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96)
195화
2013년 3월 15일. 런던 SW6 1HS, 영국. 풀럼, 풀럼 로드. 스탬퍼드 브리지(Stamford Bridge. Fulham Rd, Fulham. London SW6 1HS, England).
30분 전까지 런던을 비추던 햇살은 어느새 꽁꽁 자취를 감춰버렸다.
하늘을 가린 먹구름 아래로 가랑비가 흩날렸고, 바람도 무척 거세게 불었다.
전형적인 영국 런던의 날씨.
뜬금없는 천둥 번개도 쏟아진다.
쿠궁- 쿠궁-!
번-쩍!
“신기한 일도 다 있군. 자네가 말인가?”
그리고 조용한 사무실 안, 새치가 잔뜩 섞인 갈색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을 지닌 사내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조금 아래쪽에서, 또렷한 발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그가 최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가? 자네의 친구는 아닌 것 같네만.”
-하하. 늘 의견이 같을 수는 없죠, 로만.
“알겠네. 아쉽지만, 이번엔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네, 그럼.
딸깍-
전화가 끊기는 소리가 들리고, 손을 뻗은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는 스피커폰의 버튼을 눌렀다.
러시아의 기득권층인 올리가르히(Олигархи)이자, 과거 러시아의 주지사. 그리고 다양한 사업에 손을 뻗은 기업가인 로만은 첼시 FC의 구단주로 더욱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런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그의 유별난 성격 때문이다.
똑, 똑, 똑, 똑.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턱을 괸 채, 다른 한쪽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던 로만.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어느새 맑게 갠 런던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뭔가 수를 써야 해.’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현재, 첼시 FC의 감독을 맡은 로베르토 디 마테오(Roberto di Matteo)의 역량에 심각한 의문을 느끼는 중이었다.
최근 두 번의 시즌에 걸쳐 총 2억 유로의 금액을 이적시장에 쏟아부었음에도, 결과가 썩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인내심이 빈약한 데다가 간섭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로만은 그래서, 올 시즌 후 감독 교체를 결정한 상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를 만나고자 휴가를 보내고 있던 하와이로 찾아가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미, 첼시 FC의 다음 감독자리는 결정된 상황이다.
“…….”
휴대폰을 꺼내든 로만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잠시 뒤에 그는 상대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날세. 피곤할 텐데 미안하군. 그에게 이야기는 해봤나? 긍정적이었다고? 정말인가? 그래. 알겠네. 고맙군. 그래. 어제 승리를 축하하네. 그래.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하지.”
딸깍-
다시 전화를 끊은 로만은,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 생각한다.
그는 이틀 전, 2013년 7월 1일을 기해 첼시 FC로 돌아오게 될 네마냐 마티치에게 김다온과의 대화 창구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현재 에이전시가 없는 김다온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인데, 다행히도 좋은 대답을 얻은 것 같았다.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었던 로만이지만, 가장 믿고 있던 이로부터 이적과 관련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받은 지금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만 했다.
로만은 김다온의 이적을 위해, 현재 리스본에 있는 조르제 멘데스와 통화를 했었다.
과거 멘데스의 인터뷰도 있었고, 에이전시가 없는 상태가 된 김다온에게 당연히 제스티후테가 접근했을 거라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만약 김다온이 제스티후테의 고객이 되었다면, 그들과 좋은 관계에 있는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멘데스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김다온은 우리 에이전시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멘데스는 당분간, 김다온과의 계약 의사가 없다고 했다.
제스티후테의 영입 철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의 영입과 관련해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를…….’
현대 축구에서, 김다온처럼 주목받는 선수가 에이전시 없이 지내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가까운 시일 내에 그의 에이전시가 결정될 텐데, 기왕이면 클럽과 좋은 친분이 있는 쪽이 되었으면 한다는 게 로만의 바람이었다.
다가올 이적시장에 쓸 돈은 이미 준비가 되었기에, 남은 건 구체적인 일을 진행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런 로만을 방해하는 건, 재산을 축적해온 방식과는 달리 비교적 깨끗한 방식으로 클럽을 운영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이다.
“휴우- 어렵군.”
로만은 자신의 취미인 축구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순수한 열정을 지키려고 했다.
물론 그것이 너무 과해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 다시 런던의 하늘은 까만색 구름이 껴, 또 한차례 빗줄기를 흩날리기 시작한다.
쿠궁-!!
오늘 런던의 날씨는 첼시 FC 구단주의 성격만큼이나 변덕이 심하다.
***
2013년 3월 16일.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교육센터. SL 벤피카 클럽하우스.
기마랑이스 원정을 하루 앞두고, 일정을 모두 끝낸 나는 클럽하우스 꼭대기에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똑똑똑-
“누구세요?!”
“나야!”
“오-!”
얼른 옷을 챙겨입고 문을 열자, 우리들의 편의를 돌봐주는 다니엘 아브릴(Daniel Abril)이 서 있었다.
퇴근 중인 걸로 보이던 그는, 내게 손에 든 것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전시를 얼른 구하는 게 좋을 거야.”
“하하. 네. 그래야죠.”
“그래. 아무튼, 잘 자.”
“네. 조심히 가요. 고마워요!!”
“별말을!”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다니엘을 잠깐 쳐다본 뒤, 문을 닫고 객실로 들어선 나는 봉투를 뜯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리스본 to 파리〕
〔파리 to 인천〕
오늘 오전 한국행과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표를 구해달라고 클럽에 부탁했는데, 지금 막 그것을 받아든 것이다.
내일 경기가 끝난 뒤, 나는 리스본으로 돌아와 하루 쉬고 19일에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도착 예정일은 21일인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19일 하루 파리에서 머물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조아쓰~’
지-익!
혹시나 깜빡할까 봐, 지퍼를 열어 티켓을 미리 가방 안에다 넣어두었다.
그러곤 다시 침대로 뛰어들어, 집에서 가져온 서류를 펼쳐 들었다.
처음 제스티후테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던 서류는 이제, UCN과 나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다.
[그림자는 어쩌면 현시점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그의 영향력은 에이전시 계와 써드 파티, 그리고 영국 내 클럽 다수에 퍼져 있다.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그는 1년 이내에 Predator라는 에이전시를 설립하고자 한다.]현실성이 넘쳤던 제스티후테와는 다르게, 이 그림자와 관련된 내용은 너무 허황된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난 곧장 페이지를 넘겨버렸고, 서류의 가장 마지막에 적힌 스텔라 에이전시의 내용을 살폈다.
‘선수를 위해. 정말일까?’
스텔라의 철학이라는 늘 선수를 위해 생각한다는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이들과 일하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능력이야 차고도 넘치는 곳이다.
2011년 여름 가레스 베일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키는 과정에서 수완을 증명했고, 지금도 주로 EPL에서 뛰는 선수들을 관리하며 빅클럽에 늘 창구를 열어두고 있다.
잠깐 벤피카에 대한 생각을 접고 나의 미래만을 생각한다면, 스텔라와 일하는 건 분명 괜찮은 선택이다.
“…….”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망설이는 중이다.
어쩐지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런 슈퍼-에이전트와 함께하는 순간부터, 나의 의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멍청한 생각인 걸까?
‘그렇지만, 그런 건 정말 싫어.’
그래서 난 프랑스 파리에서 메이사를 한 번 더 만나보려고 했다.
런던 호텔에서 만났을 때 보았던 그의 눈빛이, 스텔라를 선택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하아-”
이제 더는 볼 것이 없는 서류를 옆에다 내려놓으며, 난 누운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일 나는 막시와 함께 선발 풀백으로 나서고, 왼쪽에서 뛰며 니코와 함께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 이길 수 있을 거다.
‘아마는 무슨. 이겨야지.’
FC 포르투는 여전히 우리의 바로 뒤에 있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은 선두다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리그와 유로파를 병행하는 상황에서, 당분간은 대표팀까지 참여해야 한다.
체력과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시간이 될 게 분명하기에, 어느 때보다도 건강을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자자.’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난 생각을 거두고 몸에 힘을 풀기로 했다.
그러자, 수마는 순식간에 날 덮쳐들었다.
얼마든지 날 잡아 잡수소.
***
·2013.03.17. 경기결과(Liga zon Sagres 23R)
Vit. 기미랑이스 0 : 4 SL 벤피카
[골] 오스카 카르도소 : 전반 38분(리마)에제키엘 가라이 : 후반 16분(니코 가이탄)
제로니모 베가 : 후반 37분(엔초 페레즈)
호드리구 : 후반 94분(엔초 페레즈)
김다온 ? 95분 출전(평점 8.0/팀 내 공동 4위)
***
“드르러—-엉…… 퓨우~”
“…….”
“드르러—-엉…… 퓨우~”
으아,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저, Em?”
.
.
2013년 3월 19일. 스페인 상공(Over Spain).
옆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곯아떨어진 남성이 엄청나게 코를 골아대기 시작했다.
이미 근처에 있는 사람 몇몇은 귀마개를 착용했는데, 이어폰도 효과가 없었던 난 승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키로 했다.
“괜찮다면 저기 비어 있는 곳으로 가도 될까요?”
“…….”
“드르러—엉!!!…… 컥, 컥. 흐음- 쩝, 쩝.”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고마워요.”
상황을 파악한 승무원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통로 옆의 좌석으로 옮긴 나는 최대한 먼 쪽에 붙은 채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승무원들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비행기가 만석이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저…….”
“응?”
맑은 하늘 아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다온 맞죠?”
“아- 응. 맞아. 포르투갈 사람이니?”
“…….”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곤 옆쪽을 바라보았고, 난 그쪽에 부모님이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내 눈에 아이는 8살쯤으로 보였는데, 그럼 아마 대충 5~6살쯤일 것이다.
이쪽 애들은 보통 발육이 빠르니까.
팔을 사용해 살짝 일어선 나는, 눈이 마주치곤 어색한 웃음을 짓는 한 중년의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미소를 살짝 지어 보인 뒤, 도로 좌석에 앉으며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파리에 가니?”
“네. 아빠가 거기에 있어요.”
“멋지구나. 이리와. 여기 앉아도 돼.”
“…….”
수줍음이 많은 소년은 한참을 고민하다 내 옆 빈자리에 앉았고, 나는 곧바로 사인해준 뒤에 아이의 부탁대로 사진도 몇 장 찍어주었다.
“벤피카를 좋아하니?”
“…….”
“아니라고? 그럼 스포르팅?”
“…….”
“그것도 아니야?”
고개를 끄덕인 아이는 자신이 토트넘 핫스퍼의 팬이라고 말했다.
“토트넘? 혹시 영국인이니?”
“아뇨. 아빠가 토트넘 팬이에요.”
“아, 그래?”
뭐, 대충 사연이 있겠지.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닌지라, 난 아이에게 친근하게 굴며 대화를 몇 마디 더 주고받았다.
어차피, 조금 심심했던 차다.
“이름이 뭐니?”
“다리오. 다리오 테셰이라.”
“다리오! 좋은 이름이네.”
대략 10분 정도 다리오와 수다를 떨고 나자, 나는 아이의 아버지가 파리의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지금은 한 달 만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것도 말이다.
“왜? 학교가 싫어?”
“……애들이 절 놀려요.”
“왜?”
“말이 조금 느려서…….”
아무래도 다리오는 5~6살이 아니라 8살이 맞거나 그 전후일 것 같았다.
발육이 느린 아이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고, 그런 경우는 대부분 학교에서 놀림을 받기 쉽다.
나도 그랬으니까.
“잘 들어, 다리오.”
“?”
“형이 맞춰볼게. 채소를 잘 안 먹지?”
“!! 어떻게 알았어요?”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형 보여? 응? 이 탄탄한 근육 보이지?”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다리오를 보고 있으니, 이 아이가 얼마나 순수한지를 알 것 같았다.
그만큼 부모님이 잘 키운 것이겠지만, 또래들 사이에서는 놀리기 딱 좋은 아이일 것이다.
“채소를 고기랑 항상 같이 먹어주면, 형처럼 이렇게 튼튼한 사람이 될 수 있어. 그럼 애들이 너를 놀리기도 쉽지 않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
“애들이 널 심하게 괴롭히면, 가랑이 사이를 그대로 걷어차 버려. 축구에서 슈팅 알지? 슈팅할 때처럼 강하게 차버려도 돼. 단, 사람이 많으면 한 방 갈기고 도망쳐. 바람처럼 달리라고. 약속할 수 있지?”
“!! 네!”
책임질 수도 없는 상황에서 괜한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것을 생각했을 땐 이미 다리오는 엄마가 있는 자리로 다시 돌아간 다음이었다.
그렇게 조금 멋쩍어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으니.
“후후. 그게 당신의 방법이에요?”
“응?”
“미안해요.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당신이 워낙 아이에게 친절하게 굴어서. 아이를 좋아하나 봐요?”
“그런 셈이죠. 늘 저런 아이들을 만나니까요.”
“팬으로서요?”
“절 아시나요?”
“그럼요. 이래 봬도 리스본 토박인걸요.”
내가 자리를 옮기는 것을 허락해준 승무원이 비어 있는 뒤쪽 자리에서 다리오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리스본 토박이라 말한 여성은 굳이 자신의 가슴을 살짝 이쪽으로 내밀어오며, 자신의 이름을 보여줬다.
그냥 말로 해줘도 될 건데.
난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속으로 그걸 삼키며 승무원의 이름을 확인해 보았다.
“라리사. 반가워요.”
“후후. 파리에는 오래 머무나요?”
“아뇨. 사람만 만나고 곧장 한국으로 떠나요. 대표팀 경기가 있거든요.”
“사람? 혹시 애인?”
“아뇨. 에이전트요.”
“오-! 그렇군요.”
대화의 끝에 찾아온 이 불편한 침묵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라리사 카스트로(Larrisa Castro)에겐 몇 초가 더 필요했는데, 그건 그녀가 이 말을 하려 용기를 가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었다.
“혹시 괜찮다면, 리스본에서 봐도 될까요?”
“글쎄요. 전 일주일 뒤에나 다시 돌아와요.”
“괜찮아요. 어차피 저도 일주일 뒤에나 시간이 비는걸요.”
“하하. 그것참 편리하네요.”
“…….”
난 이제야, 라리사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긴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고, 진한 이목구비와 조금 발달 된 턱을 지닌 전형적인 포르투갈의 미인이다.
“참고로, 저는 이 옷을 입었을 때가 가장 못나 보여요.”
“하하하. 그런 의미에서 쳐다본 건 아니었어요.”
“그러면요?”
이런 방식으로 추파를 받아보는 건 처음이라, 딱히 거절할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뭐, 밥 정도야.’
그래서 저녁을 함께하는 것쯤은 괜찮다는 생각에, 난 라리사의 번호를 물었다.
그러자.
“잠시만요.”
부리나케 어딘가로 사라졌던 그녀는, 다시 내게 돌아와 새하얀 무언가를 건넸다.
라리사의 명함이다.
“모델? 진짜요?”
“네. 부업이죠. 거기에 적힌 제 인스타그램의 주소로 들어가면, 사진들도 볼 수 있을 거예요.”
“…….”
친절하게도 명함에 적힌 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준 라리사는 이제야 볼일이 끝났다는 듯, 자신은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뒤쪽 칸막이로 걸어갔다.
그런데 얼마 지니자 않아.
“꺄아아-! 어떡해! 나 미쳤나 봐!”
라리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래서 난 이렇게 외쳤다.
“다 들려요!”
“…….”
그러자 라리사가 커튼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고, 잠깐 수줍은 표정을 짓더니 윙크를 찡긋하곤 다시 쏙 고개를 집어넣어 버렸다.
그것참, 사랑스러운 여잘세.
파리로 향하는 길.
난 이것을 아주 작은 행운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
75016 파리, 프랑스. 1-7 루 장 리쉬팡. 브라흐 파리스(Brach Paris. 1-7 Rue Jean Richepin. 75016 Paris, France).
한낮 파리 공항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호텔로 향해 짐을 푼 뒤에 호텔이 있는 파리 16구를 돌아다녔다.
우선 쇼핑 거리로 유명한 파시 거리(Rue de Passy)를 찾아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샀고, 볼로뉴 숲(Bois de Boulogne)을 방문해 유명한 푸드트럭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
시즌 도중이다 보니 이런 시간은 내게 사치처럼 느껴졌는데, 정신적인 피로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하하. 잘했어. 그런 것도 가끔 필요하지.”
“네. 이곳에선 절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진짜 편하더라고요. 다들 제가 관광객인 줄 알던데요?”
“하하하하. 나쁜 일은 없었고?”
“네. 쇼핑한 건 따로 호텔로 미리 보내뒀거든요.”
“그거 잘했네.”
50일여 만에 다시 만난 메이사는 지난번보다는 훨씬 더 말끔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날 그냥 보자고 한 건 아닐 거잖아.”
“네. 맞아요.”
“계약을. 할 생각이니?”
“죄송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
난 메이사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
“지금까진 총 세 곳을 놓고 고민 중이에요.”
“하나는 나고. 다른 두 개는?”
“스텔라, 그리고.”
아레나 11 스포츠 그룹(Arena 11 Sports Group) 역시, 내가 현재 고려하고 있는 에이전시 중의 하나다.
독일에 기반을 둔 아레나는 근래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회사 중 하나이고, 2명의 공동 CEO를 포함한 11명의 스태프가 선수들의 편의를 돌봐주고 있다.
한 명의 에이전시가 한 명의 선수와 끈끈함을 유지하는 것과는 다르게, 직원 하나하나가 업무를 분담하기 때문에 보다 더 전문적인 관리가 가능하단 장점이 있었다.
물론 공동 CEO가 주로 선수들의 창구를 맡아주기에, 그들과 좀 더 친근해질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흐음- 둘 다 좋은 회사네. 우리보다 더 나아.”
“그렇게 쉽게 인정해도 돼요?”
“안 될 건 뭐야? 어차피 다 알아봤을 거잖아?”
UCN과 틀어지고 또 그들과 이별하게 되면서, 내가 이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부분이 바로 투명한 관계였다.
에이전시가 나로 인해 이득을 취하길 바란다는 것을 100% 인정하는 대신, 그들 역시 내게 100% 솔직하기 바라고 있다.
이런 면에서 메이사와 그의 회사 스포츠 커버는 가장 앞서나갔고, 바로 이것이 내가 파리까지 올 결심을 하게 된 이유였다.
“전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당신이 전에 말한 꿈도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론 일을 함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렇긴 해.”
“그래서 말인데.”
“??”
이것은 최근 줄곧 생각해오던 것이었다.
오늘 메이사를 시작으로, 한국에 갔다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온 뒤에는 스텔라와 아레나에도 각각 전화를 걸어 같은 조건을 내걸 생각이었다.
그리고 내 조건을 받아들이고 또 내가 바라는 대로 일을 이끌어주는 사람이, 미래 내 에이전시가 될 것이다.
그때까진.
메이사를 포함한 각 에이전시는 비밀리에 나의 대리인으로서 활동해주길 바란다.
이는 가레스 베일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때 사용했던 방법과 완전히 같은 것이고, 외에도 수많은 축구선수와 감독이 팀을 옮길 때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메이사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것이다.
“좋아. 받아들일게. 활동 시점은?”
“시즌이 끝난 뒤요. 물론 그 전에 저랑 따로 이야기하셔야 해요.”
“물론이지. 그야 당연한 거야.”
“네. 그럼, 이제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요?”
“응?”
“가요. 제가 예약해 놨으니까.”
“하하. 좋아. 가자.”
호텔 로비에서 일어난 나와 메이사는 택시를 타고 파리 시내의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우뚝 솟아 있는 에펠탑의 화려한 불빛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
작가의 말 ? 아마 이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치게 될 땐, 다온이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분량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ONE GAME에서 민혁이 드래프트만큼이나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이라, 열심히 풀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