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157)
1125화 Together (11)
※ 2020년 11월 대한민국 A팀 소집 명단
GK ? 구성윤(대구), 이창근(상무)
DF ? 윤종규(서울), 김태환(울산), 김다온, 김민재(맨체스터 시티), 원두재(울산) 정태욱(대구), 권경원(상무), 정운(샤흐타르), 이주용(전북)
MF ? 정우영, 남태희(알 사드), 이재성(볼프스부르크), 이강인(발렌시아), 손준호(전북), 주세종(서울)
FW ? 손흥민(토트넘), 황의조(리옹), 황희찬(라이프치히), 조규성(전북), 송민규(포항), 김인성(울산), 엄원상(광주)
***
2020년 11월 10일. 2700 비너노이슈타트, 오스트리아. 비너 슈트라세 ? 베르크슈트라세 113. 빈버짓 B&B(WinBudget B&B. Wiener Straße – Werkstraße 113 / 2.4, 2700 Wiener Neustadt, Austria).
시끄러운 PL을 잠시 뒤로한 채, 나는 민재와 함께 대표팀의 훈련 장소인 오스트리아 비너노이슈타트에 도착했다.
우린 이곳에서 멕시코와 평가전을 치른 후, 이튿날 마리아엔처스도르프로 이동해 카타르와 11월 A매치 두 번째 평가전을 치를 예정이다.
다만 이번 대표팀은 정상적인 전력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유는 다수의 코로나19 확진자와 팬데믹으로 인해 생긴 각 국가의 방역 지침 때문이었다.
중국 슈퍼 리그와 일본 J-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제외된 것이라든가, 재성이 형이 멕시코전만 뛰고 독일로 돌아가는 것 등이 그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리는 모처럼 대표팀 동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즐거워하는 중이다.
“아니, 진짜 왜 그러는데?”
“그냥, 심리전이지 뭐.”
“그런데 너무 심하잖아.”
“야- 그럴 수도 있지, 인마.”
“아니, 그럴 수도 있긴- 그게 말이 돼? 우리가 심판을 매수했다. 돈으로 승리를 산다. 그거 알지? 토트넘이 2년 동안 우리보다 돈 더 많이 쓴 거.”
대표팀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그건 식사일 것이다.
KFA 소속 영양사인 신현경 님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선정한 메뉴를 조리장이신 김형채 님을 포함한 세 분의 셰프와 다수의 아주머님이 요리해 주고 계시다.
물론 이번처럼 원정을 떠나오는 날이면 메뉴나 인원은 조금 간단해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는 너무나도 행복하다.
민재가 흥민이 형과 티격태격 중임에도,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고 있지 않은 이유다.
“아니, 형. 먹지만 말고 좀 말해 봐.”
“후르르릅- 아, 방해하지 마.”
“아니 이 형, 먹기만 해-”
“야 이거, X나 맛있거든? 후루룩-”
아침 메뉴가 육개장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판에 산더미처럼 음식을 쌓아서는 조용히 식탁 하나를 차지했다.
본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식사에 집중할 생각이었지만, 민재와 흥민이 형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둘은 최근 잉글랜드를 뜨겁게 달구는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온전히 음식만을 즐기고 싶었던 나는 일부러 귀를 닫고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크어- 잘 먹었다.”
“이제 다 먹었어?”
“……한 그릇 더 먹을래.”
“뭐? 또??”
“뭐, 인마. 네가 여기서 젤 많이 먹잖아.”
“…….”
대표팀 내에서 민재의 식성은 왕성하기로 유명하다. 자타공인의 대식가이기도 하며, 어떨 때는 나의 두 배 정도를 먹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 소집이 1년 가까이 없으면서 생겨난 대표팀 밥에 대한 열망은, 그 대단한 민재의 식욕마저도 뛰어넘도록 만들어주었다.
어김없이 머슴밥 두 개 분량을 식판에 쌓아둔 민재를 남겨 두고, 나는 다시 메뉴를 고르고자 음식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또 먹게?”
“아우- 당연하지.”
“야, 넌 먹으러 왔냐?”
“그러는 형은. 아니야?”
“……시끄러 인마.”
나처럼 두 번째로 음식을 담고 있는 재성이 형이 멋쩍어하는 사이, 양념한 구운 고등어 조각과 김치를 담고 난 나는 아까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쫄면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동시에, 맞은편에서도 손이 뻗어져 왔다.
“응?”
“아… 드세요.”
“뭘 드세요냐, 편하게 해, 인마.”
“아, 네.”
현재 나를 어려워하는 친구는 울산 현대에서 뛰고 있는 원두재라는 친구다.
2016년 U-20팀에 발탁되었었고, 올해 태국에서 있었던 AFC U-23 대회에도 참가했다. 코로나19로 연기된 올림픽 대표 명단에 뽑힐 가능성 역시 큰 친구다.
플레이스타일 자체는 우영이 형과 비슷하다고 들었다.
“야, 넌 누구 좋아하냐?”
“네?”
“축구 선수 중에서 말이야. 누가 우상이냐고.”
“아, 한국에서요?”
“다 포함해서.”
어색함을 깨트릴 겸 두재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매우 뜻밖의 답이 들려왔다.
두재는 전(前) 리버풀 소속의 핀란드 스타 사미 휘피에(Sami Hyypia)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주 포지션이 6번(DM)인 만큼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
어째서냐고 이유를 묻자, 어렸을 때부터 위치 선정이나 판단이 조금 부족했는데 속도나 민첩성이 떨어짐에도 그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던 모습이 부러워서라고 답했다.
대표팀 합류 전에 전달받았던 스카우트 리포트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야, 너 자리 어디냐?”
“저기요.”
“…….”
조금 이야기를 해 볼까 싶어서 녀석의 테이블을 물었는데, 두재는 지금 같은 울산 출신 선수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어젯밤 오스트리아에 도착하기도 했고 아직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기도 전이라서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난 친한 이들끼리 어울리도록 만들 생각이 없다.
때마침 잘되었다 싶어, 난 두재에게 수저와 젓가락을 챙겨 오라 말하고는 빈자리가 보이는 테이블로 이동했다.
“네? 네?”
“식기 챙기라고. 그리고 따라와. 알겠지?”
“아… 네. 넵!”
지금 내가 향하는 곳엔 정운 형과 재성이 형이 함께 있다.
탁-
“?”
“……뭐냐?”
“뭐긴, 두 번째는 여기서 먹으려고.”
“……왜?”
“왜라니. 나 싫어?”
“싫은 게 아니고, 갑자기?”
“어. 저기 너무 시끄러워.”
“…….”
여전히 격한 논쟁 중인 민재와 흥민이 형을 쳐다본 재성이 형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에 얼굴을 가져갔다.
그렇게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가까운 곳에서 식판을 든 채 뻘쭘한 자세로 선 두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발을 앞으로 뻗어, 의자를 뒤로 빼낸다.
드르륵-
“뭐 하냐? 앉아.”
“아, 넵!”
“후루룩-”
“훌쩍.”
두재가 오건 말건 신경 쓰지 않으며 국물에 만 밥을 먹는 재성이 형과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코를 팽하고 푼 정운이 형이 뒤늦게 시선을 대표팀 신입생에게로 가져갔다.
“두재. 맞지?”
“네,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 군기 들었어, 얘. 야, 네가 잡았냐?”
“내가 잡을 것 같아?”
“하긴. 네가 그런 놈도 아니고.”
“알면서 그래. 야, 먹어 얼른.”
“넵.”
여러 가지 이슈로 대표팀에 뽑혔어야 했을 선수들의 합류가 불발되면서, 두재와 같은 올림픽 팀 선수들이 대거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두재뿐만 아니라 작년 K2 리그 최고의 공격수였던 규성이라든가, 포항에서 뛰는 민규와 대구 센터백 태욱이도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뛸 친구들이다.
대체로 발탁된 성격이 짙은 데다가 사실상의 첫 정식 대표팀 합류인 만큼, 다들 긴장하고 있을 거로 생각하고 있다.
“넌 목표가 뭐야?”
“어, 일단은 올림픽 메달요.”
“그렇지. 아무래도 그건 중요하지. 해외로 진출할 때도 일단 군대 문제가 해결되면 편하기도 하고. 마, 자신 있나?”
“형님 사투리도 쓰세요?”
“쓰는 건 아니고. 그냥 가끔 따라 하는 거지.”
어색한 축구 선수끼리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당연하게도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올림픽 메달 획득 후 군대 문제를 해결한 뒤를 상상하던 두재는 J리그나 중동을 거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언젠가는 유럽의 중심 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마냥 어리다곤 할 수 없는 23살의 나이.
축구 선수로선 사실상 성장은 끝났다.
훈련을 통해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거나 축구를 이해하는 시각을 넓혀 가는 것은 가능해도, 가지고 있던 재능을 실력으로 바꾸는 일은 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제이미 바디처럼 뒤늦게 빛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수준의 확률이다.
“동영상 많이 봐라.”
“네? 무슨…….”
“야동 같은 거 말고, 인마. 축구 동영상.”
“아-”
두재는 조금 전 내게 본인에게 부족한 위치 선정과 판단 능력을 사미 휘피에가 지니고 있어서 그를 존경한다고 말했었다.
과연 이 친구가 얼마만큼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휘피에는 지독한 축구 중독으로 유명했다. 그러니까 빅리그의 감독까지 할 수 있었던 거다.
물론 감독으로서의 휘피에는 선수로서의 휘피에보다 한참 부족했지만, 중요한 건 그가 끊임없이 축구를 탐구했다는 사실이다.
“너, 휘피에 파트너가 누구였는지는 아냐?”
“아뇨, 그것까지는.”
“스테판 앙쇼. 들어 본 적 없어?”
“네, 없습니다.”
스테판 앙쇼(Stephane Henchoz).
스위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이자, 리버풀 팬들이 가장 사랑했던 수비수기도 하다.
‘커다란 핀란드 사람(The Big Finn)’ 혹은 ‘빙벽(The Ice Wall)’과 같은 별명으로 불렸던 휘피에와 함께 2000년대 초반의 리버풀 수비를 책임졌는데, 그의 별명은 바로 마당 개를 뜻하는 ‘Yard Dog’이었다.
휘피에는 파이터 형 센터백이었던 스테판 앙쇼의 장점을 충분히 숙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파트너에게 맡기고 상대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움직였다.
에레비디지에 빌럼에서 뛰던 시절만 하더라도 휘피에는 실수가 조금 있는 선수였지만, 앙쇼와 함께한 이후부터는 안정감을 갖춘 센터백이라는 평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끊임없이 자신의 축구에 대해 생각하고 또 주변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표팀이라고 치자.”
“…….”
어느새 식사를 끝마친 재성이 형이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하고, 정운이 형도 음식을 간헐적으로 입에 가져가며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나는 두재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성장 방법을 이야기해 나갔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하듯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또 자신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것을 잠깐 뒤틀어 줄 수 있는 본인만의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를 축구에 적용해 보면, 대강 이런 식이다.
“네가 훈련 때 감독님한테 어필하고 싶어. 그래야 인정받고 주전으로 뛰니까.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쉬운 건, 네가 X나게 잘하는 거야. 그냥 훈련만 한 건데, 감독님이 와- 쟤 봐라. 쟤 다음 경기에서는 무조건 선발로 뛰게 해야겠다. 이게 진짜 제일 간단한 방법이지. 그런데, 그게 힘들다? 그럼 너는 퍼즐이 되어야 해.”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고서야, 축구는 절대 혼자만의 힘으로 승패를 결정지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독의 지시와 나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피치에서 뛰는 동료들이 어떠한 성향을 지녔는지도 알아 둬야 한다.
특히 중원에서 뛰는 선수라면, 동료의 장단점과 성격적인 개성 등을 전부 파악해 두는 게 좋다.
실제로 케빈은 훈련 때 모두에게 다가가 어떠한 패스를 받는 것이 좋으며, 어떠한 몸동작을 가져갔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를 반드시 묻고 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아이들과 놀아 주며, 본인의 랩톱으로 동료들의 플레이가 남긴 영상을 시청한다.
어째서 케빈 더브라위너가 모두의 입맛에 맞는 패스를 그토록 많이 보내 줄 수 있느냐고? 바로 지금까지 말한 내용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다.
“피치에서 백날 연습해도, 그런 건 절대로 몰라.”
“…….”
“사람들은 1만 시간의 법칙이다 뭐다 하는데, 솔직히 피치에서 하는 것만 훈련이냐? 평소에도 전력분석 같은 거 하잖아. 그건 훈련 아니야? 그러니까 말이야, 보는 것도 부지런하게 해 보라고. 진짜로 도움 되니까. 경험해 보고 하는 말이다?”
“넵-! 감사합니다!”
“뭔, 감사냐. 밥이나 먹어. 다 식었다.”
살짝 쑥스러워 밥이나 먹으라고 말한 뒤 살짝 굳어 버린 쫄면에 국물을 붓는 나를 보며, 재성이 형과 정운 형이 피식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내가 굳이 두재를 데리고 이런 이야기를 나눈 건, 앞으로 대표팀에 6번(DM)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용이 형이 은퇴하고 난 뒤를 우영이 형이 물려받았지만, 벤투 감독님이 추구하는 철학과 현대 축구의 흐름을 고려하면 조금 한계가 있어 보인다.
오랜 기간 함께해 오고 또 대표팀을 위해 늘 먼저 헌신해 준 우영이 형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월드컵 우승을 이뤄 내고 싶다.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이 결승전에서의 일로 파행에 가까운 결말로 끝나면서, 사람들은 당시를 거의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아무도 대한민국이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한 팀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도 그런 원인 중에 하나긴 하겠지만, 존경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피할 수 없었다.
“아~ 배부르다.”
“뭐 얼마나 먹은 거야?”
“조금 많이 먹었지. 야, 미팅 언제냐?”
“두 시간 있다가.”
“그래? 그럼 난 좀 자야겠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식당을 나서서 객실로 돌아가던 중, 수석 코치인 세르지우 코스타(Sergio Coata)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 면담이네.”
“잘하고 와.”
“그래. 먼저 가라-”
현재 대표팀은 벤투 감독님이 직접 데려온 네 명의 코치와 한 명의 스포츠 과학자. 그리고 코칭스태프와 우리를 이어 줄 두 명의 한국인 코치가 함께하고 있다.
그중 세르지우 코스타는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사실상 벤투호(號)의 전술을 정한다.
펩이나 투헬처럼 감독이 직접 전술을 설정하는 게 아니라, 클롭이과 콘테가 하듯 본인의 철학을 완벽히 이해하는 코치가 전술의 뼈대를 설정토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따로 면담이 진행되기도 한다.
닫혀 있는 객실 문 앞에 서서,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내 체력적인 상태라든가 뛸 포지션. 그리고 이번 A매치 주간 대표팀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과 전술적인 큰 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리고 잠시 뒤,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벤투 감독님이 등장했다.
“안으로 들어오게.”
“네.”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인데, 지난 10월 A팀과 올림픽 팀의 합숙 기간 동안 벤투 감독님이 몇 번이고 나의 빈자리를 느낀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선수단과의 벽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거다.
선수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던 삼파올리 감독님과는 달리, 벤투 감독님은 명확한 선을 유지하며 프로페셔널한 관계를 선호하는 분이다.
다만 일부에겐 마음을 조금 많이 여시는 편인데, 주장이기도 하고 포르투갈어에도 능숙한 나는 감독님의 진짜 표정과 마음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림 중 하나였다.
“얼굴이 좋군. 팀이 잘 나가서인가?”
“하하. 그보단, 밥이 맛있었거든요.”
“솜씨 좋은 주방장들이지.”
“네. 감독님도 한식을 요즘 찾으신다면서요?”
“누가 그러던가?”
“필리프가요.”
“이런! 아무래도 그 녀석의 입을 단속해야겠어.”
“하하. 뭐 어때요. 다들 그걸 좋아할 텐데.”
“아무튼, 이렇게 다시 보게 되어 반갑네.”
“저도요.”
어젯밤 늦게 오스트리아에 도착한 나는 간단히 인사만을 한 이후에 감독님의 배려로 바로 객실에서 쉴 수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대화는 오늘이 처음이었는데, 감독님은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 볼 수 없었던 현실과 그나마도 제대로 된 팀을 소집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속상함을 표했다.
당장 내년 3월부터 월드컵 조별 예선이 시작될 텐데,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기간을 코로나로 흘려보낸 것이 많이 아쉬운 것처럼 보였다.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에게 좀 기대야겠어.”
“얼마든지요.”
“그래. 부탁하지.”
주장으로서 나는 감독님의 생각과 의도를 선수단에게 오해 없이 전달할 의무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감독님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난 그 준비가 되어 있다.
지난 10월 말 이번 A매치 명단이 발표되고 평가전의 장소와 상대팀 등이 공개된 이후부터, 나는 시티에서 하던 것들을 그대로 대표팀에 가져오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데, 한 가지 저도 요청사항이 있어요.”
“응? 뭐지?”
“제 방에 뭐가 있는데, 그걸 식당이랑 여기저기에 좀 걸어 주실 수 있겠어요?”
“???”
맨체스터를 떠나기 전, 나는 시내의 한 가게로 들어가 손수 디자인한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리고 그걸 이곳으로 가져왔다.
“?!!”
“보셨죠? 바로 이거거든요.”
사람들과 함께 내 방으로 돌아온 뒤, 나는 캐리어를 뒤적여 가져온 물건을 객실 바닥에 넓게 펼쳐 보여 주었다.
TOGETHER.
지금쯤 에티하드 캠퍼스 모든 곳에도 걸려 있을 이 문구가 새겨진 걸개는 앞으로 이곳 대한민국 대표팀이 있을 장소 어디라도 함께할 예정이다.
“다 함께.”
“?”
“다시 월드컵 결승전으로 가고 싶어요.”
“……후후. 그건 무척 어려운 일이 될 거야.”
“네- 저도 알고 있어요.”
미소와 함께 턱으로 손을 가져간 벤투 감독님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 비슷한 표정을 얼굴에 띄워 올린 나 역시 바닥에 있는 글자를 바라보며 대표팀의 새로운 출발을 기다렸다.
이미 오래전에 벤투호는 출항했었지만, 제대로 된 항해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