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113)
1081화 Pride (4)
2020년 8월 11일. 맨체스터 WA15 0NJ, 잉글랜드. 헤일, 알트링엄 16 힐 탑.
수호가 태어난 이후, 우리 집의 풍경은 늘 비슷했다.
“옳-지! 옳~지!”
“오-! 선다 서!”
최근, 수호는 목을 가누기도 하고 누워있다가 몸을 발라당 뒤집는 모습을 보여 줬다. 그러한 노력이 어찌나 귀여운지, 아버지와 나는 한시도 눈을 떼고 있지 못했다.
지금도 우리 부자는 특별 주문한 요람에 누워 가볍게 몸을 뒤집는 수호를 보며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찰칵-!
“응?”
뒤쪽에서 찰칵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리니, 아내가 사진기를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그냥. 너무 재미있어서.”
“하하. 봐. 수호가 방금 몸을 뒤집었다?”
“난 매일 보는걸.”
흐뭇하게 웃은 아영이가 나의 곁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자, 아버지가 스리슬쩍 곁을 비켜 주셨다.
“보름 정도라고 했지?”
“응. 길면, 그래.”
“음- 복잡하네.”
“뭐가?”
“자기 생각하면 긴 게 좋은데, 그만큼 나나 수호가 아빠를 못 본다는 거잖아. 수호가 자기 얼굴을 잊으면 어쩌지?”
“매일 영상통화 할 거야.”
“그래. 그 말을 듣고 싶었어.”
환하게 웃는 아영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살짝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자연스럽게 아내가 내게 안겨 왔다.
“요즘, 매일매일 다짐해.”
“뭘?”
“잘하자고.”
“이미 잘하고 있잖아?”
“그런가? 그래도 더 잘하고 싶어. 축구 선수로서도 그렇고, 남편으로서나 또 아빠로서도. 특히, 당신한테 너무 미안해.”
“됐어, 그런 말. 난 지금 행복해.”
“응.”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임신을 준비하던 때 아영이에게 무척 좋은 기회가 왔다.
이미 성공한 디자이너라고 부를 수도 있는 아내지만, 파리에서 열릴 프레타포르테(Pret A Porter)의 피날레를 장식할 기회는 그리 흔히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입기 힘든 예술적 개념에 가까운 오트쿠튀르(Haute Couture)와는 달리, 프레타포르테는 기성복을 다룬다.
디자이너 커리어의 초기부터 오직 프레타포르테만을 바라보고 있던 아내기에, 그것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로 비유하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결장하게 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니 말이다.
“기회야 또 올 거야.”
“그래도.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잖아.”
“나일라구나?”
“……응.”
대학을 졸업한 이후 아영이의 동업자가 된 나일라 로우는 며칠 전, 약간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내게 아내가 포기한 게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며 혼을 냈었다.
화를 낸 게 아닌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한탄하는 식이었지만, 내겐 그것이 꾸중처럼 들렸다.
물론 나와 함께 있는 게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해 주는 아내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계속해서 뭔가를 포기하는 상황이 되는 건 최악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언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말이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있지.”
“?”
“나 실은 약간 슬럼프였어.”
“?! 뭐? 진짜? 왜 말 안 했어?”
“바보. 자기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안 그래? 그리고 창작이라는 게, 슬럼프가 눈에 보이는 건 아니잖아. 나도 무작정 파고드는 성격도 아니고.”
“하긴, 그건 그렇다.”
“응.”
만약 일을 맡았다면 망쳐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아영이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내의 슬럼프를 몰라본 못난 남편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생각을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간 괜히 아영이를 더 아프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난 튀어나오려던 목소리를 꼭 삼키며, 그저 아내의 곁에 서서 그녀의 어깨를 꼭 안아 주었다.
거실 가득 비치는 햇살과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더해지며, 나는 무척 평화로운 기분을 느꼈다.
“수호 잔다.”
“응? 어, 그러네. 또 언제 뒤집었지.”
“하하. 이러다 곧 두 발로 걸을 것 같아.”
“너무 이르지 않나?”
“아빠 닮았으면 그러지 않을까? 운동 신경이 좋잖아.”
“음- 얼른 뛰어다녔으면 좋겠네.”
“축구 하게?”
“뭐, 그냥 공놀이지.”
그냥 공놀이라.
여전히 아내의 어깨를 안은 채로, 난 고개를 뒤로 돌려 식탁에 앉아 계신 아버지를 보았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아버지와 자주 공놀이를 했었다.
캐치볼도 한두 번은 해 봤지만, 금세 흥미를 잃고 아버지를 끌고 집 앞 골목으로 나와 한참 동안 패스를 주고받았다.
‘역시 조기교육인가?’
일하고 오셔도 힘들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나 역시 같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내가 그랬듯 잘못한 것이 있으면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혼이 나야 한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려 주지 않으면, 그 아이는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얼마만큼 잘못되었는지를 평생 모를 테니까 말이다.
‘많이 자고, 많이 먹고, 얼른 자라렴.’
언젠가 수호에게 아버지와 또 지금까지 축구를 해 오면서 만난 훌륭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잔뜩 해 줄 날을, 나는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는 내일 동료들과 리스본으로 날아간다.
***
[ONE MORE YEAR : 레알 마드리드의 수뇌부가 지단의 마음을 돌려놓는 것에 성공하다 ? BBC]? 맨체스터 시티에 0:7의 참패를 당한 뒤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직에서 물러났던 지네딘 지단이 플로렌티노 페레스를 포함한 수뇌부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다만 지단은 그 자리에서 나온 연장 계약을 거부. 기존에 남은 1년의 기간 후 재평가를 받기로 했다.
***
2020년 8월 12일. 1250-191 리스본, 포르투갈. R. 호드리구 다 폰세카 4. 알티스 프라임 호텔(Altis Prime Hotel. R. Rodrifo da Fonseca. 1250-191 Lisboa, Portugal).
버블이 진행되는 기간 우리가 묵을 곳은 리스본 시내에 자리 잡은 알티스 프라임 호텔이다.
마음 같아서는 동료들에게 리스본 투어라도 시켜 주고 싶었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훈련장과 호텔 외의 다른 장소는 전혀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저녁 시간 전까지는 돌아올게요.”
“오후 6시일세.”
“네. 명심할게요.”
특별한 이유로, 나는 예외를 허락받은 상황이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호텔 로비에 나와 있던 펩에게 인사한 후, 나는 호텔 바로 앞에 대기 중이던 차량에 올라탔다.
이것은 나의 에이전트가 준비한 것으로, 요나스는 나흘 전부터 리스본에 머물고 있었다.
“출발할까?”
“네. 6시까진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니까요.”
“시간은 맞춰 줄게. 그럼, 출발한다.”
“네.”
매년 최소 한 번쯤은 오는 곳이지만, 지금 보고 있는 리스본의 풍경은 내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영향이,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모습을 바꿨다.
‘제기랄.’
유럽에서 머물다 보면, 이번 코로나19에 관한 한국의 초기 대처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알 수 있다.
기존의 IT 기술을 멋지게 활용하는가 하면, 시민들의 자발적인 개인 보건과 거리두기 등은 잉글랜드 미디어에서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5G 무선 전파가 코로나19를 퍼뜨린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을 믿는 사람이 50만 명을 넘긴 잉글랜드에 비하면, 한국인들은 정말 똑똑하게 전염병에 대처했던 거다.
호텔에서 약 10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포르투갈의 국영 기업 ‘Central Lisbon University Hospital Centre’가 운영하는 상 호세 병원이다.
정식 명칭은 ‘Centro Hospitalar Universitario de Lisboa Central – Hospital de Sao Jose’다.
“오- 당신은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별말씀을요. 저보다 여러분들이 수고하시죠.”
“아닙니다. 의료인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니 더 당연함을 고맙게 여겨야죠.”
“하하. 번거롭겠지만, 사진을 먼저 찍을까요?”
“네.”
한국과 잉글랜드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난 이곳 리스본 상 호세 병원에도 대량의 방호복과 의료용품 및 마스크 등을 기부했다.
리스본엔 다른 병원도 많았지만, 굳이 내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여기에 특별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찰칵-
찰칵-
기부 내용을 사진으로 남기는 상투적인 일이 전부 끝난 후, 나는 새롭게 방역을 끝마친 차량의 앞에 서서 병원의 대표인 에스테방 파스코아우(Estevao Pascoal)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저- 그때 말씀드린 건.”
“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어떻죠?”
“글쎄요. 죄송한 말이지만, 뭐라 장담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딱히 치료제가 있거나 한 질병도 아니라서 말이죠. 이렇게까지 해 주셨는데, 미안합니다.”
“아뇨. 그냥, 계속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해 주세요.”
“네. 약속드리죠.”
현재 이곳엔, 베베가 코로나19로 입원해 있다. 경증이 아닌 중증 반응을 보인 상황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전해 들었다.
그래서 난 조금 이기심을 발휘, 기부라는 선행을 나의 사적인 이유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후우~ 가죠.”
“……괜찮아?”
“어차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요.”
“뭐, 그건 그런데…….”
“가요. 베베는 강한 분이니까. 조만간 제게 고맙다고 전화를 걸어 올 거라고요. 그러니, 그렇게 믿고 있을래요.”
“그래. 그러자.”
처음 병원에서는 내게, 방호복을 갖춰 입고 베베를 잠깐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동료들이 기다리는 호텔로 돌아가야 했고, 아무리 방호복을 입는다고 하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들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설 수 없었다.
소중한 사람을 문병 가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짜증도 났지만, 그걸 모두 참아 내는 게 결국 프로였다.
지금의 내가 프로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것은 오직 축구뿐이었고, 그러니 축구를 중심으로 모든 행동을 가져가야 한다.
그렇게 다시 차량을 달려 내가 향한 곳은 리스본의 시청이었다. 병원에서는 겨우 5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하하. 리스본의 영웅을 이런 식으로 뵙는군요.”
“영웅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아, 차라리 왕이 어울리려나요?”
“…….”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선언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이 미친 곳은 이곳 리스본에 있었던 노인 보호 시설이었다. SL 벤피카 시절 자주 찾았던 곳 말이다.
요나스에게 부탁해 수소문한 결과 해당 시설은 현재 폐쇄되었고, 당시 머물던 분들은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누가 어디로 갔는지의 기록조차 제대로 남겨져 있지 않아, 그분들을 일일이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신, 리스본 시의회에 시설에 있는 노인이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비용을 지불키로 했다.
일주일의 무료 식사를 배식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대략 22만 유로(약 3억 원) 정도였고, 난 거기에 28만 유로를 더해 50만 유로를 시의회에 전달키로 했다.
이 같은 일들이 되도록 미디어에 보도가 되지 않길 원하던 나였지만, 자신을 토메 루즈(Tome Luz)라고 소개한 공보국 국장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 사람들은 다시 당신을 찬양할 겁니다.] [“제가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 하하.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팬데믹으로 세상은 매우 어둡고 힘듭니다. 모두의 삶이 피폐해졌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동양인들은 여기저기에서 인종차별을 받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이런 좋은 일들을 한 것을 알리게 되면 최소한 리스본에서는 동양인들이 조금 더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고요.]코로나19 이후 서양 심지어 호주에서도 동양인이 차별받는다는 뉴스가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그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풀어낼 곳이 필요했고, 코로나19가 발생했다고 여겨지는 중국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일개 개인이 중국이란 거대 국가를 직접 타격할 수는 없었던 관계로, 중국인이나 그와 비슷한 외모를 지닌 동북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이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고 말았던 거다.
늘 선행은 조용하게라고 믿어 왔던 내가, 이렇게 떠들썩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에는 그런 이유가 숨어 있다.
만약 내 행동이 한 도시에서 발생하는 동양인 혐오를 멈출 수 있다면, 평소의 신념을 꺾는 것 따위는 조금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으아- 지친다.]“응? 뭐?”
“지친다고 했어요, 요나스. 후우~ 이제 호텔로 다시 돌아가죠.”
“그래. 수고했어.”
“뭘요. 당신이 더했죠.”
위와 같은 일정을 끝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시각은 정확히 오후 5시 55분이었다.
탁-
“그럼, 나는 근처에 있을게. 언제든 연락하고.”
“네. 그런데 대체 어디에 있는 거예요?”
“친구 집에.”
“친구 누구요?”
“하하. 설마 내가 바람이라도 필까 봐?”
“아뇨. 제 친구가 그의 아내에게 총에 맞는 꼴을 보기 싫어서 혹시나 싶어서 묻는 거예요.”
“그거 너무 그럴듯하잖아.”
소름 끼쳐 하는 요나스를 보며, 난 치아를 가득 드러낸 채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죠? 그래서? 친구 누구요?”
“얀. 얀 아담센.”
“!!!”
“그를 기억해?”
“……네. 물론이죠.”
얀 아담센은 나의 첫 번째 에이전시였던 UCN의 대표였다. 그리고 그와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는 단계에서 헤어졌다.
“실은, 내가 그 녀석을 버렸거든. 얀은 독일에서의 사업이 잘되지 않자 계속 술만 마셨어. 난 어떻게든 녀석과 함께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까지 되더라고. 그러다 2년 전에 소식을 들었지 뭐야.”
“이곳에 있나요?”
“응. 다만.”
“?”
“재활시설에 있어. 그리고 기억도 거의 못 해. 다행히도 내가 친구라는 것은 기억해 주고 있지만, 사업이라든가 그런 부분은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나 보더라고. 그것도 알코올 중독의 영향이라더라.”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에, 나는 딱히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내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해 버린 건 나기 때문이다.
어린 치기에 검은돈은 싫다며 UCN이 만들어 놓은 계약을 거부한 내가, 지금 이렇게 시티에 뛴다는 것도 괴로운 마음이 드는 하나의 이유였다.
요나스는 내가 아닌 얀의 문제라며 말은 했지만, 죄책감이 피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요나스.”
“응?”
“혹시 제가 원망스럽나요?”
“……아니. 전혀.”
“진짜요?”
“응. 우린 가족이잖아. 그리고 너와 나는 형제야. 그런 관계에서는 미움이나 원망 같은 건 없는 거고. 무엇보다, 말한 것처럼 얀이 그렇게 된 것은 본인 때문이야. 네가 계속 있었다고 해도, 걔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을 거니까.”
“네.”
“그래. 그럼, 이만 갈게.”
“조심해요.”
“하하. 물론이지.”
부우웅-
다시 차를 몬 요나스가 호텔을 빠져나가고, 차량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나는 괜히 복잡해지는 생각에 머리를 사납게 헤집었다.
“후우~”
리스본에 도착한 지 이제 겨우 4시간, 하지만 이곳은 내게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고 있다.
***
[챔피언스리그를 위해 입국한 8개의 클럽. 그들은 각자 별도의 호텔에서 생활하며 약 2주간의 버블에 돌입한다. – 아 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