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63)
162화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고객센터. SL 벤피카 대강당 홀.
“기다려!”
“…….”
크리스마스이브 파티에서 오펠리아를 보게 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구단주님이 잠깐 참석해 크리스마스 담화를 하고 떠나신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가족 파티에 참석한다고 했었던 오펠리아가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것과는 상관없이, 미리 정해둔 일정을 위해 움직이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오펠리아가 오해했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난 오펠리아의 앞에서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서는 건, 그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라고.
“말했잖아. 약속이 있어.”
“크리스마스이브에? 가족들은 덴마크에 있잖아!”
“……만날 사람이 있어.”
“누구?”
“네가 모르는 어떤 사람.”
“여자?”
“…….”
내 침묵에 오펠리아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녀는 싸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만약 네가 떠난다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거야.”
“돌이킬 수 없는 건, 네가 내 생일을 잊어버리면서부터였어.”
“미안하다고 했잖아!!”
처음으로, 오펠리아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마치,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내가 생일의 이야기를 직접 꺼낸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는 거다.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리고 네 집 앞에 찾아갔는데, 그걸 받아주지 않은 사람도 너고!”
“난 상처받았어.”
“…….”
“그건 네가 준 상처고, 내 생각엔 그게 쉽게 치료될 것 같지는 않아. 미안해. 난 이제 할 말이 없어.”
돌아서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내내, 난 뒤에서 오펠리아가 날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난 되돌아보지 않았고, 한 걸음 한 걸음 가져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한쪽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그냥 우린 너무나도 달랐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설렘과 전망대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서로 어울리지도 않는 우리에게 못된 마법을 걸어놓았던 것 같다.
이젠, 그 마법에서 깨어날 때였다.
탁-!
“…….”
운전석에 올라탔을 때, 나는 저 앞에 선 오펠리아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금세 거기에서 시선을 거두며, 난 시동을 켜고 곧장 클럽하우스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내가 향한 곳은.
“휴우~”
윤서희 씨가 공연하는 상 카를로스 국립 극장도, 그렇다고 집도 아닌 오펠리아와의 첫 데이트 장소였던 포르타스 두 솔이었다.
기껏 비싼 값을 지불하고 발레공연을 예약했지만, 난 거기로 가지 않았다.
‘축구만 하자.’
완벽하게 혼자서 보내게 된 크리스마스이브.
리스본 주택가를 중심으로 보이는 불빛 속엔, 아마도 함께여서 행복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다.
춥네, 추워.
[메리 크리스마스.]혼자인 것이 슬퍼져, 난 몸을 웅크리며 고개를 무릎 위에 파묻었다.
***
2012년 12월 25일. 에스토릴, 포르투갈. 루아 잉그라테라 387.
어제는 전망대에서 곧장 집으로 와, 밤새 게임을 했다.
그리고 꽤 늦은 시각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에-츄우! 훌쩍.”
거실에서 그대로 잠들었더니, 감기 기운이 든 것 같기도 했다.
아프면 안 되는데.
누나가 말하길 혼자 있을 때 아픈 것만큼 서러운 건 없다고 하더라.
“흐아?아품!!”
그렇지만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난 냉장고로 가, 먹을 것을 꺼내 들었다.
일단은 냄새 먼저 좀 맡고.
“킁킁. 음, 괜찮네.”
덴마크로 떠나시기 전에 엄마가 사다 둔 차가운 빵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난 클럽하우스로 향할 생각을 했다.
오늘은 시내의 식당 거의 모든 곳이 문을 닫았을 것이기에, 클럽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며 저녁밥까지 그곳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아효, 이게 무슨 궁상맞은 짓이야.”
혼자 있으니 혼잣말을 많이 하게 된 것도 같은데, 그거야 아무래도 좋았다.
방으로 돌아와 가방을 집어 든 뒤, 훈련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안에다 쑤셔 넣기 시작했다.
“음~ 어디 보자. 다 챙겼나?”
평소엔 엄마가 기본적인 것들을 챙겨주셨기에, 나는 훈련복 정도만 따로 준비하면 됐다.
“아, 속옷!”
하지만 오늘은 몇 번이나 계단을 내려오려다가 다시 2층으로 올라가는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새삼, 엄마가 얼마나 나를 챙겨주고 계셨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순간이다.
“훌쩍.”
클럽하우스로 간 김에 메디컬 스태프에게 검진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에 했었지만, 오늘은 그들도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냥 제로니모에게 상비약 같은 물품을 챙겨둔 것은 없는지 물어봐야겠다.
포르투갈에 집이 있는 녀석들은 내일까지 휴가를 보내다 돌아올 예정이었고, 현재 클럽하우스에 있는 사람은 아직 가족들이 입국하지 못한 제로니모 정도뿐이었다.
얀도 가족들을 보러 슬로베니아로 돌아갔기에, 아마도 제로니모 혼자 쓸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뭐, 나도 그렇긴 하지만.
딸깍-
보통은 주방 옆의 문으로 나가 곧바로 차고로 향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기에 현관으로 나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집을 나선 뒤에는 보안장치도 따로 작동시켜 두어야 했는데, 평소보다 할 일이 몇 배는 더 많았다.
이래서 지성이 형이 가족들과 함께 사나 싶다가도, 혼자 사는 자철이 형이나 흥민이 형은 어떻게 이 귀찮은 일들을 다 하고 사나 싶기도 했다.
삐-이! 삐-이!
“됐다!”
보안장치의 작동을 확인한 뒤, 난 다시 차에 올라타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도로의 사정은 평상시보다 훨씬 더 가벼웠고, 본래도 차가 많이 다니지는 않았던 길인지라 혼자서 도로를 전세 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문득 속도를 내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지만, 최근 호드리구가 과속으로 가십지를 오르내린 터라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20분을 달려.
탁-!
무사히 클럽하우스에 도착한 나는, 준비한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제로니모를 만나러 녀석의 방으로 향했다.
클럽하우스 입구와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길에 본 경비원 두 사람을 빼면, 오늘은 이곳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연휴인 거다.
“니모?!”
…….
똑똑똑똑-!
“니모!! 나 들어간다?!”
딸깍-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 니모의 방문을 열어보지만,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본래 여긴 브루노가 쓰던 방이었는데,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면서 그의 짐이 싹 빠지고 주앙과 한방을 쓰던 제로니모가 꼭대기로 올라오게 됐다.
일단 안으로 들어선 나는 침대 위에 녀석의 선물을 놓아두곤, 방안을 잠깐 돌아다녔다.
평소 독서를 좋아해 따로 들여둔 녀석의 책상 위엔, 아마도 가족일 것으로 생각되는 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예쁜 액자에 들어 있었다.
‘이 사람이, 부인인가?’
6살 연상이라던 제로니모의 아내는 내 기준에서 꽤 미인이었고, 액자를 도로 내려다 둔 나는 엉덩이를 긁적이며 밖으로 다시 나섰다.
복도를 보고 있는데, 인기척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
[누구 없냐고오~~!]…….
우두커니 서서 목소리를 높여 보지만,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아이 씨, 진짜. 이게 대체 뭐냐고오.]가방을 클럽하우스 방에다가 대충 던져두며, 어쩌다가 내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되었나 생각을 해보았다.
[……그깟 생일이 뭐라고.]오펠리아는 어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계정이 올려둔 나와의 사진을 몽땅 내렸고, 나 역시 그녀와의 사진을 내리고 메인화면에 띄워둔 오펠리아의 해쉬태그 역시 삭제했다.
대충 이렇게 이별이 되는 것 같았는데, 당연히 힘들고 또 가슴 한쪽도 이상했다.
가만히 있어도 한숨이 저절로 튀어나왔고, 그녀와 함께하며 좋았던 기억들이 전혀 뜻밖의 상황에서 튀어나오곤 했다.
어제도 그래서 패드를 몇 번이나 던졌던지.
그러고 보면, 안 깨진 게 어디야.
난 일단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밥을 먹으러 가요~ 밥, 밥. 헤어졌어도 배는 고프니까~ 나도 왜 그런지는 몰라~ 아마도 내가 축구선수라서겠지~ 축구선수는 기초대사량이 높아요~ 그래서 소화도 잘 되나 봐~]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난 한국말로 되지도 않는 노래를 불러댔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클럽하우스 건물의 한중간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마침내.
“어?!”
“응?”
드디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니모!!!”
나는 니모를 발견했고, 그래서 큰 목소리로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냉큼 달려가 녀석의 앞자리에 앉았다.
“뭐야? 밥 먹어?”
“어. 맞아. 그런데, 넌 왜 여기에 있어?”
“Amigo. 이 형님이 또 동생 아우는 잘 챙기지 않겠어?”
“뭐??”
“나, 형님. 너, 아우. 그리고 한국어로 아우는…….”
“하하.”
내 설명에 제로니모가 피식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녀석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않으며 얼른 밥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래야지. 이 몸이 배가 많이 고프단 말이야.”
“기다릴게. 아, 그리고.”
“응?”
“메리 크리스마스.”
“…….”
어제 파티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빼면, 누가 개인적으로 내게 메리 크리스마스라 말해주는 건 니모가 처음이었다.
조금이지만, 살짝 마음이 찡했다.
[그래. 메리 크리스마스다, 임마.]“뭐?”
“아니야.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제로니모를 보며 든 생각은 바로 이거다.
역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고.
내게, 사치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
2012년 12월 27일.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고객센터. 제1 연습장.
길었던 휴가가 끝나고, 드디어 팀은 다시 완전체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이면, 가족들도 리스본으로 돌아온다.
당연히 그 길엔, 누나도 함께일 거다.
“여기! 여기! 이익-! 길잖아!”
“뭐야?! 왜 이렇게 다리가 짧아?”
“뭐?! 내가 너보다 키가 큰 건 알지?”
그래서 나는 오늘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동료들과 함께하는 팀 훈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휴가 동안 나와 오펠리아의 이별 사실을 접한 동료들은 내가 일부러 이러는 줄 알고 있다.
힘드니까 더 밝은 척하는 거라고.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 힘든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난 요즘 축구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있다.
훈련하는 것 자체도 너무 즐겁고, 포르투갈 리그가 재개될 1월 2일이 얼른 왔으면 한다.
“에-이!! 나갔어!! 나갔잖아, 지금!”
“아니야. 안 나갔어.”
“얘 또 연기한다! 안드레! 너도 봤잖아?”
미니게임을 겸한 훈련을 하는 내내, 난 동료들과 웃고 또 떠들며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건, 내가 매일 같이 보내야 하는 일상이 될 거다.
‘연애 따윈.’
당분간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
처음 김다온과 오펠리아의 연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에두 크루즈는 개인으로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서도 풋볼매니저로서는 그것을 내심 우려하고 있었다.
구단주의 가족이 해당 클럽에 속한 선수와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가, 딱히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펠리아는 아름답기는 해도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꽤 유명했고, 어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두 사람은 딱히 어울리는 커플이 아니었다.
에두 크루즈는 늘 김다온에겐 좀 더 헌신적이고 조용한 여성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려한 삶을 즐기는 오펠리아는 그와 정반대의 유형이었다.
그래서 에두는 내심, 둘의 이별을 반갑게 받아들이고도 있었다.
선수가 이별 이후 축구에 더욱 매진하는 일은, 이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손녀분은 괜찮으십니까?”
“음- 뭐, 그 나이 땐 다 그렇지.”
“이거, 참. 곤란하게 됐군요.”
“…….”
A팀의 훈련을 스탠드 한쪽에서 지켜보던 에두 크루즈는, 구단주 루이스 비에이라를 슬쩍 쳐다봤다.
평소 못 말리는 손녀 사랑으로 유명한 그였기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루이스 비에이라는 덤덤했다.
“10대의 연애일세.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지. 그 아이도 이번 일을 통해 좀 더 성숙해질 거야. 그리고 앞으론, 클럽의 선수와 만나려고 하지 않겠지. 오히려 잘된 일이야.”
“허허. 그거 의외로군요.”
“의외?”
“네. 뭐랄까. 평소 당신의 이미지대로라면, 다온을 불러서 한마디 정도는 할 줄 알았습니다.”
“…….”
에두 크루즈의 말에 표정을 잠깐 얼굴에 드러낸 루이스 비에이라지만, 그는 곧 무덤덤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에두 크루즈는 깨달았다.
‘필시 한마디 하고 싶은 거로군.’
루이스 비에이라의 솔직한 본능은 손녀 사랑을 발휘하는 쪽에 있었지만, 기업가로서의 이성이 그것을 억누르는 중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유럽 축구계에서는 구단주 혹은 이사진과 같은 높은 직책의 가족들과 얽힌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각보다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의 승리자는 늘 권력이 더 많은 쪽이며, 그리고 그것은 팀 분위기를 저해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일을 방해하곤 했다.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SL 벤피카의 구단주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는, 무척 좋은 신호였다.
루이스 비에이라가 그만큼 프로답다는 것이니까.
다만.
“지금 같아서는 저 녀석을 오랫동안 보고 있기 괴롭군. 만약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저 녀석을 레알에 팔아버렸을 거야. 손녀딸의 눈 밖에 나면, 그 아이가 조금 편해할 테니까.”
“당신은 이곳의 구단주입니다, 루이스,”
“하-! 나를 시험하려고 들지 말게, 에두. 무엇보다, 요즘은 딱히 그런 것도 같지 않군. 부쩍 적이 많아진 느낌일세. 가끔 오싹한 기분도 느껴.”
“…….”
잠깐 뜸을 들인 에두 크루즈는, 자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비에이라의 편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말했다.
“나도 알고 있네. 그것에 무척 고마워하고 있어.”
“별말씀을. 그만 들어가 보시죠. 보고 있기 괴로우시다고 했으니, 그냥 다른 걸 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응? 다른 것이라고?”
“네. 틀림없이, 당신이 만족할 겁니다.”
의아해하는 비에이라를 이끌며, 에두 크루즈가 건물로 향한다.
그리고 걸어가는 길에,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부터 진짜 시험이겠군. 여러 의미에서 말이야.’
김다온이 오펠리아와 연애를 한 사실은 단순한 그의 개인사에 그치지 않았다.
이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다.
그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라 성공한 축구선수로서의 삶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그리고 성공한 축구선수에게 뒤따르는 유혹이란 어지간한 정신력이 아니고서야 감당해내기 힘들다.
특히, 여자라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랬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여성이 소셜네트워크로 추파를 보내오고, 일부는 본인의 나체를 찍은 외설적인 사진을 보내기도 한다.
젊고 혈기왕성한 남자에게 이런 여자들의 유혹은 늘 견디기 힘든 것이며, 거기에 빠져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선수들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공개적인 연애로 주목을 끈 김다온이기에 이별에 관한 관심도 남다를 것이며, 또 이것을 기회로 생각한 여자들이 더욱 노골적으로 추파를 보내올 가능성이 컸다.
과연 그 속에서, 저 19살의 청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건 오직, 시간만이 답을 알려줄 것이다.
그런 김다온을 바라보며, 에두 크루즈는 생각했다.
‘강해지게나. 지금부터가 진짜 강해져야 할 때니까.’
그는 부디, 김다온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를 바랐다.
SL 벤피카와 그 자신을 위해.
***
2012년 12월 31일. 에스토릴, 포르투갈. 루아 잉그라테라 387.
오늘은 훈련 없이 온전히 가족들과 보내는 날이었고, 신년인 내일도 훈련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 같았다.
1월 2일에 경기가 있지만, 그 상대가 2부리그인 리가 프로의 데스포르티보라 하루 쉬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통, 시합에 뛰지 않는 선수들은 집에서 경기를 지켜본다.
나는 아마, 6일 리그 원정경기에 출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짜? 걔 완전 나빴다. 으휴, 나쁜 지지배.”
“그치? 내가 잘못한 거 아니지?”
“니가 뭔 잘못을 해! 그 여우 같은 계집애가 잘못한 거지.”
오늘 나는 누나에게 오펠리아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누나는 나를 배려해, 일부러 그 일을 묻지 않았었다.
“잘 헤어졌어. 네가 아까워. 으이구, 우리 동생.”
머리에 손을 얹고 가볍게 토닥여주는 누나의 위로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난 그래서 외국 사람은 별로더라. 너무 정서가 안 맞아.”
“음- 난 그래도 편견은 가지지 않을래.”
“마음대로 해. 내가 그렇다는 거니까.”
“응.”
누나는 이제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졸업한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을 할 거라고 하던데, 부모님은 그러지 말고 포르투갈에 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 요즘 자주 티격태격하고 있다.
부모님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난 누나의 편이다.
“나, 그냥 당분간은 축구만 하려고.”
“그래. 그게 낫겠다.”
“응. 그치?”
가족들이 리스본으로 온 이후로는 뭔가 심리적으로도 한층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든든한 사람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달까?
물론 나도, 가족들을 지켜줄 거다.
이젠 소셜네트워크로 사고를 치지도 않을 생각이니까.
“아이구, 우리 동생. 이제 다 컸네.”
“뭐?”
“내가 기저귀도 갈아주고 업어 키웠는데. 이젠 여자 상담을 누나한테 다하고 있어.”
“아- 진짜. 기저귀 얘기가 왜 나와?”
“왜~? 맞잖아?”
부모님도 요즘에는 안 그러는데, 누나는 여전히 가끔 나를 아이 취급하려고 한다.
우리가 유독 다른 남매들보다 사이가 좋은 것은 맞지만, 그래도 이럴 때면 영락없는 한국 남매가 된다.
누나와 방안에서 베개와 쿠션을 집어 던지고 또 서로의 발 냄새를 맡아보라며 장난을 치고 있을 무렵, 1층 아래에서 우리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됐나 보다. 내려가자.”
“응.”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챙겨, 1층으로 내려선다.
현재 시각은 오후 11시 56분.
4분만 있으면 2013년이 된다.
“우-와! 이게 다 뭐야?”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한테 좀 배웠어.”
“진짜? 우-와!”
늦은 밤 주방에서 요리를 열심히 하신 엄마는, 평소의 소박한 식탁과는 거리가 먼 사치스러운 음식들을 잔뜩 차려놓으셨다.
누나와 난 곧장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조금 뒤 우린 다 함께 식탁에 모여 신년 카운트를 기다렸다.
[DEZ!!!]틀어 둔 TV에서 숫자 10부터 시작하는 카운트를 외치고, 우리 가족은 각자 손을 잡고 그것을 지켜봤다.
[QUATRO! TRES! DOIS! UM! ZERO!!]포르투갈어로 Feliz Ano Novo.
덴마크어로는 Godt Nytar.
하지만 우리 네 식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당연히 한국어로 2013년을 맞이했다.
어느 때보다 정신없고 많은 일이 있었던 2012년.
그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일주일은 내게 큰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저 있죠.”
“?”
“다음에 이사할 땐, 혼자 살게요. 한국으로 돌아가셔도 될 것 같아요.”
“!!!”
그러니까, 정말로 아주 큰 의미 말이다.
난 조금 어른이 되기로 했다.
축구선수로서는 물론이고, 또 남자로서도.
지금 말한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제 나 대신 가족들이 누나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써주길 바라고 있었다.
물론, 당장은 부모님이 곁에 계셨으면 하지만 말이다.
지금 내 이야긴, 조금 먼 훗날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젠 나 혼자 할래.’
온전한 독립을 바란다는 마음은, 100% 진심이었다.
***
작가의 말 ? 개인적인 이별 경험이 이렇게도 쓰이는군요.
FC 바르셀로나와의 대결 이후, 다온이가 축구와 그 외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바로, 다시 축구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