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8)
18화
2010년 8월 3일. 셸란, 덴마크. 스네르바이 7, 3500 배얼래쇠.
#오전 09 : 13
“다녀올게요!”
“얘-! 형 안 기다리고?”
“오늘은 혼자서 간다고 했어요!”
오늘도 떠들썩한 하루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우리 가족들은 주위에서 가장 시끄러운 집안이었는데, 그게 꼭 나쁜 표현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웃들은 우리더러 사이좋은 가족이라고 했다.
“여어- 꼬마! 좋은 아침이구나!”
“좋은 아침이에요!”
“그나저나, 새로운 친구가 온 모양이던데?”
“네?”
“아니 왜, 키가 훤칠한 사람 있잖니.”
집 근처에서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는 스티 안데르센(Stig Anderesen)씨가 지금, 어제 새로운 동양인을 보았노라며 내게 말을 해오고 있었다.
새로운 동양인?
그건 금시초문인데.
“어차피 중국인이거나 한 거 아니에요?”
“아니야. 영어로 물었는데, 남한이라고 대답하더구나. 남한. 맞지? 네 나라말이다.”
“그건 맞는데······ 이크! 저 늦어요! 나중에 다시 말해요!”
“아- 잠깐!”
“네?”
잠깐 가게 안으로 들어섰던 안데르센 씨가 갓 구운 빵 하나를 내게 던졌다.
그리고 그것을 냉큼 받아든, 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해요-!”
“얼마든지! 또 언제 경기에서 뛰는 거냐?!”
“저도 몰라요!”
어제는 홀로 클럽하우스에 남아 다양한 관리를 받았다.
A팀과 B팀 모두 셸란을 떠났는데, 난 양쪽 어디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더 걸었을까?
이번엔 채소 가게의 레나(Lena) 아줌마가 날 붙잡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아주머니도 같은 말씀을 했다.
“그 남자, 제법 귀엽던데? 물론, 우리 꼬맹이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야.”
“흐-음. 혹시 또 특징이 있었나요?”
“글쎄- 미안하지만, 난 동양인의 외모를 구분하는 것에 무척 서툴러서. 아, 그러고 보니.”
“······?”
“상의의 왼쪽 가슴 부근에 파란색 바탕에 그려진 흰색 문양 같은 게 있었어. 그리고 흰색으로 뭐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게 뭐였는지는······.”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그려진 문양.
순간 떠오르는 건, 단 하나였다.
“저, 아줌마?”
“응?”
“혹시 그 모양, 호랑이 같은 건 아니었어요?”
“오-! 아, 맞아! 호랑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네 발 달린 동물처럼 보였어! 꼬리도 있었던 것 같고.”
“······.”
안데르센 씨는 한국에서 왔다는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레나 아줌마 역시 호랑이 심벌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봤다고 했다.
혹시 몇 명이었냐고 묻자, 레나 아줌마는 혼자였으며 얼굴에 패인 것 같은 상처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 설마?”
“응? 왜 그러니?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뇨. 그건 아니고. 아무튼, 감사해요!”
“얘! 사과 하나 받아 가! 얘!”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은 단 한 사람이다.
그런데 설마, 그럴 리가.
멀리 파룸파크가 보이기 시작하고, 난 모든 것이 우연이라 여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쩌다 우연히 한국의 관광객이 우연히 대표팀 복장을 하고, 우연히 얼굴이 닮은 것뿐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가 있나?
내가 생각해도 조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
2010년 8월 4일. 셸란, 덴마크. 파룸, 파룸 파크 2. FC 노르셸란 클럽하우스. 제1 연습장.
#오전 11 : 10
정체불명의 동양인이 셸란을 배회한다는 소문은 오늘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의 포털사이트를 뒤지고, 친구들에게 전화해 뭐 아는 것은 없는지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내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마리는커녕, 실마리의 ㅅ도 보이지 않는다.
“뒤!”
“이크!”
내일 있을 스포르팅 CP와의 유로파 원정 경기를 앞두고, 팀은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는 중이다.
최종 컨디션을 점검할 겸 볼 빼앗기 미니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난 지금 아깝게 커트에 실패했다.
“아, 젠장! 뺏을 수 있었는데.”
“이봐, 꼬마. 예고도 없이 그러기 있어?”
“음료수가 걸렸잖아요. 저 진지하게 하고 있어요.”
“그래 보이네.”
그래서 난 일단 정체불명의 동양인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있는 상태다.
만약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그분이라면, 어떠한 식으로든 사실을 전해들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제부터 합류한 1군 훈련에 충실하고 있다. 감독님은 내가, 원정에 동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시합에 뛰지 못한다고 해도, 분명 배우는 건 있을 거다.]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었던 일이라, 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었다.
삑-!
“그만! 여기까지! 모두 씻고 다 같이 점심을 먹은 다음, 곧바로 포르투갈로 출발할 테니 그리 알도록!”
오늘, 우리는 임대한 전용기를 타고 포르투갈로 떠난다.
작년에는 홈경기만 교체로 몇 번 출전했었기 때문에, 전용기를 타보는 건 머리털 나고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B팀의 원정 때는 주로 버스를 이용하거나, 부득이하게 비행기를 타야 하면 이코노미석을 탔다.
우리 노르셸란의 재정사정은 덴마크 리그를 소화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1년 내내 전용기를 둘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시즌의 특정한 요일만을 골라 전용기를 임대하고 있다. 우리 말고도 어떤 노부부가 같은 전용기를 쓴다고 들었다.
분명, 꽤나 돈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전용기를 임대하겠지.
전용기를 임대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벌어야 할까?
***
“응? 이거, 생각보다 별로 안 비싸.”
난 전용기에 올라 좌석에 앉았다.
감독님은 배려차원에서, 주장 스톡홀름의 옆자리를 내게 배정했다.
그리고 지금의 이 대화는 전용기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스톡홀름의 목에 걸린 물건에 관한 것이다.
“정말요?”
“응. 뭐하면 하나 사줘?”
“······!”
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건, 스톡홀름이 헤드폰을 하나 사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평소 그가 출퇴근 때 차고 다니던 헤드폰이 늘 부러웠었는데, 가격이 비쌀 것 같아 물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었다.
딱 봐도 몇 백 크로네는 너끈히 넘을 것 같은 물건이었던지라, 사봤자 과소비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비싼 물건을 선뜻 사주겠다 말해오고 있다.
역시 주장!
뛸 듯이 기뻐하는 날 보며, 스톡홀름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인다.
“단, 조건이 있어.”
“조건요? 뭔데요? 저 돈 없어요.”
“뭐? 하핫-! 돈이 아니야. 우리가 내일 스포르팅이랑 다시 또 경기를 치르잖아. 그 경기에서 네가 좋은 활약을 보인다면, 내가 기꺼이 선물해줄게.”
“······?”
스톡홀름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난 팀과 통행만 할 뿐, 주전으로 출전하는 건 킬덴토프다.
이미 내일 경기에서 뛸 베스트 일레븐이 정해졌고, 우리는 그 명단을 전달받았다.
아직 좀 더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했었는지, 감독님은 명단에 내 이름을 집어넣지 않았다.
선발은 물론, 교체에도 말이다.
하지만 스톡홀름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리고 그의 턱이 향한 방향엔, 입가를 쓸어내리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킬덴토프가 있었다.
“아침부터 햄스트링이 조금 뻑뻑하다 하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그게 좀 올라온 모양인데?”
“엥?”
“헨릭이 뛸 수 없다면, 당연히 네가 명단에 올라와야 하지 않을까? 선발로 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모르라면 널 명단에 분명히 올리려고 할 거야.”
무언가에 홀린 듯 킬덴토프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던 나.
잠시 뒤, 정말로 감독님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곤 어깨를 두드리며.
“내일 뛸 준비를 하자꾸나. 교체 명단 다섯 번째야.”
“······엥?”
저기요, 감독님.
뭔가 요즘 자주 즉흥적으로 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그렇지만 이는, 내 머릿속에서만 울려 퍼지다 끝나버린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전용기 안.
난 느닷없는 명단포함을 통보받았다.
***
리스본, 포르투갈. 말 애비뉴. 크라베이로 로페스 390, 래디슨 블루 호텔 리스본(Raddison Blu Hote, Lisbon. Av. Mal. Craveiro Lopes 390, Lisboa, Portugal).
#오후 09 : 22
찰칵-!
찰칵-!
오후 다섯 시쯤, 포르투갈에 도착해 곧바로 호텔로 이동했다. 그리곤 사전준비 미팅을 진행한 뒤, 다 함께 호텔 내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그리고 지금은 개인적인 시간이 주어졌는데, 난 호텔의 가장 꼭대기에서 포르투갈의 야경을 찍고 있었다.
내일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보여줄 생각이다.
이 좋은 걸 나만 볼 순 없지.
찰칵-!
아까 사전준비 미팅을 진행하기 전, 감독님은 내게 경기에 출전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저, 부득이한 경우를 대비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거라고 말이다.
이는 내 자신감을 빼앗거나 실망감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8월 8일 브뢴비와의 홈경기에서 로테이션 출전을 하게 될 거라던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차원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난 곧바로 이해를 했다.
유로파에 출전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직은 한 사람 몫을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히 교체카드 하나가 쓰이는 것도 싫다.
분했지만, 내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지금은 이것을 매우 잘 받아들이고 있다.
서두른다고 해서, 꼭 빨리 가는 건 아니니까.
찰칵-!
[······오-! 이거 좀 멋진 듯?]괜찮은 사진 하나를 건진 것 같아, 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튀어나온 것은 한국어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부분은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난 혼자가 아니었다.
[이게, 네가 긴장을 푸는 방법이니?] [아뇨. 그냥 엄마한테 보여줄 사진을······ 으잉?]화들짝 놀란 내가 뒤를 돌아보자, 어두침침한 곳으로부터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점차 어둠이 사라지고, 발끝부터 보이기 시작한 낯선 이는 다름 아닌.
[어?]차범근 선수와 박지성 선수의 사이, 대한민국엔 강찬일이라는 걸출한 수비수가 있었다.
8,90년 대 아시아를 풍미했던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빼어난 기량을 지녔음에도, 동양인이란 편견에 부딪혀 유럽을 경험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일본 J-리그의 전설 중 하나가 되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4강으로 견인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있는 거다.
[실은 좀 더 일찍 널 보려고 했는데, 1일 경기에서는 뛰지 않아서 말이야.] [아- 그건 조금 사정이 있어서······.] [그래. 지금은 나도 알아. 그런데? 내일은 뛰는 거니?] [······일단 교체 명단에는 들었어요.] [그거 다행이네. 나도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거든. 아직 아무것도 하는 게 없으면서, 세금만 축내는 꼴이 되는 건 정말로 싫은 일이니까.]문득 든 생각 하나.
진즉에 했어야 할 생각이라고 해두자.
아무튼.
어째서 우린 이렇게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고 있는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몸을 한 번 부르르 떤 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니까, 현재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 자리를 맡고 계신 강찬일 감독님에게.
[어쩐 일이냐고? 그야 당연히, 널 보러 왔지] [저를요? 왜요?]이게 얼마나 멍청한 질문인지는 나중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너무나 경황이 없다 보니, 사고라는 게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껄껄하고 웃어 보인 감독님이 좀 더 앞으로 다가오셨다.
만약 뒤에 공간이 있었다면, 난 움찔하며 물러섰을 거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반사작용 같은 거다.
[다온아. 넌 꿈이 뭐니?] [네?]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하지만 감독님은 무척 진지했다.
[나한테는 꿈이 있단다. 그리고 그 꿈은 무척이나 이루기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마음은 또 없단다. 그래서 말인데······.] [······?] [내 꿈을 이루려면 너 같은 좋은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 계속해서 유럽 무대에서 활약해 줘야만 해.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한국에는 군대라는 게 있지.] [어······ 저, 그래서 귀화하려고 하는데요?] [뭐······?]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인지, 감독님은 무척이나 당황하고 계셨다.
하지만 난 진심이다.
나는 축구선수로서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또 그걸로 가족들과 함께 떵떵거리면서 살고 싶다.
그런데 군대에 가게 되면, 돈을 벌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해야만 한다.
애국심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라지만, 먹고사는 게 빡빡하고 또 그것 때문에 자존심은 사라지고 오기만 남게 되다 보니 애국심이라는 게 밥 먹여 주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난 어떤 나라로든 귀화할 생각이었다.
[자, 잠깐. 먹고 살기 힘들었다는 이유로 국적을 포기해?] [네. 그런데요?]황당한 얼굴로 날 쳐다보는 감독님에게, 가난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면 아무 말 하지 마시라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단, 난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도로를 질주하는 스포츠카의 굉음이 커지다가 그것이 다시 멀어질 때쯤, 정신을 차린 감독님이 성큼성큼 다가와 내 어깨를 붙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눈빛을 보니, 금방 뒤통수를 맞은 분 같다.
그거······.
내가 때린 건가?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 다온아? 내 말 잘 들으렴. 너에겐 군대를 면제받을 많은 기회가 있어.] [그런가요?] [물론. 지금만 해도······ 아니. 내 다 말하마. 내가 여기 이렇게 있는 건, 널 내후년 올림픽 대표팀에 뽑고 싶어서야.] [······네?] [일단은 메달이 목표고, 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아니, 확신하고 있다고 말해두지.]다급하게 말을 이어가는 감독님은 내게, 다음번 올림픽 대표팀 소집을 약속하셨다.
또 설령 올림픽 메달에 실패한다고 해도, 앞으로도 쭉 기회가 있으니 성급한 결정은 보류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감독님께서는.
[월드컵 우승이라······]잘 생각해보라며 돌아선 감독님이 떠나고 난 자리.
혼자가 된 나는 낮은 벽에 양팔을 올려둔 채, 멍하니 리스본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강찬일 감독님의 꿈이, 무척이나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가의 말
특정한 실존 인물을 연상케 하는 다른 이름의 등장인물의 경우.
현실성이 조금 반영됐지만 사실상 창작 캐릭터이므로, 순수한 창작 캐릭터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