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51)
150화
위기(?)가 찾아왔다고 생각되었던 순간, 나를 구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제로니모였다.
녀석은 여자애들과 어울리는 상황이 몹시 불편하며, 자신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심 안심하면서도 아쉬움을 다 떨쳐내기 어려웠던 나와는 다르게, 베르나르두는 기껏 인근에서 잘나간다는 애들을 불러왔는데 이게 뭐냐며 짜증을 부렸다.
그러곤 제로니모에게 혹시 남들과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것은 아니냐는 식으로 물었는데, 이에 매우 놀라면서도 난처해하던 제로니모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무척 놀랐고.
또 베르나르두는.
[미안해, 자기들. 갑자기 일정이 생각났지 뭐야. 내일 다시 부를게. 알겠지? 진짜 미안해. 그럼. 잘 가.]딸깍-
수영하고 있던 여자애들을 몽땅 빌라 밖으로 내보내 버렸다.
이제 녀석은 하나도 아쉽지 않은 모습이다.
왜냐하면.
“좋아, 니모.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다 말해 봐.”
“응. 그게…….”
제로니모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베르나르두의 귀와 정신상태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면, 이 녀석은 분명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16살 때 아이가 생겼어.”
“Meu Deus.”
그러게 말이다.
하느님 맙소사다.
“어, 그리고 아내는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아.”
제로니모의 아내 카르멘(Carmen)은 이 친구와 같은 빈민가에서 지내던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둘은 늘 함께였고, 어느새 누나와 동생이 아닌 남녀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우연한 계기로 마음을 확인한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일이 진행되었단다.
“그럼? 그녀는?”
“날 대신해 가족들을 돌봐주고 있어. 비자 문제도 그녀가 곁에서 도와주고 있고 말이야. 우리 빈민가에서 제일 똑똑했거든. 내가 축구로 돈을 벌게 된 후에는 변호사가 되려 공부하고 있어.”
“젠장! 그거 멋지네.”
“그러게.”
무척 놀라운 비밀을 털어놓은 제로니모는 우리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였다.
“왜 그렇게 눈치를 봐?”
“아니, 그냥. 혹시 그것 때문에 나랑 친구하고 싶지 않을까 봐.”
“뭐?! 우리가 왜?”
“그야 오늘도 나 때문에 여자애들을 보내버렸고.”
“아- 제발, 니모. 여기 이 녀석은 몰라도 나는 아니란다.”
“뭐?! 내가 왜?!”
발끈하는 베르나르두를 보며 잠깐 낄낄거렸던 나는 제로니모에게 그의 기혼 여부가 우리의 우정에 문제가 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과자 가족의 규칙에,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 나 계속 과자 가족이야?”
“당연한 소리. 야, 배고프다. 밥이나 먹자.”
“배달시키자. 끝내주는 파에야를 파는 가게를 알거든.”
“그거 좋지.”
베르나르두가 전화를 거는 사이, 어색함을 떨쳐낸 제로니모가 내게 질문을 해왔다.
“요즘 여자친구랑은 좀 어때?”
“뭐, 똑같지. 걔는 지금 파리에 있고, 크리스마스 전이나 되어야 다시 볼 것 같아. 전에 말했지 않나?”
“그런 것도 같네. 그런데 걔는 어떤 사람인데?”
“뭐, 괜찮은 사람이야.”
“또?”
“또?”
“응. 그게 다는 아닐 거잖아.”
“…….
오펠리아는 예쁘고 또 괜찮은 아이다.
그리고…….
“니모!! 너 혹시 못 먹는 거 있어?!”
“어?! 나, 잠깐. 조금 다녀올게.”
“그래. 그렇게 해.”
제로니모가 떠난 뒤, 나는 오펠리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내가 걔를 좋아하긴 하나?’
분명 처음엔 오펠리아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또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겐 축구 또 그녀에겐 모델 일이 있어 만나는 시간도 부족했고, 특히나 10월은 팀이 가장 좋지 않았을 때라 오펠리아와 뭔가를 함께할 기회도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
‘정말 그것 때문일까?’
분명히 나는 오펠리아를 위해 시간을 만들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무척 예쁜 사람이지만, 그것 외에는 딱히 내가 매력을 느끼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은 내가 문제인 것일까?
아니면.
“야. 왜 그런 표정이야? 올라가자. 우리끼리라도 수영하자고.”
“어? 아, 그래. 그러자.”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알 것 같았다.
분명 오펠리아는 누군가에겐 매력적인 사람이겠지만, 지금의 난 그녀가 예쁘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건 아마도 서로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도 달라서.
어쩌면, 시간이 필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나. 도착했어.’
지금은 일단 최대한 괜찮은 척해 보려고 한다.
현재로서는 축구 외의 문제를 만들긴 싫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함께 옥상에 올라, 수영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사진을 오펠리아에게 보내주었다.
지금 당장은 누군가와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축구장 밖에서 안도를 얻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이기적인 걸까?’
하지만 이런 복잡한 생각도 수영장에 뛰어듦과 동시에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여긴 정말 끝내주는 곳이다.
***
2012년 11월 27일.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이 벤피카 인턴십 및 교육센터. SL 벤피카 클럽하우스.
김다온과 그의 친구들이 말라가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SL 벤피카의 풋볼매니저 에두 크루즈는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지난여름 이적시장에서의 접근방법이 실패했음을 빠르게 인정했고, 올 시즌 팀의 모습을 보면서 몇몇 포지션에 보강이 필요함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번 겨울과 내년 여름, 총 두 차례에 걸쳐 선수 영입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우선 그 첫 번째 단계로, 팀의 감독 조르제 제수스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에두 크루즈는 본인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예상보다 심각하다고?”
“그래. 어쩌면 이전처럼 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군.”
“…….
현재 SL 벤피카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바로, 팀의 센터백 겸 주장인 루이장의 부상 재활이 생각보다 더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조르제 제수스는 루이장에게 포르투갈이 아닌 스페인에서 한 번 더 검진을 받도록 권했고, 지금 막 본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참이다.
스페인의 주치의는 골반 부위에 입은 부상이 포르투갈에서의 진단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했다.
“이 빌어먹을 나라는, 축구선수도 제대로 진료해 주지 못하는군.”
“그럼 언제 돌아오는 건가?”
“최소 2개월은 더 필요해, 에두. 그것도 우리에게 운이 좋다면 말이야.”
“이런, 세상에나!”
“이제 슬슬 자르데우와 가라이도 한계야. 이번 A매치까지 다녀오면 피로가 더하겠지. 지칠 때고, 그럼 뒷공간이 자꾸만 비게 될 거야. 그럼 풀백들의 부담이 가중되겠지.”
“그 전에 일을 해결해야 하네.”
“물론일세.”
제수스는 이번 A매치 주간 동안, B팀을 관찰해 두 명 정도의 센터백을 A팀으로 올려 보낼 생각이었다.
후보는 이미 정해졌는데 미겔 빅토르와 로데릭 미란다, 그리고 시드네이(Sidnei) 중 두 선수를 A팀에 합류시키려고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쓰리백의 이해 여부다.
“불행히도 세 녀석 전부 포백에 더 익숙하군.”
“그렇다면, 다행히도 내가 자네를 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네.”
“응?”
비로소 용건을 꺼내 들 수 있게 된 에두 크루즈가, 앞서 스카우트 그룹과 함께 정리한 영입명단을 제수스에게 건넨다.
“우선 세 번째 페이지를 봐주게나.”
“…….
서류를 건네받아 안경을 뒤집어쓴 조르제 제수스는, 에두의 말대로 세 번째 페이지를 펼쳤다.
“브루노?”
“브루누. 네덜란드 국적이지만, 포르투갈에서 태어났지.”
“어디?”
“바헤이루.”
“세투발이군.”
바로, 브루누 마르팅스 인디(Bruno Martins Indi).
페예노르트 유스가 육성한 유망주 중 하나로, 센터백과 레프트백을 모두 맡아줄 수 있는 유능한 수비자원이다.
지난 시즌부터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재는 스테판 드브레이(Stefen de Vrij)와 함께 페예노르트 수비의 핵심이 되어주고 있다.
“벌써 꽤 많은 클럽이 군침을 흘리고 있어.”
“흐음- 이미 이런 녀석이 팀에 있었던 거로 아는데, 아닌가?”
“누구? 빅토르? 지금은 그보단 훨씬 더 나아.”
“그런가? 알겠네.”
조르제 제수스가 이야기한 건 현재 임대를 떠나 있는 빅토르 린델뢰프(Victor Lindelof)였다.
2012년 1월 김다온의 영입 직후, 벤피카의 스카우트 그룹과 보드진이 감독의 의견과는 별개로 데려온 선수다.
SL 벤피카와 같은 셀링클럽은 감독의 의견은 묻지 않은 채, 상업적인 이득이 가능하다고 평가받는 유망주를 영입하곤 한다.
“빅토르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해. 그는 축구를 배우는 게 무척이나 느리거든.”
“그런가? 난 둘 다 별로 내키지 않아.”
“그렇군. 그럼 센터백은 더 찾아보도록 하지.”
“그러게나.”
“그래도 나머지는 꼼꼼히 읽어 주겠지?”
“물론. 당연히 그래야지.”
서류를 책상 위에다 얌전히 놓아둔 조르제 제수스는 에두 크루즈에게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선수들은 휴가인데, 우리는 최소한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나.”
“후후. 그러지. 따라오게. 내가 잘 아는 식당이 있어.”
“클클클. 그렇게 나오셔야지.”
겨울 이적시장까지 약 한 달을 앞두고, 유럽의 축구클럽은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려고 한다.
그리고.
부르르르르-
부르르르르-
“…….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 하나가 울리는 것을 확인한 에두 크루즈가 화면을 슬쩍 보더니만, 도로 그것을 원래의 위치에다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이를 본 제수스가 받지 않아도 되는 전화냐고 묻자, 에두는 말을 돌리며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금방 그가 본 화면에는, 지겹도록 전화를 걸어오고 있는 한 사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맨유? 절대 안 되지.’
그건 바로, 맨유의 사장 에드 우드워드(Ed Woodward)다.
***
말라가, 스페인. 아테네아 우르바니타치온 토레 레알. 29603 마르베야.
말라가에서의 두 번째 날.
석양이 질 때까지 해변에서 햇빛을 즐기고 온 나는, 지금 제로니모와 함께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우리 둘이야?”
“어. 녀석. 몸아 완전히 달았나 봐.”
“인기 좋더라, 걔.”
“그러게. 포르투갈보다는 스페인에서 더 먹히는 건가?”
베르나르두는 어제의 그 여자애 중 하나와 만나기 위해 빌라를 나섰고, 우리에게 열쇠를 주며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빌라에 남은 우리 둘은, 한가로이 말라가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모레부터는 다시 시작인가?”
“바로 챔피언스리그지?”
“응. 맞아.”
이번 휴가가 끝나고 나면, 어쩌면 올 시즌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경기를 치르게 된다.
우린 FC 바르셀로나와 챔피언스리그 조별그룹 예선 마지막 시합을 펼칠 것이고, 그것을 위해 난 다시 이곳 스페인으로 돌아올 것이다.
“난 또 당분간 B팀이네.”
“너무 상심하지 마. 우리가 조별 스테이지를 통과하면, 너한테도 기회가 올 거야.”
“응. 그랬으면 해.”
“…….
FC 바르셀로나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나는 부쩍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졌다.
제로니모야 본래 말이 많은 녀석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주변은 고요하게 바뀌었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만이 정적을 잠깐씩 깨트려주고 있었다.
탁-!!
“왜? 모기?”
“응. 여기 모기 참 많다.”
“잠깐만 있어 봐.”
베르나르두는 집을 나서기 전에, 내게 꼼꼼히 빌라의 이것저것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중에는 정원 한쪽에 놓아둔 드럼통도 있었고, 그 안엔 모기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는 나무의 장작과 가지 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것을 우리 두 사람의 앞에다 가져다 놓은 뒤, 근처에 있던 기름을 붓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화르르륵-!
순식간에 불이 피워져 오르고, 이젠 풀벌레 소리와 함께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귓가를 채웠다.
“이거, 진짜 꿈만 같다.”
“뭐가?”
“이렇게 여기에 있는 것 말이야. 내가 축구를 시작한 건, 거기에선 그게 가난을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었어.”
“……그래.”
“하하. 이런 이야기, 너무 지루한가?”
“아니, 그렇지 않아. 나도 그런걸.”
아르헨티나의 많은 아이가 축구선수가 되기를 꿈꾸고, 또 축구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다.
다행이라면 그 나라는, 실력이 있을 경우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 수 있도록 여기저기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제로니모만 봐도 그랬는데, 축구화가 없던 녀석을 위해 막노동까지 하여 축구화를 선물한 지역 U-8세 팀의 감독님이라든가, 어떻게든 프로 클럽 아카데미에 입단시키고자 한 달 넘게 구단 사무실 앞에서 시위한 U-10세 팀의 코치님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제로니모가 축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분들은 내 은인이야. 내가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집에 음식도 가져다주고 또 축구화도 매번 선물하셨어. 물론 처음엔 그것마저 아까워 맨발로 연습하다 혼이 나기도 했지만.”
“거긴 놀리는 사람 없었어?”
“응? 뭐가?”
“그러니까, 가난하다고 말이야.”
“전혀. 프로팀에서 뛰는 유스라고 해도 절반 정도는 나처럼 가난한 가정에서 온 애들이거든. 진짜 부자 애들은 리버나 보카 같은 팀에서 뛰기도 하고.”
리버 플레이트와 보카 주니오르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니코, 아이마르, 사비올라가 뛰었던 팀이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팀 내 그룹도 그랬던 것 같다.
아이마르는 중립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 더 친한 사람들은 니코와 사비올라다. 그리고 가라이와 엔초는 그들과 어울리기보단, 팀 내 다른 그룹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그래도 시합할 때면 그런 일이 있기는 해. 리버나 보카의 애들이 우리더러 가난뱅이들이라면서 냄새가 난다거나 침을 뱉는다거나 하거든.”
하지만 제로니모는 그것 때문에 한 번도 화를 낸 적은 없었다고 한다.
본인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두가 그랬단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잖아. 그렇지?”
“……응.”
어쩌면 제로니모가 그렇게 덤덤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의 대다수가 자신과 같은 처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만약 그랬다면.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난 없었을 거야.’
가난했던 시절이 최소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다.
“아무튼. 그래서 더 카르멘이 보고 싶어. 그녀는 내가 버틸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사람이었어. 넌 꿈에도 모르겠지만, 거긴 꽤 유혹이 많아. 승부 조작을 하는 대가로 한 달 치 식량을 준다고 하는 사람이나, 마약 같은 걸 운반하는 데 우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거참, 무섭네.”
“그렇지? 큭큭. 하지만 그럴 때마다 카르멘이 날 지켜줬어. 그녀는 진짜 대단한 여자야. 또 강한 사람이지. 그렇지만 이젠, 내가 그녀를 지켜줄 거야.”
“…….
워낙 평소 말이 없는 녀석이라서 잘 몰랐지만, 이번 휴가를 함께하며 알게 된 제로니모는 참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은 녀석이었다.
비록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영역 역시 가장 많았고, 자신을 지탱해줄 수 있는 반쪽을 벌써 얻었다는 것은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일단 올해는 적응기니까. 조르제도 그렇다고 했어.”
“그래. 시즌을 다 뛰고 왔잖아. 안 그래?”
“응. 그렇지.”
아르헨티나의 리그는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치러지는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라는 컵대회에 진출한 팀은 7월까지 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펼쳐야 한다.
제로니모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고, 어쩌면 이 녀석이 잠을 많이 자는 이유도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니모는 벌써 리그에서 7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팀 내에서 빠르게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니모.”
“응?”
“우리 건배나 하자.”
“건배? 술도 없는데?”
“내가 술을 못 먹으니까. 그냥 이걸로 하지 뭐.”
음료수 잔을 들어 올리며 그것을 흔들자, 피식하고 웃어 보인 제로니모가 자신의 잔 역시도 들어 올렸다.
그러곤 내게 물었다.
“그럼, 뭘 가지고 건배를 할까?”
“대견한 우리를 위해.”
“뭐?”
“가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우리한테 말이야. 언젠간 너도 또 나도 이런 별장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오는 날을 위해 건배를 하자는 거야.”
“그거. 꽤 마음에 드는데?”
“당연하지. 내가 생각한 건데.”
씨익 미소를 지은 내가 먼저 잔을 움직였고, 몸을 앞으로 숙인 제로니모 역시 잔을 가져와 내 것에 부딪히게 했다.
띵-!
음료수가 거의 들어 있지 않아, 소리는 무척 맑고 청아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지를 알 것도 같았다.
이래서 역시 친구를 잘 둬야 하나 보다.
‘내 원점. 그건…….’
삐이이이-!
드르르르르.
“응?”
“??”
그런데 갑자기 빌라의 대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등장한 베르나르두가 구시렁거리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뭐야? 너 오늘 집에 안 들어온다며?”
“몰라! 빌어먹을! 애인이 있으면 있다고 진즉에 말을 하든가. PUTA MERDA!!!”
쿵쿵하는 소리를 내면서 빌라 안으로 사라진 베르나르두.
그리고 조금 뒤에.
“으아아아아아악-!!!”
분노로 가득 찬 녀석의 목소리가, 빌라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걸 보던 우리 둘은.
“내버려 둘까?”
“응? 저게 처음도 아니고.”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베르나르두를 그냥 가볍게 무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혼자인 것을 견디지 못하고 여길 올 테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후우-!!”
비어 있던 남은 벤치 하나에 털썩 주저앉은 베르나르두가 손에 맥주병 하나를 쥔 채, 오늘 있었던 일을 묻지도 않았는데도 하나하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이럴 줄 알았다니까.’
말라가에서의 마지막 밤.
결국엔, 우리 셋이 모였다.
“아니 그 빌어먹을 년이…….”
아무래도 오늘은, 밤늦게까지 베르나르두의 푸념을 들어 줘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