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90)
189화
·2013.02.24. 경기결과(Liga Zon Sagres 20R)
SL 벤피카 3 : 0 파수스 페헤이라
[골] 엔초 페레즈 : 전반 8분(제로니모 베가)오스카 카르도소 : 후반 2분(김다온)
제로니모 베가 : 후반 39분
김다온 ? 94분 출전(평점 8.5/팀 내 공동 2위)
[17경기 12어시스트! 2012/13 Liga Zon Sagres 어시스트 부분 단독선두로 치고 나간 김다온. – A Bola/2013.02.24.(밤)]***
(셀소 바렐라) – Super FM 호스트
“Bom Dia a Todos!! 맑고 화창한 25일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저 셀소 바렐라가 리스본 축구의 소식을 전합니다! 우선은 먼저 이걸 묻고 싶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생각 말이죠. 제가 아침에 출근해서 어떤 말을 했거든요.”
(조수에 헤베일루) – Super FM 토요일 패널
“아, 그 이야기 말이군요. 저도 궁금하긴 해요.”
(셀소 바렐라)
“장담하죠, 조. 사람들은 제 편일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Belo(Lovely). 제가 이렇게 말하면 누구인지 다 아시죠? 네. 바로 그 사랑스러운 다온 말입니다. 실은 제가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아마 여러분들 중에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그가 한 원호시설에 물품을 전달한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겁니다. 꽤 크게 보도가 되었었죠.”
(조수에 헤베일루)
“저도 알고 있어요.”
(셀소 바렐라)
“네, 바로 그겁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건, 어제 다온이 원호시설의 사람들을 축구장으로 초대했다는군요. 그것도 사비를 들여서 말입니다. 며칠 전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가 TV가 고장 난 것을 보고 생각을 했다는군요.”
(조수에 헤베일루)
“그게 끝이 아니죠, 셀소.”
(셀소 바렐라)
“네.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TV는 낡고 오래된 것으로 어떻게 수리를 해서 쓰고 있었는데, 어제 경기장에 초대해 어르신들이 경기를 보는 동안 원호시설에 다시 물품을 보냈다지 뭡니까? 이제 그분들은 크고 선명한 화면으로 벤피카의 경기를 볼 수 있게 됐죠. 그리고 최신식 오븐과 냉장고도 선물했다고 합니다. 전부 한국 브랜드인 삼성제품이었죠.”
(조수에 헤베일루)
“완벽한 홍보네요. 만약 그가 삼성과 계약이 되어 있지 않다면. 뭐 합니까? 어서 그를 데려다 써요!”
(셀소 바렐라)
“네.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그는 돈을 올바른 곳에 쓸 줄 알아요. 포르투갈 출신들도 하지 않는 일을 한국에서 온 그가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전 한국이 좋아졌어요.”
(조수에 헤베일루)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셀소 바렐라)
“좋아요. 이제 중요한 건 바로 이겁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죠. 전 이곳에 있는 크루들에게 리스본에서 명예 시민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몇몇은 너무 호들갑이라고 하더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지금 제가 제 소셜네트워크에 투표를 올려둘 테니까, 여러분들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일단, 노래 하나를 듣고 돌아오죠.”
***
2013년 2월 25일.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교육센터. SL 벤피카 클럽하우스.
평소보다 늦은 오전 9시에 출근한 나는, 마사지실의 베드 위에서 느긋하게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쟤가 누구라고”
“산시스. 헤나투 산시스. 꽤 잘 하는 녀석이야.”
“확실히 그러네. 눈에 띄어.”
현재 제1 연습구장에서는 어제 경기에 뛰지 않은 이들과 B팀을 비롯한 유스에서 불러올린 이들이 함께 뒤엉켜 훈련을 치르고 있다.
바이어 04 레버쿠젠과의 유로파 경기가 끝난 뒤 우리의 일정은, 어제 있었던 파수스 페헤이라와의 리그 20라운드 경기와 27일 SC 브라가와의 컵 대회 준결승이었다.
이중 감독님은 리그 경기에 힘을 투자키로 해 주전 대부분을 뛰게끔 했고, 대신 컵 대회는 철저히 로테이션과 후보선수들을 내보내기로 결정을 내리셨다.
사실상 컵 대회를 포기하는 셈이었는데, 만약 결승으로 간다면 주전이 다시 뛰고 패배하더라도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확정되지는 않았어도 다음 시즌 유럽대항전 진출은 기정사실이다 보니, 굳이 컵 대회에 전력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셨나 보다.
듣기론 클럽 고위층에서도 알리안츠 컵에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 같았다.
다만 FA 컵 성격의 Taca de Portugal은 예외라서, 그 경기에서는 주전 스쿼드 대부분이 뛸 것이다.
하지만 그건 4월이나 되어야 하기에, 지금 당장은 눈앞의 리그와 유로파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크-!!”
“에구.”
의욕이 너무 과했는지, 헤나투와 미란다가 피치 위에서 크게 충돌을 해버렸다.
고통스러워하던 미란다가 헤나투를 향해 뭐라 소리를 치기 시작하고, 기가 죽은 헤나투를 주변 동료들이 멀찌감치 떼어 놓는다.
의욕이 넘치는 것이야 잘 알지만, 훈련 중 동료들끼리 부딪쳐 다치는 건 가장 피해야 할 일이다.
“활력이 넘치는데?”
“응. 그래서 문제긴 해.”
과자 가족의 일원이었던 헤나투는 현재, 월반한 U-17에서도 주위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드필드로 출전을 함에도 U-17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 중인데, 그건 저 녀석이 같은 레벨에서 뛰는 사람들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피지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만 보더라도, 헤나투보다 키가 큰 미란다가 속절없이 넘어지고야 말았다.
헤나투는 키가 그리 크진 않지만, 탄탄한 체격을 지녔고 그 체격보다 훨씬 더 대단한 힘을 가졌다.
가끔 친구들과 이곳으로 나와 U-17 팀의 실전을 보고 있으면, 탱크처럼 돌진하는 산시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장점이 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굳이 기술을 연마하지 않아도 축구를 쉽게 할 수 있다 보니 성장이 다소 더딘 감이 있었다.
뭐 그래도 지금 미란다를 K.O 시킨 것을 볼 때, A팀에서도 피지컬로 밀어붙일 수는 있을 것 같다.
“가자.”
“응. 그래야지.”
마사지를 모두 끝마치고 나와, 우린 수비수의 미팅이 이뤄질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 달 7일, 우린 FC 지롱댕 보르도를 만난다.
프랑스 리그 앙 중위권의 팀으로, 꽤 전술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팀이라고 들었다.
객관적인 전력은 우리가 앞서 상대한 레버쿠젠보다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나, 전술과 조직력을 앞세워 그들보다 강팀으로 평가받은 FC 디나모 키예프를 꺾었다.
우리와의 경기에서도 전술적으로 변화를 주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기에, 벌써 우린 그걸 준비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컵 대회를 포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우리나 그들이나 중간에 리그 경기가 하나 더 끼어 있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이때뿐이다.
그러니,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순 없다.
“열 개! 보르도가 이번 시즌에 활용한 전술은 총 열 가지다!”
“…….”
제수스 감독님은 항상 머리를 맞대면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믿는 분이기에, 가끔은 이렇게 선수와 코치들이 함께 처음부터 분석을 시작할 때도 있다.
기본적인 것 정도야 코치들이 알려주지만, 상대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그들의 철학을 파악하는 일은 지금부터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할 일이다.
“잠시만요.”
“좋아. 뭐지?”
영상을 대충 30분 정도 지켜보았을 즈음, 난 손을 들어 올리면서 느낀 점을 말했다.
“쟤네 원톱이네요. 투톱을 내세웠을 때도, 한 명은 10번이나 윙어처럼 뛰고 있어요.”
“좋아, 좋아. 아주 좋은 의견이다. 그럼 다시 지켜보지.”
이렇게 우리 선수들이 말한 것은 근처에서 열심히 메모하는 라울 호세 코치님의 노트에 적힌다.
그리고 저것은 나중에 따로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모인 미팅 때 쓰인다고 알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린 상대적으로 낯선 팀에 대해 알아가고, 시합을 시작할 때쯤이면 그들의 장단점이 무엇이고 또 어떤 식으로 시합에 접근해야 할지가 세워지게 된다.
요즘 많은 분이 나의 Football IQ가 어쩌고 하며 말들을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절대 혼자서는 그 전부를 해낼 수 없다는 거다.
스케치는 항상 주변의 도움으로 완성이 되고, 난 그저 거기에 나만의 색을 입혀가는 것뿐이다.
같은 그림이라도 색칠은 각자 다르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항상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고 싶었다.
‘그나저나, 진짜 복잡하네.’
화면으로 보고 있는 FC 지롱댕 보르도의 축구는, 전혀 다른 시즌이라고 생각이 들 만큼 경기마다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2013년 2월 27일.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교육센터. 유스 전용 그라운드.
SC 브라가와의 컵 대회에서 뛸 동료들은 이미, 어젯밤 비행기로 리스본을 떠났다.
그리고 올 시즌 내내 그랬던 것처럼 컵대회 명단에서 제외된 나는, 대신 구단 측이 요청한 일정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 유스(Youth) 전용 그라운드를 찾았다.
이유는 오늘 오전부터 있을 2013/14 시즌 벤피카 유스팀 선수 공개모집에 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매년 팀은 공개모집에 A팀 선수를 보내는 게 전통이었다.
다만 지금까지 일정에 참여했던 선수 중, 내가 가장 나이가 어리단다.
“와우. 장난 아니게 진지하네요.”
“훗. 매년 그렇지.”
14세 이하까지를 관리하는 유스팀을 포함, 우리 SL 벤피카에는 총 다섯 개의 연령별 팀이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 다섯 개의 팀 중 유스부터 U-19까지 네 개의 팀을 총괄하고 있는 분이,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마누엘 네그랑(Manuel Negrao)이다.
A팀에서 뛰고 있어 딱히 만날 일은 자주 없었지만, 클럽 내에서는 제수스 감독님 못지않게 큰 발언권을 갖춘 분이다.
“여긴,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꿈의 클럽이니까.”
“네. 그건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하하. 그런가?”
“네.”
친구들에게 듣기론 마누엘 네그랑 총괄이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고 했는데, 막상 직접 만나본 이분은 무척 자상한 분이었다.
어쩌면 이게 본모습일 수도 있고, 친구들에게 엄한 것은 그저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자네 대체 몇 살인가?”
“하하. 한국식 정서예요. 한국에서는 늘 스승이 엄한 것이 우리 잘되라고 그러는 거로 생각하거든요.”
“훗. 그거 멋지군.”
“하하…….”
지금 내가 한 말에는 안 좋은 의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굳이 난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거니와 좋은 점도 분명 있으니까 말이다.
유럽에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한국이 꽤 살 만한 곳이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특히 며칠 전 베베로부터 집에 도둑이 들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새삼 포르투갈의 치안 수준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대낮 큰길에서야 무척 안전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어디도 한국만큼 안전하진 않았다.
비교적 단순한 삶을 사는 나와는 달리, 이런저런 것들을 해야 하는 부모님이 한국을 그리워하고 계신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아무튼, 나는 계속 마누엘 총괄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전 벤피카가 이렇게 전국적일 줄은 몰랐어요.”
“그렇겠지.”
“덕분에 어디에서든 좋은 분들을 만나곤 하죠.”
모든 축구선수와 관계자들이 자신이 속한 클럽에 대한 자부심이 있겠지만, 이곳 SL 벤피카는 정말 말 그대로 조금 특별한 곳이었다.
포르투갈 국민의 약 70% 정도가 SL 벤피카의 팬이란 농담이 있을 정도로, 여긴 전국적인 지지를 받는 곳이다.
물론 그 이유는 에우제비우라는 국민적인 축구 영웅 때문이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홈 경기장의 도로 이름이기도 한 에우제비우 다 시우바 선수는, 포르투갈의 국민 모두에게 추앙받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가 지금의 포르투갈 축구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래서 난 매번 저런 어린아이들에게, 에우제비우의 철학을 가르치려 하고 있어.”
“그게 뭐죠?”
“만약 최고가 되고 싶다면, 절대 쉬지 말고 달려라. 그리고 항상, 피치 밖에서는 겸손해라. 그는 그런 선수였어.”
피치 안팎에서 에우제비우가 어떤 선수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에, 난 자연스레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네.
“마치 자네와도 같지.”
“네? 와-우. 그건 너무 큰 칭찬인데요.”
“하하. 그럴 수도. 하지만 며칠 전 자네의 그 마음 씀씀이는 정말 훌륭했어. 기왕이면 다음에 나도 끼워줬으면 좋겠군.”
“얼마든지요. 그런 일은 혼자보다 둘이 낫죠.”
“하하. 그것도 에우제비우가 자주 하던 말이야.”
“진짜요?”
당시 많은 축구선수가 그랬지만, 에우제비우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철도 노동자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파상풍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며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포르투갈령(領) 모잠비크에서 자란 에우제비우는 지역 클럽에서 뛰었는데, 당시 투어를 온 브라질 클럽의 감독 눈에 띄게 된다.
이 감독이 바로 1950년대 브라질 대표팀의 일원이자, 수비형미드필드로서 클럽 커리어 529경기 131골의 엄청난 기록을 남긴 주제 카를로스 바우에르(Jose Carlos Bauer)다.
바우에르는 에우제비우가 뛰는 모습을 보며 첫눈에 반하게 되었고, 곧장 그를 브라질로 데려가려 했으나 여러 이유로 거절을 당하고야 만다.
하지만 그는 에우제비우라는 재능을 모잠비크에 남겨둘 수 없다고 생각했고, 수소문하던 중 브라질 대표팀의 전(前) 감독과 SL 벤피카의 현(現) 감독이 연줄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바로 비센테 페올라와 벨라 구트만이다.
“그가 겸손했던 이유는 늘, 자신이 얻은 기회 때문이었어.”
당시 에우제비우의 어머니는 아들이 축구선수로 돈을 벌 만큼은 되지 않는다 생각했고, 에우제비우 역시 축구보단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지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었다.
하지만 바우에르의 적극적인 설득에 마음이 조금씩 돌아섰고, 베올라를 통해 구트만을 주선 받은 그는 리스본의 한 이발소에서 만난 벤피카의 감독에게 에우제비우를 추천하게 된다.
당시 구트만은 이를 단박에 거절하려고 했었지만, 신세를 진 적이 있었던 비센테 페올라의 부탁이었기에 못 이긴 척하고 모잠비크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벨라 구트만과 여기 SL 벤피카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에우제비우는 자신이 단 한 번도 축구 선수로 성공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지. 축구를 너무 좋아했지만, 본인의 재능을 전혀 몰랐던 거야.”
“……네.”
처음엔 단순히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시작한 대화였지만, 어느새 난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어쩐지, 나와 비슷한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것 역시 자네랑 비슷해.”
“네?”
“훗. 내가 몰랐을 것 같나? 자네도 축구를 관두려고 했었지. 집이 가난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말이야.”
“…….”
축구선수로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게 된 뒤로 가끔 그랬지만,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나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게 가끔은 소름 끼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름이 끼치진 않고, 그냥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순전히 나의 과거 때문에.
만약 축구를 관뒀다면, 난 어땠을까?
“여기에도 그런 식으로 온 친구들이 있네. 예를 들어, 저기. 곱슬머리에 키가 길쭉한 녀석 보이나?”
“네. 보여요.”
마누엘은 내게 구스타보 멘도사(Gustavo Mendoca)라는 아이를 소개해 주었다.
브라가 북쪽 외곽에 있는 아마레스(Ameres)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축구공과 축구화가 없어 맨발로 다 떨어진 테니스공을 차는 걸 보고 입단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곳 SL 벤피카는 기본적으로 입단이 확정된 선수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또 학교 교육도 병행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형편이 나쁜 아이들에겐 여러모로 좋은 선택지가 되어주고 있다.
꽤 재능이 있는 아이라고 판단한 마누엘이 직접 구스타보의 부모님을 만나 설득하는 일을 했고, 큰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정식으로 유스에 포함될 거랬다.
테스트에 참여한 건 이것이 입단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인데, 여기엔 구스타보 말고도 그런 아이들이 몇 명 더 있다.
“가난하다고 해서 축구를 하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지. 그런 아이 중에서 누군가는 에우제비우처럼 될 수 있어.”
“네, 그렇죠.”
“그래. 그러니 부디.”
“?”
“내가 언젠간 저 아이들에게 자네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군.”
“…….”
뭐라고 해야 할까.
처음엔 그냥 구단이 시킨 일이니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곳에 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난,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것들을 얻어가고 있다.
SL 벤피카로 이적하기 전 한국으로 갔을 때, 몇 년 만에 돌아간 서울에서 만난 사람 중 내게 가장 특별했던 분은 다름 아닌 이광종 감독님이었다.
나는 당시 어째서 날 연령별 대표팀에 뽑아주신 거냐고 물었는데, 감독님은 내게. ‘네가 뛰는 시합을 봤고, 네가 축구를 무척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넌 누구보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어.’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스스로 축구에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멈추기로 했던 것 말이다.
덴마크에서는 몇 번이나 내가 축구를 잘하지 못한다고 여겼었지만, 이곳에 와서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메시를 만나고 좌절을 겪었을 때도,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뿐이지 축구를 잘하지 못한다거나 더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아마, 내게 필요했던 건 자신감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
그리고 그때 날 지켜봐 준 누군가에게서 들은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나라는 사람을 조금 바꿔 놓았던 것 같다.
“저기, 있죠?”
“응?”
“오늘 저는 이 클럽이 조금 더 좋아진 것 같아요.”
“하하. 그거 잘 됐군.”
“네. 정말 그래요.”
봄이라고 착각이 될 정도로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지금, 난 새삼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기까지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