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74)
173화
2013년 1월 28일. 1169-050 리스본, 포르투갈. 알라메다 산투 안토니우 도스 카푸초스. 센트럴 리스본 대학병원(Centro Hospitalar Universitario de Lisboa Central. Alameda Santo dos Capuchos. 1169-050 Lisboa, Portugal).
내가 병원을 약속장소로 잡았을 때, 얀은 조금 당황한 목소리였다.
“저거 보여요?”
“…….”
그리고 이건, 내가 선택한 이별하는 방법이다.
“베르나르두는 무척이나 좋은 녀석이에요. 카를로스의 아들이 백혈병을 앓게 된 이후로, 가끔 이렇게 병원을 찾아 헌혈하고 있어요. 자기는 그에 비하면 너무 편히 살았다면서요.”
“음, 그러니까.”
“아무래도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얀. 전 당신에게 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베르나르두가 제게 보여주고 있는 것들만큼은 아니에요.”
어제 오전, 얀 아담센이 독일의 한 언론사를 통해서 한 인터뷰 내용은 나와는 전혀 상의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얀은 어째서인지 내가 무조건 맨체스터 시티로의 이적을 결정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고, 난 이제부터 차분히 하나하나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아주 작은 매듭조차 남지 않도록.
“그럼, 먼저 간다?”
“응. 이따가 봐.”
“그래.”
걱정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던 베르나르두가 먼저 클럽하우스로 돌아가고, 난 어색한 모습으로 서 있던 얀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가요. 목적지는 가까우니까.”
“대체 어딜 가는 건데?”
“따라오면 알아요!”
앞서며 목소리를 높인 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병원 입구 바로 앞의 사우지(Saude) 박물관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으로 틀어 조금만 걸어가면, 모라에스가 즐겨 방문하는 젤라토를 파는 가게가 나타난다.
그는 이탈리아 이중국적자긴 하지만 겨우 2년 정도만 이탈리아에 있었다.
한데 그럼에도 모라에스는 마치 자신이 이탈리아 젤라토의 장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정통 젤라토 어쩌고 하며 이 가게를 극찬하곤 했다.
난 내 것과 얀의 것을 한꺼번에 구매해, 그에게 하나를 건넸다.
“이런! 내가 사면 되는데.”
“아뇨. 괜찮아요. 먼 길을 오셨으니, 이 정도는 대접해야죠.”
“음-! 맛있네.”
“그쵸? 저도 가끔 들르는 곳이에요.”
얀은 내 목적지가 이곳인 줄 알고 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두려고 했는데, 난 획 하고 몸을 돌려 가게를 나섰다.
계속 걸음을 옮겨 뒷골목의 느낌을 주는 거리를 내려가다 보면, 마르팀 무니즈 광장(Praca Martim Moniz)이란 곳이 나온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오늘의 목적지다.
“다 왔어요.”
“응? 여기?”
“네. 어서 타요.”
“어? 잠깐만!”
마르팀 무니즈 광장은 ‘CARREIRA No.28’, 그러니까 흔히 28번 트램이라고 알려진 교통수단의 종점으로도 알려져 있다.
1873년부터 도입된 이 트램(Tram)은 리스본의 전통적인 교통수단으로 사랑받아 왔고, 지금은 27개의 노선 중 5개만 남아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28번 트램은 12번 트램과 함께, 리스본을 찾는 관광객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녀석이다.
“읏-차. 앉아요. 웬일로 사람이 없는 편이라, 편하게 가겠네요.”
“…….”
“뭐 해요? 낡긴 했지만, 무너질 정돈 아니라고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긴 하지만, 얀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난 딱히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뒤에 트램이 출발하고, 맞은편에 앉은 모녀가 날 알아보곤 손을 흔들어왔다.
그래서 나도 손을 흔들어줬고, 이에 용기를 얻었는지 수줍게 다가온 여자아이가 사진을 찍어달라며 부탁을 해왔다.
“Claro!”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 난 어린 소녀를 곁에 앉힌 뒤에, 맞은편 어머니로 보이는 분의 휴대폰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찰칵-!
“Obrigado.”
“별말을.”
다가온 것만큼이나 수줍게 멀어진 소녀가 엄마에게 달려가 폭 안겨들고, 그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나는 트램 밖으로 스쳐 지나는 리스본의 풍경을 바라봤다.
이번이 나의 세 번째 28번 트램 탑승이었는데, 처음은 친구들과 함께였고 두 번째는 누나가 왔을 때 리스본을 소개해줄 겸 둘이서 시내를 돌아다녔을 때였다.
이 트램은 우리가 내려왔던 길옆 언덕을 지나, 그라사(Graca) 전망대를 시작으로 리스본의 주요 관광지를 돈다.
“어젠, 무척 많이 놀랐어요.”
“응? 아, 그거? …… 그거 말인데, 아무래도 오해가.”
“전 한 번도 그런 식으로 권리를 주장해 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
어제 오전 얀의 인터뷰가 독일의 언론지를 통해 알려진 뒤, 나나 클럽은 침착했던 반면 주변은 난리가 났었다.
포르투갈의 라디오와 인터넷 매체는 내가 클럽을 떠나는 걸 우려함과 동시에, 이적을 무기로 팀을 휘두르려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하지도 않았던 말들이 어디선가 생겨나 루머가 되었고, 덕분에 클럽의 일부 부서 사람들은 꽤 바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난, 사람들의 앞에서 다시 말해야만 할 거다.
당분간 팀을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그 진실성은 약할 것이다.
불과 얼마 전에 클럽을 사랑한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에이전시로부터 이적 혹은 재계약을 암시하는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난 신뢰를 잃었다.
나를 사랑해주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또 몇몇 동료들로부터.
“이곳 사람들은 정말 축구에 미쳐 있어요, 얀.”
“…….”
“그리고 고맙게도 절 특별한 존재로 바라봐주죠. 가끔은 저도 놀래요. 별것 아닌 내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삐이-!
“차우~”
“차우. 조심히 가렴.”
트램에서 내린 여자아이가 치마를 들며 우아한 인사를 하는 모습에, 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혼자서 혹은 가족들과 리스본을 돌아다닐 때마다, 나는 저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곤 했다.
물론 가끔 나쁜 기억을 받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건 스무 번 중 한 번이 채 될까 말까였다.
삐이-!
“이런! 조금 비켜줘야겠어요.”
웬일로 광장 앞에서 트램에 타는 사람이 많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 정차하자마자 관광객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아마, 시간이 그래서였던 것 같다.
어느새 트램 안은 관광객들로 가득해졌고, 오히려 관광객들 덕분에 나는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자리가 조금 좁아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날 쳐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필시 같은 관광객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난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디까지 말을 했죠? 아, 그렇지. 전 축구가 좋아요. 물론 여전히 돈도 많이 벌고 싶죠.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우선순위가 바뀌었어요. 제가 그걸 진즉에 말하지 못한 게 실수였나 봐요.”
“있지 말이야, 난…….”
계속해서 얀이 핑계를 대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난 갑자기 울컥해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얼마예요?”
“……뭐?”
“… 후우~. 그러니까, 맨시티가 당신의 회사에 얼마를 준다고 했는지를 묻는 거예요.”
축구계에 거대 에이전시와 에이전트가 생겨난 이후, 선수의 이적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것은 더는 비밀도 아닌 일이었다.
TPO가 선수의 권리를 지니고 있어 이적료의 일부를 나눠 갖는 것이라면, 에이전시나 에이전트에게 들어가는 수수료는 전적으로 별개의 것이 된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클럽에 더 부담스럽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도 결국 돈이 많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가 보다.
내 질문에 당황했는지, 얀은 한참 어물거리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동안, 트램은 전망대를 지나 대성당으로 향했다.
리스본 대성당 앞을 지나는 건 아니고 코메르시우 광장에 멈춰 서는 것인데, 어차피 성당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역 이름도 리스본 대성당이다.
삐이-
꽤 많은 사람이 성당에서 내리고 또 그 절반 정도 되는 사람들이 탑승한 트램은, 여전한 소음 속에서 리스본의 시내를 달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
“있지.”
“아까부터 당신은 자꾸 저한테 있지 혹은 그게 아니라고만 하고 있네요. 왜 그래요? 혹시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요? 그게 아니라면, 그냥 말해봐요. 우린 파트너라면서요. 당신이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저도 기꺼이 기뻐해 주겠어요.”
“…….”
이제는 얀도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절대 좋은 이유에서, 내가 이런 방식의 만남을 택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참 신기하죠. 분명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땐, 제가 좀 더 돈을 밝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어쩌면 전 부자가 될 운명이 아닐 수도 있겠어요. 전 고작 여기에도 많은 만족을 느끼는데, 당신은 아니었나 보네요.”
“이봐. 다온. 전부 오해야.”
“아뇨, 얀. 이건 오해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몇 번이나 그 이야기를 했죠? 그러니까, 맨시티가 끼어들기 전에 말이에요.”
기억이 옳다면, 올림픽이 끝난 이후부터 이적과 관련된 내용으로 통화를 자주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러다 11월이 되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왔고, 캄노우 경기가 끝난 뒤엔 실제화된 계약과 관련한 내용을 꽤 진지하게 주고받았다.
분명 그때까지만 해도, 에이전시는 내 의견을 존중해줬다.
이적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건 좋지만, 그렇게 되면 가족들은 또 원치 않는 이사와 적응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난 그게 가장 싫었고, 에이전시는 내 말을 이해하는 듯했다.
하지만, 맨시티가 갑자기 튀어나오게 되면서 얀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보내준 제안서를 다 읽어 봤어요. 굉장하긴 하더라고요.”
얀이 아직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난 계속해서 하고 싶었던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오전 한창 인터뷰로 시끄러워진 뒤, 리스본으로 돌아온 난 방에 틀어박혀 전에 얀이 보내주었던 맨체스터 시티의 제안서를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그들은 내게 맨체스터에서 머물 초호화 아파트를 무상으로 임대 해주기로 했고, 3억 원이나 되는 주급과 연봉의 70% 수준에 달하는 계약금 역시도 제안했다.
외에도 다양한 부대조건을 보고 있으면, 귀족처럼 지낼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제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왜지?”
“왜냐고요? 간단해요. 지금 제가 받는 연봉이, 정확히 제 수준인 것 같거든요. 여전히 저는 전용기를 원해요. 평생 남들이 만져볼 수 없는 많은 돈도 원하죠. 하지만 그거 알아요? 그렇다고 절대 그걸 공짜로 얻고 싶진 않아요.”
얀은 내 말에, 내가 얻게 될 것은 공짜가 아니라고 말했다.
내게 매겨진 이적료가 그걸 증명하고 있으며, 이미 현재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풀백이라고 했다.
“아니요, 얀. 그 말은 일부만 옳아요.”
“일부만이라고?”
“네. 이적료가 많은 걸 증명하긴 하죠. 하지만, 세계 최고? 대체 뭘 보고요? 전 올해 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했어요. 그것도 조별예선에서요.”
“제발, 그건 상대가 메시여서 그런 거였잖아.”
“네, 그렇죠. 상대가 메시였죠. 그런데 그거 알아요? 세계 최고라는 말은 그런 선수에게나 붙일 수 있다는 거.”
처음 내가 맨시티의 제안을 보며 느꼈던 거부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건 결코 내가 성실하거나 올발라서도 아니고, 앞뒤 꽉 막힌 바보여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오기다.
난 아직 그만큼의 값어치를 가진 선수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제가 그런 돈을 받게 된다면, 그건 저 자신이 인정하고 난 다음의 일인 것 같아요.”
“제발, 다온. 세상의 누구도 그런 식을 삶을 살아가진 않아. 지름길이 있다면 그걸 걷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그런데?
“……모르겠네요. 그냥, 이건 원치 않아요.”
돈이라는 것에 압도되고 있는 느낌이라서 싫었다.
맨시티가 보낸 제안서를 모두 읽고 났을 땐, 큰돈이 다가왔다는 기쁨보단 압도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너무 큰 돈이라,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만약 내가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였다면 달랐을까?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맨시티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면, 더는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보 같아 보인다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얀. 이게 바로 저예요. 예전에는 몰랐던 저죠.”
결국은 이번에 내가 깨닫게 된 건,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게 된 지금의 내겐, 큰돈을 버는 기쁨보다 나 자신이 정체되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축구선수로 성장이 멈춰버리면 곧 사람들은 나의 바닥을 들여다볼 것이고, 결국 예전처럼 그 바닥을 내 약점으로 만들어 괴롭혀올 것만 같았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당장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아닌 축구선수로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 되었다.
FC 노르셸란과 SL 벤피카를 거친 지금, 축구만 잘하면 얼마든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맨시티의 제안도 같은 범주에서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을 하겠지만, 세계 15위?
난 세계 15위권에 있는 선수들과 대결해본 경험조차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들보다 나은 선수인지를 확신할 수조차 없는데, 그만한 돈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봐, 다온. 어차피 지금 당장 이적하는 게 아니잖아. 여름의 일이고, 그냥 넌 검토만 하는 거야.”
“그래요? 그런데 왜 저는 검토가 아니라, 당신이 이적을 강제로 추진하려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이런! 그건 오해래도.”
얀은 어떻게든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것 같았지만, 오해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로선 그럴 마음이 없다.
어느새, 트램은 프라제리스 묘지(Cemiterio dos Prazeres)에 거의 도착한 상태였다.
이곳은 28번 트램의 종점이다.
삐이-
중간중간 긴 침묵이 이어졌던 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종점에 도착한 나는 미련 없이 트램에서 내렸다.
어차피, 이 대화를 끝낼 수 없다는 걸 안다.
얀은 절대, 맨시티가 회사에 제안한 금액을 말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도 자신이 탐욕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뭐, 그걸 듣는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진 않겠지만 말이다.
난 이미 마음을 굳게 먹고 이 자리에 왔다.
종점에서 내려선 뒤, 나는 묘지 옆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반면에 얀은, 내려선 위치에 멀뚱히 서 있다.
그래서 난 뒤를 돌아보았고, 아직 중천에 떠올라 있는 태양 빛을 한 손으로 가리며 이렇게 소리쳤다.
“우리의 계약은 끝이에요, 얀!! 전 조항을 발동시킬 거고, 내일 곧바로 인터뷰하면서 에이전시를 해고했다고 말할 거예요!!”
“…….”
겨울치곤 햇빛이 너무 따가워, 얀의 표정이 어떤지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도, 나처럼 무척 슬플까?
글쎄, 그랬으면 좋겠다.
얀은 분명 나와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사람이었고, 이번 일이 있었긴 하지만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저, 돈이 문제였던 거다.
회사의 CEO로서, 분명 그에겐 맨체스터 시티의 제안은 거절하기 힘든 일이었을 거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난 더는 UCN과 함께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하고 있다.
이미 한 번 깨어져 버린 신뢰는, 그 무엇으로도 수습할 수 없다고 믿는 나다.
설령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접착제로 깨진 부분을 이어 붙인다고 해도, 분명 어딘가에선 틈이 벌어져 안에 든 내용물이 줄줄 흘러내릴 거다.
어쩌면 난, 너무 어렸을 때 그런 것을 알아버린 것일 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라고 믿었던 이들마저도, 우리 가족이 약해지자 거리낌 없이 고통을 주려고 했었다.
탁-!
“후우~”
차에 올라타, 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나는, 베르나르두가 날 데리러 오기 전에 미리 이곳에 주차를 해두었다.
이별 때문에 오는 상실삼은, 늘 견디기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향하면서 생각을 한 건, 확실히 축구가 내 삶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거였다.
매번 큰 대회 혹은 큰 시합이 하나씩 있고 난 뒤면, 어김없이 삶의 커다란 것 중 하나가 요동치다 뒤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처음 연령별 대표팀에 뽑혀 시합에 뛴 직후에 덴마크로 향했고, 스포르팅 CP와 유로파를 치르면서 SL 벤피카의 주목을 받았다.
올림픽은 내 삶의 기준을 크게 바꿔놓았고, FC 바르셀로나 경기는 오펠리아를, 그리고 FC 포르투는.
‘이번엔 에이전시네.’
가족과 동료들을 빼면 그간 가장 가깝게 지냈던 에이전시를 떠나보내게 했다.
이것은 단순한 내 치기일까.
아니면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부디, 후자이면 좋겠는데 말이다.
UCN과의 결별이 앞으로의 내게 좋은 선택이 되길 바라며, 난 계속 차를 몰아 해변이 보이는 도로로 들어섰다.
이제 리스본의 태양은 아까보다 조금 더 내 눈앞에 가까워져 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나는, 좀 더 도로를 제대로 보기 위해 대시보드에 올려둔 선글라스를 뒤집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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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온, “에이전시와 결별. 당분간 SL 벤피카를 떠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 – A Bola/2013.01.29.(오전)] [에이전시를 해고하면서까지 보여준 김다온의 충성심에, 벤피카의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 Jornal de Noticias/2013.01.29.(오전)] [김다온, “새로운 에이전시를 당연히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즌 후의 일이 될 수도 있다. – A Bola/2013.01.29.(오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GestiFute의 CEO. 조르제 멘데스, “김다온과 일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는 우리 에이전시에 어울리는 환상적인 선수.” – Goal.com(INT)/2013.01.29.(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