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99)
198화
모든 전술에는 장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는 대한민국이 오늘 선택한 4-3-3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카타르의 감독 파하드 알-타니(Fahad Al-Thani)는, 경기 전 선발명단을 확인하곤 대한민국의 측면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것을 주문했다.
기본적으로 그들의 경기 접근방식은 선 수비 후 역습이 되겠지만, 빌드업을 전개할 땐 측면을 공략하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4-3-3이나 4-2-3-1과 같은 전술의 약점은 늘 측면 공격수와 풀백 사이의 공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빌어먹을. 막아-!!!]오늘 카타르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
(서현욱)
“됐어요!”
(김정수)
“고오오오올-!! 지동원!!”
.
·전반 27분
대한민국 2 : 0 카타르
호르헤 삼파올리는 지난 1년, 본인의 축구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축구 환경과 선수들 전반의 전술 이해도가 철저히 포백에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기는 했다.
삼파올리의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던 기성용은, 포백이 쓰리백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완벽하기 이해하고 그것을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해주었다.
하나, 문제는 결국 사이드백에 있었다.
스퀘어 무브먼트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사이드백의 공격가담을 수행해낼 선수가 없다시피 했는데, 공격과 수비 양쪽에 재능을 보이는 이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처음부터 차두리의 존재를 눈여겨보곤 있었지만, 2012년 그의 폼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2012년에 치러진 9번의 A매치 경기에서 총 14명의 사이드백을 실험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며, 결국 삼파올리는 자신의 고집을 밀어붙이는 걸 포기하고 승리를 추구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 평가전이면 모르겠으나, 무대는 월드컵 예선이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로나 부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김다온의 폭발적인 성장이 있었다.
런던 올림픽 기간 내내, 김다온의 플레이는 삼파올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토록 바라던 완성형 풀백의 등장.
세계에서 경쟁할 실력마저 갖췄다.
이후부터 삼파올리는 2014 월드컵 이전에 자신의 축구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고, 마침내 오늘 그것을 확인하며 어느 때보다도 기뻐하고 있었다.
다른 이가 보기엔 삼파올리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지만, 턱을 괴는 척하며 가린 그의 입꼬리는 위로 잔뜩 치켜 올라 있다.
‘바로 이거야.’
자신이 평생 ‘가장 완벽한 축구’라 믿어 의심치 않던 ‘비엘사시즘’을 바탕으로 한 경기.
김다온과 차두리의 적극적인 공격가담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순간적으로 3-3-3-1 혹은 3-1-3-3의 전형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카타르를 제압 중이다.
비엘사시즘은 세 명의 최종 수비수에게 각각 좌우와 중앙을 맡기고, 그 위에 똑같은 라인 한 줄을 더함으로써 포백 체제의 더블 플랫(두 줄 수비)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금 더 공격적으로 바뀔 때면 3-1-3-3으로 전형을 다시 바꾼다.
이때 공격수의 위치를 보고 사이드백이 유기적으로 10번(RAM/LAM) 혹은 11번(RW/LW)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지금까진 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작정 공격에만 가담하느라 역습을 당하기 일쑤였고, 어떨 때는 공격가담이 늦어 흐름이 끊어졌다.
또 전방압박이 무엇보다 중요한 비엘사시즘에서 이런 사이드백의 공격가담은, 단순히 공격의 숫자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미 없는 점유율을 유지시킨다는 측면에서도 무척 중요한 역할이 된다.
쉽게 생각해 보면 수비수가 최전방 혹은 그 앞에서부터 압박을 해주는 것이기에, 상대는 자연스레 측면으로의 전진을 포기하고 중앙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비엘사시즘은 기본적으로 중앙을 크게 강조하는 개념이었고, 특히 구자철처럼 미드필드 전역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그 효과는 더 배가 될 수도 있다.
고작(?) 두 명의 사이드백이 바뀐 게 다지만, 대한민국의 경기력이 눈에 띄게 바뀐 것에는 전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희망이 있겠어.’
월드컵의 전망을 늘 비관적으로 바라봤던 삼파올리.
하지만 이제, 그는 처음으로 희망이란 이름을 가진 씨앗의 싹을 틔워보기로 한다.
***
·후반 36분
대한민국 3 : 0 카타르
벤피카에서도 일방적인 경기를 자주 펼쳐오긴 했지만, 국가대표로서 겪는 이런 흐름은 기분이 또 색달랐다.
이미 오래전에 지쳐버린 카타르의 선수들.
그들은 지금, 진짜로 누워 있다.
“편안한가 보네. 하긴, 한국 침대가 좋긴 좋아.”
“침대는 역시 시몬스~”
“뭐냐? 광고 노려?”
“에-이. 누가 듣는다고요.”
피식하며 웃는 성용이 형이 물병을 사이드라인 바깥에 던지면서 움직이고, 나도 물병을 던진 뒤에 자리를 찾아 나섰다.
‘재미있네.’
벤피카에서는 되도록 공수의 비율을 5:5로 정확히 맞춰두려고 하지만, 삼파올리 감독님은 기본적으로 내게 6:4에 기준을 맞추고 경기에 임하기를 바라고 계셨다.
난 오늘 무척 자주 페널티에어리어 안쪽까지 진입했고, 실로 오랜만에 오른쪽 크로스에 머리를 가져다 대보기도 했다.
때때로 난 동원이 형과 함께 최전방 공격수의 역할을 맡았고, 하프라인에서 쭉 드리블하여 페널티에어리어 근방까지 접근하는 등, 공격본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공격하고 있으니 축구가 무척 재미졌다.
수비 실력에 자존심이 달렸다면, 재미는 역시 공격이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게 되자 카타르는 후반전을 시작하며 수비수 하나를 빼고 공격수를 투입하는 변화를 주었고, 지금은 완전히 지쳐버린 8번을 빼버렸다.
대신 투입된 건 17번이었는데, 지금 들어가는 포지션으로 봐서는 중앙 미드필드 자리로 갈 셈인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이쪽 측면은 누굴까?
‘응?’
수비 위치를 잡고 카타르의 진형을 확인해 보는데, 어째 내 앞쪽이 텅텅 비어 있었다.
두리 형이 있는 쪽은 여전히 칼판 이브라힘(Khalfan Ibrahim)이 있었는데, 일시적으로 자리가 빈 것인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모처럼 측면 깊숙한 곳까지 볼이 전개된 카타르가 두리 형의 앞에서 크로스를 띄워 올리지만, 공은 그냥 골라인을 나갔다.
경기장엔 다시 큰 환호성이 들려왔고, 우렁찬 응원가가 그 뒤를 잇는다.
{“거칠은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을. 마아시자.”
어렸을 때 TV에서 들었던 노래인데, 가사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늘 대표팀 경기에서 스쳐 지나듯 들었기 때문일까?
아마, 그럴 거다.
“여기!!”
성용이 오른쪽으로 볼을 전개하고, 자철이 형에게서 패스를 연결받은 보경이 형이 좋은 원터치 패스로 두리 형에게 오른쪽 측면 공간을 열어줬다.
간단히 카타르의 수비가 뚫렸고.
‘가자.’
페널티에어리어로 전진하는 흥민이 형을 확인하며, 난 사이드라인을 따라 공격 진영 깊숙한 곳으로 달려나갔다.
카타르가 우리의 이런 공격 방식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다 보니, 교본에 적힌 것처럼 정석적인 플레이만 하면 충분한 상황이다.
흥민이 형이 중앙을 택하면 난 오버랩을 통해 사이드라인으로 길게 벌리면서 공격에 가담했고, 만약 흥민이 형이 사이드라인으로 나서면 언더랩으로 센터포워드 위치까지 올라섰다.
지금은 전자의 상황인 건데, 코너플랫 근처까지 전진한 두리 형이 이쪽을 한 번 흘끔 바라보고 크로스를 보내왔다.
어떤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소 높았던 크로스는 중앙의 공격수들을 넘어 내 뒤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크!’
급하게 달리기의 제동을 걸며 멈춰 서고, 난 곧장 뒤를 돌아 축구공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크로스가 다소 높았던 탓에 속도가 빠르지 않았던 관계로, 축구공이 사이드라인을 빠져나가기 전에 발을 가져다 댈 수 있었다.
축구공은 사이드라인 바로 앞쪽에서 정지됐고, 관성에 의해 좀 더 전진하게 된 나는 보폭을 좁고 빠르게 가져가며 속도를 줄이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렸을 땐, 근처에서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는 카타르의 선수가 보였다.
그래서 난 왼발을 쭉 뻗어, 축구공을 슬쩍 옆쪽으로 굴렸다.
촤—–악!!!
“!!”
‘위험하잖아!’
아마도 내 다리를 걸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시도한 태클인 것 같았는데, 그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두었던 나는 폴짝 뛰어오르는 것으로 태클을 피할 수 있었다.
바닥에 착지한 나는 왼쪽 앞으로 천천히 굴러가는 축구공을 향해 다시 움직였고, 이번엔 접근을 해오는 카타르의 4번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를 넘기니 바로 또 하나가 나오네.
오늘 오른쪽 풀백을 보면서도 센터백 역할도 동시에 소화했던 모사브 마흐마우드(Mosaab Mahmoud)는, 금방 내게 태클을 걸려던 선수와는 다르게 신중함을 보이려는 것 같았다.
내가 속도를 늦췄을 때처럼 보폭을 좁히기 시작한 건데, 굳이 그에 장단을 맞추기 싫었던 나는 다시 한번 왼발로 볼을 앞쪽으로 차넣었다.
그러자 깜짝 놀란 마흐마우드가 빠르게 이에 대처하려고 한다.
그러나.
“!”
쿵-!
너무 성급하게 다시 속도를 높이려고 하다 보니, 발이 미끄러진 그는 비틀거리며 오른쪽 옆구리부터 쓰러지고야 말았다.
난 그런 마흐마우드를 빠르게 스쳐 지났고, 페널티에어리어에 접근하며 골대 주변의 상황을 확인해 보았다.
현재 카타르의 수비수들은 두 명이 손쉽게 벗겨지자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는데, 밀집해 있는 형들 때문에 내게 접근하지도 못하고 우물우물 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나는 더 전진하는 일은, 카타르의 수비가 접근할 기회만 주는 거라 판단을 내렸다.
내 선택은 슈팅.
하지만.
‘사람이 많네?’
무작정 강한 슈팅을 차는 것이 본래 내 성격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지만, 빠르게 머리를 굴려본 나는 파 포스트에다 시선을 두며 가장 확률이 높다고 믿는 선택을 했다.
앞으로 굴러가는 축구공의 빠르기에 맞추고자 달리기의 속도를 늦췄고, 대신 정확한 스텝을 가져가며 왼발을 축구공 바로 옆에다 놓아두었다.
그리고 뒤따르는 오른발은, 지금까지 내가 시도했던 그 어떤 슈팅을 할 때보다 부드럽게 움직였다.
축구공의 정 가운데에서 약간 오른쪽 아래에 치우친 지점에 발등 안쪽을 가져갔고, 이후엔 퍼 올린다는 느낌으로 휘두르며 후속 동작 때에는 골라인 쪽으로 무게중심을 가져갔다.
이렇게 해야, 왼쪽으로 더 많이 휘어져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치 크로스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축구공은 그대로 카타르의 골대를 향해 움직였고, 살짝 멈칫한 카타르의 키퍼 카셈 부르한(Kasem Burhan)이 한두 발 뒷걸음질을 치다 몸을 높이 띄워 올렸다.
고개를 잔뜩 치켜든 자세로 오른팔을 치켜드는 그.
하지만 그 높이는 조금 부족해 보인다.
슈팅을 마무리한 내 시선은 부르한의 손보다 약 1m 정도 높아 보이는 축구공에 고정되어 있었고, 이내 축구공은 새하얀 손바닥 뒤로 사라지더니 옆쪽 그물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곧장 몸을 돌린 나는 그대로 코너 플랫을 향해 달려나갔고, 왼쪽 가슴팍에 있는 태극기를 잡아당겨 입을 맞춘 뒤에 힘껏 뛰어오르면서 그대로 오른쪽 주먹을 휘둘렀다.
“이야아아아아아-!!! VAMOS!!!!”
…….
습관이라는 게 무섭다고, 난 서울 상암에서 VAMOS를 외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뭔 상관이람.
난 열광하는 대한민국 팬들의 앞에 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포효했다.
“으아아아아아-!!!”
이건, 내 A매치 첫 번째 골이니까.
.
.
·경기결과
대한민국 4 : 0 카타르
[골] 구자철 : 전반 12분(기성용)지동원 : 전반 27분(차두리), 후반 3분(김보경)
김다온 : 후반 40분
※ 김다온의 통산 A매치 성적(현재 진행형)
: 2경기/2선발/0교체(IN)/0교체(OUT)
: 188분/1골/1어시스트/1경고/0퇴장
***
삑-! 삐익-!! 삐이익-!!
경기 종료의 휘슬이 울린 순간, 난 두 손을 치켜들며 기쁨을 마음껏 표현했다.
그리곤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며, 형들을 찾았다.
저기, 자철이 형이 걸어오고 있다.
“형-!! 이겼어-!!”
“야! 이거 받아라.”
“응?”
자철이 형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축구공을 내게 보냈다.
“이런 경기는 축구공을 기념으로 가져가야지. 안 그래?”
“오-! 형, 땡큐!”
“잘했어. 짜식.”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내 머리를 잔뜩 매만진 자철이 형이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고, 이번에 내게 다가온 사람은 모처럼 불만 없이 경기를 마친 성용이 형이었다.
오늘 형은 피보테(Pivote)의 역할을 소화했는데, 이는 흔히 ‘앵커(Anchor)’라고 알려져 있다.
측면 수비수가 풀백/윙백으로 구분이 되듯, 볼란치 역시 수행하는 역
할에 따라 다양한 단어로 불리곤 한다.
두 명의 센터백 사이에 서며 때때로 최종 수비에 가담한 것은 물론, 항상 우리 포백을 보호해주었다.
작년 하비가 맡았던 역할을 오늘 성용이 형이 했다고 보면 됐는데, 물론 두 사람의 플레이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하비가 앵커 중에서도 조금 더 위치선점과 보호에 중점을 둔다면, 성용이 형은 볼배급 역시 신경을 쓰며 레지스타(Regista)의 역할을 소화할 때도 있었다.
사실 볼란치의 역할명칭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야 좀 더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형, 오늘은 몇 점?”
“70점, 인마. 홈에서 카타르 정도는 잡아줘야 했잖아. 아직 멀었어.”
“아우, 누가 완벽주의 아니랄까 봐.”
“끝나자마자 또 지랄이냐?”
“에-이. 지랄이 뭔지 보여줘요?”
“??”
“형 축구화. 말한다?”
“야!”
형수님과 대충 이야기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성용이 형은 오늘 축구화에 SY♡HJ라는 글자를 직접 마커로 새기고 나왔다.
분명 라커룸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없었는데, 우리들이 놀릴 것을 알았는지 경기 시작 직전에 화장실로 가 몰래 적고 온 것 같다.
아까 하프타임 때 이것을 두고 자철이 형과 내가 미친 듯이 놀려댔는데, 어째서인지 당한 것은 나 혼자였다.
“형수 쪽에 가요.”
“아이, 됐어. 안 그러기로 했단 말이야.”
“연예인이랑 연애하면 힘들어요?”
“그냥. 서로 배려하는 거지.”
“이열~~ 어르으은~~”
“아우, 이 새끼 진짜!”
엉덩이를 걷어차려고 한 성용이 형의 킥을 피하면서, 얼른 떨어진 나는 혀를 한번 날름하곤 다시 라커룸을 향해 움직였다.
오늘도 삼파올리 감독님은 먼저 돌아가지 않고, 우리가 모두 피치를 빠져나갈 때까지 앞쪽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다온! 축하한다!]앞쪽으로 다가서자, 손을 뻗어 온 감독님은 나의 첫 번째 A매치 득점을 축하해 주었다.
난 일단 이 축구공에 바람을 뺀 다음에 리스본으로 가져가 집에서 다시 바람을 집어 넣을 생각이었다.
이대로 가져갈 순 없으니까 말이다.
{“김다오오오온-!!!”}
{“사인해줘요, 사인!!”}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것도 있고, 조금 시간이 있기도 하여 난 축구공을 스태프에게 맡기며 팬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내게 유니폼이나 종이 등을 마구잡이로 내밀었고, 일단 손에 잡히는 것부터 하여 사인을 시작했다.
시합을 끝낸 직후라 피곤하거나 귀찮지 않냐고 묻는다면, 고작 5초면 될 일을 두고 피곤 어쩌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만 유별난 것도 아닌 게, 지금 근처엔 다른 형들도 팬들의 요청으로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물론, 내 쪽이 가장 사람이 많았지만.
{“어-?!”}
“응?”
{“비너스 권우리다!!!”}
“??”
갑자기 위쪽이 소란스러워져 고개를 올려보니, 지금까지 TV에서만 보던 연예인 한 사람이 생긋 웃으며 내게 유니폼을 내밀어 오고 있었다.
“저도 사인 좀 해주세요.”
“…….”
난 권우리 씨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는데, 이쁜 것도 이쁜 것이지만 지금 내 뇌를 지배하는 가장 큰 생각은 바로 이것이다.
‘우-와! 얼굴 X나 작아!’
차마 이 생각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지는 못했지만, 내 2/3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난 사인을 하며 다시 유니폼을 돌려주었고, 권우리 씨는 유니폼을 받아들려다 무언가를 아래로 떨어트렸다.
탁-! 탁, 탁, 탁, 탁!
“어머, 어떻게 해. 어, 죄송해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허리를 굽힌 나는 소리가 들린 쪽을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거기에 있는 건 눈에 익숙한 검은색 볼펜이었다.
학창시절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썼을 ‘모X미’펜 말이다.
그런데 왜 이걸?
“어?”
펜을 집어 들려는 순간, 난 거기에 뭔가가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권우리 : 010-3X8O-4567]“…….”
휴대폰 번호.
난 곧장 이게 무슨 뜻인지를 눈치챘고, 펜을 집어 든 뒤에 그전에 사인하고 있던 펜으로 바꿔치기하여 권우리 씨에게 돌려주었다.
펜이 바뀐 것을 분명 알았을 텐데, 권우리 씨는 고맙다고 하며 정말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역시, 연기자를 겸업할 만하다.
‘재미있네.’
이번 A매치 기간, 난 졸지에 두 명의 여성에게서 번호를 받은 셈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