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29)
228화
2013년 5월 12일. 에스토릴, 포르투갈. 루아 잉그라테라 387.
서두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늘 배웠건만, 옷을 고르는 일에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지라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녀올게요오오–!!”
“어머! 얘!! 아들!!”
“아~ 왜!! 나 급해애!”
“차 키. 안 들고 가?”
“……오!! 엄마! 얼른!”
현관 앞에서 다급히 손을 뻗어가며 엄마에게 얼른 차 키를 달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피식한 엄마가 이쪽으로 걸어오신다.
아니 그냥 던져주지.
시간도 없는데.
“아들.”
“왜?”
“침착하게. 첫 데이트인데 듬직해야지. 응?”
“……응.”
신기하게도, 엄마의 말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러자, 나를 본 엄마가 매무새를 다듬어주신다.
“몇 시에 도착이지?”
“4시 30분.”
“지금 몇 시야?”
“3시 30분.”
“그것 봐. 여유 있잖아.”
집에서 공항까지는 차로 25분 정도, 도로를 우회하는 사정이 생긴다고 해도 4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운전 조심하고. 알았지?”
“응.”
“그래. 그럼 오늘 집에 안 들어와? 콘돔은 챙겼고?”
“아, 엄마!”
동네 아주머니들과 자주 만나신 이후로, 엄마는 무척 개방적인 분이 되신 것 같다. 본인은 무척 재미있어하시지만 가끔은 불편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순간이었는데, 소리를 빽하고 내지른 나는 차 키를 빼앗아 얼른 집을 나섰다.
다행히도, 날씨는 무척 좋았다.
“다 챙겼나?”
차에 올라타 빼먹은 것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휴대폰을 시작으로, 카드와 신분증 또 아까 훈련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찾아온 선물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좋았으-!”
모든 것은 완벽했고, 남은 건 공항으로 향하는 일이었다.
후방거울로 헤어스타일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뒤, 난 시동을 걸고 차고를 나섰다.
“안 들어와도 돼-!! 알겠지?!?!”
“연락할게-!!”
굳이 현관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주시는 엄마를 뒤로하고, 대문을 빠져나온 나는 익숙한 길을 달려 리스본 포르텔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주차해둔 뒤에는 보조석의 꽃다발과 선물을 뒷좌석으로 옮겨뒀고, 실내에 향수까지 뿌린 뒤에야 비로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08분이었는데, 지금 저기 스크린에서 막 런던에서 출발한 ‘대한항공’편의 비행기가 22분 뒤에 도착한단 내용이 뜨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얘, 왜 이래.’
분명히 아까까진 괜찮았는데, 비행기 편을 확인하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그러자 그 순간부터, 1초가 1분처럼 느껴졌다.
지금 내 모습은 흡사, 신경증세를 겪는 것과도 같았다. 몸을 통통 튕긴다거나, 한쪽 발을 떨고 주변을 계속해서 배회하는 등.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30초가 멀다 하고 휴대폰을 바라보기도 했는데, 어찌나 시간이 가지 않던지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인내심이 점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마침내 아영이가 탑승한 비행기 편이 가장 위쪽으로 올라갔다. 지금 앞쪽에선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나왔고, 그곳에 잠깐 시선을 두었던 나는 다시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5분.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긴 5분이 되겠지.
아니나 다를까, 정말 그랬다.
많은 반가움이 오고 간 주변이 고요해진 가운데, 옆쪽에서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어-”
“응?”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들은 나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 맞다! 김다온 선수! 맞죠?!”
“아, 네.”
“어떻게 해. 사인받아야 하는데, 사인.”
둘 중 한 사람이 어딘가로 부리나케 뛰어가고, 갑자기 내 주변은 나를 알아본 이들로 채워졌다.
어라,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인천에서 출발해 런던을 거쳐 리스본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 한국인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왜 전혀 하지 못했는지가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밀려드는 사인 요청 속에서, 간신히 정신을 붙든 나는 스크린을 다시 쳐다보았다.
‘어? 뭐야?’
누가 장난이라도 친 것인지, 분명 아까까지 5분이 남았음을 알린 스크린엔 비행기가 이미 도착했다는 글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얼른 이 사람들을 멀리 보내야 귀찮은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난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여가며 사인을 시작했다.
나야 괜찮지만, 아영이는 아니니까.
나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친한 멤버 한 명만 아는 비밀이었고, 이번 여행도 주위에선 동생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들키게 된다면 골치가 아픈 쪽은 상대방이었기에, 어떻게든 빨리 사인을 해주고 사람들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인 상태에서 무아지경으로 사인을 반복하고 있던 나.
그런데 이때.
“응?”
어딘가에서 불쑥 새하얀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눈앞에 있었던 건,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쓴 어떤 사람이었다.
“저도, 사인 하나 해주실래요?”
“…….”
하마터면, 난 덜컥 그 사람을 안아버릴 뻔했다.
연락처를 주고받은 이후에 가진 아영이와 나의 첫 만남은, 이런 식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
1200-224 리스본, 포르투갈. R. 안시에타 15. 알마(Alma. R. Ancieta 15. 1200-224 리스본, 포르투갈).
간신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공항을 빠져나오게 된 우린, 이후 카페와 전망대를 들렸다가 예약해 두었던 레스토랑으로 오게 되었다.
이곳 알마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성공한 쉐프가 직접 운영하는 식당으로, 이곳 외에도 시드니와 런던에 체인점이 있다.
지중해에서 난 신선한 해산물과 포르투갈 현지의 신선한 재료만을 이용해 환상적인 음식을 만들어낸다고도 알려진 이곳은,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은 식당이다.
물론 나는 인맥을 통해, 예약을 무척 쉽게 해냈지만 말이다.
에두에게 부탁하자, 30분도 되지 않아 예약이 완료됐다.
역시 사람이란, 뭐든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돈이든, 인맥이든.
“음~ 너무 맛있어! 안 먹어?”
“어?”
“아까부터 진짜 왜 그래~? 어디 아파? 피곤해?”
“어? 아, 아니. 크흠. 마, 맛있어?”
“응! 완전!”
하지만 나는 어렵게 예약한 이 환상적인 레스토랑의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가 없었다.
이유는 물론, 눈앞의 사람 때문이다.
“……왜? 뭐 묻었어?”
입을 오물거리면서 냅킨을 입가로 가져간 아영이가, 거울을 꺼내 들어 얼굴을 살핀다.
“역시. 화장 안 해서 좀 이상해?”
“아니. 전혀.”
“진짜?”
“응. 너무 예뻐.”
“…….”
벌써 몇 번이나 내 입에서 예쁘다는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영이는 어김없이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숙이거나 딴짓을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난 분명히, 사랑에 빠졌다.
“오늘 너무 내 얘기만 한다. 그치?”
“어?”
“넌 뭐 나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은 없었어?”
하고 싶었던 말?
그야, 많았지.
“그런데 왜 안 해?”
“그게, 잘 생각이 안 나.”
“왜?”
“너 보느라. 정신이 없어.”
언젠가 카르도소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만약 여자가 내게 관심이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을 칭찬한다거나 유치한 말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오는지를 제대로 살피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관심받고 싶은 상대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이렇게 반응한다고 했다.
“그만.”
어, 이건 아니고.
“자꾸 그러니까, 널 못 쳐다보겠어.”
그래. 바로 이것 말이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말 그대로 ‘여자’랬다.
우리 남자들이 오해하고 때때로 상상하는 여성스러움을 틀림없이 간직한 그런 존재.
그러니까 만약 칭찬과 간지러운 말을 했을 때 상대가 여성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그린라이트라는 게 카르도소의 주장이다.
“원래 그래?”
“응? 뭐가?”
“원래 그렇게 여자한테, 칭찬 잘 하냐구.”
접시를 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영이는 슬쩍슬쩍 나를 살피고 있었다.
이게 또 어찌나 귀여운지.
몸살 나겠네.
“아무한테나 이러진 않아.”
“피이- 거짓말.”
“진짜. 너한테 내가 거짓말을 한 건…… 아, 아니다. 말하지 말자.”
“왜? 그런 게 어딨어? 말해봐.”
“아무것도 아니야.”
“야아~ 반칙하기 없기. 말해 줘. 응?”
“…….”
머리를 긁적이는 나.
이건, 고도로 계산된 심리 싸움이긴 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아영이가 재촉할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너 안 예쁘다고 한 거. 너 안 보고 싶다고 한 거. 그건 거짓말이었던 것 같네.”
“…….”
아영이가 하지 말라고 했던 말도, 얼마든지 해도 됐다.
그야, 본인이 말하라고 했으니까.
다시 입을 다문 아영이는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였고, 그런 뒤에 우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응?”
“나도. 보고 싶었다고.”
또 한 번 카르도소의 말을 빌리자면,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특정한 말들이 관계를 전진시킨다고 했다.
남자들과 비교하면 여자들이 세워두는 벽은 무척 단단하고 또 기준이 명확한 편인데, 그것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자들이 입 밖으로 그런 벽을 무너뜨리는 말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랬다.
그런 말들은 마법과도 같아서, 서로의 관계를 전혀 다른 단계로 이끈댔다.
과연 우리도 그럴까?
“나, 이러는 거 처음이야.”
“뭐가?”
“이렇게 번호 주고, 이렇게 마음도 주는 거.”
“…….”
내가 침묵을 지키자, 애꿎은 접시 위에서 포크만 움직여댄 아영이가 조심스럽게 시선을 내게로 가져왔다.
“말…… 안 해?”
말이라.
해야지.
“아영아.”
“응?”
“난 니가 참 좋다.”
“…….”
분명 오늘은 종일, 아영이가 더 많은 말을 하고 그녀가 분위기를 이끌어왔다. 그렇지만 이제부턴, 조금 내가 더 다가가도 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난 웨이터에게 부탁해, 맞은편에 있던 자리를 옆쪽으로 옮겨도 되느냐고 했다.
잠시 뒤 우린 모서리를 사이에 두게 되었고, 조용히 아영이를 바라보던 나는 오른손을 조심스럽게 뻗었다.
“손 좀 줘봐.”
속삭이듯 말한 내 목소리에, 천천히 움직인 아영이의 왼손이 얹힌다.
그리고 우린, 웨이터가 다음 메뉴를 가져올 때까지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후 계속된 저녁 식사 자리는 낯간지러운 이야기는 조금 덜했지만, 더 많은 대화와 더 많은 웃음으로 채워졌다. 우린 정말 많이 웃었고, 또 자주 손을 잡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헤어져야 할 순간이 되었을 때, 아영이는 큰 결심을 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짐 좀…… 방에 옮겨 줄래?”
“……응. 그럴게.”
나는 그때,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난, 아영이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타 있다.
***
2013년 5월 13일.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교육센터. SL 벤피카 클럽하우스.
삶이란 참 멋진 것이다.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하늘은 맑고 푸르르며,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봄의 기운을 잔뜩 머금어 온 세상을 휘감고 있다. 또 새들의 지저귐은 합창곡과도 같고, 사람들은 전부 내게 친절하다.
새벽 클럽하우스로 출근해, 난 이런 기분을 주변 동료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너 미쳤어?”
라는 보통의 반응과.
“오, 아냐. 너! 어제 했지?”
라는 날카롭기 짝이 없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쪽은 당연히 오스카 카르도소다.
“다른 사람의 눈은 속여도 난 못 속여. 갑자기 삶이 아름다워 보이고 갑자기 그렇게 기분 좋은 거. 최소 3개월은 참다가 했을 때나 나타나는 증상이야. 그러니까 말해. 누구야?”
카르도소의 말에 주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뒤늦게 마사지실을 찾은 베르나르두가 이야기를 전해 듣곤 이렇게 말을 해왔다.
“너! 그때 걔랑?”
“응? 걔? 걔가 누군데?”
“있어. 한국의 가수.”
“뭐? 가수?”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낯설었던 베르나르두는 아영이를 그냥 가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거니와, 굳이 손댈 이유도 없었던 난 그걸 그냥 내버려 뒀었다.
“야! 말해봐! 당장!”
“꿈 깨셔, 오스카. 내가 정말 말할 것 같아?”
“이런, 제기!”
남의 연애에는 쥐똥만큼도 관심이 없는 동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는 전부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전부 지금까지 내가 해온 행동들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잠자리만을 목적으로 여자를 만날 기회는 얼마든지 많았고, 대부분은 경기에 지장을 덜 받는 선에서 일탈을 했다.
더구나 이 나라는, 매춘이 합법인 곳이다.
그래서 경기 사이의 간격이 있는 날이면, 원정지의 호텔에서 매춘부들을 부르는 경우 역시도 허다했다.
지난번 FC 포르투의 원정 때 있었던 일들이, 꽤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방을 찾았던 여자들이 여러 이유로 다른 방을 찾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그 모든 일에서 한발 물러서 있었다.
유혹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 삶의 기준에서 그런 행동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그 때문에 동료들은 나를 ‘고자’라거나 하는 식으로 놀려대기도 했었고, 너무 절제된 삶을 산다면서 걱정하는 이들 역시도 많았다.
가끔 빨리 결혼하라는 말을 듣는 것 역시, 내 삶이 이들이 보기엔 너무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느닷없이 연애를 밝혔으니, 동료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뭐야? 젠장! 얘 끝내주게…….”
“그만! 이젠 내 여자친구야. 알지?”
“오-! 그래. 선은 지켜야지. 크흠.”
아영이의 사진을 보며 뭐라고 하려던 카르도소의 입을 막으며, 난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했다.
“언제 출발이래? 내일? 모레?”
“모레. 아침에 간다는데?”
“그래?”
“응. 왜? 여자친구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잘 안 떨어져?”
“뭐?!”
“큭큭큭큭.”
나를 놀리는 오스카를 향해 붕대를 집어 던져준 뒤, 난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 말을 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 그라운드 사정에 빨리 적응하는 게, 무척 중요할 거야.”
“그렇겠지.”
유로파 결승은 아약스의 홈구장인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양 팀 어느 쪽에도 익숙지 않은 환경인 만큼, 그라운드의 컨디션에 적응하는 여부가 경기력과 내용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오늘부터 팀에서도 그런 내용을 설명해 주긴 하겠지만, 아무리 말로 들어봤자 직접 발을 내딛는 것과 아닌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 클럽은 너무 오래 괴롭힘당했어.”
“……응.”
“진짜로 말이야. 벌써 51년째라고. 난 그걸 끊어버리고 싶어. 내 영광도 영광이지만, 여기가 그렇게 괴롭힘을 받는 걸 보고 있지 못하겠다는 거야.”
내가 구트만의 저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입을 굳게 다문 동료들은 저마다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잠깐 침묵이 이어졌고, 이후 말을 꺼내든 건 안드레였다.
“그거 들었어?”
“응?”
“오늘 오후에 말이야. 에우제비우가 찾아온대.”
“뭐?! 진짜?!”
현역 은퇴 이후 주로 리스본에 머물렀던 에우제비우 선수는 현재,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고향인 모잠비크에서 머무르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셨다.
공산정권인 모잠비크 해방 전선과 그에 맞서는 반군 사이의 피를 흘리는 싸움을 일선에서 말리고 계신 것인데, 실제로 그 효과가 엄청나다고 한다.
듣기론, 방문하는 곳은 일주일간 평화가 찾아온단다.
“3년 만이래.”
“뭐가? 리스본에 오는 게?”
“응. 이번엔 아예 오는 거라고 하더라.”
안드레의 말을 듣고 있으니, 나는 문득 에우제비우라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해졌다.
이야기야 베베에게서 항상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들었다.
그는 단순한 축구선수가 아니라, 포르투갈 그 자체였다.
지금도 리스본 시내에서는 어렵지 않게 에우제비우 선수와 관련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축구팬과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인들은 에우제비우 선수의 얼굴이 새겨진 상품을 판매하고, 그가 자주 찾은 장소는 명소가 되어 포르투갈인들의 발길을 불러들인다.
만약 누군가 리스본에서 에우제비우를 욕하고 다닌다면, 장담하는데 두 시간 이내에 변사체로 발견될 것이다.
스포르팅 CP를 응원하는 울트라스들마저도, 에우제비우 선수만큼은 절대 건들지 않았다.
에우제비우 선수는 SL 벤피카의 선수이기 이전에 포르투갈의 대표였고, 당시까지 약체로 불리던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을 월드컵 3위로 이끌었다.
특히 북한과 치른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 경기는, 모든 월드컵의 경기를 통틀어 가장 명승부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이야 포르투갈이 유럽의 전통적인 강호라고 평가를 얻지만, 1960년대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은 유럽 예선 통과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아직도 2002년 월드컵에 열광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에우제비우 선수가 포르투갈에서 받는 추앙을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아니다.
‘오늘 오후랬지?’
지금도 계속해서 잠들어 있을 아영이는 시차 때문에라도 늦은 시각까지 잠을 잘 것이다. 이미 이야기도 그렇게 해두었고, 본인도 실컷 자겠다고 말을 했었다.
그래도 약속한 시각부터는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난 에우제비우 선수의 방문을 기다리면서도 그것이 너무 늦지만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내겐, 에우제비우 선수를 만난다는 건 무척이나 감격스럽고 또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1년 넘게 지내면서, 난 정말 그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그 저주를 깰 수 있다면 참 좋을 건데.’
벤피카의 유럽대항전 우승은, 에우제비우 선수가 함께한 13년 동안에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과연 그것은 내가 몸담은 지금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 자신감이 조금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유럽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프로 클럽 중에서, 단 두 팀에게만 허락된 정상을 차지한다는 건 단순히 확률이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번에 생에 첫 유럽대항전 결승인 나로선, 이 클럽이 그동안 받아왔을 아픔과 상처가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조금은 용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본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으니까.
난, 유로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나 자신과 이 클럽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분명 대단하겠지.’
단순한 상상만으로, 온몸이 짜릿해져 온다.
마사지를 받는 일이 끝난 후, 나는 동료들과 함께 브리핑이 이뤄질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Oi. Oi.”
FC 포르투와의 경기가 끝나고 이틀 뒤에야 찾아온 평소와 똑같은 하루.
그렇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의미는 전과는 조금 달랐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건, 유로파 결승.
그리고, 오랜 저주를 끊기 위해 반드시 꺾어야 할 EPL의 강호 첼시 FC였다.
***
[조르제 제수스, “유로파 결승은 우리에게 무척 의미가 있는 무대다. 모든 것을 쏟아부을 준비를 마쳤고, 어려운 적을 상대로 당당히 맞설 것이다.” – Goal.com] [라파엘 베니테즈, “현 시점에서, 유로파는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대회다.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 – 인디펜던트] [프랭크 램파드, “우린 이게 무척 큰 목표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결승전에서 패배한다고 해서, 내년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난 우리 선수들이 유로파 리그가 우리가 경쟁하는 무대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린 챔피언스 리그에서 경쟁해야 하는 팀이고, EPL Top 4에 진입하는 것이 유로파리그 우승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 인디펜던트]***
작가의 말 ? 본 에피소드를 적으면서, 20대 초반을 소환해봤네요. 당시는 싸이월드였는데, 싸이월드로 만난 여자아이랑 딱 저런 식으로 처음 만나고 데이트를 했었네요. 물론 당시 저는 돈이 없어서 평범한 식당을 갔습니다. 또 공항이 아닌 부산역이었고 사인은 없었죠. 아마 딴짓을 했던 것 같은데, 뭐 대충 그렇습니다.
제수스와 램파드의 인터뷰는 벤피카와 첼시. 다르게 말해 셀링클럽과 빅클럽의 태도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FC 포르투와의 에피소드를 길게 이어나갔던 건, 다온이의 내면에서 또 앞으로 무척 중요한 이야기가 될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페이스를 조절한 건 절단 때문이 아니라, 글의 마지막을 축구 외적인 내용으로 마무리했을 때 달릴 댓글이 걱정되어서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독자님들은 답답함을 느끼셨을 건데,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유로파 결승입니다.
이것도 약간 깁니다.
글의 전개는 전작들보다 빠르게 가져가되, 필요한 부분에서는 충분히 길게 적고 있습니다.
그럼. 감기 조심하세요.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