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
2화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는 단연 눈에 띄었다. 비록 유니폼이 커 보일 정도로 작은 체구였지만, 자신보다 20cm 이상 큰 선수를 상대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특히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순간, 나와 함께 있던 스카우트 팀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무척이나 특별했고, 실제로도 내 인생에서 본 가장 특별한 재능이다.”
-톰 버논 via 김다온의 스카우트 일화를 말하는 인터뷰에서.
지난 3주는 내 16년 짧은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6월 5일 내게 찾아왔던 분은 F.C 노르셸란의 구단주였고, 그분은 놀랍게도 날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에, 넌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구나.]F.C 노르셸란의 구단주 톰 버논(Tom Vernon)씨는 의 창립자로, 가나에서 시작한 축구를 통한 자선사업이 큰 성공을 거둬 CEO의 반열에 올랐다.
현재 은 가나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에 여러 자선사업을 여는 한편, 장래 가나 출신의 유망주를 F.C 노르셸란에 스카우트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지난 6월 수원을 찾았던 것도 U-17 월드컵을 앞두고 치러진 4개국 초청 대회에 가나가 포함되었기 때문인데, 본래는 가나의 선수를 스카우트하려고 생각했다 한다.
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바꾸었다고도 했다.
바로, 나 때문에.
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었다.
톰 버논 씨는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프리카 지역 스카우트 담당자였다.
내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했다고 말을 했을 때, 그분은 자신의 경력을 꽤 강조했었다.
아마도, 신뢰를 보여달란 의미였던 것 같다.
하지만 누나는 통역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사기 아니냐며,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었다.
그 앞에서 어색해하는 통역관과 의아해하던 구단주님의 얼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차후 모두 다 사실이라는 게 밝혀진 뒤에도, 나나 가족들은 얼떨떨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리 어렵지 않았던 고민 끝에 나와 가족들이 거부의 의사를 밝히자, 구단주님은 이를 통역하려던 통역관을 가로막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네 가족의 집안 사정을 들었단다. 그리고 말하는데, 덴마크에서는 축구를 하기 위해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아. 또 우린 네가 축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너와 네 가족을 모두 덴마크로 부르고 싶구나. 물론 우리가 가족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울 거란다.]구단주님의 제안은 말로만 듣던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에 스카우트 된 승우나 승호, 결희의 이야기는 우리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그런 제안을 받을 줄이야.
물론 나야 바르셀로나는 아니지만, 가족 모두를 지원해 주겠다는 이야기는 정말 뜻밖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부터, 부모님의 눈빛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누나는 한 번 더 의심했다.
[대체 무슨 돈으로 우리 가족을 책임진다는 말이죠?]통역관이 누나의 질문을 통역하자 톰 버논 씨는 기다렸다는 듯, 막힘없이 자신의 비전을 설명했다.
가족 모두를 덴마크로 데려오는 한편, 아버지에게 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자신의 재단엔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다음은, 이제 누나 차례였다.
[그뿐만 아닙니다. 다은? 맞죠?]톰 버논은 누나가 대학진학을 할 수 있도록도 돕겠다고 했다.
비록 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경제적인 부담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대학진학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 학비는 추후 내가 받을 주급에서 차감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니, 무작정 빚을 지게끔 만드는 건 아니란다.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적힌 서류를 받아든 순간에도, 우리 가족은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180도 태도를 바꿔 무조건 사인을 하라고 외친 누나가 아니었다면, 부모님이나 나는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일 자체가 전부 처음이었으니까.
얼떨결에 사인을 하고, 확답이 오기로 한 날의 저녁.
드르륵-!
“아직이야?”
온 가족이 화장실의 앞을 지독히도 들락거렸었다.
왜 화장실이냐고?
그야, 거기에서만 와이파이가 잡히니까.
가난했던 우리 집에서 컴퓨터를 가지는 사치 따위는 누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 답이 올지도 모르는데, 기약 없이 피시방에서 돈을 쓰기도 뭐했다.
그래서 누나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빌려주었는데, 친구가 쓰던 낡은 것이었다.
대신 누나는 유심칩을 바꿔 구형 폴더폰을 잠깐 쓰기로 했었다.
무심하게 시간만 흘러가던 오후,
“왔다-!”
“왔어? 진짜? 진짜? 뭐래?”
난 온 가족의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왜냐하면, 그것은 F.C 노르셸란으로부터의 계약 확정 메일이었다.
제목은 친절하게도 한글이 적혀 있었고, 난 축하한다는 말을 읽자마자 양손을 들어 올렸었다.
가족들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언제? 언제 출발하래?”
“그게······.”
이후, 학교에 말을 하여 덴마크로 향하는 과정은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다.
엄마는 못된 행동을 일삼던 편의점 주인아주머니에게 멋지게 한마디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셨고, 이후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서의 짐을 하나하나 정리하셨다.
워낙에 가진 것이 없어 이틀 만에 모든 정리가 끝난 뒤엔, 가족들이 모두 모여 몇 년 만의 외식도 했다.
“먹어. 먹어. 두 번 다시는 못 먹을 수도 있어.”
“아냐, 아빠. 덴마크에도 삼겹살은 있던데?”
“진짜?”
“응. 인터넷에서 봤어.”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나 공항으로 출발하려던 찰나,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낯선 남자로부터의 것이었다.
“여보세요?”
“응- 다온이지?”
“그런데요?”
“어른이 말하는데 ‘그런데요’라니. 뭐, 됐어. 이제 공항으로 출발하고 있지?”
“······대체 누구세요?”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나의 전담 통역관이라고 했다.
덴마크에 거주하고 있는 22살의 대학생으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통역자리에 지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축구에 관해서라면 하나도 모르니,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자세하게 설명해 줘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런데······ 너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왜 그러시죠?”
-내 고용인에 대해 조사를 해봤는데 말이야······.
자신의 이름을 전제철이라고 밝힌 남자는 벌써 나의 영입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란다.
톰 버논 씨는 가끔 이렇게 황당한 영입을 해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는데, 결국 다들 몇 년 만에 덴마크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로 인해 불행해진 가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는데, 택시 안에서 표정관리를 하는 게 어찌나 힘이 들던지.
출발하기도 전에, 다시 짐을 싸고돌아갈 뻔했다.
진짜로.
-어쨌거나. 큰 기대는 마. 뭐 그래도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먹고 살 수는 있을 거잖아?
“어······ 아닌데요?”
-뭐?
짐을 정리하면서 다시금 느꼈는데, 정말 우리 집은 찢어지도록 가난했다.
월셋집의 보증금 천만 원이 목돈이라 부를 수 있는 전부였고. 그마저도 이리저리 절반 가까이 소모되었다.
그래서 현재 가족들은 내가 받게 될 돈으로 생활비를 해결해야만 한다.
아버지가 받을 월급 대부분은 구단 측이 임대 해준 집의 월세와 누나의 과외비로 들어갈 것이다.
EU 국가 출신이 아닌 우린 연합이 제공하는 각종 특혜를 받을 수 없고, 특별비자를 통해 직업을 가지는 것만 가능하다.
참고로 내가 받게 될 주급은 세후 3,500크로네(약 63만 원)정도.
덴마크의 물가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4인 가족이 버티기에 한 달 생활비로 240만 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얼마라고? 240만원?
“그런데요?”
“허허 ······ 행운을 빌게.”
“······.”
다시 또 모든 것이 불안하게 바뀌었지만, 난 끝내 가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제철이 형의 말이 사실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
그리고 막상 덴마크에 도착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모든 것이 새롭고 또 희망으로 넘쳐났다.
어쩐지, 가난과도 이별한 것 같았고 말이다.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 전부 파이팅 한 번 할까?”
“하나, 둘, 셋!”
“파이팅!”
삐이이익-!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럽다며 경비원에게 주의를 듣긴 했지만, 어쨌거나 우린 기쁜 마음으로 마중을 올 구단 측의 사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뒤에 만난 사람 좋아 보이는 여성과 인사를 나누고 또 집을 소개받았다.
한국에서 살았던 집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쾌적한 환경에, 나와 누나는 기쁨의 몸부림을 치며 침대로 뛰어들었다.
부모님 역시 체통을 지키려고 표정관리를 하셨지만, 기분은 우리와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서의 꿀맛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난 뒤.
“Everybody listen Up!”
어라, 영어네.
그렇게 난 이제, F.C 노르셸란의 정식선수가 되었다.
***
2009년 7월 1일. 셸란, 덴마크. 파룸, 파룸 파크 2. 라이트 투 드림 파크(Right to Dream Park. Farum, Farum Park 2. Sjælland, Denmark).
#오전 10 : 13
F.C 노르셸란의 1군은 총 28명의 스쿼드로 구성되어 있다.
나까지 포함하면 29명으로, 팀의 핵심은 주장이기도 한 등 번호 7번의 니콜라이 스톡홀름(Nikolai Stockholm)이다.
어제 팀이 나눠준 자료로 대강 예습을 했는데, 실은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 누나의 도움을 빌려야만 했다.
그래도 누나는 나랑 다르게 공부를 잘했으니까.
누나는 무척 성실하게, 내 예습을 도와줬다.
[모두, 새로운 꼬마를 환영하도록 하지! 이름은 그러니까······ 음, 이름이 뭐라고 했지?]“오-! 왓쭬네임. 음, 그러니까······ Da-on! Da-on Kim.”
[아, 그랬지 참. 크흠. 다음! 킴이다!]뭐? 다음이 아니라 다온이라고!
하지만 난 마음속으로나 외칠 뿐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외국인.
······당연한 건가.
아무튼, 잔뜩 쫄아 들어 있다.
[아무튼! 아직 15살밖에 안 된 애송이니까, 너무 거칠게 다루지 말고 살살 부탁한다! 알겠나?] [15살씩이나 됐다고? 난 처음에 왜 10살짜리가 이곳에 있는가 했네. 이봐, 꼬마!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냐? 앙?] [그러지 마, 니키. 금방 모르텐이 잘 봐 달라고 했잖아.] [크큭. 어리바리 한 게, 놀려먹는 맛이 있겠어.]주위에서 나를 보며 수군덕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게,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오늘은 첫날이다.
자고로, 첫인상이 가장 중요한 법.
[이봐, 네 소개를 해야지. 그나저나, 통역은 어디 있어?]감독님의 손짓을 보아하니, 대강 나 자신을 소개하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떨리는 마음으로 나가, 어제 누나와 함께 준비한 문장들을 내뱉었다.
발음에 신경을 쓰기보단 자신감이 중요하댔지?
좋아, 그렇게 하자.
[흠. 그러니까. 하이. 내 이름은 다온. 그냥 킴이라 불러주면 돼. 그리고 음. 잘 부탁해.]이만하면 아주 잘했잖아?
난 스스로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친근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무척 험상궂은 얼굴이 내게 와.
[음, 다음이라고 했지?]“······.”
이름을 잘못 부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난, 아무 반항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진짜.
‘무서워······.’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날 잡아먹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