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89)
188화
·후반 13분
SL 벤피카 1 : 0 레버쿠젠
빌드업을 진행하던 레버쿠젠 진영에서 실수가 나오고, 라이나르츠가 보낸 패스가 그대로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벗어나 버린다.
그러자, 레버쿠젠 선수 몇몇이 짜증을 감추지 못하고 피치 위에서 감정을 드러냈다.
‘확실히.’
하프타임 때 감독님이 말해주셨던 대로, 레버쿠젠은 본인들이 쥐고 있는 점유율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후반전에 나름 뵈니슈의 위치를 높은 곳까지 끌어 올리며 공격의 숫자를 늘리긴 했지만, 정작 저들은 익숙한 대로만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끊임없이 뒷공간을 파고들 준비만 하는 쉬를레.
그를 돕고자 센터백을 끌어내려고 하는 키슬링.
라스 벤더와 지몬 롤페스가 10번 자리까지 올라와 볼을 보급해주고 있긴 하지만, 우리도 바보는 아니기에 언제까지고 똑같은 패턴에 계속 휘둘리진 않는다.
여전히 중원 다툼에서 우위에 있는 레버쿠젠이 볼을 점유하고 있긴 하다지만, 축구공이 머무는 위치는 공격진영이 아닌 그보다 낮은 곳에서 움직일 때가 많았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레버쿠젠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대로 된 역습 하나면, 아주 훌륭한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며, 레버쿠젠의 기동력을 떨어트린 뒤에 역습을 시도해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전반전 감독님에게 많은 지적을 받은 이스마일리 역시 각성한 것처럼 뛰어주고 있기에, 아직은 충분히 레버쿠젠의 공세를 감당해낼 수 있다고 본다.
나야, 뭐.
“에즈!!! 뒤!!!”
볼을 쥔 키슬링을 쳐다보고 있는 가라이에게 쉬를레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난 적당한 위치를 잡아 롤페스의 발을 떠날 축구공을 기다렸다.
현재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총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위치라면 셋 중 그 어느 것에도 대응할 수 있다.
‘사이드.’
한 차례 쉬를레를 쳐다보았던 롤페스가 측면으로 몸을 돌리며, 깊숙한 곳까지 오버랩을 온 뵈니슈에게 패스를 보냈다.
그래서 난 즉각 자리를 벗어나 측면으로 길게 빠져나와, 패스를 받은 뵈니슈의 앞에 섰다.
자, 지금이 바로 레버쿠젠의 문제를 상징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그러니까 뵈니슈는 내가 달라붙기 전에,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크로스를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뒷공간을 파고든 쉬를레가 오프사이드 위치였기 때문이다.
레버쿠젠의 최전방 공격수 슈테판 키슬링이 쉬를레를 위해 보여준 움직임으로 인해, 센터백들의 위치가 조금 높아지면서 오프사이드 라인도 따라서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뵈니슈의 입장에서는 공격수들의 위치가 다시 정돈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과감히 1:1 돌파를 할 수 있을 만한 사이드백이 아닌 만큼 공격진영 더 깊숙한 곳으로 전진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레버쿠젠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공격 패턴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은 셈인데, 뵈니슈는 그래서 항상 패스를 도로 뒤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라이나르츠가 볼을 배급하고 롤페스가 측면에 숫자를 보탠 상황이라면, 난 좀 더 일찍 쉬를레를 포기하고 사이드를 경계하는 움직임을 택했을 거다.
하지만 라이나르츠의 전진은 기껏해야 열 번에 한 번 정도였는데, 이는 역습을 경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참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을 쳐다보았던 뵈니슈가 인상을 찌푸리며 패스를 뒤로 돌렸고, 다시 롤페스에게로 축구공이 돌아가자 난 뵈니슈를 버리고 가라이의 근처로 다가갔다.
보통 이렇게 센터백과 사이드백의 공간이 넓어지는 것을 공략하는 레버쿠젠이지만, 지금과 같은 전개에서는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오프사이드 진영까지 올라섰던 쉬를레가 다시 돌아 나오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결국 롤페스도 패스를 줄 곳을 찾지 못하고 최후방으로 볼을 돌리고야 만다.
후반 내내 같은 패턴.
누군가는 레버쿠젠이 경기를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상대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쪽은 우리다.
파앙-!!
레버쿠젠 진영 깊숙한 곳에서 축구공이 길게 쏘아져 오고, 키슬링과 경쟁한 에제키엘의 머리를 맞고 흐르는 것을 얼른 달려서 발아래에 놓아두었다.
어느새, 레버쿠젠의 전방 압박은 완전히 실종되어 있다.
분명 아까까지는 수비진영에서 볼을 잡을 때마다, 쉽게 처리할 수 없도록 압박을 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자리를 잡은 채 어슬렁거리는 조금 지친 것 같은 얼굴들이 전부다.
이제 슬슬, 공격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볼을 쥔 상태에서, 감독님을 돌아본다.
난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계시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온 감독님이 크게 오른손을 휘저으며 라인을 높일 것을 지시한다.
물론, 라인을 높이는 건 몇몇 포지션만이다.
감독님은 공격 때 마티치를 내려 쓰리백으로 만들고, 엔초의 위치를 조금 전진시키는 식으로 후반전에 변화를 주었다.
축구공을 마티치에게 전달한 후 곧장 측면으로 길게 벌리며 하프라인 근처까지 움직였고, 후방에서 몇 번 움직이다 전달된 패스를 다시 발아래에다 놓아두었다.
사이드라인은 바로 내 등 뒤에 있고, 앞쪽에 있는 제로니모의 근처엔 뵈니슈가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 공간은 텅텅 비어 있었는데, 난 곧장 제로니모에게 패스를 보낸 뒤에 중앙으로 파고들며 다시 리턴을 받을 준비를 마쳤다.
“여기!!”
제로니모로부터 다시 내게 패스가 도달하고, 그 즉시 사이드라인 방향을 빙그르르 돌아 달려나가기 시작한 제로니모를 보며 난 오른발로 축구공을 살짝 띄워 보냈다.
허탈함이 느껴질 만큼, 레버쿠젠의 왼쪽 수비는 너무나도 손쉽게 공간을 허용하고야 만다.
깊숙한 곳에 들어선 제로니모의 크로스가 카르도소의 슈팅으로 이어지고, 몸을 날린 베른트 레노 골키퍼의 선방이 레버쿠젠을 구원한다.
파앙-!!
“으아, 젠장.”
후반 15분 내내 우리를 몰아붙인 레버쿠젠이 만든 모든 공격장면보다, 지금 우리가 한 번의 공격으로 만들어낸 공격장면이 훨씬 더 위협적이다.
레버쿠젠 사이드백들의 위치가 굉장히 높게 올라와 있다 보니, 그 뒷공간을 파고들기만 한다면 곧바로 그것이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아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반격의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다.
‘이젠 우리 차례야.’
지금까지 충분히 레버쿠젠의 공격을 받아주었으니, 지금부턴 우리가 공격을 시작할 때였다.
레버쿠젠 진영 깊숙한 진영에서 쏘아진 롱킥을 향해, 난 다시 한번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 몸을 띄워 올렸다.
타악-!!
‘어이쿠! 아파라.’
둔탁한 소리를 내며 머리에 맞은 축구공이 멀리 튕겨져 나가 사이드라인을 벗어난다.
눈앞이 살짝 피잉 돌려고 한다.
***
삑-! 삐익-!!
카르도소가 크로스 한 축구공을 마티치가 머리로 받아 집어넣자, 다리에 힘이 풀리려 버리고야 만 레버쿠젠의 선수들은 바닥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
(클레도 코엘류)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올-!! 2:1 벤피카!! 추격골!! 네마냐! 마티치!!”
.
후반 34분 이스마일리의 실책을 틈타 추격골을 터뜨린 이후, 레버쿠젠은 다시 한번 벤피카를 강하게 몰아붙이던 중이었다.
지금만 해도 벤피카의 미드필드 진영에서 호흡이 맞지 않아 레버쿠젠에 좋은 기회가 찾아오는 것처럼 보였고, 아무도 없는 벤피카의 수비진영에서 최종 수비수 노릇을 한 건 골키퍼 아르투르 모라에스였다.
한데 모라에스가 대충 걷어낸 축구공이 하필이면 오스카 카르도소에게로 향했고, 미처 오프사이드 라인을 만들지 못한 레버쿠젠의 수비진은 크로스에 이은 헤더를 허용하고 말았다.
오늘 경기 2:1.
그리고 시리즈 종합점수 3:1.
“……후우-”
땀에 젖은 얼굴로 전광판을 바라보던 지몬 롤페스는, 레버쿠젠의 이번 시즌 유럽대항전이 오늘로써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믿을 수 없어…….’
처음 추첨이 끝나고 상대가 SL 벤피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쉬운 상대는 아니어도 그래도 당연히 자신들이 더 위의 단계로 진출할 줄 알았다.
리그의 수준을 생각했을 때,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자신들이 더 유리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샤 레반도프스키와 사미 휘피에가 팀을 망가뜨리고 있을 때도, 레버쿠젠의 선수들은 여전히 매치업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야속한 시간은 레버쿠젠을 기다려주지 않은 채 계속해서 흘러가고, 이제 곧 있으면 레버쿠젠의 선수들은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을 인정해야만 한다.
SL 벤피카가 자신들보다, 더 나은 팀임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
삑-!! 삐익-!! 삐이이익-!!!
{“이야아아아-!!!”}
“예에에에에에-!!”
“…….”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린 순간, 이스타디우 다 루스에 모인 벤피카의 팬들과 선수들이 내지르는 목소리가 그라운드 전체를 가득 채웠다.
허망한 표정이 되어 주저앉은 레버쿠젠의 선수들 몇몇은 넋이 나간 듯했고, 시리즈 내내 실망스러웠던 안드레 쉬를레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유럽대항전에서의 탈락이란 항상 많은 아쉬움을 동반하는 것이기에, 그것을 이겨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몬 롤페스는 알고 있다.
“후우- 끝났군.”
결국은 더 나았던 팀이 승리했을 뿐이며, 자신들은 이것을 받아들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동료들을 위로하고자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주변에서 기뻐하는 벤피카 선수들을 보았다.
‘저들은 저럴 자격이 있어.’
시리즈 내내 논란이 될 법한 판정도 없었고, 경기 외적으로 영향을 미친 부분 역시 아예 없었다.
레버쿠젠 내부에 지닌 문제가 있다곤 하지만, 시즌 중반쯤 되면 감독 간의 알력싸움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핑계밖에 되진 않는다.
물론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가정이었다.
“이봐!”
주저앉은 동료 몇몇을 위로한 롤페스.
그는 기뻐한 한 남자를 불러세웠다.
“??”
[Good Luck. 승리한 걸 축하해.]“!”
비록 뒤의 말은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영어로 건넨 축하를 이해한 김다온이 곧 환하게 웃으며 제대로 된 독일어로 고맙다는 답을 해오고 있었다.
“당케 쉔!!”
“비테.
그렇게 인사를 나눈 롤페스가 뒤로 돌아섰고, 그는 원정을 온 팬들의 앞으로 가 감사와 미안함이 뒤섞인 박수를 그들에게 보냈다.
많은 돈을 쓰고 패배를 구경하러 오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롤페스는 계속 감사를 보낸다.
이것 정도가,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미안하군.’
지몬 롤페스는 팬들이 아니라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남자다.
.
.
·경기결과
SL 벤피카 (3) 2 : 1 (1) 레버쿠젠
[골] 베르나르두 실바 : 전반 16분(김다온)네마냐 마티치 : 후반 43분(오스카 카르도소)
김다온 ? 95분 출전(평점 8.6/팀 내 2위)
***
·경기 후 인터뷰
1. 사미 휘피에
On 패인.
”특별히 거기에 언급할 말은 없다. 다만, SL 벤피카가 우리 선수들보다 조금 더 잘 뛰었던 것 같다.“
2. 사샤 레반도프스키
On 패인.
”전술적으로 벤피카가 우리보다 더 괜찮았던 것 같다. 그들이 우리가 가진 장점을 잘 묶은 반면, 우린 그들의 장점을 거의 묶지 못했다. 그리고 제수스가 사이드백을 활용하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시리즈를 거치며, 많이 배웠다고 본다.“
3. 지몬 롤페스
On 패인.
”그들이 더 나은 팀이었다.“
4. 조르제 제수스
On FC 보르도를 만나게 됐다.
”아직은 그들에 대해 딱히 아는 게 없다. 그들은 디나모를 꺾은 팀이다. 앞으로 유로파에서 만나게 될 모든 팀이 다 그렇겠지만, 강한 팀이라 생각하고 준비를 잘 하겠다.“
On 막시 페헤이라의 출전 여부
”아마 다음 리그 경기부터 출전하게 될 것 같다.“
On 힘든 일정인데, 주전들의 휴식 여부
”그것은 늘 내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선수들의 육체는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쉽게 망가진다. 다행히도 팀 스쿼드 전체의 컨디션이 괜찮으므로, 내일부터 생각해보려고 한다.“
***
이제 겨우 16강에 올랐을 뿐인데, 사람들은 꽤 떠들썩하게 반응을 했다.
팬들이 기뻐하는 것이야 당연히 좋았지만, 미디어의 호들갑은 경계하고 있는 나다.
”수고했어. 내일 봐.“
”네. 내일 봐요.“
클럽하우스에 머무는 친구들과는 진즉에 인사를 했고, 지금은 주차장까지 온 일행들과 인사를 나눴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 곧장 침대로 뛰어들 생각이다.
운전이 조금 귀찮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멘데스의 제안을 거절하려 한다.
제스티후테는 날 위해 최고의 사람들을 준비해 놓겠다고 했었지만, 지금의 난 그들과 함께 일하고픈 마음이 없다.
톡- 토독. 톡톡.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 메시지를 완성시킨 뒤, 난 한두 번 문장들을 확인해 보다가 전송 버튼을 눌렀다.
아마 곧장 전화가 올 것 같아, 난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린 뒤에 가방 안에 대충 쑤셔 넣었다.
그러곤, 다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편하기는 하네.’
왜 동료들이 일과 사생활 용도로 휴대폰을 분리해 사용하는지를 이해하고 있는 요즘이다.
‘자, 어디 그럼?’
딸깍-
부르응-!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아 주차장을 나선다.
완연한 어둠이 찾아든 이스타디우 다 루스의 주변을 가로등 불빛이 밝혔고, 언제 그렇게 시끄러웠냐는 듯 고요하게 변한 이곳엔 때 이른 풀벌레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렇게 선수들 전용 주차장을 빠져나와 마찬가지로 선수들만 출입하는 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러자 저 앞에서.
”다온-!!!!“
”사인 좀 해줘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날 기다리고 있던 팬들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지나쳐 온 구간은 전부 통제가 이뤄지는 장소였기 때문에, 이 위치까지 오고 나서야 비로소 팬들을 만날 수 있다.
사실, 하루 중에 가장 불편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마음 같아서는 차에서 내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싶지만, 구단은 보안 등의 이유로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아주 가끔은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차를 멈추고 한두 사람에게 사인해준다거나 하기도 하는데, 그건 대부분 어린아이인 경우가 많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팬서비스는 그들에게 미안해하며 손을 흔드는 것 정도였고, 아쉬워하는 팬들을 지나친 나는 다시 차창을 올리고 속도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응?“
내 눈을 붙잡은 어떤 사람.
하지만 그는 이내,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설마.’
지금 내가 본 사람은 펩 과르디올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왜 이곳에 있겠는가?
‘잘못 봤겠지, 뭐.’
단순한 착각이었다고 생각을 해버린 나는, 경기장 주변을 완전히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오늘도 리스본의 하늘엔, 반달 하나가 예쁘게 걸려 있다.
***
4150-356 포르투, 포르투갈. R.돔 루이스 지 아타이지(R. Dom Luis de Ataide. 4150-356 Porto, Portugal).
1966년 리스본에서 태어난 조르제 멘데스는 에이전시 업계에서 상징적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본래 축구선수였지만 실력 부족으로 클럽의 외면을 받아야 했던 그는,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나이트클럽 DJ를 하며 얻게 된 인맥을 바탕으로 에이전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그는 자수성가(自手成家)를 이룬 사람답게 본인 스스로에 대한 기준과 일에 대한 고집이 무척 엄격한 편이었다.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탁-!!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멘데스.
그는 지금 막, 거절의 메시지를 받은 상태다.
보여준 성의에는 무척이나 큰 감사를 드리지만, 함께 일을 하는 것은 거절하고 싶다는 말.
무척 공손하고 또 예의 바른 단어로 된 문장이었다.
‘왜? 대체 뭐가 문제였지?’
김다온이 UCN을 해고했다는 뉴스를 접한 순간부터, 조르제 멘데스는 그를 제스티후테로 데려올 자신이 있었다.
과거에는 유명인의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 아무리 심한 굴욕도 참아왔던 그이지만, 이젠 축구선수나 감독이라면 누구나 자신과 함께 일을 하길 원한다.
오히려 지금은 에이전시에서 선수와 감독을 면밀하게 검증하는 편이었고, 이번처럼 대놓고 일을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다거나 스위트 룸 하나를 전세 내어 에이전시를 홍보하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하지 않았다.
이젠 그럴 만한 위치였으니까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먼저 접촉을 해왔다.
”…….“
거절을 당했다는 굴욕감에, 지금 멘데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자고 있을 직원을 깨우기로 한다.
함께 리스본으로 향했던 수행원 중에 하나다.
”날세. 지금 당장 이곳으로 왔으면 하는군.“
조르제 멘데스는 제스티후테의 왕이었고, 누구든 그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다.
술이 필요했던 그가 독한 코냑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잠에 막 빠져들었다가 깬 직원 하나가 멘데스의 포르투 별장에 들어선다.
이내 마주 앉은 둘.
멘데스는 계속해서 이번 일이 틀어진 원인을 생각했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사내에 쥐새끼가 있는 것 같아.“
”……곧장 착수하죠.“
”그래.“
고작 2분 만에 끝나버린 대화를 위해 40분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직원에게, 멘데스는 그 어떤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왕은 신하에게 미안할 필요가 없으니까.
멘데스는 그런 사람이다.
‘누군가가 가로챘어. 그렇다면, 그건 어디?’
현재 6천만 유로 이상의 이적료가 매겨질 것을 여겨지는 김다온의 존재는, 에이전시 업계에서는 이른 시일 안에 큰돈을 만질 수 있는 보증수표와도 같았다.
수완 좋은 에이전시라면 최소 2천~2,500만 유로의 수수료를 받아내는 것이 가능했고, 평범한 에이전시라도 1,500만 유로 이상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제아무리 성공한 에이전시인 제스티후테라고 해도 엄청난 금액이었기에, 김다온과의 계약에 몸이 달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는 보기 드문 아시아 출신의 풀백으로, 마케팅에서도 높은 상품성을 지니고 있다.
이번 시즌 SL 벤피카의 총수입 규모가 15.3%나 뛰어오른 것 역시, 그들이 아시아권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과 무방하지 않다.
이것을 바탕으로 SL 벤피카는 추가 한국인의 영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에이전트인 조르제 멘데스는 당연히 이런 정보들을 전부 다 알고 있다.
‘라이올라? 그 교활한 돼지라면 가능성이 있어. 얼마 전 메이사가 접촉을 했다지만, 그는 거기까진 아니야. 이런 일을 꾸밀 수 있는 건…….’
잠이 싹 달아나버린 멘데스의 밤은, 오늘 무척 길기만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