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14)
213화
2013년 4월 26일.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교육센터. 제1 연습구장.
오전 늦은 시각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난 뒤, 우린 클럽으로 출근해 회복훈련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때, 어떤 인물이 연습구장을 찾아왔다.
사람들은 그를 무척 반겼고, 난 조금 덤덤했다.
“안 되겠어. 나 사인을 좀 받을래.”
“뭐? 진짜?”
“응! 당연하지! 저건 후이잖아!”
포르투갈의 전(前) 국가대표 후이 코스타가 팀의 스카우트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전에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전까지 포르투갈 하면 루이스 피구 외에는 떠올리지 못했던 나로선, 저분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대충 친구들의 반응으로 봐선, 무척 대단한 선수였던 것 같다.
훈련의 끝, 팀은 갑작스러운 방문객의 등장에 조금 부산스러워졌다.
“넌 안 가?”
“내가 왜?”
“하긴. 너도 나랑 비슷하겠다.”
포르투갈 출신의 선수들과 베테랑들 다수가 후이 코스타에게 몰려가 있었던 반면, 나와 제로니모는 제 자리에서 마지막 스트레칭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가족은?”
“5월에 올 거야.”
“진짜?”
“응. 그래서 계속 여기에 있으면서 휴가를 좀 보내려고. 가족들이랑 같이 바닷가에 가볼 거야.”
“아, 가족이랑 바다에 간 적이 없댔지?”
“응.”
제로니모의 말을 들으니, 겨울 휴식기 때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넌?”
“나?”
여름 A매치도 있어, 난 한국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친구들도 만나고, 일도 또 해야 한다.
“일?”
“응. 아디다스. 안 그래도 요즘 난리야. 더 큰 클럽으로 이적하면 더 많은 돈을 주겠다나?”
“그거 잘됐네.”
“그래?”
“아니야?”
“…….”
제로니모의 질문에 난 그냥 머리를 긁적였다.
“있지. 전에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어.”
“사람들? 누구?”
“감독님이랑 에두. 그리고 다른 스태프들.”
“?”
“구트만의 저주를 깨고 싶다고 했어. 오직 그랬을 때만, 다른 클럽으로의 이적을 고려하겠다고.”
“……그거, 좀 엄청난데?”
“그치? 말하고 나니까 나도 그렇더라.”
1960년 7월 1일에 부임하여 1962년 6월 30일 퇴임 때까지, 벨라 구트만은 벤피카를 유럽 최고의 축구클럽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전까지 유럽 최고의 클럽은 항상 레알 마드리드였고, 그들은 1955/56 시즌부터 1959/60 시즌까지 5년 연속 유러피언 컵(現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었다.
이젠 그 이름만으로 전설이 된 선수들과 함께, 유럽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던 거다.
완전무결한 스트라이커였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Alfredo Di Stefano), 악마의 왼발로 불렸던 푸슈카시 페렌츠(Pusukas Ferenc), ‘사포’와 ‘무회전 슈팅’의 선구자 격이었던 지지(Didi), 여기에 당시 최고의 센터백으로 평가받던 호세 산타마리아(Jose Santamaria)에 이르기까지.
이런 선수들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 최고일 수 있었고, 누구도 그들을 쉽게 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벨라 구트만은 그것을 해냈다.
“그거, 에우제비우 선수 때문에 아니야?”
“그럴 것 같지? 그게 아니거든.”
“진짜?”
“응.”
1960/61 시즌, 벤피카는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유러피언 컵 결승전을 치렀다.
당시의 FC 바르셀로나 역시 레알과 경쟁해 리그 우승을 여러 차례 차지하는 등, 유럽클럽대항전에서만 유독 약했을 뿐 뛰어난 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헝가리 축구와 유럽 축구 역사에서 최고의 레프트 윙으로 평가받는 치보르 졸탄(Czibor Zoltan)을 비롯해 스페인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자인 루이스 수아레즈(Luis Suarez), 또 ‘황금의 머리’로 불린 다재다능한 공격수 코츠시스 산도르(Kocsis Sandor) 등이 버티던 강력한 팀이었다.
벤피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벤피카의 황금기 때 에우제비우 선수가 당연히 주역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당시 에우제비우 선수의 나이는 18살에 불과했다.
요즘이야 10대라도 실력만 갖추었으면 아무 문제도 없지만, 당시만 해도 검증된 베테랑들이 주로 팀을 이끌었다.
“에우제비우는 그때 단 두 경기만 뛰었어.”
“시즌 전체?”
“응. 그래도 두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지.”
에우제비우의 1960/61 시즌 기록은 2경기 출전에 2골이 전부였고, 그것마저도 우승이 확정된 뒤의 리그 경기와 살게이로스(Salgueiros)와 가진 큰 의미 없는 컵 경기였다.
오히려 당시 벤피카를 이끈 것은 이곳의 전설 중 한 사람인 주제 아구아스(Jose Aguas)와 유럽 최고의 라이트 윙이던 주제 아우구스투(Jose Augusto), 지지와 함께 전 세계 최고의 미드필드로 평가받던 마리우 콜루나(Mario Coluna)와 같은 선수들이었다.
스쿼드의 전원이 포르투갈 선수들로 채워진 SL 벤피카는, 1961년 5월 31일 FC 바르셀로나를 3:2로 꺾으며 창단 첫 유럽대항전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같은 스쿼드에 에우제비우마저 각성하며, 레알 마드리드를 5:3으로 꺾고 2년 연속 유러피언 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흠이라면 그해, 국내 리그 우승을 놓쳤다는 것 정도다.
“봤지? 벤피카의 첫 번째 유러피언 컵 우승은 에우제비우 선수와는 무관해.”
“젠장. 너 진짜 자세히도 안다.”
“그러게 말이야.”
“으왓, 깜짝이야!”
제로니모와 함께 정신없이 대화를 주고받던 중,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화들짝 놀라버렸다.
그곳엔, 언제 와있었는지 후이 코스타가 서 있었다.
“신기한 일이로군. 그런 역사는 꼬맹이 시절부터 벤피카에서 뛰길 원하는 아이들이라도 알기 어려운 이야기야.”
“……요즘은 검색이란 게 있으니까요.”
“하하. 내 말은 그게 아니야.”
“?”
“잠깐, 이야기나 좀 할까?”
“???”
손가락을 까닥인 후이 코스타가 돌아서고, 난 어느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거참 자연스럽네.
“미안하네, 자네도 피곤할 건데.”
“아니에요. 긴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하하. 뭐, 그렇지. 잠깐 앉을까?”
후이 코스타가 나를 이끈 곳은 훈련장 한쪽의 비어 있는 벤치였다.
“어제 경기는 TV로 봤네. 안타깝더군.”
“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뛰고 싶었을 정도였어. 자네의 축구에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더군. 답답해 보였어. 특히, 후반전에는 말이야.”
“…….”
하마터면 ‘어떻게?’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놀랐다는 표정이군.”
“……네, 정말 그랬어요.”
나는 현재 벤피카에서의 삶에 무척이나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코칭스태프와 주변 동료 그리고 훈련 시설 등, 모든 것들이 날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나도 그랬어. 나도…… 예전에는 그랬지.”
“그게 무슨 말이죠?”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 후이 코스타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리스본 중심지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아마도라에서 태어난 후이 코스타는, 의식이라는 것이 생겨난 이후부터 늘 벤피카의 선수가 되기를 꿈꿔왔었다.
“지금도 처음 벤피카의 유니폼을 입고 데뷔했던 경기를 잊을 수 없어. 그건 나의 오랜 꿈이었지.”
“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래요.”
“그래. 이 나라에 있어 이 클럽은 무척이나 특별하니까 말이야. 괜히 국민의 2/3이 응원하는 클럽이 아니지. 아무튼, 모든 것이 다 좋았어.”
후이 코스타가 벤피카를 떠나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재정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의 벤피카는 지금과 같은 위상도 아니었고, 또 선수를 판매하는 부분에서도 딱히 돋보이지 않았다.
프런트의 직원들에게 급여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던 벤피카는 피오렌티나가 제안한 1,200만 에스쿠도를 거절할 수 없었고, 제안을 받아들인 직후 후이 코스타를 만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울더군. 단장이 내게 찾아와 울었어.”
“울었다고요?”
“그래. 미안하다고 말하더군. 보내고 싶진 않지만, 팀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처음엔 당황하고 또 화도 났던 후이 코스타였지만, 그는 곧 클럽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이해했다.
“내가 팀을 옮겨야만 가족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사람들이 떠오르더군. 그러자 이적은 어렵지 않은 선택이 됐어. 물론 여길 떠나는 것 자체는 무척 힘들었지만 말이야.”
“…….”
이후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다 벤피카로 돌아온 후이 코스타는 훌륭한 두 번의 시즌을 보낸 뒤에 은퇴했고, 곧바로 팀의 스카우트로 임명되었다.
이야기가 멈추었을 땐 따스한 봄바람이 곁을 스쳐 지났고, 예쁜 날갯짓을 펼치는 나비가 보이기도 했다.
문득, 난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우리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아, 미안하네. 잠깐 빗나갔군.”
간신히 주제로 돌아온 후이 코스타는 벤피카를 떠나기 전, 자신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에도 벤피카엔 좋은 선수들이 많았어. 특히 핀투, 그 건방진 녀석하곤 무척이나 잘 지냈지.”
주앙 핀투(Joao Pinto)는 포르투갈의 황금기를 함께했던 선수 중 한 사람으로,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 SL 벤피카의 소속으로 뛰었다.
플레이스타일이 무척 거칠고 또 과격한 행동에 거리낌이 없었는데,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통산 21번의 퇴장을 당했다는 점이 그것을 잘 증명해주고 있었다.
“우린 굉장히 호흡이 잘 맞았어. 내가 패스를 보내면, 녀석이 득점을 올렸지. 정말 거칠 것이 없었어. 그런데 한 날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후이 코스타는 그날로 완전히 돌아간 듯했다.
[“이런 빌어먹을, 후이! 대체 그 병신 같은 패스는 뭐야?!”]주앙 핀투는 어느 날부터 후이 코스타의 패스가 이상하게 들어온다 생각했고, 그것을 참을 수가 없어진 어느 날 시합 도중에 불만을 표출했던 거다.
“그때 뭐라 말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종이 울리더군. 알게 된 거야. 내가 보이는 것이 녀석에겐 보이지 않는 거라고.”
“…….”
“설마, 유령을 본다고는 말하지 않겠지?”
설마.
그럴 리가.
난 지금 후이 코스타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시작은 아마도 유로파 16강전부터였을 거다.
“사실, 그 말이 맞아요. 답답할 때가 있죠.”
제수스 감독님은 규율을 중시하는 분은 아니었는데, 기초가 갖춰지면 피치 위에서 선수들의 창의력이 발휘되기를 바라는 스타일이다.
본인의 축구 철학을 선수들이 충분히 이해하면, 그들이 어떤 플레이를 펼치든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시기 때문이었다.
전술적인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면 망설이지 않고 지시를 보내오시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우리에게 높은 자유도를 준다.
“전진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죠. 그게 아니면 커버가 필요하거나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가끔 그럴 때마다, 전 그냥 볼을 뒤로 돌려야만 했어요.”
“어제 경기도 그랬지.”
“……네.”
지금의 나는 하루 전, 이스탄불의 쉬크뤼 사라졸루 스타디움으로 다시 돌아간다.
@@@
·후반 34분
페네르바흐체 SK 1 : 0 SL 벤피카
패스를 뒤로 돌려보내곤, 난 답답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페네르바흐체의 공세가 무뎌진 것도 5분이 지났건만, 우린 그것을 전혀 활용하고 있지 못했다.
‘빌어먹을.’
몇 번은 직접 볼을 몰고 앞으로 나가며 팀의 공격 라인을 끌어 올리려고도 했지만, 오히려 수비 뒷공간에 문제가 생기며 역습을 허용하기만 했다.
한두 차례 그런 상황을 겪은 가라이가 내게 수비 위치를 지키라며 소리쳤고, 이후론 공격을 최대한 자제하는 중이다.
‘0:1이잖아! 뒤지고 있다고!’
터키 원정에서 0:1이란 결과물은 만족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일주일 뒤에 우리가 홈에서 페네르바흐체에 승리를 거둘 거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지금처럼 상대의 창끝이 무뎌진 상태라면, 동점을 목표로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팀의 공격은 전반전에 큰 재미를 본 롱-볼에 의한 역습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걸로는 안 돼.’
결국엔 승리를 거두어서 이 위치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유럽대항전을 펼칠 때마다 동료들이 소극적으로 변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마치, 우리가 열세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특히 지난 뉴캐슬 원정과 오늘이 그렇다.
[……씨팔.]하지만 난 묻고 싶다.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캄노우에서 좋은 경기력으로 이미 증명을 했으면서, 레버쿠젠 원정에서 승리를 거뒀으면서, 어째서 뉴캐슬과 페네르바흐체를 상대로 이렇게 소극적인 것이냐고 말이다.
페네르바흐체가 더 강한 팀인 것 같아서?
무대가 유로파 8강과 4강이라서?
제수스 감독님은 분명 우리가 더 좋은 팀이라고 말을 해오셨고, 분명 우린 그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쫄보짓을 할까보다.]이렇게 쫄보처럼 뛰는 것일까?
[디르크!!!]갑자기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끓어 오른 나는, 라인을 높여 하프라인 부근에서 패스를 전달받은 디르크 카위트를 압박해 들어갔다.
그리곤 몸을 밀착한 뒤, 팔을 그의 등에 가져다 대며 포스트플레이를 하려는 카윗의 힘에 맞섰다.
측면에 치우친 이후 이 남자는 늘 와이드 타겟 역할을 해왔고, 이런 식으로 등을 진 상태에서 볼을 잡아두어 동료들이 전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
지금도 보면 교칸 교뉼이 내 뒷공간을 보고 스프린트를 시작했다.
‘이미 당했던 거야.’
난 디르크 카윗이 볼을 옆으로 흘릴 것이라는 걸 알았고, 이내 팔에 힘을 풀며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런 뒤, 오른발을 앞으로 뻗었다.
탁-!
“!!”
‘됐다!’
발끝에 축구공이 걸리는 느낌이 난 순간, 곧바로 왼발을 움직여 발등으로 축구공을 차 넣었다.
교칸 교뉼은 이미 옆을 스쳐 지났고, 당황한 카윗은 날 잡아채려고 했지만, 내가 팔에 힘을 빼자 거기에 기대어 중심을 잡고 있던 그는 허우적대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쿵-
뭔가 피치 위에 떨어지는 소리를 뒤로한 채, 난 비어 있는 페네르바흐체의 오른쪽 공간을 향해 달렸다.
교뉼의 오버랩으로 인해 앞쪽은 텅텅 비어 있었고, 다시 축구공을 앞으로 차넣은 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동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인지, 시야 속에 포착된 선수는 오직 카르도소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주변을 페네르바흐체의 센터백 두 명이 둘러싸고 있다.
‘오스카가 살릴 수 있을까?’
만약 카르도소가 주력을 앞세운 공격수였다면, 난 더 드리블하지 않고 공격수와 골키퍼 사이의 공간으로 패스를 찔러 넣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카르도소보다는 페네르바흐체의 센터백들이 더 발이 빨랐다.
그렇다면 조셉 요보가 내게 접근하는 타이밍을 노려 패스를 보내야 할 것 같았는데, 그 상황에서 갑자기 카르도소는 엉뚱한 판단을 보여줬다.
계속 직선으로 움직이거나 조금 내 쪽으로 접근하며 달려주어야 했는데, 속임수 동작을 섞더니 오히려 먼 똑 포스트를 보고 대각선으로 달려나갔다.
순간 당황이 되었고, 어느새 요보는 내게 접근해 발을 뻗으려 하고 있었다.
‘제기랄.’
툭-
다급히 정신을 차리곤 왼발을 뻗어, 발 바깥쪽으로 축구공을 다시 밀어 놓았다.
지금까진 가까운 쪽 포스트를 향해 드리블했다면, 이번엔 조금 코너플랫으로 치우쳐 멀리 달아난 것이다.
볼을 빼앗기진 않았으나, 수비수로서는 나쁠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것도 일종의 지연이기에, 내가 다시 위험지역으로 들어서려면 드리블이 더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되었지만, 그런 사이에 전력 질주해 리커버리 하는 수비수가 자리를 잡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판단은.
‘니모!’
아까 볼을 빼앗을 때 거의 동일 선상에 있었던 제로니모가 열심히 달려, 나를 따라와 주었길 바라야 할 것 같았다.
앞쪽으로 굴러갔던 축구공이 다시 가까워졌고, 마지막으로 오른쪽으로 흘끗 고개를 돌린 나는 카르도소를 겨냥하는 척 곧바로 왼발을 휘두르는 자세를 취해 보였다.
하지만 난 저쪽으로 볼을 보내지 않는다.
팡-
“!”
난 왼발을 앞으로 휘두르는 대신, 크로스를 하려던 자세를 급격히 바꿔 발바닥으로 강하게 긁어내는 동작으로 변화를 주었다.
접기 동작을 응용한 것이었는데, 축구공을 발아래에다 놓아두는 대신 힘을 더 강하게 주어 패스를 보낸다는 느낌으로 축구공을 굴려버린 것이다.
만약 제로니모가 공격에 가담해 주었다면, 분명 지금 내가 패스를 보내는 곳에 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와하하하-!!!”}
{“!@#@#%@#!!! 하하! 하하하!”}
{“$#^#!!”}
내가 듣고 보게 된 건 조롱과 비아냥처럼 느껴지는 관중석의 목소리와 저 멀리에 있는 제로니모. 그리고 굴러온 축구공을 보너스처럼 받아든 하울 메이렐레스의 모습이었다.
@@@
후반전의 이 플레이 뒤에, 감독님은 제로니모를 빼고 멜가레호를 투입해 팀에 변화를 주었다.
“그때 전 오스카가 그냥 직선으로라도 달려주길 원했어요. 그럼 요보가 접근했을 때 패스를 보낼 수 있었을 테니까요. 수비수가 여전히 있었겠지만, 그래도 좋은 기회가 되었을 수도 있겠죠.”
“그래. 하지만 그게 아니었지.”
“네, 맞아요. 그리고 니모도 지친 상태였죠. 녀석은 갑자기 그렇게 달릴 수 없었어요.”
내 생각엔 그 플레이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난, 팀에 힘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원망은 안 해요. 전 계속해서 관리를 받았고, 다른 일부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하지만, 그들은 네가 보고 있던 것을 볼 수 없던 거야. 이것 봐. 축구선수 대부분은 그냥 눈앞의 상황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바빠. 그리고 만약 거기에 약간의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들은 유럽의 좋은 클럽에서 뛸 수 있지.”
축구는 무척 정신없는 스포츠다.
그래서 볼을 차며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건 쉽지 않다.
“내 경험에, 그럴 수 있는 선수는 잘해야 천 명 중에 하나야. 그리고 넌 그중에 하나고.”
“…….”
어째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팀을 떠나라는 건가요?”
후이 코스타는 이제, 팀을 떠날 때라고 말하는 것이다.
“조르제와 에두는 너와 더 함께하길 원해. 최소, 1년 정도는 더 말이야. 하지만 난 그에 반대하는 입장이야.”
“왜죠?”
“축구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이것 봐. 내게 벤피카를 떠나는 일은 무척 힘겨웠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더 재미있는 축구를 했어.”
피오렌티나와 밀란을 거치며, 후이 코스타는 전에는 할 수 없던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최고의 클럽엔 최고의 선수들이 있지. 또 경쟁하는 클럽에도 마찬가지야. 그럼 수준이 더 높아지게 돼. 특히 네가 볼 수 있는 것들을 다른 동료들도 함께 보고 뛰어준다면? 젠장! 그건 정말 소름 돋는 경험이야! 말을 하지 않는데도, 네가 무엇을 할지 알고 있다고!”
다시 바람이 불어오고, 잠깐 목소리를 높였던 후이 코스타는 헛기침을 하며 톤을 낮췄다.
“그리고 난 때를 놓쳐 성장이 멈추거나 오히려 후퇴해 버린 선수들도 보아왔지. 이 팀을 위해서라면? 그래. 너와 함께 1년을 더 하는 것이 옳아. 하지만, 난 저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어. 네가 얼마나 이 클럽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말이야.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후이 코스타는 내게, 제수스 감독님과 에두가 할 수 없는 말을 대신해주려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이건 벤피카의 일원이 아니라, 순수한 선배로서 말하는 거야. 넌 올여름에 이곳을 떠나야만 해.”
“……네.”
이건 참 신비로운 경험이다.
내가 못해서도 또 엄청난 제안을 받아서가 아니라, 내 미래를 위해 팀을 떠날 것을 종용받고 있다.
조금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는 잘 알 것 같았다.
일단, 지금은.
“고마워요, 후이. 진심으로요.”
“그래. 별말을.”
고맙다는 말이 전부였긴 하지만 말이다.
조금이지만, 결심이 섰다.
‘난…….’
***
작가의 말 ? 건강 걱정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에, 상황을 설명해 드리면 면역력 수치가 현재 일반 36세 성인 남성 기준보다 약 1/5 수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악성 종양이나 이런 게 있을 수 있어 검사를 진행한 결과 다행히도 그런 건 없었지만, 장기간의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인해 이런 상황까지 진행된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입원 기간을 늘릴 수밖에 없게 되었고, 아마 1,2주 정도는 더 병원신세일 것 같습니다.
얼른 건강을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들도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챙기세요.
그럼 (_ _)
김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