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20)
119화
(배정세)
“올림픽 채널 SBS,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입니다. 한일전 58년사에 가장 주목받는 경기가 곧 펼쳐지겠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국이자, 항상 아시아 무대에서 벼랑 끝 승부를 펼쳐왔던 한국과 일본입니다. 월드컵에서의 성과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있는 우리가 앞섭니다만, 올림픽에서만큼은 일본이 동메달을 딴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차범근)
“네, 그렇습니다. 68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가마모토가 있을 때 동메달을 땄었거든요? 그리고 내색하진 않아도 항상 그 가슴 속에 그 동메달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부디 우리 후배들이 일본이 더는 올림픽 동메달로 으스댈 수 없도록 만들어 주면 참 좋겠네요.”
(배정세)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면 은메달이 확정됩니다. 어떠한 팀이 올라가든 아시아 최초의 기록이 되는데요. 부디 대한민국 대표팀이 그 주인공이 되길 바랍니다.”
.
.
2012년 8월 7일. 런던, 잉글랜드. HA9 0WS 웸블리. 웸블리 스타디움.
·경기 시작 10분 전
대한민국 0 : 0 일본
GK ? 정성룡 / GK ? 곤다 슈이치
RB ? 김창수 / RB ? 사카이 히로키
CB ? 곽태휘 / CB ? 스즈키 다이스케
CB ? 김영권 / CB ? 요시다 마야
LB ? 김다온 / LB ? 사카이 고토쿠
DM ? 박종우 / DM ? 야먀구치 호타루
CM ? 기성용 / DM ? 다카히로 오기하라
CM ? 구자철 / CM ? 키요타케 히로시
RW ? 김보경 / LW ? 오츠 유키
LW ? 손흥민 / RW ? 히가시 케이고
ST ? 석현준 / ST ? 나가이 켄스케
.
.
본래 강찬일 감독님은 그리 과격하게 말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그런데.
“야, 가서 그냥 달려가서 바샤버려. 무슨 말인지 알지?”
하지만 오늘은 전혀 달랐다.
바샤버려.
이건 아마도 부숴버리라는 뜻이었을 거다.
그리고 누구도, 이에 토를 달지 않았다.
“가자! 한국!!”
“어이!!!”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며, 우린 라커룸을 나서 복도로 들어섰다.
“야, 아주 그냥. 죽여! 그냥!”
“어이, 구자봉이! 적당히 해라? 응? 그러나 퇴장당하면 내가 널 죽여버릴지도 모르니까.”
어제부터 잔뜩 화가 나 있는 자철이 형을 성용이 형이 말려보지만, 자철이 형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더욱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했다.
“하아- 미치겠네, 진짜. 오늘까지 저러면 어떻게 해?”
“믿어야죠. 알아서 할 거예요.”
“아이 씨, 얘는 너무 똑같고.”
본래 성용이 형의 대표팀에서의 위치는 누구보다 전투적이거나 혹은 누구보다 침착하거나였다.
지금까지는 주로 전자일 때가 많았고, 스위스라든가 잉글랜드와의 경기 때에는 일선에서 동료들을 보호해가며 거친 몸싸움을 꺼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전자는 자봉이 형한테 빼앗겼고, 후자는 예전부터 나의 차지였다.
라커룸 앞 복도를 빠져나와 넓은 공간으로 나서자, 입구 뒤쪽에서 서로의 장비를 점검해주고 있던 일본 선수들이 보였다.
저들이 오늘 파란색의 홈 경기 유니폼을 입었는데, 여기에 관련해서도 앞서 작은 신경전이 있었다.
당연히 우리도 붉은색 상의와 푸른색 하의의 홈 유니폼을 입길 원했고, 실제 동전 토스에서도 승리했지만, IOC에서 예상하지 못한 태클을 걸어왔다.
올림픽 경기는 전 세계에 중계가 되고, ‘믿을 수 없겠지만’ 여전히 많은 국가의 TV는 흑백이라고 한다.
그래서 검 푸른색에 가까운 일본이 홈 유니폼을 입고 우리가 하얀 원정 유니폼을 입게 되면, 흑백 TV로 경기를 보는 사람이나 색약인 사람들에게 불편함이 덜하다고 했다.
마침(?) 일본 대표팀이 챙겨온 원정 유니폼도 본래의 흰색이 아니라 흑백 TV로 보면 검은색을 나오는 빨간색 써드 유니폼이었던지라, 결국 우리가 그 부분을 양보하게 되었다.
또 이번 한일전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영국 현지 언론에서도 우리와 일본의 복잡한 역사를 이야기하며 브라질-멕시코전이 아닌, 한일전을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잉글랜드를 탈락시킨 우리라 꽤 미움을 받을 줄로 알았는데, 의외로 8강전 이후 우릴 응원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러니까, 영국 사람들.
[헬로?]“응? 나? 헬로?”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
오늘도 언제나처럼 복도에는 에스코트 키즈들이 먼저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나와 손을 잡게 될 어린 소녀가, 느닷없이 내 허벅지를 붙들며 얼굴을 가져다 댔다.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나는 곧 소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이여~ 뭐냐?”
“아, 장난해요?”
“왜? 쟤 크면 예쁘겠는데. 몇 살인지 물어나 봐.”
“싫어요!”
키득키득거리면서 날 놀려대는 종우 형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이 밀어주고 싶었지만, 차마 아이들 앞에서는 그럴 수 없어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뒤쪽에서 루틴을 가져가던 이들이 자리로 돌아오고, 카메라가 앞쪽에 자리를 잡는 걸 보니 곧 입장할 때가 될 것 같았다.
강찬일 감독님도 그렇고 또 형들도, 전통적으로 일본은 강하고 거친 몸싸움을 하면 말려버리니 조금 강하게 몸을 써도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나도 기꺼이 그러고자 한다.
‘어디 보자, 7번. 7번.’
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일본의 7번을 찾았다.
해트트릭 어쩌고 했던, 그 녀석.
‘찾았다!’
긴 머리를 뒤로 넘겨 머리띠를 두른 모습이, 어째 첫인상부터 비호감의 느낌을 솔솔 풍겼다.
본래 사람의 인상이나 외모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 가정교육을 받아오긴 했지만, 부모님도 한일전이니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야, 가자.”
“네.”
앞쪽에서 입장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난 뒤에서 재촉하는 현준이 형의 말에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찬일 감독님이 컨디션이 괜찮은 동원이 형 대신 현준이 형을 최전방에 넣은 이유 또한, 힘과 높이에서 일본을 괴롭히고자 함이었다.
오늘도 이곳 웸블리에는 많은 축구팬들이 찾아주었고, 그중 상당수가 영국인이라는 부분에서 솔직히 조금은 놀랐다.
영국인들이 축구를 사랑한다는 거야 주워들은 이야기로 예전부터 익히 알고야 있었지만, 이제 더는 영국이 올림픽과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이런 뜨거운 열정을 보여줄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터널 쪽 부근에는 일본의 축구팬들이 반대편 스탠드에는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다만 일본 팬 쪽이 더 가까워서 그런지, 지금 내 귀에 들리는 건 닛폰을 열심히 외치는 목소리뿐이다.
‘아, 이거 거슬리네.’
서로 이웃한 나라라 문화가 비슷해서 그렇겠지만, 일본의 서포터즈 ‘울트라닛폰’의 응원가는 우리의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누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저들의 입을 다물게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애국가가 울려 퍼졌을 때 앞쪽에서 하품하거나 야유의 손짓을 보내오는 일본 팬들이 눈에 보였는데, 뭐 저 정도야 애교 수준의 도발이니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다 죽었어.’
바샤버리겠다는 마음만큼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다.
***
삐—–익!!
전반 시작 후 140초.
오늘 준결승의 주심을 맡은 우즈베키스탄의 라브샨 이르마토프(Ravshan Irmatov)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반 50초 만에 대한민국의 미드필드 구자철이 거친 파울을 범한 데에 이어, 10여 초 간격으로 여기저기에서 일본 선수들의 곡소리가 들려오는 중이기 때문이다.
[진정해! 진정하라고!]지금도 라브샨은 대한민국의 구자철을 강한 어조로 억누르려고 했다.
‘제기랄.’
삐-익!!
IOC가 이번 준결승전의 주심으로 자신을 배치한 것은 분명한 의도가 엿보이는 결정이었다.
보통 축구경기에서 전혀 다른 대륙의 팀이 맞붙게 되면 제3의 대륙 주심을 쓰는 것이 원칙이긴 하나, 오늘 같은 경우라면 오히려 같은 대륙 출신의 주심이 배치되는 경우가 더 잦은 편이다.
편파판정에 대한 우려도 없을뿐더러, 나라 간의 문화에 조금 더 익숙하므로 경기를 운영하는 부분에서도 큰 이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라브샨 이르마토프도 한국과 일본 경기의 악명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이 두 나라가 맞붙는 날이면, 때와 장소가 어떻건 간에 늘 격렬한 시합이 펼쳐지곤 했다.
양국 팬들의 감정 역시도 크게 요동쳤고, 판정 하나하나마다 주심에게 수많은 야유와 위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심으로서 늘 공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서 욕설을 듣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다 보면, 제정신을 유지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라브샨 이르마토프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촤—–악!!
지금도 대한민국 왼쪽 풀백의 태클에 일본의 7번이 넘어졌고, 파울을 어필하는 그를 무시하며 손짓으로 얼른 일어나라는 제스쳐를 보낸다.
그리고 뒤로 돌아선 라브샨은 전혀 알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볼에 시선을 둔 부심도 마찬가지다.
지금 그들의 뒤에서는.
“아-악!”
관중들의 함성에 가려진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코노야로우!!!”
“뭐? 어쩌라고?”
지금 저 전방에서, 한라봉 하나가 엄청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자철이 형을 말하는 건데, 형은 가는 곳마다 일본 선수를 바닥에 눕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도.
“왜? 부족하냐?”
[…….]“부족하면 말해라. 더 아프게 해줄 수도 있으니까.”
[뭐라 씨부리는 거야?]“이따이! 이따이요! 몰라? 오마에, 이따이라고!”
[병신새끼.]“아 빠가야로. 그거 나 알아들어. 반사해줄게.”
전반 5분밖에 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난 도무지 일본이 어떤 축구를 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전술적으로는 4-3-3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떨 때는 4-4-2로 보이고 또 어떨 때는 4-5-1처럼도 보였다.
이게 참 대단한 게, 말한 것처럼 지금이 고작 전반전 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가끔 인터넷의 사람들이 조롱의 의미로 일본의 축구를 ‘만화 축구’에 빗대곤 했는데, 그건 일본 만화 속에서 늘 일본축구는 세계 최고수준이고 또 놀랍게도 실제로 그것을 본뜨려는 감독과 축구 캐릭터에 빙의된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난 그것을 믿지 않았는데, 이번 일본전을 준비하면서 일본에서 뛰고 있는 형들의 말로 그게 사실이란 것을 알게 됐다.
이번 런던 올림픽팀도 그런 ‘만화 축구’를 모방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그들의 의도가 수비에게 혼란을 주려는 거였다면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해주곤 싶었다.
다만, 한 개도 위협적이지 않다는 거.
뭐 그건, 우리 역시 마찬가지긴 하다.
.
(배정세)
“중원에서 엄청난 힘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결정적인 장면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
사실 웸블리 스타디움의 사정은 일본 대표팀의 축구에 조금 더 유리한 편이기는 하다.
최근 이틀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물기도 적당했고, 관리도 무척이나 잘 되어 있어서 많은 패스를 보내고 또 볼 컨트롤을 하기에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이는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땅볼 패스를 시도해온 일본 대표팀에 좋은 조건이었고, 실제로도 일본은 미드필드에서부터 만들어가려는 시도를 꾸준히 보여왔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어디선가~’
쿠웅-!!
“윽-!!”
삐익-!!
주심의 휘슬과 함께 등장하곤 하는 자철이 형이 나타나 그런 의지를 여지없이 까뭉개 버렸다.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짱가~ 엄청난 기운이~~ 얍!!”
오른쪽으로 이동해 있던 오츠 유키가 날 한심하게 쳐다보다 멀어지고, 일본의 빌드업이 다시 시작되었을 땐 히가시 케이고(Higashi Keigo)가 다시 내 앞으로 와 있었다.
아까 몇 번 힘껏 몸으로 부딪쳐주고 나니, 슬금슬금 뒤로 내빼서는 소극적인 패스만 보내 대는 녀석이다.
현재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일본에서 근성이 있다고 손꼽을만한 선수는 대략 네 명 정도.
해트트릭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깡이 넘치는 오츠 유키를 포함하여, 수비수 두 명과 또 중앙미드필드로 뛰는 16번 정도가 우리의 거친 플레이에 지지 않고 맞서고 있다.
다른 녀석들은 전부 겁먹은 꼬마처럼 슬금슬금 뒤로 내빼기만 하고 있을 뿐이다.
삐-익!!!
“아- 쟤 쫄았네.”
지금도 보라.
성룡이 형님의 골킥을 현준이 형이 헤더를 하려고 했는데, 일본의 13번이 강하게 몸을 부딪쳐서 형을 넘어뜨렸다.
만약 저 상황이 반대였더라면 태휘 형님이나 영권이 형 모두 일본 공격수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을 건데, 일본의 센터백은 미안한 표정으로 현준이 형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하긴.
현준이 형이 인상 쓰고 째려보면 좀 무섭긴 해.
특히나 밤길에 보면 더 그렇고.
“김다온! 올라와!”
“예썰~”
프리킥을 준비하는 성용이 형이 내게 손짓을 보내오고, 앞으로 성큼 올라선 나는 바닥으로 굴러오는 축구공을 뒤로 돌려보냈다.
그러곤 그것은 곧장 앞으로 길게 뻗어 나간다.
목표는 다시 현준이 형의 머리.
삐-익!!
다시 파울이 일어나고, 이번 위치는 아까보다 훨씬 더 골대와 가까운 지점이다.
그리고 당연히.
“야, 다온아! 네가 차!”
프리킥을 차라고 직접 지시를 내리는 성용이 형.
오늘은 자철이 형도 무척이나 고분고분하다.
물론, 목적이 있어서겠지만.
“야. 고환파열 하나 더.”
“그럴까요? 골 말고?”
“아무거나. 골을 넣든가, 아니면 쟤네를 맞추든가.”
“형. 오늘 너무 화났는데요?”
“진짜 화났어, 인마.”
내 손에 직접 축구공을 안겨준 자철이 형이 한쪽으로 움직이고, 공에 묻은 물기를 닦은 나는 공을 내려두면서 생각했다.
‘그럼, 누구를 맞출까?’
어쩌면 나도, 자철이 형에게 전염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작가의 말 ? 앞으로도 한일전은 있을 거라서, 본문은 제가 수집한 자료에서 나오는 한일전 과격함의 대략 20%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