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30)
129화
2012년 9월 22일.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교육센터. 제1 연습구장.
어제 감독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파다하게 알려진 이후,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훈련 분위기가 크게 바뀐 것 같다.
그게 아니면, 명단 발표 때문일 수도 있고.
어쨌든 중요한 건, 내겐 이런 분위기가 훨씬 더 친숙하다는 것이었다.
“가! 가!”
“어이쿠!”
“아아아악-!!! 브루노!!”
가장 큰 변화는 훈련장에 활기가 생겨났다는 거다.
비명에 가까운 큰 목소리들. 웃음들.
무엇보다.
‘아, 이제야 팀 답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으며, 또 무엇을 위해 훈련하고 있는지를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는 부분이었다.
또 반가웠던 것 중 하나는.
“야! 여기!”
“뒤! 뒤에 간다!”
“이크!”
마티치와의 앙금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거다.
우린 어젯밤, 함께 식사하면서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의 불화가 언어 미숙이라는 부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린아이 같은 감정싸움을 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결론을 맺을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내가 마티치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가 먼저 인사하고 악수와 포옹을 나누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랐던 이유다.
그리고 마티치와 나는, 조금 쑥스러워했었던 것 같다.
삐-익!
“좋아! 이제, 그만! 모두 정리하고! 1시간 뒤에 식당으로 모이도록 하지!”
훈련의 종료를 알린 순간, 난 냉큼 제로니모에게로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오늘 이따가, 알지?”
“어? 어, 응. 알아.”
“짜식. 뭘 훔쳐왔는지 기대된다, 야.”
지금까진 다른 일들에 신경을 쓰느라, 제로니모와 친해지는 노력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젠 여유가 생겼고, 오늘 우리는 미뤄왔던 ‘과자 가족 입단식’을 밤 9시 30분에 은밀히 진행할 예정이었다.
“먹을 것도 많아.”
“진짜?”
“응. 너 때문에, 내가 돈 좀 벌었거든.”
“??”
제로니모는 자신의 국적을 가지고 작은 내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다.
대충 남는 것 하나를 아무렇게나 찍었던 나는 졸지에 1,450유로라는 공돈을 손에 쥐었다.
비상금 정도로 생각해 지폐 다발을 뭉쳐 차 안에 넣어 두었었는데, 오늘 아까 그것을 탈탈 털어서 먹을 것을 한가득 준비해둔 상태다.
리스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제과점과 디저트 가게들을 전부 돌아다녔고, 1,450유로는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래도 대충 그 가치는 할 것 같다.
“그나저나, 넌 어릴 때 어땠어?”
“그냥, 평범했어.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거든.”
“진짜? 나도!”
“하하. 그런데 넌 지금 포르쉐를 몰잖아.”
“그러게- 거지가 출세했지 뭐.”
“듣기론 네가 리스본의 왕이라던데?”
“아, 그거. 우리 있다 참 할 말이 많겠다.”
“응?”
내가 포르쉐 911을 구매하게 된 건, 한국에 입국한 다음 날 클럽으로부터 보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리그 2위와 컵대회 우승. 마지막으로 유럽대항전의 결과에 따라, 총 17만 유로(약 2억 3천만 원)의 돈을 입금받을 수 있었다.
비록 뛴 시간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팀 내 고과에서 가장 높은 S등급을 받은 결과란다.
본래 난 그것을 그대로 부모님께 드리려고 했었는데, 부모님은 그것을 거절하시면서 한 번쯤 사치를 부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하셨다.
물론 그것을 두고 리스본의 가십 매거진들은, 신나게 떠들어대기에 바빴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럼. 이따가 보는 거야.”
“응. 그렇게 할게.”
제로니모는 피치 위에서는 무척 활발하고 말이 많았지만, 피치를 벗어나면 쑥스러움이 무척이나 많은 녀석이었다.
나는 그 차이에서 오는 매력을 좋아하고 있다.
클럽하우스 안으로 이동해 트레이너로부터 마사지를 받고, 현재 느끼고 있는 컨디션에 대한 주기적인 보고서도 작성했다.
“있죠? 이번에는 무척 느낌이 좋아요.”
“하하. 당연히 그래야지. 여기에서 더 주저앉을 곳도 없어. 오늘 신문이랑 라디오 봤어?”
“아뇨. 괜히 기분만 나빠지는걸요.”
“하긴, 그게 현명한 거긴 해.”
곁에서 함께 마사지를 받는 루이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내일 있을 경기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였다.
과자 가족과 함께하는 첫 시즌 시합.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단 기대와 기쁨이 더 앞서고 있다.
‘아- 그렇지, 참.’
중요한 걸 깜빡할 뻔했네.
난 오늘 밤, 친구들에게 꼭 해줄 말이 있었다.
***
2012년 9월 23일. 3030-320 코임브라, 포르투갈. R. 돔 마누엘 I 3. 이스타디우 시다드 드 코임브라(Estadio Cidade de Coimbra. R. Dom Manuel I 3. 3030-320 Coimbra, Portugal).
·경기 시작 40분 전
A.A 코임브라 0 : 0 SL 벤피카
&Match-Up`s Best Eleven(벤피카/상대팀)
&Match-Up`s Tactics(벤피카/상대팀) : 4-3-3(A)/4-3-3(A)
GK ? 얀 오블락 / GK ? 리카르도 누네스
RB ? 막시 페헤이라 / RB ? 호드리구 갈로
CB ? 루이장 / CB ? 플라비우 페헤이라
CB ? 에제키엘 가라이 / CB ? 헤이네르 페헤이라
LB ? 김다온 / LB ? 엘데르 카브랄
DM ? 네마냐 마티치 / DM – 마케렐레
CM ? 안드레 고메스 / CM ? 브루누 차이나
CM ? 니코 가이탄 / CM – 클레이통
RW ? 호드리구 / RW ? 윌송 에두아르두
LW ? 제로니모 베가 / LW – 마리뉴
ST ? 오스카 카르도소 / ST ? 살림 시세
.
.
약 20분 전, 아카데미카의 선발명단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라 주변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코임브라에 새롭게 합류한 수비형 미드필드의 이름이 마케렐레(Makelele)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냥 동명이인이었다.
어찌나 놀랐던지.
“작년보다는 분명 더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
현재 우리는 경기를 앞두고 마지막 브리핑을 진행하는 중이다.
감독님은 어제 말했던 내용에 보태어, 오늘 새로운 정보들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계시다.
A.A 코임브라는 작년과 올해 같은 공격형 4-3-3을 사용하고 있지만, 선수단의 구성이 절반 이상 바뀌어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봐도 무방했다.
그중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스포르팅 CP로부터 임대되어 온 윌송 에두아르두(Wilson Eduardo)다.
포르투갈 연령별 대표를 모두 거쳤고, U-19와 U-21 대표로는 23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했다.
빠르고 뒷공간을 활용하는 데 능하며, 기술적이기도 하고 또 세트피스를 담당해도 될 정도의 킥력 역시 갖췄다.
오른발을 사용하는 오른쪽 윙어지만, 포르투갈 연령별 대표라든가 스포르팅 CP B팀에서는 주로 왼쪽에서 뛰었다고 한다.
실제로 코임브라는 올 시즌, 좌우 윙어를 자주 교체하여 상대 수비에 혼란을 전해주고 있다.
일단 속도를 붙이기 시작하면 꽤 까다로워지므로, 속도를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느냐가 주요한 부분이란 말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기대하는 중이다.
속도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올림픽 때부터 줄곧 컨디션도 좋았다.
“뭐야? 또 영상을 보는 거야?”
“네. 어차피 할 것도 없고.”
“너도 다른 애들처럼 휴대폰을 가지고 노는 건 어때?”
“글쎄요- 어차피 끝나면 시간은 많은걸요.”
“하하. 쟤네들이 너 반만 닮았으면 좋겠네.”
지금 코치님이 말한 건, 팀의 젊은 선수들이었다.
감독님이 브리핑하실 때도 허벅지 위에 휴대폰을 올려둔 채 듣는 사람들이 있는 요즘, 오히려 나 같은 경우가 흔치 않다고 말하고 계시다.
하지만, 이건 내가 모범생이라서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냥, 지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그럼 어디.’
잠깐 멈춰두었던 영상을 다시 보려고 했을 때, 저 앞에서 마티치가 걸어와 대화를 좀 나누자고 했다.
일단 난 흔쾌히, 그걸 받아들였다.
“네가 올라가는 타이밍을 좀 알고 싶어.”
“뭐?”
“나한테 이야기를 해줄 거야? 아니면 어떤 특별한 타이밍이 있는 거야?”
“…….”
먼저 다가와 의사소통을 하려는 마티치의 모습에, 루이장과 모라에스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
“어? 아, 그게. 그러니까. 되도록 말할게. 그런데 나도 어쩔 땐 그냥 올라갈 수도 있어.”
“알겠어. 말할 땐 크게 해. 알지?”
“어, 물론이지.”
파이팅을 해보자며 손을 내민 마티치와 주먹을 맞댄 뒤, 난 루이장과 모라에스를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이렇게 변하기도 하는 법이지.
그렇게 마티치를 보내고 이번에야말로 영상을 보려고 할 무렵, 저쪽에 서 있는 안드레가 다급한 표정으로 날 부르기 시작했다.
‘아- 진짜.’
일단 먼저 주변을 둘러보니, 대강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이곳에 안 보이는 사람이 있거든.
물론 그런 사람이 한둘은 아니긴 했지만, 안드레가 날 다급하게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얀이 미쳐 날뛰려고 그래.”
“아- 제기랄. 잠깐 여기에 있어 봐.”
안드레와 내가 향한 곳은 화장실의 앞이었고, 안으로 들어서자 문 앞에 선 베르나르두가 보였다.
녀석은 날 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난, 굳게 닫힌 문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얀! 거기 있지? 듣고 있어?”
“나 말이야. 실수하면 어쩌지?”
“그럼 1점 먹는 거지 뭐.”
“오, 이런 세상에나! 지금이라도 감독님한테 바꿔 달라고 말할까? 응?”
“하아~ 얀.”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얀!!!”
“으, 응?”
“너 작년에 임대되어서 뻔히 잘 뛰었잖아! 그런데, 새삼스럽게 왜 이러냐니까? 이걸 좀 봐.”
얀 오블락이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은, UD 레이리아 임대 시절 마지막 경기에서 나온 치명적인 실책 때문이었다.
본래부터 발을 사용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평범한 백패스를 흘려 그만 자책골을 넣고야 말았다.
처음엔 별 것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갈수록 부담감이 심해져 선발로 확정된 그제부터는 잠까지 설칠 정도였다.
급기야는 이렇게, 화장실 안에 숨어버렸다.
“얀. 넌 진짜 잘하는 녀석이야. 내가 계속 말했잖아.”
“잘하는 골키퍼가 그런 걸 놓치지는 않아.”
“아니. 그렇지 않을걸? 인터넷을 조금 뒤져봐. 거기엔 너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실수도 있을 거니까.”
골키퍼는 팀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중요함이란, 다른 포지션과는 아예 논외로 여겨질 만큼 절대적이었다.
제아무리 훌륭한 10명의 필드플레이어를 갖추고 있어도, 골키퍼가 형편없으면 승리는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그런 만큼 골키퍼들에겐 모든 슈팅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수한 동료에겐 사정없이 소리를 내지를 수 있는 배짱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너 감독님을 믿지?”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믿지!”
“그럼 지금 하는 행동은 뭔데? 네가 거기에 틀어박혀 있으면, 감독님이 틀렸다는 말 밖에는 안 되잖아. 잘 들어, 얀. 넌 훌륭한 골키퍼니까 그냥 거기에서 나와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돼. 실수를 겁내지 마. 언제든 넌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이어야지, 너 혼자 비명을 지르면 안 된다고.”
“…….”
“얀! 듣고 있어?”
쿵쿵쿵-
주먹으로 문을 두드려보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난 고개를 빼꼼히 들이민 채 이쪽을 쳐다보던 친구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래서야, 감독님에게 정말 말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딸깍-
“응?”
바로 그때 잠겨있던 문이 열리고, 이마가 조금 젖어있는 오블락이 우리 앞에 모습을 비췄다.
“후우- 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 이 녀석. 당연히 그래야지!”
난 오블락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들기면서, 어째서 네가 모라에스 대신 장갑을 끼게 되었는지를 증명하라고 말했다.
“잘 들어. 네 반사신경이나 공중볼은 단연 최고야. 그 점은 누구도 널 따라올 수 없어.”
“그래! 넌 크로스가 어디로 올지 알잖아?”
“맞아! 그래도 골킥은 조금 더…….”
“베르나르두!!”
“쉬-잇!!”
“아차.”
잘 나가려던 순간 베르나르두가 산통을 깨 놨지만, 오블락은 오히려 이 모습을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걸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걸까?
하지만.
찰싹-!!
“윽-!!”
벌은 받아야 마땅하다.
난 안드레와 오블락의 뒤를 따르면서, 곁에 있는 베르나르두의 뒤통수를 오른손으로 후려쳤다.
“제발, 베르나르두. 분위기 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
찰싹-!
“으악-! 왜 자꾸 때려?”
[맞을 만하니까 그러지! 맞을 만하니까!]“한국어는 모른다고! 악-! 그만 좀 때려!”
라커룸으로 돌아갈 때까지, 난 베르나르두의 목덜미를 잡고 머리를 찰싹찰싹 때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내가 괴롭히는 줄 알겠네.
***
“조르제?”
“후후.”
“??”
앞으로 걸어가는 네 명의 남자 뒤, 화장실 입구 옆에 기대어 선 조르제 제수스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의아하게 생각한 스태프 하나가 제수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저걸 좀 보게.”
“??”
“이 팀의 미래들이야.”
“네?”
물론 제수스는 곁에 있는 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또, 변기에 너무 오래 앉아있어 저린 다리를 감추고 있다는 것도.
조금 전까지, 제수스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거다.
‘진즉 이렇게 변화시켜야 했어.’
경쟁이야말로 프로의 가장 기본이자 또 궁극적인 요소인 법이다.
지금이라도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수습하기로 한 제수스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에 강한 확신을 느끼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다만.
‘이런!’
아직 그의 저린 다리는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절룩거리는 잿빛 머리카락 사내의 뒷모습은, 어쩐지 다소 처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