면 큰일 났을 말을 속으로 내뱉으며, 위르겐 클롭이 첼시의 세트피스 장면을 지켜본다.
키커는 리스 제임스다.
.
(마틴 타일러)
“리버풀이 큰 위기와 마주합니다. 어쩌면 프리미어리그 우승 팀이 가려질 수도 있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첼시 역시, 챔피언스리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점이 필요합니다.”
.
삐?익!
휘슬이 불리고, 손을 들어 올렸던 첼시의 풀백이 신중한 모습으로 발을 앞으로 내디딘다.
팡-
볼은 곧, 리버풀의 페널티 박스 안으로 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