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183)
1151화 Leadership (2)
2021년 1월 22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더 퍼스트 팀 센터. 집중 재활 치료실.
한 시즌을 통째로 쉬어야만 했던 나의 부상 이후, 클럽은 끊임없이 재활 부분의 최첨단을 걷고자 노력해 왔다.
이 분야의 최고 거장인 쿠가트/볼파르트 박사님의 조언을 구하는 한편, 과거 나를 전담했던 네 명의 스태프를 정식으로 고용해 미국 등지에서 경험을 쌓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올 시즌부터 퍼스트 팀 센터에 ‘집중 재활 치료실(Intensive Care/Rehabilitaion Unit)’로 불리는 시설이 생기게 됐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흔히 IRU로 불리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이들이 이곳에서 관리를 받는다.
처음엔 가벼운 부상으로 여겨졌지만, 벌써 몇 달째 자취를 감춘 올루프도 그중 한 사람이다.
“여전히 몸이 불편한 거야?”
“아니, 몸은 괜찮아.”
“?”
최초 올루프의 부상은 갈비뼈 부근의 통증과 발목 부상으로 알려졌었다.
일반적으로 2~3주 정도면 회복되는데, 3개월이 넘도록 복귀 일정이 정해지지 않자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까지, 올루프는 독일에서 지냈다.
“몰랐는데, 작은 염증들이 있더라고.”
“발목에?”
“응.”
“그거 뭔지 알지. 나도 염증 때문에 고생을 했으니까. 그건 진짜 귀찮은 녀석이야. 지금도 그게 남아 있어?”
“아니. 클리닉에선 완벽하다고 했어.”
“그거 잘됐네. 그렇지?”
“…….”
“올루프?”
일정을 끝마친 내가 30분 정도를 더 기다리다가 IRU를 찾은 건 전날 올루프로부터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올루프는 오랜만에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을 했고, 난 잉글랜드로 돌아온 지 이틀밖에 안 된 친구의 부탁을 기꺼이 듣기로 했다.
재활을 위해 볼파르트 클리닉에 머무는 동안 올루프의 아내와 아이들을 챙겨 온 터라, 따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데.
“나 아무래도 축구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아.”
“……뭐?”
“심장 쪽 문제래. 유전성 질환이라더라. 희귀한 경우라서 처음부터 확인할 수 없었던 것 같아. 며칠 전에 볼파르트 박사님이 날 불러서 이야기하더라.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려서 바로 돌아오지 못했어.”
올루프가 덤덤하게 말을 하는 내내,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부정조차 불가능했다.
이런 내 정신을 차리게 만든 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미안.”
미안하다고?
어째서 이 친구가 그렇게 말하는 걸가?
내가 울어서?
그럼 난 눈물을 멈춰야만 했다.
“훌쩍. 크흠. 또 따로 아는 사람은 있어?”
“니나는 알고 있어.”
“다른 사람은 모르고?”
“응. 어쩐지 두 번째는 너여야 할 것 같았거든.”
“…….”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올루프의 미소가 어떠한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나였다면 똑같이 웃을 수 있을까 싶다가도, 어쩐지 그게 보기 싫어 눈을 돌리게 됐다.
정말로 조금도 불안해하고 있지 않았었기에, 나는 지금 피어나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이 어려웠다.
“이건 말도 안 돼.”
“하하. 처음엔 나도 그랬어.”
“넌 여기에서 축구를 관둘 녀석이 아니야.”
“그래- 얼마 전까지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있잖아? 그걸 포기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더라. 웃기지? 그토록 사랑한 축구인데 말이야.”
실제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올루프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개운해 보인다.
“만약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고집을 좀 더 피웠을 수도 있어. 죽어도 피치 위에서 쓰러져 죽겠다고 했겠지. 하지만 말이야,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
“Dude.”
“그들을 내버려 두고 먼저 갈 수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게 되니까, 많은 것들이 단순해지더라. 은퇴를 결심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어. 무엇보다, 꼭 선수가 아니더라도 축구를 계속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올루프는 내 앞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나와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HQ를 찾아 펩을 만나 똑같은 말을 할 거라고 했다.
그런 뒤에는 덴마크 축구 협회에 연락하여, 덴마크 대표팀의 스태프로 참여하고 싶단 의사를 밝힐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뭐, 모르텐도 거기에 있으니까.”
“너 정말…….”
“?”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구나?”
“나도 농담이었으면 좋겠어.”
올보르 BK에서 해임된 이후, 모르텐 감독님은 약 1년 반 정도 안식년을 가졌다.
그러다가 과거 노르셸란에서 본인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있던 카스페르 율만의 요청을 받아 덴마크 대표팀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들어섰다.
노르셸란에서 좋은 호흡을 보였던 두 사람은 위치가 바뀌었지만, 여전한 케미스트리를 과시하며 덴마크가 UEFA 네이션스 리그 A에서 잔류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 두 사람을 올루프는 지금 돕고 싶다며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걸 막을 수 있을까?
아니, 그게 가당키나 할까?
“그럼 바로 떠나는 거야?”
“아니. 그렇진 않을 거야. 이곳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도 많으니까. 비록 내가 원하는 결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꿈을 이뤄서 만족하고 있어.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 어쨌든 두 개의 대회에서 전부 트로피를 들어 올려 봤으니까.”
솔직한 내 심정을 표현하자면, 그냥 지금 당장이라도 펑펑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랬다간 나보다는 이 친구가 내게 더 미안해할 것이다.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나는 앞으로 친구의 앞날에 아무런 구름도 끼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펩과 대화하고 연락할 거지?”
“응. 그럴게.”
“그래.”
올루프와 대화를 끝낸 후, 나는 IRU의 앞에서 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몇 걸음 내딛지 못하고, 난 올루프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올루프!!”
“?”
평온한 얼굴로 돌아서는 녀석에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과연 무엇일까?
올루프는 내가 유럽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恩人)이자, 유럽에서 사귄 첫 번째 친구다. 이 녀석 덕분에 노르셸란 유스 머저리들의 괴롭힘을 견딜 수 있었다.
만약 이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핼리 갤과 같은 멍청한 녀석들의 인종차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다.
한 살 많은 올루프가 친구로서 때로는 친형처럼 늘 든든히 내 곁을 지켜 주었기에, 난 핼리 갤 무리의 따돌림을 이겨 내고 날 괴롭히던 이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나는.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어.”
“…….”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린 영원한 친구라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네 찡그린 얼굴이 내겐 그 무엇보다 의미 있었다고.”
덴마크에는 [진정한 친구의 노한 얼굴은 악한 친구의 웃는 얼굴보다 귀중하다] 라는 속담이 있다.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억지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도 큰 상실감에 젖어 있을 올루프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언제까지고 녀석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뿐이었다.
거리가 조금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쓰게 웃는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며, 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으면서 주먹으로 가슴팍을 몇 번 두드렸다.
팍!
팍!
고개를 아래로 잠깐 떨어트리는 올루프.
녀석은 곧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네가 내 친구라서 너무 자랑스러워!”
“당연하지! 누구의 친구인데!”
“하하. 그럼, 진짜 이따 보자!”
“꼭 연락해! 기다릴 테니까-! 알겠지?!”
대답 없이 뒤돌아 손을 가볍게 흔드는 오랜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당장이라도 흐르려는 눈물을 참아내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째서 삶은 늘 좋은 사람에게 불행을 주는가?
나는 오늘도 한 번, 이 부조리를 생각해 본다.
***
2021년 1월 23일. 첼트넘 GL52 5NA, 잉글랜드. 워든 로드. 더 컴플리틀리-스즈키 스타디움(The Completely-Suzuki Stadium. Whaddon Rd. Cheltenham GL52 5NA).
.경기 시작 90분 전
첼트넘 0 : 0 맨체스터 시티
&Best Eleven(맨시티/상대팀)
&Tactics(맨시티/상대팀) : 4-3-3/4-2-3-1
GK ? 잭 스테픈 / GK ? 조쉬 그리피스
RB ? 키런 트리피어 / RB ? 매티 블레어
CB ? 테일러 하우드-벨리스 / CB ? 찰리 래글런
CB ? 에므리크 라포르트 / CB ? 벤 토저
LB ? 루크 음베테 / LB ? 루이스 프리스톤
DM ? 페르난지뉴 / RCM ? 윌리 보일
RCM ? 토미 도일 / LCM ? 코너 토마스
LCM ? 아드리안 베르나베 / RAM ? 핀 아자즈
RW ? 리야드 마레즈 / CAM ? 크리스 클레멘츠
LW ? 라힘 스털링 / LAM ? 조지 로이드
ST ? 리암 델랍 / ST ? 알피 메이
.
.
내가 올루프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집에서는 니나가 아영이에게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차를 몰아 집에 도착한 나는 울고 있는 아내를 안았고, 니나는 밝게 웃으면서 남편이 계속해서 건강히 살아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누가 그 남편에 그 아내 아니랄까, 니나는 오히려 슬퍼하는 우리를 달래 줬다.
“다들 충격을 받긴 할 거예요.”
“그렇겠지.”
“네. 올루프는 환상적인 동료였으니까요.”
“…….”
올루프의 은퇴 소식은 현재, 일부에 의해서만 공유되는 중이다. 팀은 현재 적절한 발표 시점을 생각하고 있고, 펩의 이야기에 따르면 일주일이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는 오늘 내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팀과 함께 첼트넘을 찾은 이유다.
표면적으로는 주장으로서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기 위해 함께하고 있는 거였지만, 진짜 이유는 올루프의 일을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전화나 메시지로도 가능했지만, 펩과 나 모두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길 원했다.
“솔직히, 어젠 무척 충격을 받았네.”
“저도요.”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펩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내가 느꼈던 감정이기도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심장 질환이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심장 문제로 은퇴를 결정했고, 한국에서도 신영록 선배가 그라운드에서 심정지로 쓰러져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다.
아무리 축구가 중요하다지만, 본인의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게다가 올루프에겐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도 존재한다.
그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본인과 곁의 이들을 위해.
“언제쯤 말씀하실 생각이죠?”
“실은, 내일쯤 생각하고 있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상처받을 이들을 위로해 주게. 물론 누구보다 자네가 큰 상처를 받았겠지만 말이야.”
“괜찮아요. 그렇게 하죠.”
“미안하군.”
“별말을요.”
주장이 된다는 건 타인을 위해 본인을 상처입히는 것이기도 했다. 쉽게 희생이라는 단어로 설명 가능한데, 난 그를 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좀 더 편한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자 했다면, 애초부터 주장직을 받지도 않았을 거다.
“이따가 몸은 같이 풀어도 되죠?”
“물론이지. 선수들도 그걸 원할 거야.”
“네. 그럼 준비할게요.”
“부탁하네.”
원정팀 감독실을 빠져나온 후, 나는 동료들이 있는 드레싱 룸으로 향했다.
리그2 소속의 첼트넘 FC가 사용하는 경기장인 컴플리틀리-스즈키 스타디움은, 생각보다는 더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드레싱 룸 역시, 쓰기에 별로 불편함이 없다.
안으로 들어서서, 나는 베르나르두가 쓰고 있는 라커로 향했다.
별도로 챙겨 온 짐을 베르나르두의 라커에 함께 놓아두었는데, 거기에서 운동복을 꺼내야 했기 때문이다.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별도의 유니폼이 없어, 대충 안에 운동복을 갖춰 입은 후 팀의 연습복을 입을 생각이다. 축구화도 내가 쓸 것을 직접 챙겨왔다.
“히터 어딨어?”
“저기.”
“고마워.”
“설마 몸을 풀려고?”
“응. 애들이랑 얘기나 좀 하게.”
“그거 든든하네.”
“시꺼-”
장난기 가득한 베르나르두를 뒤로하며, 나는 가져온 축구화를 히터 안에 넣었다.
오래전부터 유럽은 따뜻하게 데운 축구화를 선수들이 착용하도록 권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발 부위에 부상을 당할 확률이 현격하게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도 이런 노하우를 한국의 아카데미에 전파했고, 지금은 대한민국의 모든 축구 클럽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고 전해 들었다.
현대 축구의 트렌드가 되는 전술을 배우고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좋지만, 난 언제나 이런 작은 것들 하나가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는 편이다.
딸깍-
축구화 전용 히터에 내 것을 넣어 둔 후, 나는 잔뜩 긴장한 루크 음베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오늘 펩은 센터백인 음베테를 왼쪽 풀백으로 배치. 상황에 따라 이 친구를 왼쪽 스토퍼로 돌리는 변형 쓰리백 전술을 기획했다.
한 번도 서 본 적이 없었던 포지션이라 음베테는 제법 긴장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 친구에게 어려울 것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월등하다는 걸 생각해.”
“그게 도움이 될까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지. 잘 들어. 수비수는 팀이 이기는 것만 생각하면 안 돼. 그 전에 먼저 실점하지 않는 걸 생각하라고. 득점은 공격수의 몫이니까. 실점하지 않으면 패배하지도 않아. 이걸 머릿속에 넣어 둬.”
“네.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사실 순수하게 변형 센터백으로서의 능력만을 고려한다면, 리크를 왼쪽 풀백에 서게 하는 게 낫다.
그리고 음베테를 왼쪽 센터백으로 두어. 이 친구에게 익숙한 포지션에서 뛰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중앙이 약해진다.
왼쪽 풀백을 스토퍼로 변형하는 메커니즘을 가동하게 되면, 왼쪽 센터백이 결국 중앙을 책임져야 한다.
펩은 부상에서 복귀한 리크에게 그 임무를 맡기는 게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지난 사흘 동안 음베테를 호되게 가르쳤다.
또 오른쪽 센터백 파트너 역시 EDS인 테일러 하우드-벨리스라는 점도, 리크가 중앙에 서서 좌우에 영향력을 발휘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일 거다.
복귀전치고는 꽤 가혹한 환경인지라, 난 리그 역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컨디션은 좀 어때, 터프가이?”
“좋아. 얼른 시합을 뛰고 싶은 기분이야.”
“진정해. 오늘은 네가 정말 중요하다고.”
“후우~ 역시 그렇지?”
처음 후벵이 영입되었을 때만 해도, 리크가 이렇게 쉽게 주전 자리를 빼앗길 걸로 예상한 사람은 적었다.
후방 빌드업을 강조하는 펩에게 있어 리크의 발밑 기술은 상당히 중요한 자산이었고, 이 남자의 롱패스는 우리의 공격 방법을 다양하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무기였다.
더구나 수비 파트너가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민재였던 만큼, 후방에 단단히 눌러앉는 리크의 존재는 센터백 밸런스를 맞추는 데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현재, 리크는 민재와 후벵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리크가 지닌 장점을 나눠 더 업그레이드한 버전을 갖춘 이들인지라, 무색무취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게다가 부상까지 겹쳐버렸던 상황.
이 남자 역시 반전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네가 가장 좋아하는 배치일 거야. 루크나 테일러 모두 공격적이니까. 펩이 말한 것처럼 무리해서 오프사이드 라인을 맞출 필욘 없다고 생각해. 쟤네가 1:1을 걸어오면, 가볍게 이겨 보이라고.”
“말은 쉽지.”
“하-! 너 지금 리그 2팀을 상대로 그런 말을 한다는 걸 알아? Vamos-! 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에 갖다 팔았어?”
리크를 자극한 이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선수들을 찾아서 움직였다.
오른쪽 메짤라(Mezz`ala)로서 공격 전개의 중요한 역할을 맡은 토미에겐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하라 말했고, 리암에겐 두 경기 연속 골을 기대한다며 힘을 북돋웠다.
그리고 베르나베에게도, 본인의 장점을 잘 기억하라고 했다.
“다비드. 리오. 전부 네가 잘한다고 했어.”
“진짜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아드리안 베르나베는 EDS에서 ‘Little David Silva’로 불릴 만큼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도 다비드와 베르나르두를 적절히 섞어 놓은 것만 같은 플레이를 하며, 중앙 외에도 10번(AM)과 왼쪽 윙 포지션에도 뛸 수 있다.
오늘은 이 친구가 중앙에서 드리블로 마구마구 헤집어 줘야. 토미가 수월하게 패스를 보낼 수 있다.
역할의 분배가 매우 중요한 날로, 나는 상대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볼을 실어 나를 일이 많을 베르나베에게 동료의 위치를 늘 살피도록 부탁했다.
“리야드는 늘 벌려서 있을 거야.”
“네.”
“그리고 라힘은 상대적으로 아래로 내려와 있을 거고. 전환은 길게 주고, 라힘을 이용할 거면 짧게 보내고 나서 바로 왼쪽 사이드로 뛰어가. 뒤는 지뉴에게 맡기기고. 루크가 센터백으로 돌아설 거라서, 왼쪽에서 움직여 줄 수 있는 건 네가 유일할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베르나베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는 것을 끝으로, 나는 이야기를 끝내고 동료들과 함께 몸을 풀러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와아-!!!”}
{“다온-!!”}
{“사인해 줘요-!!”}
{“다온! 여기 사인이요!”}
{“사인이요!”}
우리를 보고자 경기장을 일찌감치 빼곡 채운 사람들. 난 사인을 요청하는 그들의 아래에서, 펜 등을 전달받아 사인하는 일을 한동안 이어 갔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을 때, 벤치에서 출발해 데뷔를 기다리는 레길론이 뒤로 지나갔다.
팀에 합류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레길론을 벌써 사람들 사이에서 [“시끄러운 녀석”]으로 정의된 상태다.
“젠장. 인기 진짜 많네.”
“하하. 설마 이걸 부럽다고 하는 거야?”
“왜 아니겠어-!”
뒤로 걸으며 양팔을 쭉 뻗었던 레길론이 피치를 향해 달려 나가고, 얼른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나 역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인하는 일을 마무리했다.
아쉬운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왔지만, 지금 나는 동료들의 곁에 머물기를 원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이별들로 인한 공허함.
난 그것을 견뎌 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