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03)
202화
과거, 축구에서 감독은 가장 무력해 보이는 존재 중 하나였다.
드넓은 피치 위에서 감독의 목소리는 외롭게 울려 퍼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고, 기껏해야 하는 일이라곤 선수교체가 전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다.
축구라는 종목이 기틀을 갖춘 이후부터, 축구 감독은 늘 팀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런 오해를 받는 이유는 단지, 축구 감독의 활동은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아서다.
작전타임이 있는 농구와 번트 등과 같은 작전이 수시로 펼쳐지는 야구와는 달리, 축구에서 감독이 진정으로 빛나는 순간은 항상 그림자 속에 감춰져 있다.
바로, 지금처럼.
.
.
·전반 22분
뉴캐슬 유나이티드 1 : 0 SL 벤피카
첫 번째 실점 상황과 비슷한 장면이 지나간 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얼굴로 그라운드를 주시해왔던 조르제 제수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사이드라인 앞쪽으로 다가선다.
그러곤, 그는 큰 목소리로 변화를 알렸다.
“이봐아-!!!”
조르제 제수스가 오늘 경기의 전술로 더블 볼란치 형태의 4-4-2 선택한 이유는, 뉴캐슬의 주전 스트라이커 뎀바 바(Demba Ba)의 부상 때문이었다.
뎀바 바가 없는 상황에서 선발로 출전이 유력했던 파피스 시세는 오프-더-볼과 골 결정력에서 장점을 발휘하는 선수였다.
그래서 뉴캐슬은 파피스 시세가 출전한 경기에서는 측면돌파와 공간 패스를 선호해왔는데, 이에 대응하기 가장 좋은 전술은 보통 두 명의 볼란치를 세우는 것이다.
중앙수비진영 근처에 많은 선수를 밀집시킴으로써 패스를 보낼 공간을 없앨 수도 있고, 측면으로 패스가 돌았을 땐 사이드백+센터백+볼란치를 한꺼번에 두어 숫자 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뉴캐슬은 이를 예상했다는 듯 측면 공격수인 조나스 구티에레즈와 가엘 비지리마나(Gael Bigirimana)에게 색다른 역할을 부여해 버렸다.
직선적인 측면돌파를 최대한 자제시키고, 좌우 간격만을 최대한 벌리게 하여 사이드백을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이런 배치로 인해, 벤피카 수비의 간격은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 공간을 무사 시소코가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결국엔 그의 활약이 경기를 뉴캐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한 방 먹었군.”
“쓰리백인가요?”
“그래.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
전술 변화를 지시하고 돌아온 조르제 제수스가 바닥에 있는 물병을 하나 집어 든다.
이제부터 벤피카는 기존의 4-4-2 (D6)를 버리고, 3-4-3 전형으로 뉴캐슬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말이야.’
제수스는 지금 막 마티치를 센터백으로 옮기고, 스트라이커로 나선 니코 가이탄도 중앙 미드필드로 끌어 내렸다.
이런 변화를 통해 제수스가 기대하는 효과는, 무사 시소코의 전진으로 생긴 8번 자리의 공백을 뉴캐슬의 선수들 전부가 의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만약 뉴캐슬이 측면 자원의 위치를 중앙으로 옮기려 한다면 벤피카의 윙백과 윙어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고, 라인 전체를 높이려 한다면 많은 뒷공간이 생겨난다.
그런 뒷공간은, 벤피카가 연습해왔던 플레이에 취약점을 드러낼 것이다.
만약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풀린다면, 벤피카는 손쉽게 뉴캐슬이 가져간 주도권을 되찾아올 수도 있다.
‘일단 지금은 선수들을 믿을 수밖에.’
제수스는 하프타임이 되면, 뉴캐슬의 전략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합이 진행 중인 지금은 구체적인 지시까지는 내릴 수 없었고, 현 상황에서 최대한으로 보낸 힌트를 선수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게 최선이었다.
축구는 다른 구기 종목과는 달리 작전타임이 존재하지 않고, 팀을 재편할 수 있는 시간도 전후반이 바뀌는 시점의 단 15분이 전부였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축구 감독은 종종 피치 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정처 없이 휩쓸려 다니는 힘없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활동이 대중의 눈에 드러나지 않아서다.
축구 감독들이 하나의 시즌과 또 하나의 경기를 준비하며 해왔던 모든 일은 항상,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상황과 경기와 경기 사이의 날들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축구의 거의 모든 것이다.
그렇기에.
‘너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어.’
축구는 항상 감독이란 지휘자가 빚어내는 90분 동안의 예술일 수 있었다.
***
(박성문)
“쓰리백으로 바꾼 이후부터 벤피카의 수비가 조금씩 안정화 되고 있네요. 조르제 제수스 감독의 기민한 전술 변화가 주효하고 있습니다.”
.
이럴 때면 늘 느끼는 거지만, 난 멀어도 한참은 멀었다.
제수스 감독님이 포메이션에 변화를 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이 탈출구가 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대체 뭐가 바뀐 것일까?
파앙-!!
{“우오오오…….”}
가슴을 쓸어내리는 뉴캐슬의 팬들을 보며, 난 다시 생각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설명하는 건, 무척 쉬운 일이라고.
바로, 공격과 수비. 이 두 가지가 바뀌었다.
‘뭐, 이건 농담이지.’
우선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팀의 수비가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는 것이었다.
마티치가 센터백 사이에 자리를 잡으면서, 무사 시소코가 파고들기 전 늘 한 명의 수비수가 그를 미리 전담 마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중앙에서 직접 수비 사이 공간으로 찔러 들어오는 패스가 많았는데, 시소코가 전담 마크를 당하면서부터 뉴캐슬은 파피스 시세를 활용하기 위해 측면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이건 딱히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시소코가 전진하게 되면 뉴캐슬은 10번(AM) 위치가 순간 비게 되는데, 그러면 늘 우리가 측면 숫자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최소 3명(사이드백+센터백+중앙 미드필드)이 측면에 있는 우리와는 달리, 뉴캐슬은 기껏해야 둘(윙백+윙어)이 전부다.
그리고 파피스 시세는 오늘 작심한 듯 중앙에만 머물고 있었기에, 공격 진행이 원활치 않게 된 뉴캐슬은 백패스를 보내는 횟수가 크게 늘었다.
지금도, 내 앞에서 구티에레즈가 뒤로 볼을 돌렸다.
지금처럼 중원과 측면 양쪽 모두에서 빌드업이 원활치 않게 되면, 할 수 있는 남은 옵션은 긴 패스를 보내는 것뿐이다.
“온다!!”
지금도 뉴캐슬의 최종 수비에서 보내어진 패스가 높이 떠올라, 느리게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다.
하지만 저런 롱패스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우리의 수비를 앞쪽으로 끌어낸 상태에서 뒷공간을 파고드는 방식이 되어야만 한다.
지금처럼 수비가 잔뜩 눌러앉은 상태에서 후방으로 패스가 돌아간 뒤 어쩔 수 없이 패스가 전해지는 상황이라면, 수비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무엇보다, 뉴캐슬의 오늘 라인업은 이런 롱-볼 축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가라이(189cm)-마티치(194cm)-루이장(196cm)으로 구성된 우리 센터백 라인을 상대로, 왜소(183cm)해 보이기까지 하는 파피스 시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본래 그의 스타일 자체도 탁월한 위치선정과 뛰어난 슈팅 능력을 기반으로 몸싸움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기에, 이런 롱-볼로는 파피스 시세의 장점을 활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뉴캐슬은 시소코를 계속 높은 위치까지 올려 헤더 경쟁에 뛰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10번이 비워진 상태라 세컨볼을 따내는 쪽은 늘 우리가 되었다.
그러면, 뉴캐슬의 6번(DM)들이 올라오면 되지 않냐고?
맞는 말이다.
하나, 그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마티치! 앞쪽!”
“…….”
루이장이 따낸 헤더를 마티치가 받아, 홀로 자유로이 있던 엔초에게 패스를 보낸다.
현재 피치를 보면, 뉴캐슬 공격진 아래로는 온통 붉은색 유니폼이다.
버논 아니타와 요안 카바유는 현재 전진을 거의 하지 못하고, 하프라인 근처에만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3-4-3으로 전형이 바뀐 후 최소 두 명의 공격수가 항상 센터서클 주변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인데, 수비 뒷공간이 취약한 뉴캐슬은 6번(DM)과 4번(CB)으로 이들을 둘러싸 공간으로 향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말하면, 2명의 공격수를 막기 위해 하나의 공간(Zone)에 네 명의 수비수를 배치했다는 의미가 된다.
두 명의 볼란치에서 한 명의 볼란치 체제로 바뀌었음에도, 오히려 빌드업이 훨씬 더 편해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대처하려면 뉴캐슬의 센터백 중 하나가 전진해 주어야 했는데, 그에 대한 대비는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이 상황을 신비롭게 받아들이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었다.
뉴캐슬의 전형만 놓고 본다면, 우리가 밀릴 때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공세를 취하던 때도, 뉴캐슬은 8번(CM)과 10번(AM) 자리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었다.
심지어 우리도, 그게 약점인 줄 몰랐다.
틱-!
“으아아-!!”
니코의 중거리 슛으로 얻어낸 코너킥 상황에서, 날카로운 킥에 반응한 마티치의 헤더가 아슬아슬하게 크로스바 위를 벗어났다.
얼핏 굴절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골포스트 가장 윗부분을 살짝 스치지 않았나 한다.
득점이 되었다면 참 좋았을 장면이지만,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실망하기엔 이르다.
헤더 후 돌아오고 있는 마티치를 하프라인 근처에서 맞이하며, 난 그에게 박수와 함께 응원의 말을 보냈다.
“아까웠어. 그래도 좋은 헤더였다고.”
“그래.”
마티치를 보낸 뒤, 수비 위치로 돌아가며 전광판을 바라본다.
어느새, 전반 30분이 되었다.
포백에서 쓰리백으로 전형이 바뀌고 기존에 준비했던 것과 전혀 다른 축구를 하느라, 나를 포함한 팀 전체에게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젠 적응이 끝났고, 주도권을 쥐었으니 남은 건 득점을 통해 승리를 가져오는 일이다. 그리고 뛰면 뛸수록, 전술을 바꾼 것이 신의 한 수처럼 느껴지고 있다.
더욱이 현재의 베스트일레븐 중 다수는, 팀이 3-4-3을 활용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선수들이다.
우선은 베르나르두와 니코.
둘은 공간을 만든다.
“에-이! 여기야!”
세 명의 공격수 중 하나로 뛰고 있는 베르나르두지만, 저 녀석은 3-4-3일 때는 10번(AM)에 훨씬 더 가까운 플레이를 펼친다.
지금도 보면 베르나르두는 왼쪽 측면을 아예 비워두고 엔초의 근처까지 이동했는데, 저렇게 되면 니코의 위치에 따라 팀 전형이 3-4-1-2 혹은 3-5-2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여기에서 니코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선 곳에 따라 공격할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니코가 선 방향에 공격 숫자가 많다 보니 수비가 그쪽으로 몰리게 되고, 그럼 사이드백은 수비 간격을 좁히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숫자가 많은 쪽으로 이동한다.
만약 니코가 오른쪽에 선다면 뉴캐슬의 오른쪽 사이드백이 수비 간격을 좁혀오게 되고, 팀의 왼쪽 윙백에게 많은 공간이 생겨난다는 거다.
그리고 지금, 니코는 왼쪽에 있다.
그 말은 즉.
‘가자.’
내가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가도 된다는 의미였다.
오늘 뉴캐슬은 중앙밀집 형태이고, 우리가 빌드업을 할 때 다수의 선수를 중앙으로 모은다.
측면 공격수들은 물론이거니와, 뉴캐슬의 사이드백 역시 패스의 진행 경로를 예상하고 중앙으로 움직이거나 미드필드의 전진으로 생겨난 6번(DM) 포지션을 커버하려 한다.
그래서 니코가 왼쪽 진영에서 내게로 패스를 보내왔을 땐, 왼쪽 사이드백 마사디오 하이다라(Massadio Haidara)는 내 근처가 아닌 센터서클 주위에 있었다.
니코가 보낸 패스의 속도가 무척 빨랐기에, 하이다라가 날 커버하는 건 여의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뉴캐슬의 센터백 마이크 윌리엄슨(Mike Williamson)이 전진해 내 앞에 섰다.
입 아프게 말했지만, 전진 혹은 압박은 늘 뒷공간을 비워둔다는 의미를 감추고 있다.
‘어서, 빨리.’
하이다라가 제대로 된 수비 위치를 찾으려면 여전히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윌리엄슨은 공격을 지연시키려고 했지만 난 그런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볼 처리를 망설이는 것. 혹은 드리블 돌파를 하려는 것은 수비수가 가장 바라는 일이다.
그래서 난 절대 그러지 않을 거다.
내 선택은.
“다온!!!”
“…….”
툭-
뉴캐슬의 수비진영이 갖춰지기 전에, 빠르게 축구공을 뉴캐슬 진영의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그들이 감추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공간을 들춰낼 테니까.
마이크 윌리엄슨이 내게 온 지금 센터백 한쪽은 텅텅 비어 있고, 양가-음비와가 최대한 적절한 위치를 잡아보곤 있으나 거기엔 한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로니모가 윌리엄슨과 양가-음비와의 사이로 돌파를 택한 것은 매우 훌륭한 판단이다.
왼발로 툭 밀어 보낸 패스가 제로니모가 달려가던 방향 앞에 정확히 도달했고, 그러자 뉴캐슬의 수비 라인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전반 30분을 통틀어, 우리가 얻은 가장 좋은 기회다.
안쪽을 흘끗 본 제로니모가, 재빨리 오른발을 움직인다.
파앙-!
발 안쪽으로 빠르게 굴려 보내는 크로스.
반대편에서 리마가 쇄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촤르르르륵-!!
몸의 중심을 최대한 낮추며 슬라이딩하듯 축구공을 밀어낸 리마의 슈팅이, 뉴캐슬의 그물을 갈랐다.
“!!”
과정이야 조금 다르지만, 전반 11분의 실점 장면을 그대로 복사해 가져다 붙인 것만 같은 득점에, 나는 크게 환호하며 셀레브레이션 중인 리마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러는 길에, 환히 웃으며 내게 온 제로니모가 어깨동무를 청해온다.
“좋은 패스였어. 타이밍이 진짜 좋았다고.”
“응. 너야말로.”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렇지?”
“물론.”
그래, 제로니모가 옳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게, 우리 SL 벤피카의 진짜 모습인 거니까.
EPL의 빠른 템포를 우리의 실력이 견디게 해줄 거다.
저 앞에서, 리마와 베르나르두가 함께 셀레브레이션을 펼치고 있다.
“으와아아아아-!! VAMOS!!”
“더 지껄여 봐!! 앙?! 더 씨부려 보라고!!”
배짱 좋게도 뉴캐슬 팬들을 도발 중인 동료들에게로 향하며, 난 그런 그들에게 손을 뻗었다.
우리는 곧 서로를 부둥켜안았고, 다가오는 동료들을 더 끌어들여 어려웠던 흐름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했다.
그런 뒤에 난 생각했다.
이게 우리의 진짜 실력이라면, 그 실력을 나오게 만든 사람은 바로.
“마법과도 같았어요.”
전반 42분. 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을 헛디뎌 쓰러진 버논 아니타가 치료를 받는 사이, 난 벤치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 감독님 앞에 섰다.
마치 마법을 본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제수스 감독님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다.
“마법이라. 과연 그럴까? 내가 한 일은 그저, 너희들이 얼마나 훌륭한 팀인지를 떠올리게 만든 것뿐이야.”
“그런가요?”
“물론. 너희들은 처음부터 이렇게 뛸 수 있는 녀석들이었어. 어서 자리로 돌아가 보도록.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네.”
물병으로 내려두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면서, 난 금방 감독님과 나눈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만약 우리가 정말 훌륭한 팀이었고 정답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왜 오늘 전반 초반이 그토록 힘겨웠던 것일까?
그리고 피치 위에서 우리가 정답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고, 또 좋은 팀이라는 것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주 잠깐의 생각일 뿐이었지만, 나는 이 해답을 찾는 일이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걸 예감할 수 있었다.
‘뭐, 시간은 많으니까.’
지금 막 내겐,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 풀어내야 하는 숙제가 한 가지 더 주어졌다.
***
·전반 종료
뉴캐슬 유나이티드 1 : 1 SL 벤피카
“좋은 팀이로군.”
“그러게 말이에요.”
“…….”
레알 마드리드의 18~23세 스카우트 케빈 카스테야노. 그는 지난 2월 크로아티아 평가전에 이어, 오늘도 김다온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뉴캐슬어폰타인을 찾았다.
하지만, 오늘은 다소 목적이 달랐다.
더는 김다온의 기량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이는 그저, 일종의 보여주기다.
레알 마드리드가 꾸준히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김다온과 언젠가 그의 대리인이 될 에이전시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스카우트로서 견디기 힘든 지루한 작업이지만, 이 또한 무척 중요한 과정이다.
“이보게, 자네.”
“네.”
“커피 좀 사다 주겠나?”
“날씨가 괜찮으니, 시원한 거로. 그리고 시럽 두 번을 짜서 가져다드리면 될까요?”
“그게 좋겠군.”
“네. 금방 다녀오죠.”
단숨에 상황을 정리해 멀어지는 남성을 보며, 케빈 카스테야노가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번에는 꽤, 똘똘한 직원을 뽑은 것 같았다.
‘그 머저리보다는 100배는 더 낫군.’
2월에 함께 런던을 찾았던 직원은 진즉에 해고를 당한 상황이다.
이젠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2월의 직원은, 케빈 카스테야노의 만행을 견디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경찰에 연행됨과 동시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케빈은 스카우트로서의 실력은 출중하나, 상사로서는 최악인 그런 유형이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무려 7명의 직원을 갈아치운 레알 마드리드의 유능한 스카우트는, 본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늘, 한결같은 사람이다.
썩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흐음- 확실히 저건 장점이야.’
다시 축구에 관심을 옮긴 케빈 카스테야노는, SL 벤피카가 펼치는 매력적인 축구에 대해 생각했다.
조르제 제수스가 좋은 감독이라는 건, 이젠 축구계의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 됐다.
벤피카 이전의 커리어만 보면 절대 유능하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2009년 6월 16일 벤피카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부터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요란스러운 스타일은 아니나 본인의 개성이 뚜렷하고, 고강도의 압박과 전술적 이해도에서 선수들을 크게 성장시킬 줄 아는 그런 감독이었다.
중앙 미드필드에서 재능을 폭발시키지 못하던 네마냐 마티치를 합류 첫날부터 6번(DM) 위치로 끌어내려, 첼시가 다시 탐내게 한 것 역시 제수스의 공로다.
그리고 이런 제수스 아래에서, 벤피카의 젊은 선수들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선수들이, 오늘 그라운드에 나섰다.
‘셋 정도는 확실히 쓸만해.’
케빈 카스테야노가 보기에, 현재 벤피카에서 뛰는 선수 중 빅리그에서 뛸만한 선수는 세 명 정도였다.
베르나르두 실바와 제로니모 베가는 잘만하면 월드클래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재목이었고, 김다온은 이미 세계 최고의 클럽 대부분에서 주전 사이드백으로 뛸 수 있었다.
이들 셋의 가장 큰 장점은 전술에 특별히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인데, 달리 말해 어떠한 전술 아래에서든 일정한 폼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는, 현대 축구에서 무척이나 큰 장점이 된다.
전술을 타는 선수는, 선호 받기 힘들다.
알렉스 퍼거슨의 말처럼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는’ 현대 축구에서, 한 선수를 위해 전술을 수정한다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는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단 둘뿐이었다.
오늘의 경기만 보더라도, 특정 선수를 위해 전술을 맞추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가 잘 드러났다.
뉴캐슬은 파피스 시세를 어떻게든 활용하기 위해, 팀의 전술을 극단적으로 바꾸는 선택을 보여줬다.
처음엔 그것이 잘 먹혀드는 것 같았으나 벤피카가 그에 대응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파피스 시세는 피치 위에서 무기력했다.
전반 30분 이후론, 볼을 받기조차 쉽지 않았다.
뉴캐슬에 합류한 직후 EPL 14경기에서 13골을 몰아넣는 괴물 같은 활약을 보이며 빅클럽의 레이더망에 올랐던 파피스 시세였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가 빅클럽에서 뛸 재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나쁘지 않은 선수지만, 그를 살리기 위해 팀 전술을 손댈 빅클럽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반면, 어떤 전술에든 녹아들 수 있는 벤피카의 젊은 선수들은 분명 매력적이다.
‘제로니모 베가라. 저 녀석도 가능하다면…….’
김다온의 스카우트가 더 필요치 않은 지금, 케빈 카스테야노의 관심은 자연스레 그 주위의 선수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제로니모 베가에 관심이 갔다.
베르나르두 실바도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왜소한 체격조건이 그를 영입하는 걸 꺼리게 만든다.
키가 작고 기술이 좋은 선수들이 많은 스페인 라리가이긴 하지만, 베르나르두 실바의 기술은 그런 선수들에 견주기엔 많이 모자란 것이 사실이었다.
또 그의 가장 큰 장점인 연계도, 스페인 라리가보다는 EPL에 좀 더 적합해 보였다.
“케빈! 다녀왔어요!”
“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번 시럽을 짠 커피에요.”
“…….”
말없이 일회용 잔을 받아든 케빈 케스테야노.
그는 커피를 홀짝인 뒤,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어? 혹시 뭐가 잘못됐나요?”
“시럽이 너무 적어. 두 번 짠 게 맞나?”
“네. 그럼요! 당연하죠.”
일어선 채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직원에게, 케빈 카스테야노는 말없이 잔을 내민다.
“시럽을 더 짜올까요?”
“아니. 새 걸로 사와.”
“…….”
“곧 이 커피의 얼음이 녹을 거야. 그럼 또 맛이 이상해지겠지. 그냥 차라리 새 걸로 사와.”
“네! 얼마든지요!”
이번에도 순순히 커피를 사러 향하는 직원에게, 케빈 카스테야노는 다시 속으로 만족감을 표현한다.
사실 지금은 커피 맛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나,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그는 직원을 잠시 쫓아낼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어디까지 했더라? 아, 그렇지.’
잠깐 멈췄던 생각의 끈을 다시 부여잡은 케빈 카스테야노. 그는 스페인에 돌아가는 대로, 클럽에 제로니모 베가의 영입을 추천하는 서류를 작성할 결심을 했다.
2014년 여름이나 혹은 2015년 여름을 목표로, 스카우트 작업을 진행해서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좋아. 일석이조로군.’
본인의 선택에 깊은 만족감을 느낀 케빈 카스테야노가 흐뭇해하는 사이.
“카?악! 퉷!!”
성실하고 똘똘하다는 평가를 받는 케빈 카스테야노의 새로운 직원은 그의 커피에 가래침을 뱉고 있었다.
“빌어먹을 인간 같으니라고.”
본래 인간이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