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81)
180화
대한민국과 크로아티아의 평가전 경기 양상은 후반전에 훨씬 더 일방적이었다.
후반 6분에 나온 김창수의 뼈아픈 실책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마지막 순간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는 호르헤 삼파올리다.
‘이런. 여기까지인가?’
삑-!! 삐익-!! 삐이익-!!
.
.
·경기종료
대한민국 1 : 3 크로아티아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호르헤 삼파올리는 몸을 돌려 니코 코바치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곤 온화한 표정과 함께, 먼저 악수를 청했다.
“한 수 배웠군요.”
“저희도요. 좋은 경기였습니다.”
“월드컵 예선의 선전을 기원하죠.”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그라운드를 빠져나와 라커룸으로 향하는 삼파올리의 머릿속엔, 승부를 기울게 만든 결정적인 실수 장면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만약 그것만 아니었다면, 조금 더 제대로 된 대표팀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보완해야 할 게 더 많아졌어.’
부임 후 처음으로 완전체를 가동한 삼파올리는 1년 조금 남짓 남은 월드컵까지,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뛰는 일부 선수들의 기량은 아주 훌륭했지만, 일부는 그렇지 못했다.
가장 뼈아팠던 것은 120%의 기량을 쏟아낸 것으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피치 위에서의 모습은 정작 평범한 수준에 그쳤던 이청용의 플레이였다.
2011년 7월 30일, 프리시즌 경기에서 톰 밀러(Tom Miller)에게 살인적인 태클을 당하며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부상 당시 고통에 의한 쇼크로 산소 호흡기까지 써야 했을 정도로, 이청용의 부상은 무척 심각한 것이었다.
어쩌면 선수 경력 전체를 바꿔버릴 수도 있는 부상이었기에, 긴 재활 끝에 돌아와 충분한 시간을 보낸 그의 현재 기량은 대한민국 대표팀에게도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니크한 스타일의 선수였기에, 다양성을 더하는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실제 본 이청용은 부상 전과는 전혀 다른 선수였다.
그는 피치 위에서, 몇 번이나 트라우마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만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외에도, 유럽에서 뛰는 공격수인 석현준과 지동원의 기량 역시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후반전 교체로 투입된 김신욱이 훨씬 더 위협적이었고, 구자철은 투지는 좋았으나 본인의 정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여전히 고민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수확한 것은 분명히 있었고, 특히 곽태휘와 이정수로 구성된 센터백 조합이 보여준 경기력은 삼파올리가 가장 흡족했던 것 중 하나였다.
기성용과 김보경의 기량 역시 만족스러웠고, 마지막 3분 동안 가장 번뜩였던 이승기도 좋았다.
그래서.
[좋은 시합이었다!]“…….”
비록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삼파올리는 경기 내내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애초부터 열세가 예상되었던 경기였기에, 지금 당장 패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옳지 못했다.
오늘 경기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개개인에 대한 평가는, 나흘 뒤 선수 개인의 이메일로 도착하게 될 예정이다.
[힘든 일정이었다. 또 힘든 경기였지. 피치 위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월드컵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종류의 시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기가 죽진 않았으면 좋겠군.]통역이 이뤄지는 동안, 선수 개개인의 표정과 눈빛을 살핀 삼파올리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긴말은 하지 않겠다. 가장 중요한 건 너희가 얼마나 건강히 또 완벽한 상태에서 피치에 서느냐다! 그러니, 모두 다치지 말도록. 그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다음 3월은 월드컵 예선이니, 그땐 다 함께 다른 결과를 만들었으면 한다. 이상.]대화를 끝낸 삼파올리는 선수들을 라커룸의 한가운데로 모았고,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끝마친 선수들은 자리로 돌아가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은 휴대폰을 들었고, 일부는 몸을 씻으러 향했다.
그리고.
[다온! 이리 오게.]삼파올리는 김다온을 부르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함께 감독실로 들어서는 두 사람.
“오늘은 정말 잘했어. 너무 그렇게 침울해할 것 없네.”
“……네.”
호르헤 삼파올리는 누구보다 침울해하고 있는 김다온을 불러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경기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 이후 김다온의 표정은 평소와 다른 것이 없어 보였지만, 눈에 띄게 줄어든 말과 짧아진 말투에서 그의 감정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엄청난 승부욕이로군. 우리에겐 이런 게 필요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김다온을 보며, 삼파올리는 후반전 내내 생각해온 것을 이야기했다.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딱 한 가지 있네. 그리고 그걸 반드시 지켜줬으면 하는군. 그러겠나?”
“네? 아, 네.”
“좋아.”
삼파올리가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은 것도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좋은 치안과 환경에 만족했고, 연인 역시도 서울에서의 삶에 큰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축구에 대해서는 충분히 만족할 수 없었는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대한민국 축구 선수에게 가장 크게 모자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계속 이대로만 해주게. 이게 내 부탁이야.”
“?”
“자네의 그 집착과 승부욕은 이 팀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요소야. 어떤 의미에서는 자네의 순수 기량보다 더 대표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
호르헤 삼파올리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강점이 ‘정신력’이라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볼 때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들은 오히려 그들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기본기 부분에서 조금 더 괜찮았고, 도전정신과 승부욕은 턱없이 모자랐다.
한국 선수들은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경향이 있고, 그건 피치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바깥에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거나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난 최선을 다했어’라며 합리화하려는 성향 역시도 도드라졌다.
삼파올리는 그것을 연인에게 들었던 대로, ‘한국의 교육 방식’에서 원안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분명했다.
한국 선수들의 대부분은, 쉽게 만족하는 성향이 있다.
그들은 도전보단, 적당한 성공에 안주하곤 한다.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몰아붙여 본 적이 없는 이가, 어떻게 본인의 한계치를 끌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늘 안타까웠다.
2012년 한해 K-리그와 아시아권의 리그를 관찰하며 선택한 우수해 보였던 선수들도, 대표팀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어김없이 실망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들은 ‘열심히’보다는 ‘적당히’ 달리는 요령에 더욱 익숙해 보였고, 이는 전력 스프린트를 강조하는 삼파올리에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였다.
후반 6분에 있었던 김창수의 실수 역시도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지 않았던 데에서 온 것이었으며, 추가 실점 장면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엿보였다.
그러나 단 두 사람.
오늘 선발명단에 올라 출전한 선수들 중 오직 기성용과 여기의 이 김다온만이, 피치 위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특히 김다온이 보여준 승리에 대한 집착은 스코어가 1:3으로 바뀐 이후에 더욱 잘 드러났다.
김다온은 후반 30분이 지난 시점이었음에도, 마치 경기가 막 시작되기라도 한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미 볼-데드(Ball-Dead)가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스프린트를 멈추지 않았다.
삼파올리는 선수 개개인의 평가를 정리하며, 기성용과 김다온을 뺀 나머지 전원에게 김다온의 플레이 영상 편집본을 따로 보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각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것을 본 소감에 대해서도 물어보려고 했다.
지금까지는 선수들에게 보낸 자료에 관한 내용을 묻지 않았으나, 완전체로 첫 번째 경기를 치른 지금부터는 매번 피드백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팀에는 더 많은 잠재력이 있네. 하지만 그걸 선수들 본인이 억누르고 있어. 난 자네가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네. 본보기 말이야.”
“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었어요.”
“그렇군. 어서 돌아갈 준비를 하게. 괜히 시간을 빼앗았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김다온이 감독실을 나서고, 그와 동시에 안으로 들어선 코치들을 보며, 삼파올리는 다음 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타르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까진 정확히 50일이 남았는데, 그동안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았다.
[돌아가면 무척 바쁠 걸세.]표정을 굳히고 있는 코치들과 함께, 삼파올리는 오늘 경기를 통해 얻은 감상을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있었다.
***
크로아티아와의 경기는 패배로 끝났고, 이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경기장의 앞에서 형들과 작별하고 있다.
“다음에 보자. 연락하고.”
“네. 톡 드릴게요.”
“그래. 고생했다.”
후반 24분 라키티치에게 발등을 밟힌 성용이 형은 현재, 오른쪽 발이 퉁퉁 부어오른 상태다.
지금도 보면 슬리퍼를 완전히 신지 못하고 있는데, 일단 오늘은 따로 호텔에서 보내고 내일 스완지에 합류할 예정이다.
아, 물론 호텔에서 혼자 머무는 건 아닐 것이다.
“야. 비행기 늦겠다.”
“어, 맞네? 얼른 가요, 형.”
“야-! 너만 뛰냐? 같이 가-!”
경기장 앞에서 부리나케 달린 나는, 스태프들이 미리 잡아놓은 택시에 올라탔다.
런던에 올 때는 혼자였지만, 가는 길은 일행이 있다.
“형은 오늘 어디에서 자려고요?”
“가서 그냥 대충 방 하나 잡지, 뭐.”
“에-이. 뭘 그렇게 해요. 우리 집에 가면 되지.”
“그래도 되냐?”
“아- 당근이죠.”
겨울 이적 시장의 마지막 날이던 지난달 31일. 현준이 형은 오랫동안 뛴 네덜란드를 떠나, 나와 같은 포르투갈 리그에 합류하게 됐다.
CS 마리티무에서 140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현준이 형을 영입한 것인데, 이적 절차를 마무리하느라 대표팀 합류가 남들보다 조금 늦었었다.
그래서일까?
컨디션이 딱히 좋아보이진 않았다.
경기장에서 공항으로 가는 동안, 현준이 형은 내게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와 리그에 대한 이것저것을 물었고, 난 그 모든 것에 성심성의껏 답을 했다.
현준이 형은 어릴 때부터 해외 생활을 꾸준히 혼자서 해왔는데, 지금도 돈이나 다른 걸 스스로 관리한다고 한다.
그리고.
“야, 한국 가면 같이 클럽 한 번 가자?”
“네?”
“나 아는 형이 강남 클럽에서 일하거든. 너랑 가면 여자애들 좀 꼬이겠는데?”
현준이 형은 조금 노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난, 단박에 선을 그어버렸다.
“에이, 뭔 소리예요. 축구 해야지.”
“뭐?”
“아니, 자꾸 그렇게 오프시즌마다 운동은 안 하고 놀러 다니니까 그렇게 자주 다치는 거 아닙니까~”
“어쭈, 인마가.”
현준이 형에 손을 뻗어 내 여기저기를 두드려오기 시작했지만, 낄낄거리면서 그것을 받아넘긴 나는 한국에 가더라도 클럽 같은 곳을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오히려 나는 이번 여름에도, 권준 형의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조금 더 해볼 생각이다.
작년 여름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기술들이 실제 경기에서 쏠쏠히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여름에도 월드컵 예선이 있고, 7월이 되기 전에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갈 생각인지라, 벌써 시간이 빠듯하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현준이 형은 이런 내가 재미없는 삶을 산다고 뭐라 했지만, 클럽이야 안 가면 그만이고 또 나이 먹어서 가도 되는데 왜 굳이 지금 갈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물론 여기엔, 덴마크와 포르투갈 클럽에서 본 풍경이 너무 충격적이라 부정적인 인식이 깔린 탓일 수도 있다.
내게 클럽은 조금 위험한 곳이란 인식이 있다.
이내 택시는 공항에 도착했고, 계산을 마치며 서둘러 내린 우리는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챙겨 허겁지겁 게이트를 향해 달렸다.
이 비행기가 오늘 포르투갈로 향하는 마지막 편이기 때문에, 만약 이걸 놓친다면 다시 대표팀이 묵는 숙소로 돌아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천만다행히도, 아직 게이트는 닫히지 않았다.
“세이-프! 후우-”
“하아- 죽겠다.”
“에이, 엄살은. 가요, 형.”
“야. 너 지금 반말했지? 김다온. 야!”
하여간, 현준이 형은 은근 까탈스러운 구석이 있다.
또 말한 것처럼 노는 것에도 관심이 무척 많은데, 가족들 없이 워낙 혼자 오래 있어 외로움을 타기 때문일 것이다.
노는 거야 아무래도 좋지만, 축구에 방해되면 안 될 건데.
“에-이. 내 코가 석 잔데 무슨.”
“뭐? 뭐라고 했어?”
“제 코가 석 자라고요.”
“?? 왜 갑자기?”
“아무것도 아니에요.”
혼잣말을 대충 둘러대고 마침내 좌석에 앉게 된 나.
난 형에게, 조금 자겠다고 말을 했다.
“어? 어어, 그래. 그렇게 해.”
다행히도 현준이 형은 더는 날 귀찮게 하지 않았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창밖을 바라본 나는 이번 크로아티아와의 경기를 통해 얻은 숙제를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었다.
대표팀에서 한 번 뛰어보니,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잘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척 좋았어.’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태극기가 달려있었던 가슴팍에 손을 가져가며, 난 팬들의 함성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대~한민국!!”}
짜-작! 짝! 짝! 짝!
{“대~한민국!!”}
다음엔, 그걸 좀 더 크고 선명하게 들어보고 싶은데 말이다.
비행기는 곧 이륙을 준비했고, 난 이제 진짜 눈을 감았다.
내일부턴, 다시 또 바쁜 하루의 시작일 테니까.
생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것에 대한 소감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해 보인다.
***
2013년 2월 6일.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교육센터. SL 벤피카 클럽하우스.
오늘도 어김없이, 에두 크루즈는 오전 일찍 클럽하우스를 찾았다.
시즌 중 그의 일과 대부분은 이곳 클럽하우스에서 시작되어, 점심까지 해결한 뒤에는 다시 경기장 내 프런트로 돌아가 잔여 업무를 처리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평범한 일상이 오늘따라 유독 더 기다려졌던 건, 나시오날전 무승부 이후 다시 침체에 빠진 팀 분위기를 반전시킬 이가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선 그는, 가장 먼저 제수스의 사무실 앞에 섰다.
똑똑똑-
“들어가도 되나?”
“얼마든지.”
열려있던 문을 두드렸던 에두 크루즈가 제수스의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어떤가?”
“활기차군.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좋아, 좋아. 아주 좋군. 우리가 기대하던 바로 그대로야. 그렇지 않나?”
“훗. 19살에게 너무 많은 걸 의지하는군.”
“평범한 19살은 아니지.”
“응?”
갑자기 일어나는 에두의 모습이 의아했던 제수스는, 입구로 걸어가 문을 닫고 돌아오는 친구를 바라봤다.
“이걸 좀 보게나.”
“…….”
에두 크루즈가 휴대폰을 하나 내밀었고, 목에 걸어둔 안경을 뒤집어쓴 제수스는 화면에 시선을 두었다.
그런 그의 귀에, 에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바탕 또 난리가 나겠어. 마음 같아선 이곳에서 웃음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지만, 프런트로 가봐야 할 것 같군.”
“……이걸 보여주려고 왔나?”
“아무렴. 그렇고말고.”
제수스가 돌려준 휴대폰을 받아들며, 에두 크루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수고를 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야.”
“훗. 이거야 원.”
“우린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전쟁을 치르게 될 거야, 조르제. 그리고 큰 변화를 앞둘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응? 그게 무슨 말인가?”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세. 만약 우리가 리그에서 우승하고 오랜 저주를 깨트린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난 그가 한 해는 더 머물 거로 생각하네.”
“……그렇다면.”
“그래.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상대는 이 내부에도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건 자네가 해줘야 할 몫이야.”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던 두 남자의 사이에서, 테이블 위에 올려진 휴대폰 중 하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런! 벌써 시작이로군.”
“어서 가보게. 나도 오늘은 바빠.”
“알겠네. 그럼. 또 연락하지.”
“그러게.”
전화를 받으며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에두 크루즈.
그리고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제수스는 책상 위에 놓인 전술지에 펜을 몇 번 끄적이다가, 도로 펜을 놓아두며 편안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테이블 위에 양발을 올려둔 채, 두 손을 깍지를 껴 머리 뒤에 놓아둔 것이다.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난리도 아니로군.’
제수스는 금방 보았던 휴대폰 화면 속의 문장을 떠올렸다.
그것은 클럽의 구단주가 보낸 문자였다.
어느새, 김다온의 이적은 클럽의 사장이나 구단주끼리 직접 논하는 문제가 되어 있었다.
이 말은 곧, 그 이적이 풋볼매니저와 감독의 손을 떠났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는 보통, 팀의 미래를 망가뜨리곤 한다.
‘하긴. 어제 많은 것을 보여주긴 했지.’
조르제 제수스 역시 어제 김다온의 대표팀 경기를 지켜보면서, 그가 현재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받는다는 생각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김다온에게 매겨진 이적료는 제수스의 기준에서 다소 과한 감이 있었지만, 그거야 현재 유럽 축구 이적 시장이 미쳐 날뛰고 있는 만큼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 이적료는 ‘현재’의 김다온이 아닌 ‘미래’의 김다온에 대한 투자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렇지만, 제수스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김다온은 현재 포르투갈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것 때문에 수비적인 역량에서 오히려 크게 과소평가 되어 있고, 그것을 어제 경기를 통해 증명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만약 그 기준에 따른다면, 김다온에게 매겨진 6,000만 유로의 이적료는 여전히 합당하지 않더라도 아주 뻥튀기된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미래’의 김다온에 대한 투자의 느낌까지 나게 하려면, 최소 7천만 유로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게 제수스의 현재 의견이었다.
문득, 제수스는 이런 자신을 발견하곤 헛웃음 지었다.
‘허-! 이런. 나도 저 망할 녀석을 닮아가는가 보군.’
포르투갈 리그에서 제일가는 수완가인 자신의 친구를 떠올리며, 제수스는 다시 1층으로 향하기로 한다.
계단을 내려서는 그의 귀엔 최근 며칠 동안 들을 수 없었던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그 뒤를 따르는 폭발적인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제수스에겐 마치, 아주 근사한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처럼 들리고 있다.
‘멋지군. 이게 팀이라는 거야.’
클럽하우스를 비추고 있는 따뜻한 햇볕만큼이나, 내부의 분위기 역시 무척이나 포근해 보이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