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몇 년 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매탄 중학교의 허찬욱 감독님은 나를 붙박이 윙어로 뛰게 하려고 하셨다.
[네가, 우리 팀에서 가장 빠르니까.]하지만 허찬욱 감독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었다.
날 아껴주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거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이제부터 설명하려고 한다.
***
2010년 9월 3일. 올보르, 덴마크. 하랄드 옌센스 베흐 7-9. 올보르드 포틀란드 파크(Aalbord Portland Park. Harald Jensens Vej 7-9. Aalborg, Denmark).
기억이 정확하다면 중등부 리그 2라운드가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을 거다.
그 날은 어째서인지 교장 선생님이 연습을 참관하러 오셨는데, 갑자기 감독님을 부르시더니 재웅이의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셨다.
박재웅은 나와 같은 중학교 동창으로, 아버지는 보수당의 정치인. 어머니는 무명 배우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날 연습이 끝나자마자, 나를 따로 부른 감독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미안하다. 나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면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어. 정말로 미안하다, 다온아.]대한민국 스포츠의 엘리트주의는 축구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이를 나타내는 형태는 승리지상주의 문화와 ‘내 아들은 공격수 해야 해’ 문화로 압축이 가능했다.
재웅이의 부모님은 아들이 수비수로 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높은 분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었던 교장 선생님은 감독님을 압박해 포지션을 강제로 바꾸도록 지시하셨다.
이후로도 나는 몇 번의 포지션 변화를 겪어야 했고, 빠르게 달리는 정도만이 강점이었던 난 결국 아무도 하려고 들지 않는 풀백 포지션에 최종적으로 정착했다.
사실, 이것은 나의 의지와도 관련이 있었다.
스스로 비참해지는 건 이제 싫었으니까.
뭐, 그것도 이젠 옛날 일이지만.
“뒤야! 조심해!”
“어?”
촤아아아아아-악!
하프라인 부근에서 볼을 받으려던 올보르 B팀의 32번이었지만, 녀석은 축구공을 만져보지 조차 못했다.
나는 전개가 이쪽으로 향할 것이라 예상하고 라인을 미리 올려둔 상태였다.
뻔하디 뻔한 올보르의 공격전개는 너무나도 교과서적이라 하품이 다 나올 수준이다.
태클로 빼낸 축구공을 곧바로 뫼르크에게 보내며, 난 다시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그리곤 목소리를 높여 오프사이드라인을 위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이에 맞춰, 친구들이 움직인다.
***
“완전히 자신감이 붙었는데요? 저 녀석.”
“음-
수비진용과 템포를 제어하는 김다온을 지켜보며, 노르셸란 B팀의 코칭스태프들은 오늘도 감탄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 부상으로 실전을 강도를 낮추는 대신, 노노와 함께 개인훈련을 하고 비디오 세션을 많이 가졌다고 들었다.
하루 전 노노가 찾아와 기대해도 좋을 거란 그답지 않은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했을 때만 해도, 노르셸란 B팀의 스태프들은 설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요즘 들어 눈부신 성장세를 보인 김다온이긴 하지만, 또 눈에 띄는 발전을 했을 거라곤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노르셸란 B팀의 코칭스태프들은 노노의 자신감이 허세는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김다온은 다시 또 성장했다.
믿을 수 없게도.
삐익-!
“으아아!”
또 한 번 올보르 B팀이 오프사이드에 걸렸고, 최전방에서 뛰던 67번의 공격수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최종 수비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평소의 플레이를 전혀 이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공격권이 노르셸란 B팀에게로 넘어오고, 후방에서 전개된 빌드업은 김다온의 발을 거쳐 최전방에서 움직이고 있던 오버 하머에게로 향한다.
***
삑-! 삑-! 삐익-!
·경기결과
올보르 BK B팀 0 : 4 FC 노르셸란 B팀
[골] 오버 하머 : 전반 26분, 후반 7분, 후반 11분.라우리츠 뱅 : 후반 46분
김다온 ? 90분 출전(어시스트 1)
.
.
개인적으로, 오늘의 경기력에 합격점을 주고 싶다.
몇몇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도 있었지만, 한 달 만의 실전이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줘도 괜찮을 것 같다.
“아까 그 패스 죽이던데? 완전히 떠먹여 줬어.”
“야! 나야, 나. 나도 알거든?”
“뭐야 재수 없게!”
“하하! 그러는 넌? 코너킥으로만 어시스트 두 개 아니야? 뭐 그래도 MoM이 있었다면 이 형님의 몫이었겠지만.”
“이잇-! 이 재수 없는 녀석! 처음엔 순진한 줄 알았더니, 전부 다 연기였어.”
“아- 놔! 머리 망가져!”
샤워를 끝마치고 버스에 올라타는 길, 장난을 치던 나와 올루프의 곁으로 오버 하머가 다가왔다.
“응? 또 왜?”
“아니, 그냥. 이쪽이 더 재미있어 보여서.”
“······핼리는 어쩌고?”
“몰라- 알아서 하겠지, 뭐.”
“······?”
시크한 하머의 모습에, 나와 올루프는 서로를 마주 봤다.
세상에나!
오버 하머가 핼리 갤한테 알아서 하겠지 라고 한 거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지도 모른다.
“아까 그 패스는 진짜로 좋았어.”
“아, 고마워.”
오늘 최전방에서 출전한 하머는 내 패스를 통해 해트트릭을 성공시켰다.
요즘 골이 나오지 않아 B팀의 주전 경쟁에서 살짝 밀린 상태였는데, 하필이면 핼리가 쉬고 내가 출전한 경기에서 3골이나 기록했다.
그리고 그 골 중에 하나가 내 어시스트다.
잠시 뒤, 버스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우리 세 사람의 곁을 핼리가 스쳐 지나간다.
“배신자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넌 끝이야!”
“웃기시네.”
“이익-!”
분한 듯 숨을 씩씩거리고 있는 핼리 갤.
조금 뒤 녀석은 갑자기 내게로 손을 뻗으면서, 모든 일이 전부 나 때문이라고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노란 원숭이 녀석! 너만! 너만 여기 오지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어!”
“뭐어-?!”
도대체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람?
어이가 없어 내가 핼리를 쳐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하머가 끼어들더니 핼리를 밀쳐냈다.
“으왁-!”
볼품없이 나뒹구는 핼리.
하머는 뱅과 더불어 팀에서 가장 힘이 셌고, 단순 근력에 한해서는 어지간한 1군 팀의 선수들보다도 나았다.
그런 하머가 있는 힘껏 밀쳐내자, 핼리는 뒤로 나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을 수밖엔 없었다.
“너! 얘한테 함부로 대하지 마!”
“뭐?!”
“네가 개똥 같은 패스만 보내니까, 그동안 팀이 득점이 없던 거야. 그런데 오늘을 좀 봐. 네가 안 뛰니까 팀이 얼마나 잘 굴러가는지. 네 부하 노릇을 하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해졌어. 앞으론 나한테 말도 걸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엉덩방아를 찧은 채, 핼리는 멍한 표정으로 오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시선을 틀어, 날 다시 표독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렇게 하고도 너희가 괜찮을 것 같아? 내가 우리 아빠한테 말해서 구단에······.”
“그래, 그래. 그 대단한 너희 아빠. 아 참, 그거 알지? 오늘 뉴스에 너희 아빠 횡령했다는 뉴스가 나온 거. 그거 해결하느라 바쁠 건데, 너한테 신경 쓸 시간이 있을까?”
“시끄러워!! 닥쳐!!”
“가자. 버스에 늦겠어.”
“응? 어. 어, 그래.”
하머가 우리를 버스로 이끌기 시작하고, 앞으로 가는 길에 흘끔흘끔 돌아본 핼리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보였다.
저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재웅이가 다시 떠오른다.
중학교 때 내가 풀백을 맡기로 한 건, 아무도 거기에서 뛰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풀백은 축구에서 힘들기로는 첫 번째인데, 받는 주목이나 대우는 가장 뒤처진다.
게다가 어쩌다 실수라도 하나 하면, 그 전에 백 개를 잘했어도 욕을 잔뜩 얻어먹는다.
센터백으로 뛰는 애들이야 덩치라도 크지, 풀백들은 덩치도 크지 않아 딱 책임을 전가당하기 쉬웠다.
그래서 처음 축구를 할 때부터, 애들은 풀백에서 뛰는 걸 싫어한다. 거기에 치맛바람이 더해지게 되면, 양쪽 풀백위치는 돈은 없지만 빨리 뛸 수 있는 애들이 뛰는 곳이 되어버린다.
바로 정확히 그 시절의 나라는 말이지.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내게서 포지션을 빼앗아갔던 재웅이는 아버지가 구속되며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이후, 그 녀석 어머니의 고향인 울산에서 축구를 계속한다고 들었다.
재미있는 건, 현재 재웅이가 나와 같은 오른쪽 풀백 포지션에서 뛰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며칠 전에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 때마침 옆에 재웅이가 있었다.
친구는 내게 재웅이를 바꿔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난 알겠다고 대답을 했었다.
[야, 미안하다. 그거 전부 우리 아빠 때문이었어.]포지션을 빼앗긴 이후부터, 재웅이는 다른 친구들을 꾀어내 날 따돌리기 시작했다.
가난뱅이라는 말도 그때 처음으로 들었고, 축구화에 개똥이 들어있다거나 녀석들의 잘못을 내가 뒤집어썼던 일도 비일비재했다.
가족이 아니었다면, 난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없었을 거다.
그런데 이제 와 녀석은 내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다시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어찌나 뻔뻔하던지.
[친구? 싫은데? 내가 왜?] [다, 다온아?] [잘 들어. 그래. 네가 포지션을 빼앗아간 것까지는 괜찮아. 그건 네 부모님이 한 일이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날 따돌리면 안 됐지. 너 때문에 난 중학교 시절을 지옥같이 보냈어. 친구? 꿈 깨셔. 이 개새끼야!]지금이라면 좀 더 욕을 시원하게 쏟아 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땐 흥분이 밀려오는 바람에 할 말을 다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전화를 걸어온 친구는 자기 속이 다 시원했다며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고 내게 사과를 해왔다.
그리고 난 거기에 미안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상원이는 내 진짜 친구였으니까.
친구끼리는 본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
통로를 사이에 두고 하머와 수다에 한창인 올루프의 옆에서, 난 고개를 뒤로 돌려 핼리를 바라봤다.
녀석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면 바보 같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통쾌하기보단 핼리가 참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녀석은 어쩌면, 진정으로 친구를 만들고 또 주위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야, 듣고 있어?”
“어?”
“아니, 좀 들어보래도. 전에 왜······.”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올루프의 수다를 들으며, 난 풀백이란 포지션이 참으로 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고생은 있는 대로 실컷 하지만, 대접은 받지 못하는.
하지만, 덴마크로 온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감독님은 풀백이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라 하셨고, 내가 그곳에서 뛰기에 충분한 재능을 갖췄다고도 말씀해주셨다.
언젠간 누구보다 훌륭한 풀백이 될 거라고 말이다.
나는 애착이 생긴 이 포지션에서, 반드시 축구로 성공할 생각이다.
아무도 나와 내 가족들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성공해, 날 비웃었던 이들을 역으로 비웃어주고 싶다.
그런데 과연, 그게 옳을까?
강자에서 약자가 되어버린 핼리를 지금 보고 있노라니,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해지는 나였다.
***
셸란, 덴마크. 파룸, 파룸 파크 2. FC 노르셸란 클럽하우스. 매니저 사무실.
1시간 뒤.
B팀 선수들이 원정지에서 돌아오고 있을 무렵, A팀의 코칭스태프들이 모여 메일로 보내져 온 비디오 파일을 시청하고 있었다.
이것은 B팀과 동행한 팀의 전력분석 요원 중의 하나가, 오늘의 경기를 촬영해서 보내준 것이다.
비록 TV로 보는 것만큼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애당초 이들에게 필요한 건 단 한 명의 플레이 내용이었다.
‘가르치는 보람이 있군. 어엿한 풀백이 다 됐어.’
사실, 지금까지 김다온의 플레이 모습은 풀백이라기보단 측면미드필드나 윙어라고 보는 게 훨씬 더 적합했다.
왜냐하면, 측면수비수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소양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모르텐에겐 커다란 의문이었다.
김다온은 분명 대한민국의 U-17 대표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김다온의 기본 소양이 부족한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모르텐은 스태프를 통해 직접 대한민국 유소년시스템을 알아봤고, 그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유소년시스템 환경은, 측면수비수가 성장하기에 최악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또한, 풀백에 대한 인식 역시도 좋지 못했다.
“다음 경기는 45분만 출전시켜야 하겠어.”
“그래요, 모르. 이런 세상에나. 하루하루 몰라볼 만큼 쑥쑥 자라고 있군요.”
“훌륭한 나무의 종자도 비옥한 토지가 없이는 높이 자랄 수 없지. 물론 우리가 비옥한 토지란 건 아니지만, 그만큼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온 녀석이지 않나.”
오늘 B팀 경기를 통해, 김다온은 자신이 다양한 능력에서 크게 성장했음을 보여줬다. 특히, 1 : 1 대인방어를 포함한 수비기술과 라인을 조율하는 능력에서 발전이 도드라졌다.
본래 공격적인 자질은 충분했던지라, 점점 더 현대축구가 요구하는 풀백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고 봐도 됐다.
물론 여전히 많은 부분을 손봐야 하겠지만, 장점이 워낙 특출 난 만큼 단점이 크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김다온의 집착과 열정은 돈을 주고도 사거나 배울 수 없는 가장 큰 무기였다.
최근의 부진으로 위기에 몰린 모르텐 비그호스트와 그의 스태프들에 있어,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돌아온 김다온의 합류는 커다란 힘이 되어주고 있다.
헨릭 킬덴토프의 복귀가 아직 많이 남은 지금, 노르셸란의 오른쪽 수비를 맡길 수 있는 건 김다온이 거의 유일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선 노르셸란 스태프들의 얼굴엔 근래 보기 힘들었던 자신감이 가득하다.
11일에 있을 오덴스 BK와 있을 수페르리가 8라운드를 앞두고, 노르셸란의 팀 분위기는 빠르게 회복 중이었다.