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84)
183화
조르제 제수스는 언제나, 바이어 04 레버쿠젠이 보여주는 축구에 전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매겨왔다.
단조롭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그 단조로움 속에서 찾아낸 그들만의 색이 무척 선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의 공격을 측면으로 유도하여 전방에서부터 압박하는 방식은 가장 인상에 남았던 부분이었다.
레버쿠젠 압박의 특징은 최전방 공격수 슈테판 키슬링의 역할과 두 명의 윙어를 10번에 배치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보통 축구 감독은 최전방 공격수에게 빌드업의 시발점이 되곤 하는 수비형 미드필드를 압박할 것을 주문하지만, 레버쿠젠은 키슬링의 위치를 수비형 미드필드와 최종 수비수 사이에 강제 시켜 움직임에 자유도를 부여했다.
만약 패스가 측면으로 돌게 되면, 키슬링은 그 즉시 풀백의 뒤쪽에서 접근해 센터백에게로 향할 수 있는 패스 경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명의 10번이 빠르게 위치를 옮겨 앞쪽을 막아서고, 뒤쪽에 선 미드필드 한 명과 풀백 역시 위치를 옮겨 사이드백의 빌드업을 막았다.
지금까지 레버쿠젠에 고전한 팀들은 이런 방식의 압박을 극복하지 못했고, 수비진영에서 패스가 차단되어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는 빈도 역시 빈번했다.
막시가 뛸 수 없는 오늘, 조르제 제수스가 사이드백의 구성을 김다온(오)-이스마일리(왼)로 가져간 것 역시 이런 레버쿠젠의 압박 방식 때문이었다.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사이드백의 볼 소유와 빌드업 능력이 무척 중요했다.
오른쪽 백업 풀백인 안드레 알메이다는 빌드업보단 직선적인 움직임에 더 강점이 있기에, 차라리 김다온을 오른쪽으로 보내고 이스마일리를 투입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왼쪽 풀백뿐만이 아니라 왼쪽 미드필드와 윙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소화할 수 있는 이스마일리는, 오늘 경기에 중요한 모든 역량에서 알메이다보다 나았다.
그러나.
.
【“선수 교체가 있습니다. SL 벤피카의 89번 안드레 고메스가 나가고, 34번 안드레 알메이다가 투입됩니다.”】
.
오늘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축구는 조르제 제수스가 평소 알던 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레버쿠젠 특유의 4-3-2-1이 아니었거니와, 후반기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4-1-2-2-1 역시 아니었다.
“다온!!”
미드필드 지역으로 올라선 것에 다소 낯설어하는 김다온을 보며, 조르제 제수스는 침착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그는 지금의 이 판단에, 제법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거면 돼. 아니, 이것 아니면 안 돼.’
전반 25분까지 레버쿠젠이 보여준 축구는 마치, 두 개의 팀이 하나로 급조된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미드필드 아래와 공격수가 따로 분리되어, 전혀 다른 축구를 펼친 것이다.
카스트로와 쉬얼레를 윙어로 배치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세 명의 공격수를 배치한 축구를 하려고 했다면 중앙 미드필드의 위치가 좀 더 높아야 했다.
전방압박과 역습의 첨병 노릇을 하던 핵심 전략을 포기한 만큼, 팀 전체가 더 공격적으로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버쿠젠은 그러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최전방과 그 아래 중앙 미드필드 사이의 공간은 넓어져만 갔다.
그래서, 제수스는 그곳으로 김다온을 보냈다.
그리고 마티치를 6번(DM)에서 8번(CM)으로 이동시켰다.
『SL 벤피카의 전술 변화』
제수스가 이런 식의 전술 변화를 택한 것 역시, 나름의 타당한 근거를 밑바탕에 두고 있다.
우선 벤치에는 엔초 페레즈라는 중앙 미드필드가 있었지만, 레버쿠젠의 강한 중원을 고려하면 탈압박 외에는 장점이 부족한 엔초의 투입은 올바른 판단이 되기 어려워 보였다.
오히려 탈압박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레버쿠젠의 미드필드와의 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볼을 전개할 수 있는 마티치의 전진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중원에 힘을 밀집하고 볼의 흐름에 따라 측면으로 움직임이 큰 레버쿠젠 특유의 수비 움직임까지 생각하면, 김다온의 천부적인 공간 인지능력과 때때로 번뜩이기까지 하는 날카로운 본능이 결국 최고의 무기가 될 것 같았다.
어차피 벤피카의 6번(DM) 위치에서 레버쿠젠의 압박이 거세지 않았던 터라, 김다온이 중원에서 받을 견제도 다른 경기에 비해 훨씬 없을 것이다.
또한, 본래 사이드백이기 때문에 김다온은 무의식중에 사이드에 조금 더 힘을 실으려 할 것이다.
바로 이것.
레버쿠젠이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6번 위치에서의 압박을, 조르제 제수스 역시 정통적인 6번을 내세우는 걸 포기함으로써 피치 다른 영역에 더 힘을 싣기로 했다.
위험부담이 큰 도박이었지만.
[뚫렸어!!!] [뭐야?! 어떻게?!]무언가를 잃을 각오가 없으면, 절대로 큰 대어를 낚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조르제 제수스다.
그리고 김다온은 낯선 포지션에서 뛰고 있게 된 탓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단순한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후방에서 패스를 연결받은 김다온이 이내 전방을 지그시 주시하더니, 미할 카들레츠(Michal Kadlec)의 뒷공간으로 향하는 아웃프런트 패스를 보낸 것이다.
김다온의 발끝을 떠난 축구공은 마치 슈팅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이는 정확히 제로니모의 발끝에 도달했다.
{“우오오-!”}
레버쿠젠의 팬들마저도 탄성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굉장한 패스.
제로니모의 트래핑 이후 곧바로 쏘아진 크로스가 카르도소의 머리에 맞고 헤더로 이어지게 된다.
“제기랄!!!”
골대를 벗어나는 축구공을 보며 얼굴을 감싸 쥐는 카르도소.
비록 슈팅은 높이 떠올라 크로스바를 벗어났지만, 오늘 경기 최초로 나온 SL 벤피카의 슈팅에, 레버쿠젠의 홈 팬들이 깜짝 놀라는 목소리가 그라운드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 장면을 끝까지 지켜본 조르제 제수스는 주머니에 넣어둔 손을 꼭 쥐어 보였다.
고작 하나의 플레이였을 뿐이지만, 지금의 패스는 김다온의 현재 수준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바로 그거야, 꼬마. 바로 그거라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제수스에게 필요했던 것은 시원한 물 한 모금이다.
꿀꺽-
물병을 내려다 둔 그는 다시, 그라운드의 상황에 집중한다.
***
‘후우- 죽겠네.’
사이드백으로 뛰다 가끔 중원으로 올라섰을 때와 아예 중앙에서 뛸 때 바라보는 축구장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축구라는 게, 이토록 역동적인 스포츠였나 싶다.
물론, 축구는 역동적인 스포츠가 맞다.
그저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건, 사이드백으로 뛸 때 경험하는 치열함과 중앙에서 겪게 되는 치열함이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다온!!”
“?, !!”
루이장에게서 패스를 전달받은 나는, 순간적으로 올라선 라스 벤더의 몸싸움을 피하고자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발 안쪽으로 축구공을 감아 움직이는 스쿱턴 동작을 가져간 것인데, 천만 다행히도 벤더의 압박을 벗겨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만약 여기에서 볼을 빼앗겼다면?
‘어우, 살 떨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을 떠올리며, 전방으로 패스를 보낸 뒤 목소리를 높여준 루이장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자 그는 한눈을 팔지 말라는 듯, 얼른 앞을 돌아보라는 손짓을 보내왔다.
네, 네. 저도 압니다요.
.
(박성문) – SBS Sports 유로파 중계 해설위원
“정말 놀랍습니다. 유로파. 그것도 바이어 레버쿠젠과 같은 팀을 상대로 이렇게 중앙에서 제대로 역할을 소화해낼 줄은 몰랐거든요. 지금도 보면 개인기로 완벽한 탈압박을 보여주지 않았겠습니까? 어지간한 수비형 미드필드보다 훨씬 더 나아 보입니다.”
(배정세) – SBS Sports 유로파 중계 아나운서
“아, 이 재능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습니다.”
.
루이장의 말대로 그라운드를 주시하며, 난 생각한다.
금방 라스 벤더가 전진한 뒤의 레버쿠젠 포메이션을 보면서 알게 된 건데, 빈틈없어 보이던 레버쿠젠의 중앙 미드필드 너머로 커다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내 매치업 상대였던 곤잘로 카스트로의 백업이 늦어 공간이 발생한 것인데,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다만, 저 공간은 머릿속에 넣어둘 필요가 있겠다.
여전히 팀의 공격은 조금 지지부진한 상황인데, 가끔 번뜩이는 제로니모와는 다르게 베르나르두는 완전히 지워져 있다.
하지메 호소가이(Hajime Hosogai)를 상대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 것 같으나, 레버쿠젠 미드필드의 측면 백업이 좋아 특유의 연계 플레이가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호흡을 맞춰주던 안드레 대신 마티치가 올라선 것 역시, 베르나르두에겐 나쁜 요소가 된 것 같다.
“베르나르두!!!”
“??”
그래서 난, 녀석에게 차라리 내려오라고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베르나르두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저 이쁜 것.
그리고 그런 뒤에는 이스마일리의 이름을 부르며, 레버쿠젠의 뒷공간을 가리키곤 돌아서 달려나가라는 수신호 역시도 보냈다.
그러자, 이스마일리는 근처의 쉬얼레를 가리킨다.
자신이 전진했을 때 비게 될 공간이 부담스럽나 보다.
“날 믿어! 내가 갈게!”
난 아마도 마티치처럼, 센터백 사이에 위치하는 일은 잘 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이드백이 공격을 나갔을 때, 그 뒷공간을 커버하는 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이런 내 표현에 이스마일리가 고개를 끄덕였고, 의미 없이 날아온 롱패스를 차단한 안드레 알메이다가 모라에스에게 볼을 보내어 우린 처음부터 빌드업을 시작했다.
근처에서 키슬링이 어슬렁거리곤 있었지만, 빠르게 볼을 처리한다면 별로 위협이 되지 않을 위치다.
오히려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아까보다 위로 전진하여 날 흘끗흘끗 확인하고 있는 라스 벤더다.
그는 내가 볼을 받은 즉시 막아서려고 하는 것 같다.
‘오케이. 좋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가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정보를 미리 입력해 두지 않으면 기습적인 돌발상황에 당해버릴 것 같았다.
주변 선수들의 위치.
위협당할 가능성.
이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나는, 다시 한번 루이장으로부터 패스를 전달받았다.
뒤로 돌아서 있는 내 정면에서 달려오기 시작한 키슬링.
난 곧장 몸을 돌려, 전방을 바라본다.
왼쪽 앞에서 라스 벤더가 다가오고 있었고, 옆으로 눈을 돌린 나는 니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은 저기.
툭-
니코에게 간단히 패스를 보낸 뒤, 난 재빨리 왼쪽을 바라보며 마티치와 베르나르두의 위치를 살폈다.
벤더가 전진함에 따라 마티치가 조금 자유로워졌고, 나는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니코에게 저기로 패스를 보내라고 외쳤다.
원터치 이후에 곧장 마티치에게로 향하는 패스.
난 그걸 보며, 빠르게 달려나가 벤더를 지나쳤다.
그러곤 소리쳤다.
“마티치!!”
니코에게서 패스를 받은 마티치 역시, 내 목소리에 제대로 반응해 곧바로 리턴 패스를 보내왔다.
그리고 난 그것을 다시 논스톱으로 베르나르두에게 보냈고, 다시 측면으로 더 움직여 나간 나는, 왼쪽 시야 끝에서 나타나 레버쿠젠의 측면으로 침투하는 이스마일리를 보았다.
아마도 그는 내가 왼쪽으로 이동하는 걸 보며 전진을 결정한 것 같은데, 무척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다시 한번 이스마일리에게 패스를 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호소가이에 의해 압박당하는 베르나르두.
하지만 녀석이라면 할 수 있다.
‘그렇지!’
베르나르두는 내 논스톱 패스를 발아래에 놓아두는 대신, 그대로 발바닥으로 긁어 축구공의 진행 방향에 속도를 더하는 선택을 했다.
내가 바라 마지않던 장면.
“!!”
호소가이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한 축구공이 이스마일리에게 전달되고, 완전히 무너져버린 레버쿠젠의 측면에서 이스마일리가 카르도소를 향한 빠른 크로스를 띄워 보낸다.
이에 몸을 날려가며 발끝을 축구공에 가져다 대려 시도하는 카르도소.
그러나 아쉽게도.
“으아-! 젠장.”
축구공은 카르도소의 발끝을 지나, 반대편 골라인 너머로 나가버리고야 만다.
안타까움에 목소리를 내며 머리를 부여잡은 나.
그러나 벤치가 있는 쪽에서.
“좋아!! 바로 그거야!!”
“응?”
주먹을 휘둘러가며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계신 감독님이 나를 향해 박수를 보내오고 계셨다.
조금은 잘한 걸까?
자신감을 조금 더 가져봐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든다.
***
·전반 40분
레버쿠젠 0 : 0 SL 벤피카
전반 25분 이후, 레버쿠젠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믿을 수 없어.’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단 한 명의 선수를 보며, 레버쿠젠의 라스 벤더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처음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멀티 포지션인 선수가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드를 오가는 경우는 있지만, 커리어 처음으로 6번(DM) 위치에서 뛰며 이런 퍼포먼스를 보인 선수는 처음이었다.
오늘 레버쿠젠의 중원 압박이 덜해 탈압박 능력은 아직 의문이 남으나, 공간을 찾아가고 또 패스를 전개하고, 그리고 큰 그림을 그려 공격을 조각하는 모습은 본래부터 그 일을 하기 위해 타고난 사람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어느새 라스 벤더를 포함한 레버쿠젠의 선수들은, 김다온이 볼을 쥐고 전방을 볼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만 해도 마찬가지다.
‘뭐야! 저긴 또 어떻게.’
멀어지는 축구공을 보며, 라스 벤더는 허탈한 심정을 느꼈다.
김다온은 레버쿠젠의 수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라도 하다는 듯,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뒷공간으로 정확한 패스를 보내고 있다.
오른쪽 측면에서 패스를 전달받은 제로니모 베가.
그 역시, 오늘 무척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미할 카들레츠란 준수한 풀백을 상대로 우위를 점한 것도 모자라, 지몬 롤페스의 위치마저 왼쪽으로 치우치게 했다.
그러면서 옌스 헤겔러(Jens Hegeler) 역시 포지션이 움직이게 되었는데, 이는 미드필드의 좌우 간격이 벌어지게 되어 벤피카의 미드필드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축구란 절대, 어느 한쪽에서의 균열이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중원의 균열은 측면에, 측면의 균열은 다시 또 중원에 영향을 미쳐 이내 팀 전체를 잠식해 버린다.
라스 벤더의 생각에, 레버쿠젠은 지금 그런 상태였다.
일어나고 있는 균열을 막으려면 다시 본래의 팀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오늘 그들의 벤치는 무기력해 보인다.
‘빌어먹을.’
시즌 내내, 레버쿠젠의 선수들은 사미 휘피에와 사샤 레반도프스키의 사이에서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오전 사샤 레반도프스키로부터 A라는 지시를 받으면, 오후에 사미 휘피에가 B라는 전혀 다른 지시를 내려 혼란을 겪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기 하루 전날, 팀은 갑자기 4-3-3으로 전술을 변경했다.
시즌 도중 한두 차례 공격적인 4-3-3을 활용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때마다 성과가 좋지 않아 선수들에게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았었다.
오늘 경기에서 엿보이고 있는 문제가 당시에도 고스란히 드러났었는데, 벤더는 그걸 잘 알면서도 이런 결정을 내린 휘피에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프로였기에, 일단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뛰어야만 했다.
설령 그것이 무척 부당해 보이는 일이라도 말이다.
물론, 90분 내내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긴 하다.
제아무리 우수하고 성실한 선수라도 가끔은 뒤틀어지는 법이며, 바로 지금 라스 벤더가 그러했다.
‘빌어먹을. 저 녀석을 막아야 해.’
지몬 롤페스와 옌스 헤겔러가 SL 벤피카의 오른쪽 공격에 휘둘리는 지금, 라스 벤더는 레버쿠젠의 공수 균형을 맞춰줘야 할 유일한 중앙 자원이었다.
특히나 오늘은 평소의 공격적인 성향을 조금 절제하고, 조율에 조금 더 힘을 쓰란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중원에서 날뛰고 있는 김다온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강한 압박을 가하기 위해 전진하는 선택을 보여줬다.
본인이 뚫리게 되면 레버쿠젠 미드필드 지역 전체에 큰 공백이 생겨나게 되지만, 지금의 라스 벤더는 거기까지 계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벤더는 그저,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경계경보를 끄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김다온에게 패스가 전달되는 순간을 판단해 앞으로 나아갔고, 축구공을 빼앗기 위해 발을 뻗었다.
이것만 빼앗는다면, 레버쿠젠 특유의 전방압박에 이어진 역습이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지 않은 상황을 뒤엎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 본래, 단 한 번의 좋은 장면을 만드는 것이니까.
또 바로 그게, 팀 전체에 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그러나.
“!!”
라스 벤더가 간과한 수많은 것들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뭐야?’
김다온이 생각보다 더, 탈압박에 능하다는 점이다.
최후방의 가라이로부터 연결되었던 패스.
김다온은 굴러오던 패스에 발등을 슬쩍 가져다 대어, 축구공이 움직이는 방향을 바꿔놓는 마법을 보여줬다.
땅으로 깔려오던 축구공이 슬쩍 위로 들려지더니, 라스 벤더의 왼쪽을 스쳐 지난다.
그리고 빙그르르 돌아 오른쪽을 지나친 김다온은 가볍게 벤더의 압박을 벗겨내 버렸다.
라스 벤더에겐 지금 이 모든 순간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고,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간 그는 김다온의 표정을 보곤 소름이 돋고야 말았다.
‘웃고······ 있어?’
유로파리그.
커리어 첫 번째 수비형 미드필드 출전.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걸려있는 이 중요한 경기에서, 고작 19살에 불과한 청년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느리게 흘러갔던 시간이 다시 원래의 속도로 움직이고, 중심이 무너지며 그라운드에 넘어져 버린 라스 벤더는 누운 자세 그대로 몸만 돌린 채 수비진영을 멍하니 쳐다봤다.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는 김다온의 드리블을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고, 위험지역까지 다다른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슈팅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의 오른발이 휘둘러지기 전, 라스 벤더를 포함한 레버쿠젠의 선수들 몇몇은 비로소 한 가지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본래 포지션이 풀백이었기 때문에, 특정 상황을 제외하곤 완전히 간과되어왔던 그의 슈팅 능력에 말이다.
‘막아야 해!’
하지만 이런 생각을 말로는 끄집어낼 수 없었던 벤더.
워낙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그의 입을 비집고 나온 것은 잇소리와 비슷한 무언가였다.
“우- 읏!”
그리고 그와 동시에, 김다온의 발끝을 떠난 축구공이 빠르게 레버쿠젠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