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10)
209화
전반전 15분이 지나면서, 경기의 양상은 피치 절반만을 사용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려워진 스포르팅은 점점 라인이 내려앉았고, 전반 중반부터는 아예 대놓고 무승부를 바라는 방법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앞에, 우리는 조금 고전했다.
거의 7:3으로 볼 점유율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야아아아아아-!!!!”}
두드리면 열리는 법이다.
후반 17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오늘 경기의 선제득점이 만들어졌다.
.
.
·후반 17분
SL 벤피카 1 : 0 스포르팅 CP
스포르팅의 역습 시도를 막아낸 뒤, 중앙에서 볼 전개가 이뤄졌고, 이는 왼쪽 측면으로 길게 빠져 있던 제로니모에게로 연결이 됐다.
안쪽 슬쩍 쳐다본 제로니모가 땅으로 낮게 깔려 들어가는 크로스를 올려보냈고, 리마가 이를 재치있게 가랑이 사이로 흘려내며 스포르팅 CP 수비에 혼돈을 줬다.
패스는 최종적으로 좋은 공간 움직임을 가져간 베르나르두에게 안착했고, 녀석이 논스톱으로 왼발 슈팅을 가져가면서 스포르팅의 골망을 갈랐다.
이제부턴, 좀 더 많은 게 바뀔 것이다.
‘……교체인가?’
스포르팅의 벤치를 바라보니, 선수 교체를 준비 중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윙어 발렌틴 비올라(Valentin Viola)가 유니폼을 입으며, 제수알도 페헤이라(Jesualdo Ferreira) 감독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었다.
아마도, 디에구 카펠이 교체될 것 같다.
‘응?’
한데 곧이어, 18번의 안드레 카리요 역시 제수알도 페헤이라의 곁에 다가서는 게 보였다.
‘둘 다 바꾸네.’
아마도 스포르팅은, 경기력의 원인을 윙에서 찾았나 보다.
측면에서의 공격력이 크게 억제되자, 선수 교체로 변화를 주려는 것 같다.
“에이, 에즈!”
“?”
“저기 좀 봐.”
“…….”
디에고 카펠과 브루마가 직선적인 움직임을 선호하는 정통적인 11번(Wing)이라면, 발렌틴 비올라와 안드레 카리요는 좀 더 현대적인 움직임을 추구하는 인사이드 포워드다.
둘 다 오른발잡이에 좌우 윙 포지션을 전부 소화할 수 있고, 중앙으로 파고드는 경기를 펼친다.
왼쪽에 섰을 때가 전형적인 인버티드 윙어라면, 오른쪽에서는 측면보단 중앙으로 치우쳐 스트라이커와 함께 투톱을 형성한다.
상대 공격진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기에, 우린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며 스포르팅의 선수 교체 이후를 대비했다.
그리고 잠시 뒤.
삑-!!
휘슬을 분 주심이 선수 교체를 알리면서, 스포르팅의 양쪽 윙어가 전부 교대된다.
막시와 내가 해야 할 일을 참 잘했다고도 설명할 수 있는 지금의 장면이지만,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은 경기가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일단, 가까이 온 쪽은 카리요다.
“마티치!!”
나는 마티치에게 좀 더 오른쪽에 집중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러곤 앞쪽의 제로니모에게도 손짓을 보내어, 주앙지뉴의 오버랩을 견제해달란 요청도 했다.
양쪽 윙어를 인사이드 포워드로 바꾸었다는 건, 이들을 통해 중원에 힘을 주고 이때 생긴 공간을 사이드백이 활용하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스포르팅은 이런 변화를 통해, 라인을 잔뜩 끌어 올리고 있는 우리의 측면 위치를 낮게 조절하려는 것 같다.
‘재미있네.’
경기에 여유가 있어서 이런 것이지만, 이럴 때면 축구가 장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나의 수가 두어지면 거기에 대응하는 반응이 나오고, 그에 따라 공격하는 쪽과 수비하는 쪽이 결정된다. 악수(惡手)는 패착(敗着)이 되고, 절묘한 수 하나가 판세를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
지금 스포르팅은 공세를 취하는 수를 두었고,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결정하는 건 온전히 선수들의 몫이다.
‘온다!’
앞에서 패스를 전달받은 카리요는 동료가 도움을 올 때까지,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등 뒤로 주앙지뉴가 스쳐 지났지만, 제로니모가 최종 수비라인까지 커버를 와주어 그쪽으론 패스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카리요에겐 가까이 접근한 안드레 마르틴스에게 패스를 보내는 것과 1:1을 선택해 돌파하는 것이 남았었다.
그중 카리요가 선택한 것은 1:1 돌파였고, 크로스오버로 한 번 속임수 동작을 준 그는 보디페이크를 섞어 오른쪽으로 무게중심을 크게 준 이후에 정면을 택했다.
화려함이 섞인 좋은 기술로 수비를 현혹할 만큼은 되었으나, 그가 신경을 쓰지 못했던 건 주변의 상황이었다.
‘어딜 감히.’
“!!”
카리요는 내 가랑이 사이를 목표로 삼고, 축구공을 거기로 굴려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골라인이 있는 쪽을 선택지에서 닫아두었던 난, 다리를 잽싸게 좁히면서 축구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만약 직전 상황에서 주앙지뉴의 오버랩이 없었다면 이런 동작에 속았을 수도 있겠지만, 제로니모가 한쪽을 막아주고 있었기에 저쪽은 진즉에 생각하지 않은 상태였다.
설령 카리요가 골라인 쪽으로 돌파를 시도했더라고 해도, 크로스를 허용하기 전에 수비에 둘러싸였을 거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남는 건 많지 않다.
더군다나 이미 카리요의 특징과 성향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드리블 돌파를 차단하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것이었다.
“다온!”
최종 수비 바로 앞에서 패스를 요구하는 마티치에게 축구공을 보낸 뒤, 난 천천히 피치를 살피며 천천히 걸어나갔다.
오른쪽으로 전개된 빌드업은 지금, 니코를 거쳐 베르나르두에게로 향하고 있다.
***
〔“스포르팅의 선수 교체입니다. 13번. 미겔 로페스가 빠져나가고, 6번. 할리드 불라루즈가 투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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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31분
SL 벤피카 2 : 0 스포르팅 CP
제수알도 페헤이라는 스포르팅 CP가 최근 1년 사이에 임명한 네 번째 감독이다.
작년 2월 지휘봉을 잡았던 리카르두 사 핀투가 초반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임시감독을 맡은 수석코치 오세아누 크루즈에 이어 임명된 프랑소와 베르카우테렌 역시,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이 되었다.
실은 이들 모두 구단주의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사임한 것이지만, 성적이 나빴던 건 사실이기에 해임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올해 1월 8일부터 스포르팅 CP를 지휘한 제수알도 페헤이라.
그는 이후 스포르팅 CP를 6승 3무 3패란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하나, 제수알도 페헤이라는 이런 생각도 했다. 현재 스포르팅 CP의 스쿼드와 실력으론, 리그 중위권이 어울린다고 말이다.
이것을 모르는 구단주와 그에게 아부하기 바쁜 클럽의 수뇌부들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길 바라면서 마지막 경기에서의 전승을 요구했지만, 페헤이라는 오늘 경기가 그 한계를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서, 돌봐주고 오게.”
“네.”
김다온의 돌파를 저지하다 사타구니에 부상을 입은 미겔 로페스(Miguel Lopes)는, 말 그대로 황새를 쫓다 가랑이가 찢어지고야 만 뱁새의 모양새였다.
그의 돌파 이후 벤피카의 추가득점이 터져 나온 상황이라, 로페스가 부상으로 실려 나간 장면은 스포르팅 CP의 사기를 더욱 크게 떨어트렸다.
고개를 들어 슬쩍 전광판을 바라본 제수알도는, 선수들이 의욕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있는 힘껏 손뼉을 쳤다.
“아직 안 끝났어!! 열정을 좀 보여!!”
하지만 그는 이미, 경기가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불어, 약속받은 자신의 미래도 말이다.
스포르팅 CP의 수뇌부는 남은 경기에서 전승했을 때에만, 올해 5월 19일까지로 예정된 자신의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통보를 한 상태다.
착잡한 마음을 억지로 숨기며 벤치로 돌아온 제수알도는, 물병을 집어 들고 피치를 멍하니 쳐다봤다.
경기 내내 미쳐 날뛰고 있는 벤피카의 양쪽 풀백들이, 지금도 맹렬한 기세로 스포르팅 CP를 몰아치고 있다.
파앙-!!!
{“오오오오-!!”}
지금도 니코 가이탄의 패스를 이어받은 막시 페헤이라가, 빨랫줄과도 슈팅을 선보였다.
현시점 포르투갈 리그 No.1 골키퍼로 평가받는 후이 파트리스우의 눈부신 선방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스포르팅은 추가득점을 허용했을 것이다.
오늘 경기 양 팀을 통튼 MoM을 수여 받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후이 파트리시우는 지금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이는 중이다.
그러나 골키퍼가 팀 내 최고의 선수처럼 보인다는 건, 그날의 경기력이 참담하단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골키퍼가 할 일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날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 역시 점점 더 높아진다.
‘후우- 이거야 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로군.’
분명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벤피카와 스포르팅은 ‘리스본 더비’에 걸맞은 라이벌리를 뽐내며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피치 위에서 펼쳐왔다.
하지만 그것은 불과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무너졌고, 현재 리스본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SL 벤피카였다.
그리고 거기에 큰 몫을 보탠 포르투갈 리그 최고의 사이드백 듀오는, SL 벤피카가 마치 피치 위에 12명 혹은 13명의 선수를 두고 뛰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도 둘은 벤피카의 공격이 시작되자 나란히 공격에 가담했고, 최종 공격수의 위치까지 올라선 뒤에 공격이 끝나자 마치 쌍둥이처럼 뛰어 하프라인까지 내려섰다.
저렇게 두 명의 풀백이 사이드라인 근처의 공간을 지배하게 되면, 측면의 공격수는 자연스레 중앙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또 이는, SL 벤피카가 중원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유가 되었다.
‘멋진 축구로군.’
1981년부터 축구 감독으로 지내온 제수알도 페헤이라는, 오늘 벤피카가 펼치는 축구를 보며 카푸와 카를로스가 함께 뛰던 시절의 브라질 국가대표팀을 떠올렸다.
물론 당시의 브라질 대표팀과 현재의 SL 벤피카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 포르투갈 국내 리그에서의 모습과 위력만큼은 그와 비등해 보였다.
오른쪽 풀백은 공수 밸런스를 갖췄고, 왼쪽 풀백은 공격력 때문에 과소평가되는 수비력과 폭발적인 슈팅 능력을 갖췄다는 점 역시 비슷했다.
“막아-!!”
“…….”
수비진영 부근에서 패스를 돌리다가 축구공을 빼앗긴 스포르팅 CP의 진영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패스를 커트한 니코 가이탄을 티아구 로리(Tiago Ilori)와 스테인 스하르스가 다급하게 막아서지만, 제자리에서 볼을 지켜둔 채 빙그르르 도는 절묘한 개인기에 두 명의 압박은 간단히 벗겨지고야 만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제수알도 페헤이라의 눈에, 쏜살같이 쇄도하는 벤피카의 풀백이 들어왔다.
“오른쪼옥-!!!”
선수들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스포르팅 CP의 감독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쪽을 가리키고 있는 그의 손가락이 무색하게도, 스포르팅의 선수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당황하여 우르르 오른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이런!’
제수알도 페헤이라의 나쁜 예감은 점점 더 커지고, 모여드는 수비수를 똑바로 확인한 김다온이 드리블 중 엇박자로 오른발을 움직여 축구공을 가운데로 띄워 보냈다.
부드럽게 이륙한 축구공은 전혀 빠르지 않았지만, 기습적인 패스에 멈춰버린 스포르팅 CP의 선수들 사이를 통과할 만큼은 충분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던 리마.
오늘도 넓은 활동반경을 보여준 SL 벤피카의 이 공격수는 몸을 뒤로 눕히는 자세가 되어 절묘한 왼발 발리슛을 선보인다.
촤르르르-륵!!
승부에 쐐기를 박는 리마의 추가득점에, 이스타디우 다 루스는 또 한 번 크게 들썩인다.
머리를 감싸 쥐거나 주저앉으며 좌절하고 있는 자신의 선수들을 바라보던 제수알도는, 문득 어느 것에 생각이 미쳐 피치 한쪽을 돌아봤다.
지금은 분명 스포르팅이 공격을 전개하는 상황이었고, 그런 상태에서 김다온이 저렇게 빠르게 공격가담을 했단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곧, 피치의 상황을 보며 깨달았다.
‘이런!’
미겔 로페스를 대신하여 투입된 할리드 불라루즈(Khalid Boulahrouz)가 전혀 오른쪽 공격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는 위치였다는 것을 말이다.
본래 센터백으로 뛰는 할리드 불라루즈는 지금, 스포르팅 CP의 세 번째 중앙수비수 자리에 있었다.
‘완전히 당했군.’
교체명단에 오른쪽 수비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내렸던 결정이었는데, 스포르팅의 오른쪽 수비 뒷공간이 텅텅 빈 것을 확인한 김다온은 이를 놓치지 않고 라인을 높여두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본인 역시 뒷공간을 비워둔다는 위험부담을 짊어져야 했지만, 경기력에 자신감이 있는 그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결국, 모든 건 실력의 문제였다.
완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제수알도는 이제, 선수들에게 지시하여 쓰리백으로 전술을 바꾼다.
하지만 이는 벤피카가 쓰리백으로 바꾸는 것과는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었는데, 추가 실점을 막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이번 변화는 수비를 단단히 틀어 잠그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스포르팅의 전술이 바뀐 순간, 벤피카의 사이드백은 미드필드에서의 빌드업에만 힘을 보탰다.
바쁜 일정을 고려한, 남은 시각 체력을 보존하려는 계산이 깔린 전술적인 변화다.
“…….”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며 제수알도 페헤이라가 할 수 있었던 건, 자신도 저런 사이드백이 있었으면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일이 전부였다.
그런 일이 생길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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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결과
SL 벤피카 3 : 0 스포르팅 CP
[골] 베르나르두 실바 : 후반 17분(제로니모 베가)오스카 카르도소 : 후반 30분(김다온)
리마 : 후반 36분(김다온)
김다온 ? 95분 출전(평점 9.4/팀 내 1위/MoM)
***
경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난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빵-! 빠앙-!
“응?”
운전석 바로 옆에서 경적이 들려와 고개를 돌렸는데, 보조석 밖으로 몸을 빼낸 한 남자가 우리 벤피카의 유니폼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난, 창문을 조금 내렸다.
위——잉!
“다온이잖아!! 다온이 맞아!! 이런, 빌어먹을!! 내가 뭐랬어?! 그의 차가 맞다고 했지?! 다온!!! 오늘 진짜 빌어먹을 정도로 끝내줬어요!!”
“하하. 고마워요!!”
“난 당신의 팬이라고요!! 이 유니폼에 사인도 받았었다고!! 얼른 빅리그로 떠나요!! 우릴 더 자랑스럽게 해달라고요!!”
“…….”
벤피카의 팬들은 자신이 평생 사랑해온 팀이 셀링클럽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가끔은, 그걸 보며 서글퍼질 때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터키죠?!?!”
“넵!!”
“비록 가지는 못하지만, TV로 응원할게요!!!”
차창 밖으로 왼손을 내밀어 엄지를 치켜세워준 뒤, 다시 창문을 올리고 차를 출발시킨다.
더비에서 승리했기 때문인지, 일요일 자정을 훌쩍 넘겼는데도 거리엔 꽤 사람들이 많았다.
저러면, 내일 출근이 괴로워질 건데.
나야 뭐, 휴가를 받은 상태다.
시즌 중반 이후로 좋은 경기를 보여준 날이면 어김없이 휴가가 주어졌는데, 4일 뒤에 치러질 경기가 터키 원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잘 쉬어둬야 할 것이다.
“흐음.”
오늘도 난 경기 후에, 기자들로부터 이적과 관련된 질문을 잔뜩 받았다.
이적이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것을 원치 않아 요즘은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도 거의 접속하지 않고 있었는데, 완전히 그런 이야기를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요즘은 가만히 보면, 사람들 모두가 떠나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슬프단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며 계속 길을 가던 중, 보조석에 놓아두었던 두 대의 휴대폰 중 하나가 울렸다.
“응?”
한적한 도로에서 잠깐 차를 세워둔 뒤, 난 걸려온 전화를 확인해보았다.
“Ola?”
블루투스를 연결해 귀에 이어폰을 꽂은 나는, 다시 차를 출발시키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거의 1년 만에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에이. 늦은 시간에 미안해. 혹시 통화돼?
“네. 집에 가던 중이었어요. 잘 지냈어요?”
– 하하. 응.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에이전시는?
“아직요. 계속 알아보곤 있죠.”
– 그래? 빨리 구하는 게 너도 편할 건데 말이야.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디다스’의 담당자인 아르놀트 하네만(Arnold Hanneman)이다.
계약 초반부에 전화통화를 나눴던 이후, 오늘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 아, 그게.“
아르놀트는 오늘 오후에 끝난 회의의 내용을 내게 전달해 주었다.
”재계약이라고요?
– 응. 단, 네가 올 시즌이 끝나고 빅리그로 옮긴다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어.
“……아직 떠날지도 확실하지 않은데요.”
– 그러지 말고. 떠날 거잖아. 안 그래?
“…….”
처음에는 기자, 다음에는 팬.
그리고 이번엔 스폰서다.
환상적이네.
– 들어봐. 조건이 꽤 좋아. 다음번 광고의 메인모델이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5년 동안 매년 천만 유로야. 이건 물론 가장 기본이 되는 돈이고, 부가적인 수입은 별도 정산이야.
“와우. 그거 엄청나네요.”
– 그렇지? 좋은 조건이래도. 어차피 이번에 빅리그로 팀을 옮기게 되면 연봉도 엄청날 거잖아?
자세한 계약조건은 따로 메일로 보내두겠다고 말한 아르놀트가 전화를 끊은 뒤, 어쩐지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나는 사거리에서 핸들의 방향을 틀었다.
끼이이이이-익!
이대로 쭉 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해변도로로 이어지는데, 조금 멀리 돌아 집으로 들어가 볼까 한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는데, 벌써 내 미래가 정해진 것처럼 구는 사람들 때문에 조금은 짜증이 난다.
말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분명 더 큰 무대에서 뛰게 되겠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부르르르르-
부르르르르-
“응?”
다시 걸려온 전화.
이번에도 난, 갓길에 잠깐 차를 세웠다.
슬쩍 시계를 본 나는, 한국의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았다.
‘아침 10시쯤인가?’
그러곤 얼른 화면을 만져 전화를 받는다.
그러자, 막 잠에서 깬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우웅~ 나 일어났어.
“잘 잤어?”
– 응. 이겼더라.
“고새 또 봤어? 오늘 중요한 날이지?”
– 네에~
“잘하고 와. 얼른 봤으면 좋겠다.”
– …….
“여보세요?”
– 나두우. 보고 싶다.“
아영이의 나른한 목소리를 듣는 지금, 난 기분이 무척 좋아져 있었다.
– 집에 안 들어가?
”가야지. 조금 드라이브하고 있었어.“
-누구랑?
”여자.“
– 뭐? 진짜?
깜짝 놀라는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웃고 난 뒤, 난 농담이었다고 말하며 집으로 다시 핸들을 돌렸다.
– 그래 착하지이~ 드라이브 말고 얼른 집에 가.
”네, 누나.“
– 내가 누나 하지 말랬지?
그렇게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우린 장난과 수줍은 진담을 섞어 대화를 나눴다.
딸깍-
– 다 왔어?
”응. 차고. 이제 집에 들어갈 거야.“
– 잘했어. 얼른 자.
매번 그렇지만, 항상 전화를 끊을 때마다 조금은 아쉬웠다.
더 길게 통화를 못 해서가 아니라, 조금 다른 부분 때문이다.
”아영아.“
– 응?
”…… 아무것도 아니야.“
– 아, 왜애~ 얼른 말해봐아~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 치이. 난 할 말 있는데.
”응? 뭔데?
– 보고 싶어.
–
딸깍- , 띠로롱.
속삭이듯 들려온 목소리 뒤, 난 곧바로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운전석에 앉은 채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 난, 손을 움직여 아영이에게 톡을 하나 남겼다.
그러곤 차를 나서기 전, 무언가가 생각나 국제번호를 눌러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네. 저, 전에 주문을 부탁한 사람인데요. 이름이…… 네. 김성철이요. 네. 오늘 오후 7시까지…….”
아영이의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도록, 난 꽃다발을 포함한 선물을 잔뜩 부탁해 놓았다.
지금은 그걸 확인하는 시간.
물론, 가명을 썼다.
“네. 네. 최대한 예쁘게 부탁드릴게요. 네.”
아영이의 콘서트는 포르투갈 시각으로 오전 10시 30분이다.
그러니, 아침 10시까진 도착해 있어야 한다.
“휴우- 그럼, 자자!”
기쁜 마음으로 그때를 기다리기로 하며, 난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