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309)
1229화 왜죠 (2)
투웅-!
{“아…….”}
골대를 향해 곧게 날아가던 인범이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두들기고 튕겨 나왔다.
득점을 예상했던 관중석에서 진한 탄식이 터져 나오고, 세컨볼을 향해 달려든 이들의 경합 속에 볼은 어설프게 처리되어 왼쪽 측면으로 움직였다.
인범이의 슈팅을 바라보고 있었던 난, 얼른 몸을 움직여 사이드라인을 빠져나가려던 공을 지켜냈다.
박스 안에 자리 잡았던 낭팔리스 멘디가 부지런히 움직여 내게 접근한다.
세네갈의 벤치를 포함한 곳곳에서 목소리가 잔뜩 울려 퍼지고, 수비 라인을 정비하기 위해 열심인 상대를 보며 나는 조금 더 속도를 높이려고 했다.
낭팔리스 멘디가 지연에 초점을 맞출 걸 예상해, 적극적으로 드리블을 가져가자고 판단한 것이다.
누군가 도움을 주면 좀 더 수월할 거란 생각이 든 찰나, 박스 주변으로 빠져나왔던 상호가 왼쪽 델란떼로(Delantero)로 맹렬히 파고들었다.
이를 의식한 세네갈의 수비가 움직이고, 덕분에 다음 선택이 수월해진 난 오른발 앞으로 볼을 슬쩍 밀어 두었다.
도움 수비를 올 수 있는 이들의 시선과 포지셔닝이 상호에게 집중되면서, 굳이 멘디를 따돌리지 않더라도 박스 안으로 볼을 보낼 궤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의 목적이 속도를 높이는 것에 있었던 만큼, 중요한 건 박스 안으로 다시 볼을 보내기까지의 시간이었다.
‘나이스 오프(Off).’
지금과 같은 오프-더-볼은 본격적으로 분석하지 않는 이상은 팬들의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안다.
어떠한 이들은 함께 했을 때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어떠한 이들은 함께 하는 것만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줄어든단 느낌을 받는다.
상호의 경우에는 후자다.
함께 했을 때 편한 유형.
로테이션이 정해진 상황에서 왼쪽 윙에 설 수 있는 자원은 상호 말고도 많았지만, 측면이 강한 세네갈을 상대로 벤투 감독님이 저 친구를 택한 건 이유가 있다.
월드컵에서도 상호의 저런 부지런함은 우리에게 큰 보탬이 되어줄 것이다.
팡-!
제대로 킥이 되었다는 감각이 발끝에서 전해져오고, 페널티 박스 왼쪽 모서리 부근에서 올라간 크로스는 먼 쪽 포스트에 있던 영권이 형에게 이어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영권이 형은 탁월한 위치 선정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대로 이어지는 헤더.
그러나.
팡-
이번에는 에두아르 멘디가 놀라운 반사신경을 발휘해 슈퍼 세이브를 보여준다.
그렇게 또 한 번 안타까운 함성이 튀어나오는가 했지만, 에두아르 멘디의 손바닥을 맞고 흐른 볼을 골대 앞에 대기 중이던 희찬이가 밀어 넣는다.
촤랑-!
잠잠했던 그물이 공에 맞아 흔들리고, 뒤늦게 세네갈의 선수들이 오프사이드를 어필해 보지만 주심은 이미 등을 돌려 센터서클을 가리키고 있다.
삑-! 삐?익!
득점을 알리는 휘슬이 들려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나는 수비수 둘을 끌어들인 상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다음 어깨동무를 하고 희찬이를 향해 달려갔다.
첫 두 번의 평가전에서 본인의 활약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건데, 이번 득점으로 마음 걱정을 조금 덜었을 거다.
좋은 리듬을 가져가고도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세네갈은 조금 침울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아프리카 국가의 특징대로라면, 지금부터는 우리가 본격적으로 경기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5분 동안 더 집중해!”
“쟤네 거칠게 나올 수도 있어.”
“한 골 더 가자-!”
노력하는 것은 딱히 우리가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전반 종료
대한민국 1 : 0 세네갈
전반 이른 시각 득점에 성공한 대한민국이지만, 이후 추가되는 득점 없이 양 팀은 하프타임을 맞았다.
“잘하네.”
기자석 한쪽에서 튀어나온 목소리에, 주변에서 이를 들은 이들이 조용히 마음속으로 동의를 보낸다.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강이라는 것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지만, 남미에 이어 아프리카 최강팀을 상대로 이러한 경기력을 보여줄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의 약점을 찾을 좋은 기회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골 결정력이 다소 아쉽다는 점을 빼면 딱히 지적할 부분을 찾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듬뿍 설레발을 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하루 전 김다온의 인터뷰가 발목을 붙잡았다.
전 세계를 막론한 미디어 특유의 설레발을 사전에 차단한 김다온의 묵직한 목소리는 다소간의 반발을 사긴 했어도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그러나.
‘질 것 같지 않아.’
‘안 질 것 같은데…….’
전반전 10분 이후 세네갈을 일방적으로 두들긴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들이 패배하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같은 아시아 대륙에 속한 팀이나 전력이 약한 상대와 맞붙었다면 모를까, 지금까지 만난 상대는 모두 월드컵 토너먼트 진출 후보들이다.
브라질이야 의심할 여지 없는 최강 전력이고, 세네갈과 우루과이도 속한 조 1, 2위가 예상된다.
한데 그러한 팀을 상대로 대한민국은 전력에서 밀린다는 인상을 전혀 심어주지 않고 있다.
‘플레이의 결이 달라.’
인터넷 전문 미디어 ‘OSEM’의 기자 마재우는 다가올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이 그간 장철주가 꾸준히 시도해온 개혁 속에서 성장한 첫 세대라는 생각을 한다.
일명 2012 런던 올림픽 세대로 알려진 이들은 엄밀히 말해 정철주 이전 문화에서 성장한 세대다.
그러나 오늘 선발로 나선 김민재/황인범/이동경/나상호 등은 장철주가 만든 새로운 유소년 문화 속에서 성장하며 새로운 방식의 축구를 배웠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세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겁이 없다는 점과 개성이었는데, 지난 2019 FIFA U-20 월드컵에서도 이런 경향이 잘 드러났다.
어린 유망주의 플레이를 규격화하려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게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월드클래스 반열에 들어선 김민재와 엘리트 레벨에 도달했음을 증명한 황인범이야 그렇다 쳐도, 아직 증명할 것이 많은 이동경과 K리거인 나상호의 활약은 고무적이었다.
양발잡이 테크니션이라는 흔치 않은 타이틀을 보유한 이동경은 오늘 전방에서 가장 세네갈을 괴롭힌 선수였다.
나상호 역시 완성형 윙으로서,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도 활발하게 가담하며 이기제 한 명으로는 막기 버거웠을 세네갈의 오른쪽 공격을 잘 억눌렀다.
그렇게 보면 이기제의 투입 역시 이해됐다.
김진수와 같은 수비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최소 킥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대표팀 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선수다.
측면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풀백의 위치를 높이 끌어 올리는 게 세네갈의 특징인 만큼, 이기제가 보낼 전방 패스가 상대를 위협할 수 있을 거로 판단했던 것 같다.
실제로 오늘 나상호가 막고 가까운 곳에서 패스를 연결받은 이기제가 단숨에 전방으로 패스를 뿌려 역습을 시도하는 플레이가 여러 번 나왔다.
그중 하나는 아주 좋은 기회로 연결될 뻔했고, 전반 중반 이후에는 이를 의식한 세네갈이 대처를 시작했다.
뒷공간을 노리는 이기제의 패스가 신경 쓰였는지, 오른쪽 풀백인 유수프 사발리의 오버래핑을 자제시키며 대한민국의 역습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던 거다.
그렇게 풀백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뎀바 세크(Demba Seck)를 중심으로 한 세네갈의 오른쪽 공격 빈도가 줄었다.
최선의 수비가 공격임이 입증된 순간인데, 어쩔 수 없이 왼쪽을 활용하게 된 세네갈이었지만 같은 라인엔 김다온과 김민재가 버티고 있었다.
“흠-”
오늘 경기에서도 드러난 파울루 벤투의 전술적인 접근 방법은 굉장히 수준 높았다.
세네갈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용병술을 가져갔고, 그러면서도 상대에 억지로 맞춘 것이 아닌 대한민국만의 축구를 펼쳤다.
중원에서의 힘 싸움도 걱정되었던 게 사실이지만, 오히려 상대가 이동경/황인범이라는 두 명의 테크니션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가장 소름 돋는 건, 대한민국이 다수 로테이션을 가져간 반면 세네갈은 대부분이 주전이란 점이다.
평소 마네의 파트너로 출전하는 이스마일리 사르가 벤치에 앉았다는 걸 빼면, 세네갈은 현재 그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선수들을 피치에 세웠다.
후반전, 변화가 예상되는 이유다.
{“와아-!!!”}
{“파이티잉-!!”}
후반전 시작을 앞두고 양 팀 선수들이 입장을 시작하자, 관중석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전반전의 내용을 정리해 포털 사이트에 업로드 한 기자들도 다시 그라운드에 집중한다. 한국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세네갈 쪽은 교체를 준비한다.
교체 투입이 예상되었던 이스마일리 사르와 192cm의 장신 공격수인 파마라 디에디우(Famara Diedhiou)가 대기심의 옆에 서서 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로써 세네갈은 지난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결승전에 선발로 나선 11명을 피치에 내세웠다.
그러한 아프리카의 챔피언을 상대로, 대한민국은 별다른 관심 없이 스크럼을 짜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유로운 표정과 환한 미소. 그 중심에 선 김다온과 김민재를 보며, 많은 이들 역시 든든함을 느낀다.
대한민국 축구가 가진 힘.
이는 모두.
‘저 수비를 어떻게 뚫어.’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처음으로 쌓아 올린 거대하고 탄탄한 성벽에 있다.
삐?익!
***
【“대한민국의 선수 교체입니다. 12번. 이기제가 빠져나오고 3번 김진수가 투입됩니다. 그리고 8번 백승호가 빠져나오고 16번 정우영이 투입됩니다. 네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
.
.
.후반 14분
대한민국 1 : 0 세네갈
세네갈이 좋은 팀이라는 건, 후반전 그들이 보인 대처에서도 잘 드러났다.
전반전 우리에게 주도권을 내어준 이유가 전방 공격력에 있다고 판단, 활약이 미미했던 두 명의 공격수를 빼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이는 주효했다.
흐름이 바뀌었다.
오른쪽에만 갇혀 있던 뎀바 세크와는 달리 폭넓은 움직임을 가져간 이스마일리 사르가 먼저 눈에 띄었고, 곧이어 파마라 디에디우의 제공권이 빛난 덕분이다.
특히 파마라 디에디우의 투입은 민재가 전진하고 영권이 형이 뒤에서 커버한다는 우리 수비의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공략하는 것이었다.
승호가 6번(DM)으로 나설 땐 공격에서는 더 원활해도 수비가 조금 떨어졌는데, 이를 만회해 주었던 게 민재의 전진 능력이다.
하지만 후반부터, 세네갈 특유의 빠른 측면 침투/전환에 이어진 크로스가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권이 형이 디에디우와의 1:1 싸움에서 어려움을 보였기 때문인데, 나이가 들며 떨어진 신체적 능력이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드러났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 보였던 크로스가 심장이 철렁한 헤더로 이어지길 두 번 정도 반복했을 땐, 민재의 전진성이 떨어지고 승호의 약점이 피치 위에서 드러났다.
수비적으로 압박받자, 공격력이 떨어진 거다.
인범이가 열심히 애를 쓰고 있긴 했지만, 동경이의 위치 선정 문제 역시 드러나면서 혼자만의 힘으로 뭔가를 하기엔 한계를 드러냈다.
하나의 포지션에서 발생한 문제가 팀 전체에 일으킨 연쇄 작용은 우리가 후반전 세네갈에 주도권을 내어준 이유였다.
“다온아! 다온!!”
“?”
그런데 이제부터, 흐름이 바뀔 거다.
승호는 수비력이 부족해 라볼피아나(Lavolpiana)를 맡긴 역부족이지만, 우영이 형은 그렇지 않다.
저 형의 투입은 민재의 전진성을 다시금 만듦과 동시에, 영권이 형이 짊어졌던 파마라 디에디우와의 공중볼 다툼에 대한 부담 역시 줄여줄 수 있다.
우리가 후반전에 주도권을 내어준 가장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될 테니, 어긋났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돌아올 걸 예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삼파올리 감독님보다 인(In) 게임 상황에서의 대처가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벤투 감독님도 전보다는 나아졌다.
팀이 주도권을 빼앗긴 원초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걸 바로잡을 최선의 판단을 가져갔다.
어쩌면 벤투 감독님도 감독으로서 성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펩은 언제나 은퇴하는 순간까지 감독은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말을 했다.
촤아악-!
‘그렇지!’
우영이 형의 교체가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서라면, 진수 형의 투입은 순수 퍼포먼스와 관련이 있다.
.
(박성문) – 조선TV 해설위원
“좋은 태클이에요.”
.
정운 형이 폼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왼쪽 풀백 백업 자리는 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다.
현재 백업 포지션에 들어설 수 있는 후보가 여럿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진수 형과의 역량 차는 확연하다. 오히려 오른쪽 풀백에 설 자원이 좀 더 풍부했다.
문환이를 오른쪽에 두고 나를 왼쪽에다 두는 게 낫다는 말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니다.
어떠한 식으로 사이드백을 구성할진 전부 벤투 감독님의 의지에 달렸지만, 우린 왼쪽 풀백 포지션에서 좀 더 많은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
교체가 이뤄지고 5분.
경기는 소강상태다.
우영이 형의 투입으로 세네갈의 중앙 공격이 봉쇄되고 진수 형 역시 이스마일리 사르를 감당하기 시작하자, 우리의 장점이 다시 피치 위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주도권을 가져오긴 역부족이다.
그래서.
삐?익!
다시, 벤투 감독님은 교체를 준비한다.
.
(김정수) – 조선TV 캐스터
“아- 대한민국의 선수 교체입니다. 이동준과 정우영으로 보이는데, 위원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박성문)
“대범해요. 로테이션을 예고했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손흥민이나 조규성, 이강인. 뭐, 이런 선수들이 교체될 거로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벤투 감독의 선택은 이동준과 정우영입니다. 젊은 선수들에게 확실히 기회를 주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보입니다.”
.
실점하지 않는 이상 축구에서 패배할 일은 없다. 하물며 한 골 앞서 나가는 상태라면, 단순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승리를 쟁취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금 진행 중인 교체는 벤투 감독님이 우리 수비수들을 얼마나 신뢰하는 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평가전이라 이런 것이겠지만, 그래도 감독님의 신뢰를 느끼니 절로 힘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민재!”
“?”
“차분하게. 알지?”
고개를 끄덕인 민재가 엄지를 치켜세운다.
아마, 저 녀석도 나와 같은 감정일 거다.
벤투 감독님이 계속해서 실험해나갈 수 있는 건, 우리 수비가 계속 단단한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의조 형과 희찬이가 빠지고 동준이와 작은 우영이 투입되면서, 우리의 전방은 말 그대로 젊어졌다.
쌓아온 커리어와 평판은 주전들보다 확연히 떨어지지만, 나는 저들 나름대로의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동준이의 경우, AZ 알크마르 진출 이후 배운 것을 보여주고 싶어 몸이 잔뜩 닳아 있다.
그리고 절친이자 라이벌이기도 한 동경이의 활약에 자극도 받아 있을 거로 생각한다.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를 보는 건,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안겨다 주는 법이다.
“형, 형, 형, 형. 여기!”
한눈에 보기에도 열정이 넘치는 동준이가 패스를 요구해오고, 난 녀석이 달려갈 수 있는 방향으로 볼을 밀었다.
발밑으로 패스가 올 줄 알았던 녀석이 당황해 뒤늦게 볼을 쫓지만, 애초부터 녀석이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속도와 위치로 패스를 보냈다.
오히려 그냥 발밑으로 볼이 전달되었다면, 포데 발로-투레가 손쉽게 압박했을 거다.
무엇보다, 동준이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려면 저 녀석의 발이 멈춰 있지 않은 상태에서 볼을 잡도록 해야 한다.
‘한번 해 봐, 인마.’
동준이는 유럽에서도 독특한 유형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윙어다. 가속과 감속을 가져가는 타이밍이 유니크하고, 90분 내내 라인을 파고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기에 주변 동료와 호흡을 맞추는 일이 중요한데, 독일행을 말렸던 것도 그런 이유다.
플레이스타일 자체가 스스로 주변과 융화되는 유형이라면 또 모르지만, 동준이처럼 주변이 이해하고 맞춰가야 하는 경우라면 일단 본인 수준보다 뛰는 무대가 낮아야 한다.
그래야 동료들로부터 쉽게 존중을 받을 수 있고, 아래 단계부터 쌓은 커리어를 명함으로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네덜란드의 AZ 알크마르를 택한 건, 동준이에게 있어 천운이었다.
공격적인 면에서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꼽힐 정도라, 많은 포인트를 쌓을 수 있을 거다.
실제로 동준이는 에레비디지에에서 단 반년만을 뛰고도 7골 8어시스트라는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덕분에 AZ 알크마르의 왼쪽 터줏대감인 제스퍼 칼손(Jesper Karlsson)과 함께, 장차 더욱 큰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선수란 평가까지 끄집어냈다.
포데 발로-투레와의 경쟁을 시작한 동준이가 독특한 동작 속에 볼을 접는다.
얼핏 어정쩡한 동작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상대는 그런 투박함에 속에 안쪽으로 파고들 길을 내어줬다.
기다렸다는 듯 파고든 동준이가 수비수 하나를 더 달고 움직이고, 마지막엔 슈팅까지 날려보지만 임팩트가 다소 부정확해 볼은 골대 위를 한참 벗어났다.
하지만, 분위기 반전을 꾀하긴 충분하다.
“나이스- 동준-!!”
“잘한다-!!”
벤치에서 동준이를 향한 응원이 이어지고, 마찬가지로 손뼉을 두드린 나는 위치로 복귀하는 녀석을 향해 수비적인 부분을 더욱 신경 쓰라고 외쳤다.
“동준!! 수비부터!!”
세네갈을 상대로 카타르로 향할 마지막 윤곽을 정하고 있는 우리.
실험의 상대론 너무 과한 팀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게 현재 대한민국 축구의 주소를 제대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X나 멋있어.’
남은 후반전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그것을 짊어지게 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