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83)
182화
2013년 2월 14일. 51373 레버쿠젠, 독일. 비스마르크 슈트라세 122-124 바이 아레나.
·경기 시작 1시간 전
레버쿠젠 0 : 0 SL 벤피카
&Match-Up`s Best Eleven(벤피카/상대팀)
&Tactics(벤피카/상대팀) : 4-3-3(A)/4-3-3(A)
GK ? 아르투르 모라에스 / GK ? 베른트 레노
RB ? 김다온 / RB ? 하지메 호소가이
CB ? 에제키엘 가라이 / CB ? 필립 볼샤이드
CB ? 루이장 / CB ? 다니엘 슈바브
LB ? 이스마일리 / LB ? 미할 카들레츠
DM ? 네마냐 마티치 / DM ? 지몬 롤페스
CM ? 안드레 고메스 / CM ? 라스 벤더
CM ? 니코 가이탄 / CM ? 옌스 헤겔러
RW ? 제로니모 베가 / RW ? 안드레 쉬를레
LW ? 베르나르두 실바 / LW ? 곤잘로 카스트로
ST ? 오스카 카르도소 / ST ? 슈테판 키슬링
.
.
양 팀의 선발명단이 공개된 순간, 레버쿠젠의 진영에는 약간의 혼란이 찾아들었다.
뛰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김다온의 이름이 번듯하게 적혀 있는 반면, 당연히 출전할 줄 알았던 막시 페헤이라의 이름은 교체 명단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라커룸 안에서 이를 확인한 사샤 레반도프스키는 지금, 코치들과 함께 빠른 미팅에 들어간다.
하지만, 정작 이를 주도해야 할 사미 휘피에는 감독실에 틀어박혀 모습을 비추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레버쿠젠의 스태프들은 그것을 무시하기로 한다.
“라이트백이라고? 진짜? 그가 마지막으로 오른쪽에서 뛴 것이 언제지?”
“글쎄요. 한 1년?”
“…….”
양쪽 모두를 소화할 수 있다고 알려져는 있지만, SL 벤피카에서의 김다온은 레프트백이라는 이미지가 훨씬 더 강했다.
물론 이는 막시 페헤이라라는 걸출한 라이트백과의 시너지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아예 없었다.
다만, 닥친 상황이 조금 당황스러운 것뿐이다.
“루이장이 투입된 것도 의외야. 부상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그가 베테랑이라지만, 복귀전이 유로파라니. 제수스의 생각을 전혀 모르겠어.”
“전술은 뭐지? 4-2-3-1? 4-4-2?”
레반도프스키를 포함한 레버쿠젠의 코칭스태프가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건, 경기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상대가 어떤 축구를 하려는지 알지 못하면, 경기를 치르며 보내는 세세한 지시사항이라든가 선수 교체에서 잘못된 선택이 나올 수 있다.
선수들이야 라인업이 어떻건 본인의 경기에만 신경을 쓰는 편이기에, 이런 고민을 하고 선수들을 올바로 뛰게끔 만드는 건 코치들의 몫이다.
그렇게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미 휘피에에게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레반도프스키가 감독실로 걸음을 옮긴다.
똑똑똑-
딸깍-
“사미?”
감독실 안, 사미 휘피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레반도프스키를 확인한 그가 다급히 전화를 끊으려 한다.
“이런! 다시 연락드리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누구와 통화했나?”
“아무것도 아닐세. 무슨 일이지?”
사샤는 휘피에가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전권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건 별로 중요치 않았다.
“명단이 발표됐네.”
“그래서?”
그래서라니.
사샤 레반도프스키는 소리라도 지르고픈 기분이었다.
출전 명단을 확인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사미 휘피에가 현역시절에 명단 확인이고 뭐고 축구에만 집중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감독이 되었다면 그러면 안 됐다.
휘피에는 아직 감독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단 한 번만이라도, 선수들이 무조건 자신을 싫어한다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하는 사샤 레반도프스키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샤는 곧바로 포기해 버렸다.
대신, 손에 든 명단을 건넸다.
“자네가 말한 그 귀찮은 사이드백이 선발에 있어. 오히려 막시가 빠졌더군.”
“……전형적인 속임수였군.”
“그래. 그리고 우리가 거기에 빠져버렸고 말이야. 사미. 지금이라도 그냥 선수들에게…….”
“지금 내가 실수했다고 말하려는 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이런, 사샤! 자넨 참 둘도 없는 겁쟁이로군!”
“뭐라고?!”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빈정거리는 표정을 짓는 사미 휘피에.
지금 그의 얼굴은 누가 보기에도 참으로 못나 보였다.
“고작 한 명의 선수 때문에 전술을 바꾸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자네야말로 너무 과민반응을 하는군. 그리고 겁쟁이는 이 팀과 어울리지 않아.”
“사미, 자네……!”
“뭔가? 한판 붙어 보겠나?”
“……하-!”
너무나도 유치한 행동에, 사샤는 대꾸조차 하기 싫어졌다.
고작 한 명의 선수 때문에 전술을 바꾸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 했던 사람이, 어제 느닷없이 김다온이 출전하지 않을 것이기에 4-3-3으로 전형을 바꾸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래놓곤 이제 와 자신에게 과민반응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샤 레반도프스키다.
이건 무척 유치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걸로도 모자라, 휘피에는 분노하는 자신에게 주먹질로 붙어보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시즌 내내 어린아이보다도 못나게 굴던 휘피에를 억지로 여기까지 이끌고 온 사샤 레반도프스키였지만, 그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끄집어냈다.
“사미? 자넨 뛰어난 선수였을지 몰라도, 형편없는 감독. 그것보다 더 형편없는 인간일세.”
“겁쟁이가 말은 잘하는군.”
“겁쟁이? 하-! 멋대로 생각하게! 어제 갑자기 전술을 바꾸겠다고 말한 사람은 자네였어! 난 그걸 말렸다고! 어디 한번 자네의 마음대로 해보게나! 그리고 난 곁에서, 그걸 비웃어줄 준비를 하고 있겠네.”
“겁쟁이가 멋대로 말할 줄도 알았나?”
“이런 빌어먹을 인간 같으니! 이제 두 번 다시 자네를 위해 맞춰주는 일은 없을 거야!”
쿵-!!
감독실을 박차고 나선 사샤 레반도프스키. 그는 이 와중에도 선수단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 라커룸의 반대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휘피에는 오히려, 그 모습을 남자답지 못하다며 비웃고 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레버쿠젠의 다른 코치들은, 권력다툼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 팀의 모습에 비통한 심정마저 느끼고 있었다.
분명 시즌 초반만 해도, 휘피에의 리더십과 레반도프스키의 전술적 역량이 시너지를 발휘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의 약점만을 건드려, 서로가 서로에게 열등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는 서로가 가진 장점마저 갉아먹는 중이다.
선수들이 본인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한 휘피에는 편협한 사람이 되어갔고, 그런 휘피에의 눈치를 보는 레반도프스키 역시 전술이 단조로워졌다.
휘피에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 그의 축구 철학을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하다, 사샤도 어느새 무색무취한 축구를 구사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최악이로군.’
무대는 유로파 리그.
상대는 SL 벤피카.
조르제 제수스가 시도한 연막작전은, 전혀 뜻하지 않은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 명의 감독에게 전권을 쥐여주는 일이, 축구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를 보여주면서.
***
사실 이 모든 것은 즉흥적인 것이었다.
며칠 전 병원 진료를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왔을 때, 진짜로 다쳤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훈련 도중 사타구니에 불편함을 느낀 막시에게 일주일이 필요하단 진단이 내려졌고, 감독님은 소셜네트워크에서 화제가 된 내 이야기를 써먹을 수 있겠다고 판단하셨다.
굳이 우리에게 연막작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대가 무대인 만큼 모든 것을 활용해보자고 생각하셨던 거다.
그래서 이후, 나는 줄곧 오른쪽 풀백 자리에서 훈련을 해왔다.
오랜만에 뛰는 자리라 다소 낯설었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니 예전의 감각은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걱정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긴 하다.
너무 오랜만이었으니까.
“구텐 아벤트.”
“구텐 아벤트,”
긴장을 털어내며 복도에 서서, 그라운드로 나설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곁으로 한 소년이 찾아왔고, 난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2012/13 유로파 리그의 후원사를 홍보하기 위해 오늘도 에스코트 키즈(Escort Kids)가 함께하고 있는데, 동시에 아동 인권을 재고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아이들이 입은 유니폼에는, ‘세이브 더 칠드런’이 주장하는 문구가 적혀진 상태다.
“모두-! 입장합니다!”
“오-! 어서 가자!”
[??]“레츠고??”
환하게 미소 지어주며 아이의 손을 잡은 난, 동료들을 따라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섰다.
독일에서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답게, 현재 그라운드 안에는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아까 몸을 풀면서 날씨를 미리 확인해 두었기에, 난 딱히 추위를 느끼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니었다.
[으으으으…… 추워어…….]“…….”
비록 아이의 말을 알아들을 순 없지만, 날씨와 아이의 몸짓을 보면 추위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마케팅에 필요해 아이들에게 외투를 입힐 수 없었다곤 하지만,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기도 했다.
문득, 뭔가가 떠오른다.
‘나도 저렇게 추웠었지.’
지이이익-!
[??]나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아이의 어깨 위에 덮어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조금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가져도 돼.”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럴 거야. 뭐, 안 되면 그냥 주급에서 까라고 하지 뭐. 아, 참. 못 알아듣지?”
[???]이럴 때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참 편할 텐데 말이다.
“응?”
이런 생각을 하며 좌우를 돌아봤을 땐, 어느새 동료 모두가 에스코트 키즈에게 재킷을 입혀준 상태였다.
그들이 보기에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나 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네가 그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잖아.”
“뭐? 나 때문이라고?”
“안 그럼 우리만 욕먹는다고. 그리고. 좋은 건 너 혼자 하게? 절대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대체 그건 무슨 심본데?”
“시꺼.”
안드레와 투덕거리는 사이 유로파의 주제곡이 다시 울려 퍼지고, 잠시 카메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던 난 모든 과정이 끝난 뒤에 아이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외투를 다시 내게 돌려주려 하고 있었다.
[여기, 이거.]“응? 나 돌려주게? 안 그래도 돼. 입고 가.”
재킷을 벗으려는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는 눈높이를 똑같이 가져갔다.
외투 없이 오돌오돌 떨고 있는 모습이, 괜히 예전의 나나 누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짠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아이들도 돈 많은 부모를 둔 경우가 많은데, 유럽에서는 조금 다르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난 손을 뻗어, 위쪽의 단추 하나를 채워줬다.
부디, 의미가 전달되면 좋으련만.
“이건 네 거야. 내가 독일어를 할 줄 안다면 참 좋을 건데, 음. 디스. 이즈. 포. 유. 언더스탠드?”
[!!]다행히도, 아이는 영어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조금은 수줍어 보이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어 보인 아이가 손을 뻗어 나를 끌어 안아왔다.
[당케 쉔.]“그건 알아. 땡큐라는 거지?”
[야. 야.]“그것도 아는 말이네.”
야(Ja)가 아마, 네(Yes)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건 자철이 형한테 들었던 것 같다.
날 끌어 안아준 꼬마가 뒤를 돌아 앞으로 달려나가고, 중간에 잠깐 넘어질 뻔했던 아이는 이내 조심스럽게 걸음을 바꿔 한쪽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걸 보며 흐뭇해하던 나.
그런 내 곁으로.
[너 좋은 사람이구나?]“응?”
레버쿠젠의 유니폼을 입은 한 사람이 다가왔다.
6번.
레버쿠젠의 주장인 지몬 롤페스(Simon Rolfes)다.
[나도 포르투갈어를 할 줄 몰라서. Good Man. 오케이?]“아. 땡큐.”
피식하며 웃은 롤페스가 엄지를 치켜세워주며 돌아서고,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천천히 달려 수비 위치로 향했다.
“아우, 추워.”
매서운 바람이 몰아닥치는 영하 2도의 쌀쌀한 날씨.
다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천천히 몸을 풀어나가되 스프린트를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절과 근육이 완전히 풀리려면,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무도 다치지 않는, 그런 경기가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시합 시작을 앞두고, 난 작은 소망 하나를 빌어 보았다.
***
·전반 03분
레버쿠젠 0 : 0 SL 벤피카
흔히 사람들은 축구선수가 날씨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을 하지만, 그건 엄밀하게 말해 사실이 아니다.
날씨가 경기력에 대한 핑곗거리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할 뿐, 우리도 사람인 이상 맑고 쾌청한 날씨에서 축구를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춰볼 때, 오늘은 딱히 축구 하기 좋은 날이 아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바람이 큰 변수가 되는 경우라면.
‘에이 씨, 뭐야.’
베른트 레노가 보낸 골킥의 낙하지점을 잡았던 난, 움찔하며 앞으로 달려나가 헤더로 볼을 클리어했다.
처음엔 최초의 위치에서 여유 있게 볼을 잡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축구공이 앞쪽에 떨어져 본의 아니게 곤잘로 카스트로(Gonzalo Castro)와 경쟁을 해야 했다.
여전히 바이 아레나엔 칼바람이 불어닥쳤고, 그것은 축구공이 높이 떴을 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오래전에 감독님은 우리에게 짧은 패스 위주로 풀어나갈 것을 주문한 상태였는데, 아직 레버쿠젠은 특별한 변화 없이 계속 롱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후방에서 측면으로 길게 패스를 보내온 뒤에, 거기에서 파생되는 공격을 생각하는 것 같다.
“안드레! 여기!”
“간다! 조심해!”
“이익-!”
간신히 리턴 패스를 보낼 수 있었던 나.
자철이 형에게서 익히 들었던 대로, 확실히 분데스리가의 선수들은 부지런히 뛰고 또 팔을 사용하는 것에 무척 익숙했다.
특히 현재 분데스리가의 트렌드라 할 수 있는 전방압박의 강도가 무척 높았는데, 포르투갈 리그에서 하던 것처럼 볼을 다루면 안 될 것 같았다.
제수스 감독님도 어제 비디오 세션에서 이런 부분을 지적하셨고, 레버쿠젠 특유의 스타일을 ‘Open Game’이라는 단어로 설명해 주기도 했다.
상대가 후방에서 빌드업을 시작할 때, 슈테판 키슬링이 조금 아래로 내려서며 4-3-2-1에서 4-3-3으로 전형이 바뀌고는 하는데, 이때 중앙과 측면 수비수 사이에 선 쉬를레와 카스트로가 높은 위치에서부터 압박을 가해온다고 했다.
특히 현재 나와 매치업을 이루는 곤잘로 카스트로의 경우, 본래 풀백으로 뛰던 선수라 수비를 무척 잘했다.
“위험했어.”
“응. 좀 더 빠르게 볼 처리를 해야 할 것 같아.”
“근처에 있을게. 알겠지?”
마티치와 빠르게 정보를 교환한 뒤, 난 다시 수비 위치로 돌아가 라인을 맞췄다.
바람에 의한 변수가 여전히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빠르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추위도 점차 느껴지지 않게 되었고, 뻣뻣했던 관절에도 기름칠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조금 더 피치 위의 상황에도 주목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레버쿠젠은 중앙에 힘을 두고 상대의 공격을 측면으로 유도하려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유는 그런 편이 역습을 전개하는 데에 있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레버쿠젠의 오픈게임은 ‘선 수비 후 역습’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부지런한 선수들은 많으나 창의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령관은 부족한 관계로, 전술을 최대한 단조롭게 가져가고 있다는 게 어제 감독님의 설명이었다.
다만 오늘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했는데, 공격진과 바로 아래 미드필드 사이의 공간이 생각보다 훨씬 더 넓었다.
이것이 레버쿠젠의 전술적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뭔가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분명한 건.
“간다!! 오른쪽이야!!”
‘잡았어.’
덕분에 수비가 무척 편하다는 것이다.
보통 역습을 선택하는 팀이라면, 공격수의 위치를 수비수 바로 아래에 두거나 하여 라인을 파괴하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고는 한다.
수비도 당연히 그것을 알기에 뒷공간으로 오는 패스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오프사이드 유도와 주변의 커버다.
지금도 난 마티치의 도움 덕분에 간단히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결국 카스트로는 달리기만 한 셈이 되어 에너지를 낭비해 버렸다.
레버쿠젠의 공격수와 미드필드 사이, 그러니까 10번(AM) 자리에 선수가 부족하다 보니 마티치가 딱히 견제할 선수가 없어 자유롭게 측면으로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것도 생각을 해보면,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이전까지 레버쿠젠은 카스트로 혹은 쉬를레 쪽으로 공격이 전개될 때마다, 다른 한 명의 선수가 중앙으로 움직여 숫자를 보태주는 형태를 취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카스트로 주위에 최전방의 키슬링밖에 없었고, 쉬를레는 정 반대편 측면에 서서 천천히 중앙으로 움직이던 중이었다.
이렇게 되면 레버쿠젠의 오늘 전술이 평소와 같은 4-3-2-1이 아니라, 4-3-3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몇 분 정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난 이런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다.
왜 레버쿠젠은 갑자기, 그들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을 포기했는가?
분명 레버쿠젠이 쓰는 4-3-2-1의 전술 자체는 구시대적인 것이었지만, 그들은 이것을 4-1-2-2-1의 형태로 교묘히 바꿔 훌륭한 축구를 보여주어 왔다.
선수 구성상 부족한 10번의 공백을 두 명의 윙어를 중앙으로 옮기면서 채워 넣은 것인데, 지금처럼 뛰면 10번의 부재가 더욱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레버쿠젠의 공격은 전반 10분이 지나는 시점까지 완전히 똑같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물론이고 우리 SL 벤피카 전체는 어떤 위협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레버쿠젠은 우리의 공격 작업에 휘둘리는 모습이었고, 측면에서 생겨버린 두 명의 잉여 자원으로 인해 그들의 본래 장점마저도 퇴색되고 있었다.
어떠한 판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완전히 실패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물론 우리 역시, 공격이 딱히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공격은 하고 있지만, 슈팅은 없다.
몇몇 문제점이 보임에도, 레버쿠젠의 중원은 듣던 만큼이나 탄탄해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25분이 되었을 무렵.
촤—–악!!
“으악-!!!”
“이봐아-!!!”
내 앞쪽에서 헤겔러의 과격한 태클이 있었고, 거기에 걸린 고메스가 바닥에 드러눕게 되었다.
누구보다 안드레를 잘 알고 있기에, 지금 그가 내지른 비명이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리를 내지르며, 황급히 앞으로 달려가는 나.
달려들려던 나를 마티치가 말린다.
“멈춰. 흥분하지 말라고.”
“놔! 이런, 빌어먹을! 지금 봤어?! 지금 봤냐고!!”
“그래. 나도 알아. 그렇지만 네가 쓸데없이 경고를 받아서는 곤란해.”
“……제기랄.”
주심이 헤겔러에게 경고 카드를 꺼내 들지만, 난 그가 더 큰 처벌을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퇴장을 줘도 무방한 상황이다.
‘빌어먹을.’
그렇지만, 마티치의 말이 옳다.
경고를 받아선 안 된다.
흥분을 가라앉히기로 한 나는, 마티치에게 놓아달라고 말을 하며 안드레의 곁으로 다가갔다.
“안드레. 괜찮아?”
“빌어먹을! 제대로 걸렸어.”
그라운드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안드레를 보니, 아무래도 더 뛰기는 힘든 것 같다.
황급히 달려온 니콜라우가 안드레를 점검하고, 그는 곧 손을 엑스자로 크게 교차하며 안드레가 더 뛸 수 없다는 것을 벤치에 알렸다.
실려 나가는 안드레를 지켜보는 나.
난 친구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온!!”
감독님이 나를 불러,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게 되었다.
니콜라우에게, 안드레를 잘 부탁한다고 소리친다.
‘하아- 씨팔.’
추운 날씨 때문에 다칠까 걱정이라고 했는데, 진짜로 안드레가 다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침을 한 번 뱉으며 사이드라인으로 다가서자, 내게 온 감독님이 뜻밖의 질문을 보내어 왔다.
그러니까, 진짜 뜻밖의 질문 말이다.
감독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앙에서 뛸 수 있겠나?”
“……네?”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생각이신 걸까?
난 도저히 그것을 알 방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