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48)
147화
베베는 무척이나 똑똑한 사람이다.
그는 축구뿐만이 아니라, 역사/예술/문학/철학과 같은 다방면에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난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가끔 그의 오두막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마치,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을 안겨주었다.
물론 난 평생 대학을 가볼 일이 없을 것이고, 누나의 말로는 대학 수업이 그렇게 재미있진 않다고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베베의 말로 리스본이라는 도시는 역사적으로 무척이나 중요한 곳이랬다.
서구 문명 세계화의 일등공신과도 같았는데, 그것을 가능케 한 해상무역이 바로 이 도시를 중심으로 크게 발달했기 때문이란다.
18세기 중반이 되기 전까지, 리스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화와 가장 발달한 상공업을 보유한 유럽의 중심이자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1755년 11월 1일 오전 9시 40분경.
세인트 빈센트 남서쪽 200km 지점에서 발생 된 진도 8.7 규모로 추정되는 거대한 지진이, 화려하고 찬란했던 리스본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모든 자연재해 중 가장 끔찍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Lisboa Apocalipse’.
한국어로, ‘리스본 최후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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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2일. 1700-111 리스본, 포르투갈. 알름 도로, 가고 쿠티뉴 123. 자르딤 다 마리아 알리스 – 원호 생활시설(Casa de Rapuso ? Jardim Da Maria Alice. Av. Alm. Gago Coutinho 123. 1700-111 Lisboa, Portugal).
오늘은 지난번에 구단과 말했던 일정을 소화해내는 날이었다.
여긴 리스본의 주거단지 한곳에 마련된 원호 생활시설이고, 난 이곳에서 많은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분은 여기에 계신 타리타 드 프레이타스(Tarita de Freitas)라는 할머니다.
타리타 할머니는 무척 자상하고 또 따뜻한 분이셨는데, 난 이분을 보며 어린 시절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타리타 할머니가 처음 인사를 드릴 때 내 손에 쥐여준 작은 사탕 때문일 거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타리타 할머니에게 리스본 대지진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타리타 할머니는 방에 ‘리스본 최후의 날’의 모작(模作)을 걸어두고 계셨는데, 그걸 이야기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이 도시의 상처라는 거죠. 맞죠?”
“후후후후.”
짝짝짝짝짝짝!
“응?”
등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시설을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엔, 우릴 가장 처음으로 반겨준 분도 계셨다.
“이거, 놀랍네요. 리스본 대지진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아는 분은 드물거든요.”
“저한테, 좋은 선생님이 계시거든요.”
“하하. 그거 멋지네요. 할머니? 잠깐 이분을 데려가도 되겠죠?”
이 원호시설의 총 책임자인 올라보 쿠토(Olavo Couto)씨는 무척 좋은 분이다.
그것은 이곳에서 생활하는 분들과 또 내게도 무척이나 다행인 일이었다.
여기에 온 지 1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난 금세 원호시설의 사람들이 좋아진 상태다.
“이번 분들은 참 열심이네요.”
“네. 좋은 녀석들이거든요.”
“하하. 그건 당신도예요. 뭐랄까. 당신이나 저기의 저 제로니모는 진심이 느껴진달까요? 아, 오해하지 마세요. 베르나르두도 무척 잘해주고 있으니까.”
올라보 쿠토씨는 무척 예리한 분이셨다.
나나 제로니모는 전부 가난한 환경에서 여기까지 온 사례였고, 솔직히 저 녀석이나 나나 이곳의 풍경과 모습이 아무래도 더욱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절로 이곳 분들에게 마음이 갔는데, 그걸 쿠토 씨는 꿰뚫어 보았던 것 같다.
“안에 들어가 계세요. 다들 이곳에 있으니까.”
“네. 설마 저희를 가둬놓고 튀겨 드시진 않겠죠? 리스본의 도시 전설에 그런 게 있더라고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아까 배불리 먹었으니까.”
“네?! 뭐라고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어서 들어가 있어요.”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는 나를 본 쿠토 씨는 크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주시더니 어딘가로 사라지셨다.
그래서 난 그분이 시킨 대로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고, 방 안 테이블에 앉아 동그란 빵 하나를 나눠 먹고 있던 제로니모와 베르나르두를 보게 되었다.
“뭐야? 내거는?”
“늦었어. 이 마지막 조각이 내 입속으로 곧 들어갈 예정이거든.”
“뭐?! 그거 내놔! 나도 배고프다고!”
우리가 이 원호시설에 도착한 건 대략 오전 10시쯤이었으니, 이제 슬슬 배가 고플 때가 되었다.
타리타 할머니가 준 사탕을 먹기는 했지만, 그것 하나론 5분 정도 떠들면 열량이 다 소비될 것이다.
그리고 난 이미, 그렇게 했다.
“좋은 곳이더라, 여기.”
“그러게 말이야. 니모, 넌 어땠어?”
“좋았어.”
“엥?”
“얘 아까 울었다니까?”
“베르나르두!!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키득거리는 베르나르두에게 제로니모가 뭉쳐진 휴지 조각을 집어 던졌다.
아마도 저걸로 눈물을 닦았겠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래. 그렇겠다.”
여전히, 제로니모 가족의 비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아르헨티나에서 불법 이민자로 쫓겨난 것 때문에, 절차가 몇 배는 더 까다롭다고 한다.
제로니모는 늘 이 소식을 말할 때마다,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최근 제로니모는 향수병을 겪는 중이었고, 우리가 최대한 챙겨주려 하고는 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여기에는 왜 모이라는 거야?”
“글쎄. 나도 모르겠네. 니모? 넌 들은 거 있어?”
“훌쩍. 아니.”
계속 그쪽으로 주제가 이어지면 괜히 더 처질 것 같아, 난 재빨리 화제를 전환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모레 우리는 SC 올랴넨세와 리그 10라운드 경기를 치른 뒤에 다시 A매치 주간에 들어간다.
평소처럼 훈련과 휴식을 반복하는 일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난 제로니모를 위할 겸 어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이나 다녀오는 걸 생각하고 있다.
“여행? 며칠이나?”
“글쎄. 우리 휴가가 3일이니까, 한 이틀 정도?”
“흐음- 나쁘지 않은데?”
여행을 좋아하는 베르나르두다 보니, 녀석은 금세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 그런데, 이번엔 인원이 좀 적어. 가면 우리 셋이서 가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뭐?! 안드레는?”
“걘 여자친구한테 꼼짝없이 붙잡혔단다.”
왜 지난번에 안드레가 여자애들을 만나지 못한 걸 두고 아쉬워했었던 적이 있었지 않은가?
녀석은 결국에 참지 못하고 소셜네트워크로 우크라이나 모델에게 DM을 보냈다가, 다시 여자친구에게 발각이 되고야 말았다.
특별히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녀석의 여자친구가 가만히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대판 싸운 모양이야.”
헤어지자고 말하는 여자친구의 앞에서 안드레는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빌었고, 그래서 이번 3일간의 휴가를 그녀를 위해 몽땅 사용하기로 했다.
나야, 뭐.
“역시나 조금 자유롭단다.”
“너도 그냥 다른 애를 한꺼번에 만나는 거 어때?”
“글쎄올시다. 그건 또 별로거든.”
여자 없이 못사는 성격도 아니고, 굳이 사서 고생길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화제를 바꾼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제로니모는 이제 완전히 괜찮은 얼굴이다.
“그래서? 어때?”
“응? 뭐? 여행? 가는 거 아니었어?”
“하-! 얘가 이렇다니까?”
이내 셋이서 키득거리게 된 우리는 여느 10대와 다를 것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 축구, 게임, 소셜네트워크.
항상 이런 것들이 전부였다.
똑똑똑-
“응?”
한창 수다를 꽃피우고 있을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문이 열렸고, 그리고 손에 냄비와 접시를 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분들이 우리가 있던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그 뒤엔, 올라보 쿠토 씨도 있었다.
“입맛에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세 분이 축구선수라서 영양이 풍부한 것들로만 준비했습니다.”
“오-!”
“이런, 세상에나. 안 그러셔도 되는데.”
“하하. 늘 이런 것은 아니에요. 오늘은 세 분이 워낙 잘해주셔서, 이곳에 계신 분들이 꼭 대접해드리고 싶다지 뭡니까?”
테이블 위에 하나둘 냄비와 접시가 올라오고, 소박했지만 따뜻하고 또 푸짐한 포르투갈의 가정식이 눈에 들어왔다.
오븐에 데운 따뜻한 빵과 함께 곁들여 먹을 버터와 올리브. 양념한 돼지 목살을 푹 쪄낸 것도 있었고, 문어와 새우를 넣고 리소토처럼 만든 밥 요리도 보였다.
외에도 토마토와 향신료를 넣은 스튜라든가 굽거나 쪄낸 해산물, 또 엄마가 가장 좋아하시는 문어와 감자를 넣은 샐러드 역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요리들과 곁들여 먹을 소스들도 차려졌다.
“어? 삐리삐리네.”
“아, 맞네. 네가 제일 좋아하잖아?”
삐리삐리(Piri-Piri)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소스라고 볼 수 있는데, 미국의 타바스코/동남아시아의 삼발 소스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포르투갈 요리에선 무척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스튜에 넣어 먹거나 해산물을 찍어 먹으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죄송해서 어쩌죠? 오늘은 저희가 도와드리려고 온 건데, 오히려 신세를 지는데요?.”
“하하! 괜찮습니다. 그렇죠?”
쿠토 씨의 말에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은 따뜻하게 웃으시면서 많이들 먹으라고 했다.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본인들은 따로 만들어둔 것이 있으니 이곳에서 우리 셋이 먹는 게 더욱 편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난 어른들이 밖으로 나가기 전, 타리타 할머니를 찾아가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괜찮단다. 어서 먹으렴. 우리 남편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었던 거니까.”
“… 혹시, 돌아가셨나요?”
“그래. 4년 전에. 그리고 그런 뒤에 이곳에 왔지. 아무튼, 음식이 식겠구나. 어서 먹으렴.”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다시 한번 감사하단 말씀을 드린 뒤에, 난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의리 없는 것들 같으니.
“에-이!! 나 빼고 혼자 먹는 게 어디 있어?”
“Amigo. 이거 먹어봐. 완전히 끝내줘.”
“젠장. 어서 내놔.”
본래라면 일정이 끝나고 친구들과 따로 밥이라도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렇게, 푸짐하고 따뜻했던 식사가 모두 끝난 뒤.
“정말? 너희들은 더 있다 가려고?”
“어. 그러니까, 먼저 들어가 봐. 오후 훈련 때 맞춰서 갈게.”
“그래. 그럼.”
탁-!
구단 차량에 탑승한 베르나르두가 먼저 클럽하우스로 돌아가고, 조금 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제로니모와 나는 다시 원호시설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왔는데, 식사를 대접받은 것도 모자라 설거지까지 맡기게 되었다.
그러니 이대로 돌아가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고 아직 여긴 도움이 필요하단 걸 안다.
“자, 어디 한번 해볼까?”
“응.”
팔을 걷어붙인 제로니모와 나는 건물 외벽의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교육센터. SL 벤피카 클럽하우스.
오후 훈련까지 모두 끝나고, 난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클럽하우스에 남아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 이유는, 친구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진짜라니까? 그분 남편이 SL 벤피카에서 일하셨대.”
“이름이 뭐라고?”
“리노. 리노 드 프레이타스.”
“……모르겠네.”
“당연하지! 벌써 20년도 더 넘은 일인걸!”
타리타 할머니의 남편분인 리노 씨는 과거 이곳 SL 벤피카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1968년 처음 SL 벤피카에 취업하여, 20년 이상 이곳에서 일하셨단다.
그래서 나는 조금 여유 있는 A매치 주간 때, 리노 씨의 기록을 한번 찾아볼 생각이다.
“10년 전에 집이 전부 불타셨나 봐. 그래서 사진이고 뭐고, 다 없어졌대.”
“젠장, 그거 슬프네.”
“그렇지?”
만약 타리타 할머니에게 남편분의 사진을 찾아 전달해드릴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젠장. 세상에 그렇게 좋은 분들은 또 없었다니까.”
“얘 봐. 완전히 사랑에 빠진 것 같은데?”
“이런 사랑이라면 백 번도 더 빠지겠다. 니모? 너도 나랑 마찬가지잖아. 그렇지?”
“응. 좋은 분들이셔.”
그래서 나는 더 추운 겨울이 되기 전에, ‘아디다스’에 요청해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에게 드릴 두꺼운 재킷 같은 것을 준비해볼까 한다.
어차피 올해 쓸 수 있는 마일리지도 꽤 남았으니, 사비가 많이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설령 사비가 많이 든다고 해도, 그것은 꼭 해드리고 싶었다.
“이런, 재미있어나 보네. 나도 갈걸.”
“아서라, 안드레. 넌 애인한테나 신경 써.”
“후-키쉬!!”
“야!!”
“큭큭큭큭.”
베르나르두가 채찍을 휘두르는 동작과 소리를 내자, 발끈한 안드레가 목소리를 높였다.
여자친구에게 조련당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한 행동이었던 건데, 베르나르두치고는 무척 센스있는 것이라 다들 이렇게 터진 것이다.
베르나르두의 센스를 볼 기회는 좀처럼 많지 않으니까.
“후우- 있지. 난 이제 조금 살 것 같아.”
“뭐? 그게 무슨 말인데?”
우린 현재 저녁식사를 끝낸 후, 각자 음료를 즐기는 중이었다.
“1월에 여기 왔을 때는 적응한다고 정신이 없었거든. 집하고 축구장만 오가기도 충분히 벅찼단 말이야. 그리고 올림픽에 다녀왔지. 그건 정말 좋았지만, 오니까 집이 무너져 있는 거야.”
“큭큭큭큭. 비유 좋네.”
“웃지 마, 안드레. 난 진짜 심각했으니까. 포르투갈로 와서 포르쉐도 뽑고 좀 여유를 가져보나 했는데, 8월부터 10월까진 진짜 끔찍한 악몽이었다고.”
그런데 오늘 이렇게 원호시설을 다녀오고 나니, 내가 어떠한 도시에서 살고 있으며 축구장 밖의 세상은 어떤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잔뜩 좁아져 있던 시야가 탁하고 트인 느낌이랄까?
마치, 세상이 환해진 것만 같다.
“그리고 나 연애도 시작했잖아? 이 ‘형님’이 예전만큼 너희들을 챙겨주지 못해서, 무척이나 미안하다.”
“아, 이 새끼. 또 이러네.”
“큭큭큭. 알아들었어?”
내가 매번 ‘형님’이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쓰다 보니, 이젠 친구들도 대충 다 알아듣고 있었다.
심지어 그 의미까지도 말이다.
사실, 여기 대부분은 간단한 한국어 정도는 할 수 있다.
내가 틈날 때마다 한국어를 알려줬으니까.
“하긴.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요즘 과자 가족 활동이 조금 지지부진하긴 해.”
“그래. 지난 시즌까지는 너만 붙박이 1군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찢어졌잖아. 그래서 모양새도 이상해졌어.”
“그러니까.”
작년까진 나만 꼭대기에서 내려가면 되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친구들이 위로 올라와야만 했다.
그리고 말했듯 SL 벤피카에서 꼭대기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라, 아무래도 B팀의 친구들은 여기로 잘 모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그룹이 나뉘게 되었고, 보이지 않던 벽 같은 것도 생겨난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그걸 깨부수자고. 우린 친구잖아.”
“그렇지. 친구지.”
“찬성.”
“난, 그러니까…….”
“아, 넌 모르겠구나. 그냥 넌 우리만 따라오면 돼. 알겠지?”
“어? 으, 응.”
제로니모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난 그동안 챙길 수 없었던 것들을 다시 신경 쓰기로 다짐했다.
덴마크나 포르투갈이나 개인적인 성향이 무척 강하다 보니, 내가 아니면 단체로 모여 뭔가를 한다는 건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난 이렇게 함께하고 있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그분들도 마찬가지일 건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원호시설의 어르신들이 오늘의 우리로 인해, 조금이나마 따뜻한 밤을 보내셨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