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263)
Sp2. Road to World Cup (25)
2021년 10월 9일. 중국 상공(Over China).
약 두 시간 전 인천을 떠난 비행기는 목적지인 테헤란을 향해 순항 중이다.
협회는 이번 원정을 위해 전세기를 준비했는데, 인천에서 테헤란으로 직행하는 항로가 없다는 점과 미국의 경제 제재라는 정치적인 요소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상대적으로 편안한 여행길이 되고 있다. A조 1위로 누가 치고 나가느냐를 결정지을 경기라서 그렇겠지만, 그래도 편안한 건 편안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란 역시 전승(全勝) 중이었는데, 사흘 뒤 경기가 끝났을 땐 우리가 유일한 전승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확실히 빡세긴 하지.”
“진짜요?”
“어. 다르긴 해.”
아자디 스타디움이 처음인 강인이에게, 테헤란 원정 경기의 어려움을 전해주고 있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는 나의 첫 테헤란 방문은 고지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뿌옇고 메케했던 공기와 엄청난 악취로 도배되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10만 남성 관중의 목소리보다, 목과 코를 괴롭히는 그것들이 내겐 훨씬 더 힘들었다.
“야, 그래도 다행이지. 이번엔 무관중이잖아.”
늘 어려웠던 테헤란 원정이고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지게 되었다는 부분은 우리에게 매우 긍정적인 점이다.
재미있는 건 이번 무관중 경기 결정이 코로나19나 경제 제재와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여성 관중을 입장시키고 싶지 않아 내린 결정이라는 사실이었다.
과거부터 이란은 축구 경기장에 여성들의 출입을 금지해 왔고, FIFA가 이를 문제시 삼으며 징계할 뜻을 밝힐 때마다 마지 못해 한두 경기 여성 입장을 허락했다.
다만 이번에는 FIFA가 사전에 먼저 선수를 쳤고, 관중을 입장시킬 여력이 됨에도 이란은 끝내 무관중을 결정했다.
자국 대표팀의 승리에 도움이 되어 줄 10만 관중들의 힘을 빌리는 일을 포기할 만큼, 여성 관중을 입장하게끔 만드는 일이 싫었던 거다.
하여간 참 재미있는 동네다.
“형. 잠깐 이야기 좀 돼요?”
“어, 그래. 앉아.”
이번 전세기의 좌석 배정을 확인했을 때, 나는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는데, 이젠 알게 됐다.
처음 곁에 앉아 수다를 떨던 민재가 돌아간 이후, 순서대로 동경-규성-강인이가 와 고민 상담을 하거나 궁금한 것을 질문해 왔다.
그리고 이번엔 인범이 차례다.
“지금 재계약 얘기가 나오는데요.”
“어, 그래.”
벤투 감독님의 의도를 파악한 만큼, 나는 되도록 어떠한 질문에든 성의껏 대답해 주고 있다.
지금만 해도 인범이가 재계약 문제를 들고 왔는데, 솔직히 나보다는 에이전시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옳다. 하지만 인범이는 내 얘기가 무척 중요한 듯했다.
“지금 계약은 언제까진데?”
“2024년이요.”
“그걸 2년 더?”
“네.”
“바이아웃이나 그런 건?”
“일단 없어요.”
“흠- 솔직히 별론데?”
사실 인범이만큼 꾸준한 성장세를 거듭한 K리그 출신 선수도 없다.
대전에서 태어나 문화초등학교를 나온 인범이는 초등학교 시절 K리그 대전 시티즌 산하 유성 중학교의 스카우트를 받아 본격적인 K리그 유스 시스템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쑥쑥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고등학교에서 인범이를 감독했던 정갑석 감독님의 말에 따르면 [“스펀지처럼 가르치는 걸 쑥쑥 빨아들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에 되었을 땐 이미 고교 정상급 미드필드가 되어 있었고, 고졸 신인으로 K리그에 데뷔한 2015 시즌 초여름부터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아무리 당시 대전 시티즌의 전력이 좋지 않았다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살의 어린 선수가 아시아에서 어렵기로 소문난 K리그 클럽의 에이스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7월 발가락의 피로골절이 찾아오면서 시즌 아웃이 되었고, 부상에서 복귀했을 때 팀은 K리그 챌린지 소속이었다.
과거 한때 인범이를 SL 벤피카에 추천했었는데, 당시 벤피카는 인범이의 군대 문제와 아직 보여 준 것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입에 뛰어들지 않았다.
이후 K리그에서 계속 경험을 쌓은 인범이는 2019년 MLS 소속 클럽인 밴쿠버로 이적했고, 그 시즌 대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팀의 에이스로 도약했다.
사람들은 인범이를 노력파라고 말하지만, 얘도 소위 말하는 ‘난놈’에 속한다.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내 생각에 인범이는 ‘될 놈’이다.
“솔직히 팀은 좋은데.”
“리그도 괜찮긴 해.”
“네. 수준도 높고. 팬들도 되게 열정적이고.”
“팀이 지금 몇 위지?”
“6위요. 원래 한 9,10위 하던 팀이긴 해요”
“그렇지. 흠, 그래도 난 네가 언젠가 유럽 대항전에서 뛰었으면 하는데. 너도 챔스에서 뛰고 싶을 거 아냐?”
“당연하죠.”
밴쿠버에서 시즌을 보낸 지 단 1년 만에, 인범이는 유럽 클럽의 주목을 받는 위치로 올라섰다.
빅리그는 아니고 유럽 7~12위권 사이에 있는 리그들이긴 했지만, 현재 소속된 러시아를 포함하여 크로아티아/덴마크와 같은 리그는 꽤 탄탄한 편이다.
소속 클럽의 성적만 괜찮다면 예선 단계부터기는 해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뛸 수도 있다.
현재 속한 루빈 카잔이 나쁜 클럽도 아니고 또 감독인 레오니트 슬루츠키(Leonid Slutsky)의 절대적인 신뢰 역시 얻고 있어 한두 해 정도 팀에 머무는 게 나아 보이는 것 역시도 사실이었다.
다만 연장 계약으로 몸이 묶이는 건 별로다.
“거절해. 당장은 이르다고 말해야지.”
“그래도 괜찮아요?”
“야. 당연하지. 유럽 쪽 애들은 그런 부분에서 되게 쿨 해. 어차피 비즈니스라는 걸 걔네도 알고 있단 말이야. 오히려 유럽에서는 선수가 자기를 홍보하는 걸 권장하거든. 특히 아래쪽 리그에선 더 그렇지. 비싸게 팔아먹어야 클럽에 더 이득이니까. 그리고 재계약해도 몸값을 더 높이고 해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하는 인범이에게, 나는 에이전시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대전에서 밴쿠버로 이적할 때도 그렇고, 솔직히 일처리를 잘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인범이의 입에서 나도 아는 한 한국 에이전시의 이름이 나왔는데, 관계를 물어본 나는 생각이 있다면 교체를 하라며 나중에 전화번호를 주겠다고 말했다.
“알았어요, 형. 고맙습니다.”
“그래. 또 뭐 말할 것 있으면 하고.”
“넵. 쉬십셔.”
“하아- 쉬겠냐?”‘
“?”
“아냐, 아무것도. 얼른 가서 쉬어.”
쉬라고 말하는 인범이에게 그것이 힘들다는 식으로 대답한 이유는 내 옆자리가 고민상담 맛집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하이에나들 때문이다.
인범이가 떠나기 무섭게 냉큼 동경이가 음료수 하나를 들고 찾아왔고, 기특하게도 녀석은 뚜껑을 직접 비틀어 열어 주기까지 했다.
처음엔 조금 과한 것 아니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저도 내년에 유럽에 진출하고 싶은데…….”
“아, 맞다. 너 내년 FA지?”
“네.”
“에이전시는?”
“있긴 한데, 좀 바꾸려고.”
“그래? 생각한 곳은 있고?”
이쯤 되니 스스로도 스스로가 꼭 브로커처럼 느껴졌지만, 동생들이 느끼고 있을 답답함을 잘 알고 있어 힘든 티를 전혀 낼 수 없었다.
대표팀에 유럽파가 나만 있는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흥민이 형이나 민재야 진짜 축구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외의 다른 사람이라고 해봐야 자기 살아남기에도 바쁘지 누구에게 조언할 입장이 아니다.
게다가 내 에이전트인 요나스의 발이 무척 넓은 편이라, 그를 한 번만 거치면 유럽의 어지간한 에이전시와 이어 주는 건 쉬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선수를 아시아 외의 대륙을 이적하게 하는 문제에 있어서,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를 구분해 낼 수 있는 정보 정도는 가지고 있다.
무능한 에이전시일수록 클럽의 감언이설에 쉽게 속아 넘어가고 본인들의 실수를 뻔뻔한 거짓말로 감춘다.
“에이- 거긴 아니다. 따른 데.”
“그럼 아는 데가…….”
“바로 빅리그로 가고 싶냐?”
“뭐 꼭 그런 건 아니어서. 일단 형이 말한 대로 뛸 수 있는 클럽을 찾고 있는데, 기왕이면 제 플레이스타일이랑 맞는 팀이나 리그에서 뛰고 싶죠.”
동경이는 가지고 있는 기술에 비해 경기를 읽어 나가는 눈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이것 때문에 잘할 때와 아닐 때가 극명하게 갈리는 건데, 조금만 축구에 대한 이해도를 넓힌다면 1~6위 나오던 주사위를 4~6만 나오도록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동경이에게 적합한 팀 혹은 리그는 템포가 약간 느린 곳이어야 한다.
속도가 느려야, 피치 위에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고 깨닫는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잉글랜드/독일/프랑스 혹은 이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리그가 하나둘 삭제되어 가고, 시간이 지난 뒤에 남은 것은 벨기에와 크로아티아였다.
전통적으로 10번을 잘 육성하는 스페인/포르투갈도 괜찮게 느껴졌지만, 미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야, 벨기에 어때?”
“뭐 나쁘지 않죠.”
“일단 형은 벨기에나 크로아니아 쪽이 괜찮을 것 같거든? 일단 형이 이따가 번호를 보내줄게. 그리고 알지? 형 이야기가 절대적인 건 아니다? 결정은 네가 하는 거고, 네가 어떠한 결정을 하건 형이 응원할 거야. 알았지?”
“네, 형. 감사합니다.”
“그래. 동준이 오라고 해라.”
“아, 봤어요?”
“그래, 인마. 아주, 나 잡아먹겠더라.”
피식하고 웃어 보인 동경이가 좌석 파트너인 동준이를 부르러 떠나고, 남기고 간 음료를 마시며 목을 축인 나는 다음 상담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통로를 지나가던 벤투 감독님이 이런 나를 보며 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빚을 진 거라는 나의 말에 그저 웃음으로 답한 벤투 감독님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난 지금 한 말이 결코 허투루 내뱉은 게 아님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아~”
“여~ 부싼 싸나이 아이가?”
“오~~”
“그래. 궁금한 게 뭔데?”
“아, 제가 내년에 유럽을…….”
테헤란으로 향하는 길.
이럴 거면 어째서 파주 NFC에 있을 때 하지 않았냐는 의문이 몽골몽골 피어나는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
***
2021년 10월 10일. 테헤란, 이란. P9PM+QQX 제6구역. 사커 필드(Soccer Field. P9PM+QQX District 6. Teheran, Iran).
이란 현지 시각으로 전날 밤 8시에 도착한 우린 10시에 호텔로 들어가 간단히 밥을 먹고 곧바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이튿날인 오늘 테헤란 시내의 한 축구 경기장에서 현지 적응 훈련을 시작했는데, 당연하게도 편안함을 느낄 만한 시설은 아니었다.
언제 청소했는지도 모를 화장실에서는 진한 암모니아 냄새가 났고, 라커룸의 시설 곳곳은 파손되어 원래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나은 부분을 말하자면, 그래도 예전처럼 잔디에 구린 짓을 하지는 못한다는 거다.
카타르 월드컵 개최가 성사된 이후부터 유럽에서 꾸준히 나온 목소리 때문인데, UEFA는 중동의 열악한 시설이 그들의 상품을 망칠 것을 걱정했다.
그러자 직후, FIFA가 나섰다.
그전까진 아무리 동아시아의 팀이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중동 경기에 제대로 된 FIFA 시찰이 이뤄지기 시작한 거다.
A매치라는 게 단순히 일정이 정해지고 홈팀이 경기장을 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서, 원정팀이 사용할 훈련장 및 시설을 FIFA가 제시하는 기준 이상으로 맞춰야 한다.
만약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그 즉시 FIFA는 홈 개최권을 박탈할 수 있고, 제3의 장소에서 경기를 치르도록 만든다.
FIFA에 소속한 국가는 당연히 이를 거부할 수 없기에, 공정한 경기를 하기 위한 단체의 가이드라인을 맞추어 왔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중동은 늘 FIFA의 감시 밖에 있었고, FIFA의 비리를 폭로한 수많은 내부자와 기자들은 중동의 돈이 기관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이젠, 그것도 옛말이 됐다.
따각! 따각!
따각! 따각!
돌로 만들어진 축구장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빠져나와 나는 가장 먼저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잔디의 감촉을 살폈다.
이곳에서 경기를 치르는 건 아니지만, 훈련장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사소한 것으로 부상당할 확률이 몇십 배는 줄어든다.
“아우, 잔디 마른거 봐.”
“고지대라 그러겠지, 고지대라.”
“야, 그거 언제적 핑계였지?”
“글쎄. 한 4년 됐나?”
오래전 테헤란 원정의 일을 떠올리며, 나는 영권이 형과 대화를 나눴다. 그나마 낫긴 하지만, 이곳 잔디는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다.
잔디가 빽빽하게 자라지 않아 군데군데 흙이 보였고, 그나마 자라 있는 부분의 길이마저 불규칙해 세밀한 훈련을 기대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이곳에서 이틀 동안 훈련을 해야 하는 만큼, 얼른 여기에 적응하는 게 우리에게도 이득이다.
“아우, 잔디 마른거 봐.”
“형이 말했다-!”
“어우 씨, 퍽퍽해. 왔어?”
“다 봤지, 인마.”
잔디 상태에 기겁하는 민재가 가까이 다가오고, 한쪽에서 목을 축이며 최종 장비를 착용한 우리는 오전 11시를 기해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우선 시작은 미팅.
언제나처럼 벤투 감독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특징이라면 영어를 사용하신다는 점이다.
통역관이 한국어로 다시 말해 주고 있긴 하지만, 벤투 감독님은 되도록 본인의 감정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랐다. 아무래도 한 다리를 거치면, 달라지는 게 생긴다.
문장을 100% 완벽하게 전달해도, 거기에 실리는 감정까지는 어찌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작년 협회에 대표팀 선발 문자를 보낼 때 영어를 공부하자는 부분을 포함해 달라 요청했고, 현재는 그렇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알다시피, 훈련의 목표는 경기 때 가장 완벽한 상태로 나서는 거다.”
“…….”
“여긴 고지대고, 기후나 잔디와 같은 것이 한국과는 전혀 달라. 그리고 자네들이 뛰고 있는 리그와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낯설 수 있어. 경험이 있는 이들도 여길 오는 것은 오랜만일 거다. 다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명심하도록.”
벤투 감독님이 손뼉을 두들기는 것으로 미팅을 끝내고, 스트레칭이 이어진다.
삼파올리 감독님 시절부터 가장 많이 바뀐 것이 바로 이 스트렝스(Strength) 분야인데, 당시 코칭스태프의 권유로 대표팀의 인력이 확충되었다.
과거 4~6인으로 구성되었던 감독/코치진이 현재는 최대 9명까지로 바뀌었고, 현재도 2명의 컨디션이 코치가 대표팀을 따라다니며 신경을 써 주고 있다.
그리고 팀 의료진에도 개편이 꾸준히 이뤄졌는데, 과거 가장 많은 잡음을 일으켰던 쪽인 만큼 협회에서도 신중하게 단계를 밟아 나갔다.
현재는 미국에서 온 전담의 두 명과 한국인 피지오 셋이 우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코치/선수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고 있다.
“잠깐 대기하고-”
“후우-”
스트레칭에 이어 런닝이 진행되고, 나는 이때에도 곁에 달라붙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강인이의 궁금증을 채워 주느라 훈련 분위기를 이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딱히 걱정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저기 나보다 더한 잔소리꾼이 있기 때문이었다.
“쉬지 말고 떠들아라, 너네들. 뭐 하냐?”
“허이-!!”
“하아!!”
“쉬지 말고 떠들어. 쉬지 말고.”
대표팀에서는 물론 시티에서도 민재는 팀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사람이다.
특히 이곳에선 조금만 훈련을 건성으로 한다거나 파이팅을 열심히 외치지 않는다면, 당장 민재에게 불려 가서 잔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내가 왜 민재를 다음으로 점찍었겠나?
쟤는 리더십을 타고났다.
“쟤 봐. 아주 웃겨.”
“그러니까. 선생님이야, 선생님.”
“하하하.”
대표팀 합류 때만 해도 얼굴이 어두웠던 흥민이 형이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게 밝아졌다.
나도 그렇고 과거 많은 선배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표팀은 나라를 위해서 뛰는 곳임과 동시에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끼리 서로를 위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여긴, 밖에서 상처받은 이가 돌아와 아픈 곳을 치료하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서로를 위로하고 또 의지하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싶다.
그렇게 4년을 밖에서 열심히 하고 온 뒤, 그동안 나를 혹은 서로를 위로했던 이들과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큰 축구 대회에 나서게 된다.
이건 분명 클럽 축구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이름 부르랬지!! 이름 크게!!”
“야-! 민재가 이름 부르란다!!”
“그래!! 이름 불러!!”
“그래~!! 쟤가 앞으로 주장이다!!”
“그건 아니지!!!”
“하하하하-!”
자연스럽게 만담 비슷한 것을 주고받는 민재와 나의 모습에 다시 한번 훈련장에 웃음꽃이 피어오르고, 테헤란 원정의 부담을 완전히 지워 버린 우린 90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내일 다시 한번 같은 일을 할 거다.
“수고했다.”
“어, 형. 흥민이 형은?”
“괜찮은 것 같아. 나중에 너도 한번 확인해 봐.‘
”어. 형, 고생했어.“
”그래.“
성용이 형이 자철이 형이라는 든든한 동반자를 얻었던 것처럼, 지금의 나도 민재라는 든든한 동반자를 얻었다.
테헤란의 해는 어느새 중천에 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